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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성지를 찾아서

복자 정찬문 빅토리노 묘*** (경남 진주시, 프란치스코 성지순례단 40명, 2026.6.5.~7 )

작성자김해병|작성시간26.06.19|조회수3 목록 댓글 0

정찬문 묘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의 중촌 마을에는 머리가 없는 유해가 묻혀 있다 해서 ‘무두묘’(無頭墓)라 불리던 순교 복자 정찬문(鄭燦文, 1822-1867년) 안토니오의 묘가 있다.

정찬문의 묘에서 내려다보면 중촌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그 옛날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 그가 지금도 마을 사람들을 향해 굳은 믿음을 당부하고 있는 듯하다. 그의 묘가 서 있는 허유 고개는 신자들이 수시로 넘나들었던 고개로 사봉 주유소를 끼고 약 600미터 남짓 올라가면 묘가 나온다.

정찬문 묘

 

정찬문은 1822년 10월 13일(음) 진양 정(鄭)씨 양반 가문의 부친 정서곤(鄭瑞坤)과 모친 울산 김씨 사이의 외아들로 진주 동면 허유 고개 중촌에서 태어났다. 진양 정씨 가문은 일찍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한다는 지조로 낙향한 고려 말 대사헌 정온(鄭溫)의 후예로 정찬문 역시 선대의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아 강한 절개와 지조 있는 인품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대산 가등 공소의 천주교 신자 집안의 여자인 칠원 윤씨와 1841년 이전에 혼인하여 아들 중순을 두었다. 그는 부인의 권면으로 1863년, 그의 나이 41세에 입교하여 단란한 성가정을 이루며 전교 활동에 충실한 생활을 했다. 특히 이들 부부가 전교 활동을 했던 시기는 철종(哲宗, 1849-1963년) 재위 기간 14년과 고종(高宗, 1863-1907년 재위) 즉위 직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던 과도기적 시기였기에 비교적 박해의 위협을 받지 않고 활발한 전교 활동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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