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에서
2012.06.30
동구릉에 비가 내린다
숨 넘어가던 풀과 나무
까칠했던 살결 매끄러워지자
온 몸에서 뿜어내는 달디 단 숨결
잣나무 쪽동백 명아주
기쁨에 겨워
눈물방울 대롱대롱
살아서도 대지가 마르면
피가 마르고
백성들 입술이 타면
심장이 타던 임금
무덤 적시는 빗소리에
안도의 한숨
백성들 땀으로 빚어 바친 곡주
손사래치던 임금도
오늘은 술잔 가득 고인
빗물에 취한다
무덤가 어린 소나무
어느덧 노송 되고
서슬퍼렇던 어명
삭아 흙먼지 됐어도
빗방울에 울고 웃는 백성들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은
임금도 민주주의도 기계도 아니었다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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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후배들과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에 다녀왔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최장수를 누렸던 영조,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란을 겪었던
선조 임금 등이 잠들어 계시는 곳이지요.
비가 촉촉히 내리는 동구릉은 평화로웠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상에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들이 목마름으로 누렇게 타들어갔으니
얼마나 고마운 비였을지요?
바싹 말랐던 동구릉 숲의 개울에는 다시 졸졸졸 물이 흐르고, 모처럼 단비를 포식한
나무와 풀들은 온 몸에서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습니다.
새들도 이 나무 저 가지를 연신 날아다니면서 울어댔습니다.
파릇한 잔디에 덮힌 부드러운 봉분 속 임금들도 끈덕진 가뭄에 애가 타서 제대로
잠들지 못하시지 않았을까요?
오직 하늘의 은총에 기대어 농사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시절, 논밭이 갈라지고 백성들 마음도
타들어가는 호된 가뭄이 오면
임금은 자신의 덕이 부족한 탓이라 여겨 곡기를 끊고 간절한 기도를 올려야 했지요.
인류 문명의 발달사는 거친 자연을 극복하고 길들이는 도전의 역사였습니다.
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더 이상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 농사를 벗어나
저수지를 만들고 도랑을 팠지만, 지금도 여전히 농사는 하늘의 뜻입니다.
빈사 직전의 나무와 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빳빳이 들고 온 몸으로
달디 단 숨결을 뿜어댑니다.
비 내리는 숲에서 번져 나오는 상쾌한 공기 내음은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생명의 안부이고 감사의 인사가 아닐까요?
아홉개의 능을 구비구비 돌아, 능을 감싸고 있는 검암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네시간 가량의 숲길을 거닐면서
새삼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내리는 비에 감사했습니다. 가뭄에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기어이 다시
살아난 소나무와 서어나무와 쪽동백과 개망초와 명아주에 감사했습니다.
어울사랑 가족 여러분께도 이 비가 모든 근심과 걱정을 말끔히 씻어내는 달디 단 비가 되기를
바랍니다.
- goforest 合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