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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 (2025.6.14.) -나홀로 미사 ***

작성자김해병|작성시간26.06.19|조회수2 목록 댓글 0

답동성당 

 

인천교구 최초의 본당이자 주교좌 본당. 인천시 중구 답동 3 소재. 설립 당시의 이름은 ‘제물포(濟物浦) 본당’이었는데, 그 후 ‘인천 본당’으로 불리다가 1958년경부터 ‘답동 본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1889년 7월 1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바오로.
 
설립과 정착  인천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39년의 기해박해(己亥迫害) 이전이었다. 그 후 이 지역에서는 기해박해와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인천 · 부평 · 강화 등지에서 순교자를 탄생시켰으며, 박해 후에 살아남은 신자들은 각처에서 소공동체를 이루어 신앙생활을 하다가 답동 본당 소속이 되었다. 답동 본당의 설립은 조선교구에서 개항지인 제물포 지역이 장차 발전할 것을 예상하고 1888년부터 성당 대지를 물색하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

답동성당 

이에 앞서 프로테스탄트 목사들은 일찍부터 이 지역에 진출하여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고 있었고, 훗날 천주교회 측에서 전교 활동을 시작하자 이를 훼방하기도 하였다. 대지 매입을 결정한 조선교구에서는 당시 말레이 반도 페낭(Penang) 신학교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빌렘(J. Wilhelm, 洪錫九) 요셉 신부에게 새 본당 지역을 맡아 주도록 요청하였고, 빌렘 신부는 이를 받아들여 주선에 입국하자마자 제물포에 진출하여 본당을 설립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1889년 7월 1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제물포 본당의 초대 주임이 된 빌렘 신부는 우선 성당으로 마련한 가옥에서 1889년 7월 8일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당시 미사에 모인 신자 수는 85명이었는데, 새 신자들로 인해 신자 수는 곧 112명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다음 해 어렵게 대지 3,212평을 매입한 빌렘 신부는 여기에 성당과 교리실을 건축하려고 계획하다가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로 전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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