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째날
땅이 보인다! 태평양을 가로 지르며 계속하여 물만 보이더니 땅이 보인다. 하와이 제도로 들어선 것이다. 지금 나는 아내와 동서들 부부와 함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호놀룰루로 가는 길이다. 바로 위의 동서 딸인 처조카가 하와이에서 결혼하는 것이다. 얼마만인가? 96년? 97년? 처음 가족들과 하와이 여행을 가며 얼마나 가슴 설렜던가? 그때도 바로 위의 동서네 가족과 같이 하와이를 찾았었지. 다시 찾는 하와이. 하와이는 또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줄까?
비행기 유리창 너머로 섬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카우아이섬이다. 영화 쥬라식 공원의 무대였던 카우아이섬. 쥬라식 공원을 생각하자니 지금 저 밑 어디에선가 공룡이 하늘 위를 떠가는 우릴 보며 쿵쿵거리며 쫒아서 달려올 것만 같다. 비행기가 카우아이섬의 해안을 벗어나 푸른 바다가 보인다싶더니만 조금 지나니 또 다른 해안서니 시야로 들어온다. 드디어 우리가 탄 비행기가 내려갈 오하우섬이다. 비행기는 오하우섬으로 들어오더니 금방 활주로를 찾아 내려간다. 출발할 때도 2012. 6.1.이었는데, 밤을 새워 날아왔건만 여전히 6.1.이다. 날짜변경선을 지나오며 하루를 번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마중 나온 가이드 박상진씨가 우리에게 꽃목걸이를 달아준다. 훌라춤을 추는 하와이완 댄서들이 목에 걸고 있던 플르메리아 꽃목걸이. 그 꽃목걸이를 나도 목에 건다.
공항을 나온 우리들은 호놀룰루 시내 관광에 나선다. 호텔 체크인 시간까지 비는 시간 동안 시내 관광을 하는 것이다. 12시를 넘기며 처음 찾아간 곳은 분화구 안에 만들어진 펀치볼 국립묘지. 그런데 분묘도 보이지 않고, 서양 묘지에는 의례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십자가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것은 파란 풀밭에 점점이 박혀있는 석판들. 그게 묘비였다. 묘비를 세우지 않고 이렇게 바닥에, 그것도 도드라지지 않게 풀밭에 박아놓으니 묘지라는 생각보다는 어느 공원에 들어온 느낌이다.
이 조그만 섬에 이런 큰 묘지가 있다는 것은 태평양 전쟁에 숨진 이들이 많다는 것. 당장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3천명이 훨씬 넘는 미군이 죽지 아니하였는가? 위령탑의 넓은 벽면에서는 거대한 여신이 묘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뉴욕의 항구를 불 밝히는 자유의 여신이 이곳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여신이 왼손에 들고 있는 나무는 월계수?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하와이 주대법원 청사. 청사 앞에는 권위를 나타내듯 찬란한 황금색 케이프를 두른 카메하메하 1세(1758-1819)의 동상이 서있다. 왕은 왼손에 평화를 상징하는 창을 쥐고, 오른 손으로는 우리 보고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아마도 저 황금색 의상은 왕만이 입을 수 있었으리라. 동상 밑의 설명을 보니 하와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왕으로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하와이를 통일한 것이라 한다.
카메하메하 1세가 하와이 제도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유명한 항해가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에 도착하였을 때 20살의 카메하메하는 쿡 선장을 만나 영어를 배우고 서양의 유용한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1782년 왕위에 오른 후 대포와 총을 앞세워 하와이 제도 정복에 나서 1810년 하와이 제도 전체를 통일하였고, 성문 법률도 제정하였다. 카메하메하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왕은 외롭다는 것인가, 아니면 하와이 통일 사업의 외로움을 나타낸 것인가?
대항해가 제임스 쿡 선장은 이곳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에게 피살되었지. 처음 쿡 선장이 하와이에 상륙했을 때는 성대한 환대를 받았다. 하와이 전설에 풍요의 신인 오르노가 하얀 돛을 단 카누를 타고 온다는 전설이 있는데, 하얀 돛의 인데버호를 본 하와이 원주민들에 의해 쿡은 풍요의 신으로 오해받았으리라. 그러나 날이 갈수록 풍요를 갖다 주기는커녕 점차 불화만 커져가다가 결국 충돌이 일어나 쿡은 살해당한 것이다.
151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 일행이 나타났을 때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 사람들도 코르테스를 다시 돌아 오리라던 하얀 피부의 케찰코아틀 신으로 오해하지 않았는가? 잔인한 코르테스는 그 신화를 이용하여 멕시코를 점령했지만, 쿡은 여기서 죽었다. 오늘날 쿡선장이 살해당한 곳은 흰색 오벨리스크로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내가 세계사를 배울 때에는 쿡 선장을 위대한 항해가로 배웠지만, 그러나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서양 제국주의 팽창의 기수라 해야 하지 않을까?
