흙의 언어
몸에 새긴 흉터들이 비로소 훈장이 되었다
열사병이 아찔한 현기증과
살갗을 파고든 옻나무의 독기
독한 모기가 남긴 붉은 낙인까지
피부과 문턱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나는 비로소 흙의 언어를 배웠다
아픔은 요령을 가르쳐 주었으나
요령보다 먼저 배운 것은 낮은 자세였다
이제야 알겠다
농사는 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오만을 깎아 땅에 맞추는 일임을
오늘도 나는 충전 중이다
가장 겸허한 각도로 호미를 쥐기 위하여
인력시장
별빛마저 파르르 떨고 있는 새벽
외진 골목길을 허기진 그림자가 걸어 나온다
누구는 팔려가고, 누구는 내팽개쳐진 현장
목젖이 찢기도록 터져 나오는 절규에도
세상은 대답 없는 먹먹한 허공이다
버려진 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아
찢긴 생의 파편을 들이킨다
발등 위로 툭,
채 녹지 않은 햇살 한 조각 떨어진다
무심한 하늘이 건네는 시린 약속 하나 붙잡고
절뚝이는 희망이 다시 길을 낸다
들깨 밭에서
태풍이 지나간 자리
쓰러진 들깨를 일으키다 배웠습니다
억지로 세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뿌리째 뽑힐까 두려워
살살 흙만 덮어두었더니
스스로 힘을 길러 일어섰습니다
사람 마음도 그럴 테지요
영혼 없는 어설픈 위로를 보태기보다
진실한 눈으로 가만히 지켜봐 주는 일
때로는 침묵이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줍니다
김명림
강원도 양구 출생
2011년 <<열린시학>> 등단
시집<<어머니의 실타래>> <<내일의 안녕을 오늘에 묻다>> 등
*김명림의 시는 자기가 체험한 것을 철저히 몸으로 체득하고 육화해내는 특징이 있다. 그 육화(몸시)해내는 과정은 신산하고 슬프지만 그 끝은 사람냄새가 나며 따뜻하게 해준다. 그의 시세계는 어떤 이상을 추동하거나 위를 보지 않고 바닥을 보며 "낮은 자세"로 현실적인 문제에 더 집착하여 그 실마리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데 그는 이미 시 이전의 시를, 사람 이전의 시를, 삶 이전의 시를 몸으로 익혀 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