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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성지를 찾아서

박대식 순교자의묘 &사봉공소 (경남 김해시, 프란치스코 성지순례단 40명, 2026.6.5.~7 )

작성자김해병|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박대식 묘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 신자들은 주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 살았다. 그러다가 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할 곳을 찾아 강원 · 충청 · 전라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신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도 지역에 신자들이 늦게 나타난 것은 지리적인 이유로 특히 마산교구가 위치한 서부 경남지역에 가장 늦게 신자들이 등장했다. 그로인해 초기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때 이 지역에서는 순교자가 나오지 않았다.

 

마산교구 지역으로 신자들이 들어온 경로는 두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첫째는 강원도와 경상도 북부 지방에 숨어 있던 교우들이 남쪽으로 낙동강을 따라 이동하면서 합천, 창녕, 의령, 밀양, 진영, 함안 등지에 교우촌을 세웠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오래된 공소들이 남아 있다. 둘째는 1827년 정해박해가 곡성(谷城)을 시작으로 해서 전라도 전역으로 확산되자 지리산과 백운산을 넘어 서부 경남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함양을 본거지로 하여 단성을 거쳐 문산, 고성, 통영, 거제도로 흘러갔고 일부는 단성에서 북천을 거쳐 곤양, 서포 쪽으로 내려갔다.

박대식 묘

 

이러한 교우촌들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전까지 안정된 공동체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특히 문산, 함안(대산), 고성, 통영(황리), 진영, 거제도에는 큰 규모의 교우촌이 있었다.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1812-1868년)는 1812년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詩禮里)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들 삼형제(종립 · 종반 · 종철)를 두었다. 그가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입교한 이후 부친 박만혁과 형제 대붕 · 대흥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 병인박해를 만났다. 다행히 이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체포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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