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로 나간다. 아침의 다이아몬드 헤드는 더욱 생기 있는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와이키키 해변에 나와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있다. 오늘은 오하우 섬 관광을 나선다. 다이아몬드 헤드를 돌아 하나우마 만으로 향하던 버스가 어느 오르막 도로에서 멈춘다. 계곡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 위로 산 사면에도 산동네 집들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에는 산동네가 못사는 서민들이 사는데, 하와이에서는 반대다. 박가이드는 산동네의 모양을 잘 보란다. 후후! 나는 알지. 예전에 하와이 왔을 때에도 가이드가 여기에서 똑같은 것을 물어보았지. 바로 한반도 모양이다. 나는 이곳에 저 산동네 바라보는 관광객은 우리나라 사람밖에 없겠다 했더니, 가이드는 중국인, 일본인들도 이곳에 온단다. 한반도 모양이 여기에 그려져 있다고 하니까, 이웃나라 사람들로서도 좀 관심이 있나보지?
9:40경 하나우마 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섰다. ‘하나’는 만을, ‘우마’는 은신처를 뜻한다고 한다. 하와이 사람들은 말굽 모양으로 안으로 구부러진 만에서 은신처를 생각하였구나. 스노쿨링의 천국이라는 이곳.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 다음에는 꼭 저 물속에 들어가보리라 하였는데, 이번에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나우마 만을 벗어난 저 앞바다에는 혹등고래들이 새끼를 낳고 겨울을 나기 위하여 멀리 알래스카에서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 하와이에서는 매년 2월을 혹등고래의 달로 정하여 이들을 보호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는데, 관광객들도 전문 가이드와 함께 조심스레 이들을 보러 바다로 나갈 수 있다. 고래를 바로 앞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제 다음 목적지로 가려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승용차를 길게 잡아당긴 듯한 하얀 차가 주차되어 있다. 나는 저런 기다란 차를 보면 장의차가 먼저 연상된다. 하와이에서 이런 차를 자주 보는데, 관광지 하와이에 장의차가 그렇게 활보할 리는 없지. 관광객을 위한 리무진 승용차다. 그런데 차 유리에 쓰여 있는 글씨는 ‘VIP TOUR 가자 하와이’ 아하! 저런 차를 타고 관광을 하는 한국인들도 있구나. 어떤 사람이 저런 차를? 신혼부부? 또 주차되어 있는 또 하나의 차에 쓰여 있는 글씨는 ‘Hana Tour' 하나투어가 대형 여행사이다보니 아예 하와이에 지점까지 설치하고 관광객들을 위해 차도 준비한 모양이다. 그만큼 하와이에 한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또 하나의 차에는 한글로 ’호놀룰루 한인 산악회‘라고 쓰여 있다. 교민들도 많으니 산악회도 있는 모양이네. 하와이가 화산섬이니 등산하고픈 산들은 꽤 많이 있을 것 같다.
12: 28경 폴리네시안 민속촌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면 하와이 민속뿐만 아니라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피지, 사모아, 타이티, 이스터섬 멀리는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우리족의 민속까지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뉴질랜드는 한반도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먼 곳일 텐데, 어떻게 언뜻 보면 하와이와는 상관없는 수평선 저 멀리 멀리의 마우리족의 민속까지 여기에 전시하는 것일까? 태평양은 폴리네시안, 멜라네시안, 마이크로네시안으로 크게 3권역으로 나뉜다. 여기에 민속이 전시되고 있는 태평양 섬들은 비록 거리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폴리네시안으로 핏줄로나 문화적으로나 연결되어 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멀리 떨어진 지역이 핏줄로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단 말인가? 중앙아시아에서 남하해 온 아시아인들은 기원 전 10세기 이전부터 말레이 반도에서 배를 타고 가까운 섬으로 이동해간다. 그리고 다시 그 섬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 섬으로, 또 거기서 또 다른 이웃 섬으로 이렇게 퍼져 나간다.
