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열두번째 날(팅그리 → ABC → 팅그리)
아침이다. 오늘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와야 하고, 또 돌아와 팅그리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어야 하기에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한다. 어제 저녁에 이교수님이 호텔 사장에게 물어보니 팅그리 민속악단이 있다고 하여 즉석에서 공연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몸 상태를 점검해보니 어제보다 한결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다. 박병욱 작가가 걱정을 하나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서 에베레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설사 중간에서 어떻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가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휴대용 산소통을 갖고 가기로 한다.
그런데 어제 나보다 증세가 심했던 방효성 작가는 끝내 못 일어난다. 그 고지대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고 원산폭격 비슷한 자세까지 취하고 했으니, 고산병이 ‘요놈 봐라’ 하며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방으로 가보니 완전 환자가 되어 누워있다. 사람들은 마음 같아서는 옆에 있어주고도 싶으나 다들 여기까지 와서 에베레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표정. 그래서 우리는 호텔 주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방작가 홀로 남겨두고 출발한다. ‘방장로님! 죄송했습니다!’ 밖은 아직 깜깜하다. 곤명에서도 아침 6시가 왜 이리 깜깜하냐 하였는데, 이곳은 곤명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떨어진 곳이라 여기서는 곤명보다 1시간 이상 아침이 더 늦게 찾아오는 것 같다.
팅그리에서 벗어나 조금 가니 검문소다. 인도와의 접경지역으로 가는 것이라 검문소에서 일일이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게 다 인줄 알았더니 가다가 또 검문을 받는다. 이렇게 까다롭게 검문을 해야 할까? 이런 데서 공산주의의 획일적인 관료주의를 보는 것 같다. 이제부터 길은 비포장이다. 길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계속 계속 오르기만 한다. 에베레스트로 가기 위해서 넘어야 하는 5,200m의 고갯길. 고개 위로 올라가니 드디어 멀리 공제선상에 하얀 구름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는 듯이 히말라야 산군(山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쉬운 것은 가까이의 구름이 히말라야를 보여주는 것은 자기 마음이라며 가렸다 보여주었다 하고, 보여주는 것도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그래도 그 히말라야 산군에서 유독 튀어 오른 것, 저것이 에베레스트여, 티베트 말로는 성스러운 어머니를 뜻하는 초모롱마임을 알 수 있겠다. 고개를 내려와 4,100m의 마을에서 점심을 먹는다. 5,200m에서 내려오니 4,100m만 되어도 숨 쉬는데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차가 스쳐 지나가는 길가의 아이들은 먼지가 나는 것에 아랑곳없이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아이들이 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어떤 녀석은 고추를 그냥 내놓고도 전혀 부끄럼 없이 손을 흔든다. 순박한 녀석들의 표정에 저절로 미소가 든다. 마지막 마을을 벗어나니 길은 더욱 험해지며 차는 그에 맞추어 속도를 줄이는데도 사정없이 흔들린다. 갑자기 헨릭이 차를 세워달란다. 오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표정. 차를 세우니 사람들이 우르르 나간다. 고산증 예방을 위해 이뇨제를 먹은 사람들이 그 부작용으로 오줌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들이야 돌아서서 남대문 열고 깔기면 그만이지만, 여자들은 어디 그런가? 여자 작가들이 은폐물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여기서 동서양의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여자 작가들은 끝까지 참으며 될 수 있는 대로 버스에서 멀리 떨어져 확실히 은폐되는 곳을 찾는데, 유럽의 여성 작가들은 버스 근처에서 대충 은폐하고 볼 일을 본다. 덕분에 나는 허연 엉덩이를 보아야만 하였다. 나도 동양 사람이라 여성 작가들이 멀리 가서 일을 보리라는 고정관념에 고개를 돌리는데 바로 내 시야의 사정거리에서 헬렌이 커다란 궁뎅이를 까고 일을 보는 것이 아닌가? 고산증 예방약의 부작용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의 부작용도 얘기해보자. 나는 고산증 예방을 위해 비아그라를 먹었다. 안나푸르나 갔을 때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 잘못 생각한 것. 네팔에서는 걸어서 올랐지만 여기는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간다. 덜컹거리는 버스의 진동이 점점 내 가운데로 몰리더니 잠자고 있는 비아그라의 본래의 효능을 깨우는 것이었다. 다행히 헐렁헐렁한 등산바지를 입어 눈길은 피할 수 있었지만, 후유~ 써먹지도 못할 것, 왜 잠자는 사자를 깨우는가?
