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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유산 아카데미

8. 갈곡리성당 ***

작성자김해병|작성시간26.06.11|조회수1 목록 댓글 0

의정부에서 서북쪽으로 20km, 문산에서 동쪽으로 12km 지점, 갈곡리 성당(옛 갈곡리 공소)이 자리한 갈곡리(葛谷里)는 옛날부터 칡이 많은 곳이라 해서 ‘칡의 계곡’(갈곡 : 葛谷)으로 불렸고, 순수 우리말로 ‘칡울’(칡의 마을)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원래는 ‘칠울 공소’라고 불렸다. 이 칠울 마을이 파주 지방 천주교 신앙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이 마을은 6.25 전만 해도 수풀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험한 지대였고, 동쪽에 있는 커다란 고개를 넘으려면 20여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 하여 ‘스르내미’(스물 넘어) 고개라 불렸다.

 

이렇게 험한 첩첩산중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약 120여 년 전이다. 홍천과 인근 풍수원에서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처음에는 칠울에서 남동쪽으로 6km 정도 떨어진 ‘우골’(현 우고리, 우묵하게 들어간 골짜기)이라는 곳에 정착해 살다가 5년째 되던 해인 1896년 김근배 바오로 · 김연배 프란치스코 · 박 베드로 가족이 이곳 칠울로 이주해 정착하였다.

 

이로써 구한말 갈곡리와 신암리(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일대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집단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옹기그릇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곳 칠울에 정착하게 된 동기는 칠울과 우고리 등 인근에 옹기그릇을 만드는 점토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지며, 성당 앞마당도 옹기를 굽던 곳이었다고 한다.

1898년 신자 수 65명으로 약현 본당 소속 칠울 공소가 설립되었고, 1900년 2년 사이에 신자수가 곱절이 넘는 145명으로 늘어났다. 1901년 송도(개성) 본당이 새로 설립되면서 약현 본당에서 송도 본당 공소로 이관되었고, 1923년 신암리 본당 신설로 인하여 칠울 공소는 11년 동안 신암리 본당 공소가 되었다. 1934년 신자수가 급격히 줄어든 신암리 본당이 공소로 환원되고 덕정리 본당이 신설되어 칠울 공소는 1947년까지 13년 동안 덕정리 본당 공소가 되었다. 1947년 의정부 본당이 신설되어 1963년까지 16년 동안 의정부 본당 공소가 되었다.

 

갈곡리 교우들이 1936년에 마련한 공소 강당이 6.25 전쟁 중인 1951년 폭격으로 소실되자 옛 강당을 대신할 새 성당을 짓고자 했다. 당시 한국 해병대 군종이었던 김창석 타대오 신부와 미국 해병대 군종이었던 에드워드 마 신부의 도움을 받아 1955년 1월 의정부 주교좌성당을 본뜬 현재의 공소 성당을 건립하여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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