그렇게 조금씩 전진한 폴리네시아인들은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북동쪽으로는 800년 경에 하와이로, 남동쪽으로는 1,200년 경에 뉴질랜드까지 이주해 오며 이 넓은 태평양으로 퍼져 나간 것이고, 그렇기에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공통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어적으로도 비슷하여 쿡 선장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하와이 원주민과 뉴질랜드 원주민들이 서로 말이 통할 수 있다는 것에 심히 놀랐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하와이에서도 그러한 유대감을 갖고 있기에 자기네 민속뿐만 아니라 폴리네시아 전체의 민속을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 폴리네시아인들은 그 오랜 옛날 어떻게 조그만 카누에만 몸을 의지하여 이 험한 태평양을 건널 생각을 했을까? 배는 그렇다치고 어떻게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잡고 항해를 하였을까?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며 방향을 잡았다지만 아무 동력도 없는 카누를 타고 이 넓은 태평양을 건넜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민속촌 안으로 들어가면서 또 다른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한다. 하와이로 공부하러 온 한인 여학생이다. 다양한 민족들이 이곳을 찾아오기에 민속촌 측에서는 주요 국가에 대해서는 그들 민족 출신을 가이드로 고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예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 우리를 안내하던 한국인 가이드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민속촌 모두를 돌아보려면 시간이 모자라니, 가이드는 핵심적인 몇 군데로 우리를 안내한다.
먼저 우리가 찾아간 곳은 퉁가 민속촌.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은 퉁가 원주민들이 나와서 공연을 한다. 큰 통나무 안을 긁어내고 막대기로 두드리니 통나무는 하나의 음통이 되어 훌륭한 타악기가 된다. 다음에는 마오리족의 전통 가옥 안으로 들어가본다. 안에는 마오리족에 관한 여러 사진과 설명이 전시되어 있고, 밖으로 나오니 안에서 본 것과 같은 마오리족의 문신을 관광객들에게 해준다. 물론 문신 무늬만 팔목에 찍어주는 것이지. 그런데 관광도 관광이지만 배가 고프구나. 이미 폴리네시안 민속촌에 들어올 때 시계의 긴바늘은 꼭대기의 ‘12’에서 거의 바닥의 ‘6’자까지 내려가 12시 28분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우리는 민속촌 식당에서 이들 전통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폴리네시아 민속촌을 나와 우리가 들른 곳은 돌(Dole) 파인애플 농장(플랜테이션). 파인애플의 왕이라 불리는 제임스 드러먼드 돌(James Drummond Dole)이 1900년 이곳에 첫 번째 파인애플 농장을 세웠단다. 전 세계에 ‘Dole'이란 상표의 파인애플, 복숭아 등의 과일 통조림이 안 들어가는 것이 없을 정도로 큰 돌 식품회사가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구나. 농장이 워낙 넓어 기차를 타고 농장을 돌아보는 상품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단지 입구의 센터에서 돌 농장의 분위기만 느끼고,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파인애플 아이스크림만 맛보고 간다. 센터에 걸려 있는 안내문에는 이곳에 2001년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의 미로가 있단다. 파인애플 농장에 미로라니? 언뜻 연관이 잘 안 되는데, 설명과 그림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파인애플 농장 한 군데를 미로식으로 조성한 것이다.
제임스 돌은 파인애플 왕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사촌 샌퍼드 돌(Sanford Ballard Dole) 또한 유명하다. 샌퍼드 돌은 하와이에 들어와 사탕수수 재배와 무역업을 하며 하와이를 지배하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하와이의 마지막 국왕 릴리우오칼라니는 하와이 왕국이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에 잠식되면서 이대로 가다간 하와이 왕국도 없어지리라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하여 점증하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영국과 일본에 접근하였단다. 그러자 샌퍼드는 미해병대를 동원하여 여왕을 강제로 퇴위시키고는 자신이 하와이의 임시 대통령(1894-1900)과 하와이 준주(準州) 초대 지사(1900-1903)를 하였고, 그 후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된 것이다.
‘돌’의 집안은 지금도 하와이의 채소, 과일 재배, 가공 그리고 해상 수송업을 장악하고 있고, 돌 집안에서 계속하여 상원의원도 나오고 있다는데, 현 공화당의 "밥 돌" 상원의원이 바로 그 후손이란다. 그 동안 한국에서도 많이 보아오던 ‘Dole' 상품이 이런 제국주의의 강압에서 탄생한 것이었구나. 샌퍼드가 파인애플 농장을 경영할 때에 이민 온 한국인들도 이 농장에서 철저히 땀을 흘렸겠지.