베이스캠프 들어가기 전의 캠프에서 차는 멈춘다. 여기서부터는 걸어 올라가거나 이곳에서 제공하는 작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차에서 내리니 앞에 보이는 것은 중국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우체국.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저 우체국에서 엽서를 쓰고 부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저기이구나.
제대로 트레킹을 하려 하면 걸어 올라가야 할 것이나, 우리의 일정상 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드디어 5,200m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많은 룽다와 타르초가 바람에 자기 몸을 맡기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에베레스트의 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그냥 관광객들을 위한 베이스캠프이고, 실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는 산악인들을 위한 베이스캠프는 여기에서도 더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베이스캠프에서는 강한 바람이 우리를 맞이한다. 작가들은 각자 준비해온 자기 작품의 상징물을 타임캡슐에 넣고 히말라야 품에 묻는다. 박병욱 선생은 여기에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나인드레곤헤즈의 행사에 같이 하였던 작가들의 이름을 모두 적은 돌을 타임캡슐에 묻는다. 다음에 오면 이 타임캡슐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하긴 여기 에베레스트의 품안에 이렇게 묻는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설령 그것이 곧 허물어지고 흩어진들 무슨 큰 문제랴.
캡슐을 다 묻고 나서 이병욱 선생의 기타 연주에 맞추어 임솔내 시인이 ‘룽다’라는 시를 낭송한다. 임시인이 낭송하는 ‘룽다’ 뒤의 조그만 언덕 위에서는 현실의 룽다가 힘차게 펄럭이며 룽다의 품에 적힌 불경을 에베레스트 산록에 널리 퍼뜨리고 있다. 타임캡슐 묻는 의식이 끝나자, 덴마크 작가 헨릭(Henrik)은 준비해온 미니 골대와 공을 꺼내 현지 티베트인들과 미니 축구 퍼포먼스를 펼친다. 축구를 통한 현지 티베트인들과의 교감, 예술의 놀이화 등을 표현하려는... 뭐 이런 것이 아닐까?
다시 나는 지프를 타고 출발. 그런데 다들 베이스캠프에 왔다는 흥분에 예정보다 조금 오래 머무르다보니 다시금 고산증 증세가 찾아오는 것 같다. 할 수 없어 예비로 준비하였던 휴대용 산소탱크의 마개를 열고 산소를 흡입한다. 순간 허파로 넘어 들어오는 맑은 산소의 느낌. 산소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러나 산소탱크에서 입을 떼니 메스꺼움은 여전하다. 빨리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팅그리로 돌아오니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들과 음악을 통한 교감의 장을 이루기 위해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병욱 교수님이 기타를 연주하며 아리랑과 직접 작곡하신 ‘금강산’을 노래한다. 팅그리 주민들이 금방 아리랑을 따라 한다. 역시 아리랑은 세계인과 통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이에 화답하여 전통 민속의상을 입은 팅그리 민속음악대원들이 기타 비슷한 민속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그들의 춤과 노래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발을 구르고 몸을 돌리고 손을 하늘로 뻗치고... 우리 또한 음악에 어깨가 들썩이면서 하나, 둘 앞으로 나서 그들과 어울려 몸을 돌리고... 서로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음악과 춤과 눈빛이 서로 통하는 밤이었다.
이러한 음악의 교감이 펼쳐지는 동안 미국 작가 가브리엘(Gabriel)은 퍼포먼스 도구인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꺼내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데, 팅그리의 아이들이 몰려와 신기한 듯이 구경을 하며 서로 만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가브리엘은 다 만든 아이스크림을 구경하고 있는 팅그리 주민들에게 조금씩 나눠준다. ‘아하! 가브리엘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나누며 현지 주민들과 교감을 나누는 이 훈훈한 장면!’ 불은 서서히 꺼져가고, 모여든 사람들도 하나, 둘 흩어지고... 처음에는 단순히 잠자고 지나갈 것으로 생각하였던 팅그리가 이렇게 이곳 주민들과 하나의 감정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