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제 마지막 남은 범박산으로 향한다. 사실 범박산도 어제 넘으려 했었다. 처음에 범박산부터 넘으려고 양천구청역에서 부천 남부생태공원 가는 6614번 버스를 탔는데 그만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탄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버스가 지나가길래 생각할 것도 없이 뛰어가 겨우 버스에 올라타 앉고는 어차피 종점에서 내린다는 생각에 책을 펴들었었지. 그런데 종점에 도착하여 밖을 내다보니 ‘어? 내가 아는 남부생태공원이 아니네?’ 운전사에 물어보니 반대방향으로 왔다는 것이다. 이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가라 하였는데...이리하여 나는 눈물을 머금고 오늘 다시 범박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오늘은 차를 갖고 나왔다. 남부생태공원에 차를 세우고 범박산 들머리로 접근한다. 남부생태공원 - 지금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지만, 이곳은 원래 하수처리장이고 지금도 여전히 하수를 처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하수처리장이라면 냄새나고 더러운 곳이었지만, 그런 하수처리장을 이렇게 생태공원으로 180도 변신케 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범박산으로 접근하는데 길옆에선 어떤 건물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인데 건물에 걸린 펼침막에는 3월에 서울자유발도르프 학교가 개교한다고 쓰여있다. ‘발도르프 학교? 뭐지? 처음 들어보는 학교인데?’ 서울자유발도르프 학교는 아이들이 교과서의 굳은 지식을 머리로 습득하기 위해, 그것도 제 학년보다 앞서 배우기 위해 밤늦도록 학원을 전전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학교, 또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탈락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며 아이의 손을 끌기 바쁜 부모들을 위한 학교란다. ‘어? 이런 학교가 있었나?’
발도르프 학교의 시작은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발도르프 아스토리아 담배 회사를 운영하던 에밀 몰트가 직원 자녀들이 다닐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하면서 시작했단다. 에밀 몰트는 이를 위해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요청하고, 슈타이너가 아이들의 나이에 맞는 새로운 교육의 학교를 연 것이 발도르프 학교의 시작이란다. 그리고 이게 공감을 얻으며 세계로 퍼져 전 세계에 천 곳이 넘는 학교가 세워지고 우리나라에도 발도르프 학교가 들어온 것이란다.
‘오호! 그~으래~~? 이런 학교가 다 있었구나!’ 요즘같이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세워놓고 경쟁으로 몰아세우는 세태에서 경쟁의 속도를 줄이고 아이들의 색깔에 따라 아이들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자는 학교. 이런 멋진 발도르프 학교는 학제도 12년 과정이란다. 그럼 여기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다 마친다는 얘기이네. 서울자유발도르프 학교! 설립의 뜻 그대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는 멋진 대안학교로 성공하길 바란다.
기찻길을 건넌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기차가 다닌다는 항동철길. 그래서 기차보다는 이런 기찻길의 자유함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항동철길. 나도 재작년 4월에 처음 이 항동철길을 혼자 걸었고, 그 후 나를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2번을 더 걸었었지. 나는 범박산에서 내려와 차로 돌아올 때는 이 철길을 따라 오기로 하며, 철길을 건너고 역곡천을 건너 바로 앞의 범박산으로 향한다. 역곡천도 1년 사이에 깨끗하게 단장을 하여 사람들은 역곡천 가장자리의 새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런데 역곡천을 건넜는데 또 철길이 나온다. 으잉? 아! 그렇구나. 작년에 오류역에서 갈라져 나온 철길을 따라 이리로 올 때에 저 위에서 철길은 또다시 두 갈래로 갈라졌었지. 오른쪽으로 갈라진 철길은 KG 케미칼 공장으로 들어가는 철길이라 문이 가로막고 있었고... 나는 그 문부터 공장이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KG 케미칼 공장은 여기서도 더 전진해야 하는 모양이구나.