코코넛 농장을 나와 우리들은 다시 호놀룰루 시내로 들어간다. 저녁을 먹기 전에 우리가 들른 곳은 진주만. 진주만은 전에 하와이 왔을 때에도 들르지 못했는데, 이번에 들른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진주조개 잡이에서 이름이 유래된 진주만은 한바다에서 좁은 물길로 들어온 곳에 부채처럼 펼쳐진, 이름처럼 아름다운 만이었다. 이 아름다운 만에서 1941. 12. 7. 일본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수천 명의 미군이 아까운 삶을 마감해야 했단 말인가? 더구나 그때는 일요일로 장병들은 외출 나갈 생각으로 들떠있었을 텐데, 일본은 일요일 아침 8시경에 기습공격을 가한 것이다. 일본은 러일전쟁 때에도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러시아 함대가 정박하고 있던 여순항을 기습공격하였는데, 이런 게 섬나라 근성인가?
차에서 내려 진주만으로 다가가니 저 건너편 쪽으로 물 위에 하얀 건물이 보인다. 진주만 공습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애리조나호가 침몰한 곳 바로 위에 기념관을 세운 것이다. 기념관으로 가면 물밑으로 가라앉은 애리조나호가 보인다고 하나, 박가이드는 거기까지 가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물가에는 진주만에 대한 여러 안내문이 있다. 내용을 읽다보니 그중에 재미난 것이 있다. 진주만 공습 3일 전에 한 상어가 공습을 예고했다고 한다.
부연하면, 공습 3일 전에 한 모녀가 고기 잡으러 배를 저어 진주만 가운데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상어가 나타나 배 주위를 도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상어가 카후파하우(ka'ahupahau)인 것을 알고는 소리를 질렀다(chant). 상어가 떠난 후 어머니가 딸에게 얘기하길, 카후파하우가 진주만에서 엄청난 죽음(horrible dying)이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3일 후에 진주만 공습으로 상어의 예고는 실현되고... 상어를 카후파하우라고 하는데, 단순한 상어는 아니고 진주만을 보호하는 상어 여신이란다. 그러니까 진주만은 진주 조개들 뿐만 아니라 상어들도 안식처로 삼고 있던 곳이구나.
또 하나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진주 조개잡이(pearly shell)'라는 노래의 유래에 대한 것이다. 이 노래의 작곡자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원래는 하와이 왕국의 7대 왕 칼라카우아를 위해 이름 지어진 카히쿠오칼라니 교회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위해 작곡된 것이다. 하와이어 제목은 푸푸오에와(PUPU O 'EWA),인데 영어로 번역되며 ’Pearly Shells'로 번역된 것이라 한다. ‘진주 조개잡이’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니, 영어로 번역되어 불리운 하와이 노래중 성공적으로 불리는 몇 안 되는 노래 중의 하나이겠다. 설명에는 상어의 신 카후파하우를 위한 노래도 있었는데, 이는 실전되었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커다란 닻이 놓여 있는데, 애리조나 전함의 닻이란다. 닻을 받치고 있는 토대에 붙여진 동판에는 ‘DECEMBER 7, 1941 WE WILL NEVER FORGET'이라고 쓰여 있다. 이 동판에 쓰여진 대로 미국인들은 1941.12.7.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나 또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잊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저쪽 편에 정박하고 있는 잠수함으로 다가간다.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는 보핀(BOWFIN)이라는 잠수함이었다. 이 또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잠수함이 퇴역하여 이곳에서 자신을 기념관으로 내어놓은 것인데, 입장료를 내야한다기에 바라만 보았다. 부근에는 2차 대전에 참가하였다 임무 수행중에 영원히 바다 속에 안장된 잠수함의 사진과 그 잠수함의 승조원들 명단을 ’On Eternal Patrol'이란 제목 하에 나열하고 있다. 그렇겠지. 그들은 아직도 바다 속에서 영원한 순회(Patrol)을 하고 있으리라.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쇼핑이 끝난 후 와이키키 해변도로를 걷는다. 걷다보니 해변가에 양손에 플르메리아 꽃을 들고 있는 인물상이 보인다. 1912년부터 1932년까지 4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3, 은메달 2, 동메달 1개를 따낸 파오아 카하나모쿠의 동상이란다. 설명을 보니 ‘full blooded’라고 100% 하와이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는 또 그의 서핑보드를 이용하여 1925년에 전복된 배에서 8명을 구해낸 영웅이란다. 이 앞을 지나는 외국 관광객들 중 이 동상의 주인공이 그런 영웅인 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시원한 와이키키의 바람을 맞으며 호텔로 돌아오니 하와이에서의 둘째 날이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