청사 안으로 들어가본다. 왼쪽 복도 쪽으로는 사법부 역사 센타라고 되어 있는데, 그 뒤의 벽면에는 초상화들이 걸려있다. 역대 하와이 주대법원장의 초상화가 아닐까 생각하며 초상화로 다가가려는데, 입구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제지를 한다. 입장료를 내야하는구나. 입장료까지 낼 생각은 없기에 입구에서 슬쩍 훑어만 보고 돌아 나온다. 그런데 역대 하와이 주대법원장에는 한국인도 있다. 1993년에 한국인 3세인 문대양(Ronald T. Y. Moon) 판사가 대법원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 문정헌 옹은 1903년 한국 이민선 2호를 타고 하와이에 왔었다. 문옹은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일하면서 오직 근면과 끈기로 돈을 모아 한국인을 위한 교회와 학교도 세웠다. 할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문판사. 우린 또 그런 문판사를 자랑스러워 한다. 문판사는 2010년 70세로 정년 퇴임을 하였다.
길 건너편에는 하와이 왕국의 궁전인 이올라니 궁전도 있지만, 시간 때우기 일정이라 박가이드는 우리를 항구로 인도한다. 많은 배가 드나드는 항구인데도 물이 참 맑다. 박가이드는 저쪽 편에 보이는 것이 1921년에 세워진 높이 56m의 알로하 타워라면서, 이는 다운타운의 랜드마크로 10층에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예전에 비행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알로하타워는 하와이의 관문으로 북적거렸으며, 우리의 하와이 이민 선조들도 이리로 들어왔다. 오랜 항해에 지친 이민 선조들이 드디어 하와이 땅을 밟으면서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와이키키 비치에 자리 잡은 메리어트 호텔에 체크인을 한다. 배정된 28층 객실로 올라가 베란다 창문을 여니 맞은편에 다이아몬드 헤드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여기서 보면 길쭉한 산처럼 보이지만 하늘에서 보면 둥그런 분화구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오리라. 다이아몬드 헤드는 생성 원리가 성산 일출봉가 같다고 한다. 얕은 바다에서 용암이 분출하다 물을 만나면서 격렬한 화산 폭발로 이어지며 저런 분화구를 만드는 것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온다. 걸으면서 길가의 상점들을 들여다보는데, 한 곳에 영국 국기와 비슷한 국기가 있다. 카메하메하 1세가 만든 하와이 왕국 국기로 지금은 하와이 주기라는데, 8개의 하얗고, 빨간 그리고 푸른색의 가로줄이 교대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에, 왼쪽 상단에는 영국 국기 문양이 있다. 8개의 줄은 하와이 제도의 8개 주요 섬을 대표하는 것이고, 영국 국기 문양은 하와이 왕국과 영국 사이의 우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정이 돈독하다고 하더라도 국기에 남의 나라 국기 문양을 넣는단 말인가?
당시 하와이 왕국은 날로 점증되는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이를 벗어나려고 영국에 다가섰던 모양이다. 조선 말 고종 황제도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보려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을 감행하지 않았던가? 다 약소국의 슬픔이지. 하와이 왕국은 그러나 결국 점증하는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1893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마지막으로 왕국의 문을 닫는다. 그리고 잠시 하와이 공화국을 거쳐 1898. 7. 7. 미국의 50번째 주로 합병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별의 노래 알로하오에는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작사, 작곡한 것이라지.
와이키키 해안으로 나가니 바다로 좀 멀리 나간 곳에서 사람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다. 여기서 보기에는 파도가 별로 없어 보이는 데도 저기까지 나가면 그래도 파도를 좀 즐길 수 있나보다. 해안가에는 옆으로 뻗어나간 나무줄기에서 다시 수직으로 가지를 내려뜨려 땅에다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밴 욘 트리라고 하던데, 꼭 영화 아바타에서 나오는 정령이 깃들인 나무 같아 보인다. 녀석은 옆으로 뻗어나가는 줄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저렇게 밑으로 가지를 늘어뜨리는 것일까?
바닷가 상점들을 지나치는데, 어느 옷가게에 낯익은 얼굴이 우릴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실물 크기 사진이다. 왜 오바마 대통령을 여기에?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 1961년 이곳 호놀룰루에서 케냐 출신의 하와이 대학 유학생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 흑백 혼혈로 태어났단다. 사실 호놀룰루 시내를 걷다보면 생각보다 백인들을 많이 볼 수 없어 미국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기도 한다. 백인이 24.3%밖에 안 되고, 오히려 아시아계가 41.6%, 하와이 원주민이 18%나 되다보니 아시아의 한 섬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밤의 호놀룰루 거리는 관광지 도시답게 낮 못지않게 활발하다. 한쪽에서는 즉석 음악회가 열리고,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즐기고 있다. 걷다보니 분명 사람 같은데 미동을 하지 않는다. 아내와 처형들은 그 앞에서 사람이다, 마네킹이다 논란을 벌이는데, 갑자기 움직인다. 후후! 마네킹 같이 서 있으면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군. 국제시장까지 갔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데 바닷가에는 해변의 운치를 더해주는 횃불이 늘어서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와이에서의 첫날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