철길 옆 전봇대에는 ‘보상금 증액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실시’라고 쓰여진 펼침막이 걸려있다. 법무법인 청목이라는 데서 매주 3회씩 이곳 옥길동 마을회관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한다는구나. 무료 법률상담 뒤에는 무료 상담이 사건 수임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하는 변호사들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겠지. 이러한 지구 개발에는 늘 보상 문제에 따른 마찰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래도 얼마 전에 송파소리길을 걸으면서 감일지구를 지날 때에 본 ‘죽인다’는 살벌한 펼침막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구나.
범박산 밑에 오니 아이들이 딱지치기를 하고, 굴렁쇠 놀이를 하고 있다. 진짜 아이들이 아니라 실물 크기로 아이들 인형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후후! 어렸을 때 생각이 나는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딱지치기도 하였지만 구슬치기 정말 많이 하였었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하고 있을 때 중학교 무시험제가 발표되고 나서는 가방에 구슬을 잔뜩 넣어 갖고 다녔지. 구슬 따서 아이들에게 팔기도 하고...
범박산 들머리 입구에는 범박산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사실 범박산이라는 이름도 여기 와서 알았다. 해발 154m 밖에 안 되는 야산이라 지도에는 이름도 나와있지 않았거든. 그런데 레일바이크라니? 안내도에는 KG 케미칼 공장으로 들어가는 철길이 범박산을 따라가기에 여기에서 레일바이크를 한다고 하고 있지만 아직 레일바이크는 보이지 않는다. 안내도를 세울 때는 곧 레일바이크를 하리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아직까지 화물 운송 철길로서의 생명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지?
3:38경 범박산으로 오른다. 야산이라 별로 껄떡거릴 것도 없이 능선으로 올라 걷는다. 오른쪽으로는 천왕산 능선이 나란히 가고 있다. 능선에는 군데군데 나무에 시를 적은 나무판을 달아놓았다. 그중에 이형기 시인의 낙화(洛花)라는 시를 한 번 읊어볼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대학교 때 여친과 헤어질 때 이 시를 많이 인용들 하였었지. 후후! 시인께서는 젊은 연인들이 헤어질 때 자신의 시를 쓴 편지가 건네진다는 것을 생각은 하였을까? 3:50경 정상에 오르니 한 운동기구에서는 젊은 여인이 열심히 윗몸 일으키기를 하고 있다.
범박산이 있는 범박동은 범씨와 박씨가 정착하여 사는 동네라고 하여, 또는 호랑이 앞발자국 형태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그러나 범박산의 원래 이름은 숙공산이란다. 숙공산은 숙곡산이 변화된 이름이고, 또 숙곡은 숫골이 변화된 것이고... 숫골은 소골로 소도가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예전에 역사 배울 때 소도는 신성한 곳이라 범죄자가 이리로 도망쳐도 들어가 잡을 수 없다고 배운 기억이 나는데, 그 오랜 상고시대에 여기에 소도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계속 전진하니 큰 길이 내려오면서 범박산을 가로지르고 있다. ‘아하! 작년에 항동철길을 걸을 때 한창 공사중이더니만, 이제 길은 완성되고 차들이 달려가고 있구나. 아직은 새 길이 뚫렸다는 것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차들은 많이 오가지는 않는다. 이거~ 도로를 횡단해야만 범박산 능선을 마저 탈 수 있는가 하였더니, 차들은 굴속을 통과해나간다. 워낙 야산인데다 안부 능선에 도로를 낸 것이라 굴을 뚫은 것이 아니고 도로 공사 후에 터널을 만들어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예전에는 길을 내려고 백두대간과 9 정맥도 거침없이 잘라버리더니, 요즈음은 요런 야산도 능선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구나. 그것도 그냥 다리만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터널 위에 흙을 두껍게 덮어 나무들도 자랄 수 있게 하고... 훌륭하다!
