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동성당
인천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39년의 기해박해 이전으로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인천 · 부평 · 강화 등지에서 순교자를 탄생시켰으며, 박해 후에 살아남은 신자들은 각처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답동 본당 소속이 되었습니다. 답동 본당의 설립은 조선교구에서 개항지인 제물포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예상하고 1888년부터 대지를 물색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대지 매입을 결정한 조선교구는 페낭 신학교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 빌렘 신부에게 새 본당을 맡겼고, 빌렘 신부는 입국하자마자 제물포에 진출하여 본당을 설립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1889년 7월 1일이었습니다.
답동성당
제물포 본당(현 답동 본당) 초대 주임이 된 빌렘 신부는 이듬해 3천여 평의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 건축을 계획하다가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로 전임되었고, 이어 부임한 르비엘 신부가 추가로 대지를 매입하여 1891년 임시 성당 겸 경리부를 건축했습니다. 1893년 3대 주임으로 부임한 마라발 신부는 수녀원 건립을 시작하는 동시에 코스트 신부에게 성당 설계도를 받아 기초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8월 수녀원이 완공되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부원이 설립되어 보육과 무료진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성당 건립 공사는 1894년의 청일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어 1895년 8월 정초식, 1897년 7월 4일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당시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전면에 세 개의 종탑을 갖췄는데, 1937년 확장 개축을 거쳐 1981년에는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마라발 신부는 성당 건립 외에도 1900년 9월 ‘박문소학교’(현 박문 초등학교)를 설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