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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드레곤헤즈 9

작성자양승국|작성시간11.12.14|조회수18 목록 댓글 0

9. 아홉째날(조캉사원, 포탈라궁)

 

다음날 먼저 찾은 곳은 조캉 사원이다. 많은 티베트인들이 사원에 참배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고, 사원 주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다. 우리도 조캉 사원은 오후에나 들리기로 하고 시계 방향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있다고, 나는 갖가지 복장과 표정의 티베트인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마니차를 돌리면서 입속으로 중얼중얼 끊임없이 만트라를 암송하는 사람, 삼보일배로 이마까지 땅에 대며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티베트 그 넓은 땅 각지에서 삼보일배로 고향을 출발하여 이 조캉사원까지 오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생각한다지 않는가? 오체투지를 하고 일어서는 사람들마다 이마에는 둥그렇게 흙이 묻어 있거나 아예 혹이 생겨났다. 무엇이 이들 티베트인들로 하여금 이런 고행 속에 자기 신앙을 지키게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런 티베트인들 틈에서 눈을 거스르게 하는 사람들이 섞여있다. 푸른 제복에 총을 든 사나이들. 저쪽 옥상에도 군인들이 보인다. 혹시라도 티베트인들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일어날까봐 무장군인들이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에도 티베트인들의 시위가 철저하게 진압된 적이 있었고, 근래 들어와 신장, 내몽고 등에서 소요가 일어났기에 중국 당국으로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겠지. 가이드도 이런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다. 조캉사원 앞 바코르 광장에는 ‘西藏 和平 解放 六十周年’을 기념하는 꽃탑이 서있다. 지난 7월에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면서, 아예 외국인의 티베트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과연 티베트인들은 이 60주년을 순수하게 화평과 해방의 해로 받아들일까?

오후에는 사원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안에는 7세기에 당나라 문성공주가 송첸캄포(松贊干布)왕에게 시집을 오면서 가지고 왔다는 석가모니 불상 외에 많은 부처와 달라이 라마상을 모셔놓았는데,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실내에 이렇게 많은 조각상을 모셔놓으니 이방인인 나에게는 답답한 느낌이다. 허나 이러한 상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은 경건하기만 하다. 남의 종교를 나의 주관적인 편견으로 재단하면 안 되겠지.

라싸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곳은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며 업무를 보던 포탈라궁일 것이다. 오전에 조캉사원을 한 바퀴 돈 우리는 포탈라궁으로 간다. 마부르산 위에 우뚝 솟은 높이 110m의 포탈라궁의 모습은 장엄하기만 하다. 특히 포탈라궁에는 역대 달라이라마의 영탑(靈塔)이 있는데, 달라이 라마 5세의 영탑의 경우만 하더라도 황금 5,500kg과 보석, 옥돌 1만 8,680개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그 진귀한 황금과 보물을 영탑을 치장하는데 쓰지 않고, 티베트 인민을 위해 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단지 이방인의 편견일까?

포탈라궁의 제일 꼭대기 중앙에는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다. 저기에 거주하던 달라이 라마는 망명하여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 궁의 꼭대기에서는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는 모습은 오늘의 티베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포탈라궁이 모든 티베트인들의 마음의 중심이라 하기에 이곳의 보안과 검열은 다른 어느 곳보다 철저하다. 공항처럼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나야 하고, 관광시간도 1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박가이드는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자기 가이드 면허가 취소된다고 시간을 지켜달라고 다시 신신당부한다. 나중에 스위스 예술가 다니엘라가 늦게 나오니 가이드의 안색이 달라지는 것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매일 이동하느라고 바쁘다가 오늘은 어제 투숙했던 호텔로 다시 돌아오니 마음도 느긋하다. 그런데 우리만 느긋하게 조캉사원과 포탈라궁을 다녀와 미안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임시인과 감작가. 이분들은 어제부터 조짐이 이상하더니 기어이 고산 증세로 들어누웠다. 돌아오니 링게르 꽂고 누워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런데 그 후 전세 역전이 발생한다. 임시인과 감작가는 오늘 하루 링게르 꽂고 누워있더니 그 다음부터는 훨훨 돌아다니는데, 그 다음에 시가체에서 팅그리로 가며 5,200m의 고개를 넘으면서는 이번에는 나와 방작가가 헤롱헤롱 하였지. 나는 그나마 저녁 굶고 누워 있다가 다음날 에베레스트로 향했지만, 방작가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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