터널 위로 내려와보니 썰매장을 만들어 놓았다. 썰매장 위에서는 만국기가 휘날린다. 썰매장을 보면서 떠오르는 내 어릴 때 시절이여! 나는 아버지께서 열심히 만들어주신 썰매를 타고 열심히 얼음판을 지쳤었지. 아버님은 내가 돌멩이 많은 개울가에서도 썰매를 탈 수 있도록 외줄썰매도 만들어 주셨었지.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나니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다.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범박산의 나머지 능선을 마저 걷는다.
4:06경 누군가 능선을 양철판으로 막아놓았다. 그 너머에는 현대 홈타운 아파트 단지가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막아놓은 너머의 능선은 저 아파트 단지가 자기들 동산으로 예쁘게 조성해놓았다. 이거 굳이 이렇게 양철판으로 막아놓을 필요까지야... 나는 오기가 나서 그 양철판을 너머 나머지 능선도 밟아나갔다. 4:12경 능선의 끝으로 내려오니 부천의 넓은 사거리로 차들이 오가고 있다. 서울시 경계 산행의 마지막을 한 때나마 신성한 소도가 있던 곳에서 마치니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항동철길로 가기 위하여 눈이 얼어붙은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와 새로 지은 휴먼시아 아파트 단지를 통과한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오니 아까의 그 새로 난 큰 길까지는 옛날 이 동네의 마지막 남은 옛길이 나를 안내하고 있다. 이 길이 과연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으려나?
항동철길까지 오니 철길은 아주 조그만 야산을 끼고 다가온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가서 지도를 확인해보니 이 야산도 서울시 경계 능선이다. 나는 능선만 따라가면 서울시 경계능선은 다 밟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거~~ 이 때문에 또 여기 다시 와야 하나? 이건 야산이라기보다는 언덕 정도에 불과하여 이름도 없으니, 그저 범박산의 능선이 바닥까지 내려왔다가 살짝 고개를 든 정도라 봐야겠지? 그래 이 정도면 굳이 이 언덕 밟지 않더라도 서울시 경계능선 종주 임무 완수로 보자. 애정남처럼 내가 그렇게 정하는 거다.
항동철길은 새로 난 길 바닥에 바짝 숨어서 길을 건너고 있다. 작년에 내가 철길 따라 이 길을 건널 때에는 길로서 다져지기는 하였지만 아직 포장은 되기 전이었지. 나는 좌우를 힐끔힐끔 하다가 재빨리 뛰어서 길을 건넌다. 그리고 전에 이 철길을 따라 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철길을 다시 걷는다. 오른쪽으로는 아까 능선을 열심히 걸었던 범박산이 다시 곁에 바짝 다가와 나를 맞이한다.
4:34경 철길이 갈라지는 곳까지 왔다. 작년에 나는 지금 내 앞에서 갈라지고 있는 철길 중 왼쪽 철길을 따라 걸었었지. 이번에는 오른쪽 철길을 따라 걷는다. 4:46경 아까 출발한 범박산 들머리까지 다시 왔다. 그리고 계속 처음 출발한 곳을 향하여 계속 걸으니, 4:57경 다시 남부생태공원에 도착하였다. 수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밟아나가던 서울시 경계 능선을 오늘 마침내 다 걸쳐보는구나. 순간 뿌듯한 느낌이 내 가슴을 그득히 채운다. 사실 처음부터 서울시 경계능선을 밟아나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서울시 경계의 이 산, 저 산을 오르던 어느 때에 서울시 지도를 보다가 문뜩 대부분의 서울시 경계가 능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새삼 깨닫고 그때부터 하나 하나 이어나가기 시작한 것이었지.
비록 관악산과 삼성산, 우면산의 서울시 경계 능선중 일부 밟아보지 못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애초 능선에 솟아있는 산을 오르려는 생각이었기에 여기서 서울시 능선 종주를 마감하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산행이었지만, 그래도 나로서는 오늘 마침내 서울시 경계 능선을 모두 다 밟아본 아주 아주 의미 있는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