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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유산 아카데미

5. 남종삼 가족 묘역 ***

작성자김해병|작성시간26.06.11|조회수0 목록 댓글 0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의 의령 남씨 가족 묘소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성 남종삼(南鐘三) 요한과 공주에서 순교한 성인의 부친 남상교(南尙敎) 아우구스티노, 창녕으로 유배 갔다가 치명한 부인 이조이 필로메나와 창녕으로 유배 갔던 막내아들 남규희(南揆熙)의 묘가 있다. 전주 진영으로 끌려갔다가 순교한 장자 남명희(南明熙)의 묘는 없다. 서울대교구 길음동 성당 울대리 묘지 정문에서 왼쪽으로 표지석을 따라 10여 분 걸어 올라가면 ‘성 남종삼 요한과 가족 묘소’에 이르게 된다.

 

남종삼 성인은 103위 한국 성인 중에서 가장 높은 벼슬에 오른 분이다. 원래 생부는 남탄교(南坦敎)이나 장성한 뒤 슬하에 아들이 없던 백부 남상교의 양자로 들어갔다. 남상교는 정약용의 학통을 이은 농학자(農學者)로 충주 목사와 돈녕부(敦寧府) 동지사(同知事)를 지냈다. 남종삼의 학문과 사상 형성, 그리고 훗날 천주교에 입교한 데에는 부친의 영향을 컸다.

 

남종삼이 언제 입교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부친이 일찍부터 입교하여 신앙을 지켜 온 사실로 미루어볼 때 양자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천주교 교리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입교한 뒤에도 자신의 관직 때문에 드러나게 교회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교회 활동은 1861년에 입국한 리델(Ridel) 신부에게 조선말을 가르친 것이나, 이전부터 이미 베르뇌(Berneux) · 다블뤼(Daveluy) 주교 등과 교류하면서 교회 일에 참여하고 있었다.

 

남종삼의 입교 후 가족들도 모두 천주교를 믿게 되었는데, 아버지 남상교는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더욱 전념하고자 충청북도 제천의 묘재로 이사해 은거 생활을 시작했다. 남상교는 이곳에 살면서 1866년 병인박해 때 공주 진영으로 이송되어 순교할 때까지 아들 남종삼이 찾아오면 가르침을 베풀며 신앙과 조국애를 일깨워 주었다.

 

높은 학문을 성취한 남종삼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지방 장관을 거쳐 철종 때에는 승지 벼슬에 오르고 고종 초에는 왕족의 자제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부패한 많은 관리 중에서 돋보이는 청백리로, 의덕과 겸손의 가난한 생활을 통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되는 한편 향교 제사 문제로 신앙과 관직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때 당당히 관직을 내놓았다. 남상교와 남종삼 부자의 묘재 정착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이들과의 교류가 계명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들 부자에게는 높은 벼슬, 명예와 권세, 안락한 생활 등 양반으로 누릴 수 있는 영화와 특권을 스스로 끊어 버린 일대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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