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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성지를 찾아서

명례성지 (경남 밀양시, 프란치스코 성지순례단 40명, 2026.6.5.~7 ) ***

작성자김해병|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명례성지

 

마산교구의 영적 고향이며 신앙의 원천인 명례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이다. 명례는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가 출생한 곳이며, 1897년 영남 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의 첫 번째 본당이 설립된 곳이다. 또한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방인사제인 강성삼 신부가 사목하다 돌아가신 곳이다.

 

순교자 신석복(申錫福) 마르코는 1828년 밀양의 명례(현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서 태어났다. 비교적 넉넉한 살림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농사를 지으며 누룩과 소금행상을 하면서 살았다. 밀양에서 김해로 가려면 명례 나루터에서 낙동강을 건너야 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늘 사람들로 붐볐고, 박해를 피해온 교우들도 정착해서 살았는데, 신석복은 이들의 권면으로 신자가 된 듯하다. 형제들은 그가 순교할 당시 신자가 아니었지만 훗날 모두 입교했다.

명례성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은 그가 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명례로 들이닥쳐 그의 집을 찾아낸 뒤 재산을 탈취했다. 그리고 그가 창원 마포에 장사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돌아오는 길목에서 며칠을 기다려 김해 한림면 가산리 길에서 체포하여 즉시 밀양으로 압송했다. 이때가 신석복이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한 지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포졸들은 밀양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그에게 무수한 형벌을 가했다. 다음날 이 사실을 안 형제들이 돈을 마련해 대구로 압송되는 신석복을 뒤쫓아 가서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빼내려 했지만 오히려 그는 형에게 “일 푼전(分錢)이라도 주지 말라.”고 부탁했다. 이로 인해 그는 대구까지 가는 동안 자주 능욕을 당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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