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1,200m 높이에 있는 킬라우에아 화산 공원에 왔다. 물론 이보다 높은 곳에도 마우나 로아 화산의 분화구가 있을 것이나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곳은 이곳뿐이다. 다른 곳은 모험 트레킹으로 허가받은 소수의 인원들이 가이드 안내로 간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전망대로 다가가니 과연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둥그런 할레마우마우 분화구가 보이고 분화구 안에서는 연기가 무럭무럭 올라오고 있다. 당장 저 분화구 가까이까지 가서 분화구 안을 내려다보고 싶다.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가까이까지 가도록 하여주었으나 지금은 위험하다고 이곳에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란다. 우리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고, 조지 박은 지금은 연기밖에 안 보이나, 저녁 때 오면 저 분화구에서 올라오는 붉은 기운을 볼 수 있으니 그 때 다시 오잔다.
우리는 그 옆에 있는 조그만 화산 박물관(Thomas A. Jaggar Museum)으로 들어가본다. 하와이 화산 연구자로 공헌이 많았던 재거 박사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란다. 설명을 보니 지금 가까이 접근할 수 없는 저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는 분화구 안쪽으로 밑의 마그마 챔버로 연결되는 구멍의 크기는 미식 축구장 하나가 들어갈 만큼 크다고 한다. 그리고 분화구의 깊이는 마그마의 압력에 따라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데, 지금은 122m 아래에 마그마가 흐르고 있고, 압력이 증가하면 마그마 호수의 표면이 52m나 증가한다고 한다.
빅아일랜드에는 섬의 가장 북쪽에 있는 코할라부터 마우나 케아, 후알라라이, 마우나 로아, 그리고 남쪽에 있는 이곳 킬라우에아 이렇게 5개의 화산이 있다. 그중 코할라 화산은 6만년 전에, 마우나 케아는 4,600년 전에 마지막 분출이 있었고, 나머지 3산은 최근 250년 간에도 분출이 있었다. 그러니까 코할라와 마우나 케아는 열점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분출을 일으킬 만큼 에너지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지금 보이는 저 킬라우에아는 1983년에도 분출하여 일부 마을의 집들도 삼켰었다.
박물관에 걸린 어떤 그림에는 킬라우에아 화산에 큰 하와이 여인이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하와이에 화산을 만드는 펠레 여신이다. 하와이에는 펠레 여신에 관한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그중 화산에 관한 전설 하나를 보면, 오래 전에 펠레는 언니 나마카와 사이좋게 살았단다. 그러다가 사이가 나빠져서 펠레는 언니를 피해 이곳 빅아일랜드로 와 이곳 킬라우에아 화산 밑에 숨었단다. 그 후 언니는 바다에 살며 펠레가 뿜어내는 시뻘건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리면 이를 식히는 고된 일을 계속 하고 있단다. 그리고 만일 관광객들이 이곳 용암 조각을 가지고 가면 펠레가 악운을 주기에 조심해야 한단다. 실제로 신혼부부가 여기 와서 용암 조각을 가져갔다가 펠레의 저주를 받아 이혼을 하였다나?
우리는 저녁에 여기에 다시 와서 킬라우에아의 마그마 불빛을 보리라 기대하고 전망대를 나온다.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브러쉬 같이 생긴 빨간 꽃이 보인다. 오히야 레히야라는 꽃인데, 이 꽃에도 전설이 있다. 마우나로아 화산에 오히야라는 목수와 그의 아내 레히야가 살았단다. 그런데 펠레가 오히야에 흑심을 품고 접근을 하였는데 오히야가 거절하자 펠레는 화가 나 오히야를 나무로 만들어버렸다. 레히야는 펠레를 찾아가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걸하지만, 펠레는 거절한다. 그런데 레히야가 계속 남편과 같이 있겠다고 하자 레히야를 이 나무의 꽃으로 만들어 영원히 부부가 함께 있도록 해 준 것이란다. 화산 지대에 이런 빨간 꽃이 피니까, 이런 전설도 생기는 것이리라.
다시 차를 타며 이동하면서, 조지가 먼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수증기가 나오는 땅의 틈(steam vent)이다. 갈라진 틈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오는데 완전히 천연 사우나다. 지하수가 땅 속으로 흘러들어 저 아래 어디에선가 뜨거운 바위를 만나면 이렇게 수증기로 올라오는 것이다. 아내와 처형들은 옷이 젖든 말든 이 천연 사우나에 찜질을 하며 시원하단다. 후후! 서양인들로서는 이런 뜨거운 수증기를 쬐며 시원하다는 우리나라 사람의 표현을 이해하기 힘들겠지. 조지는 유독가스가 섞여 있으니 수증기를 마시지는 말라고 한다. 과연 냄새를 맡아보니 유황 냄새가 난다. 게다가 조지가 라이터를 꺼내어 이 증기에 대고 켜니 불꽃이 인다.
다음으로 간 곳은 킬라우에아 이키라는 거대한 분화구의 가장자리. 한눈으로 보아도 능선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것이 이곳이 분화구이었음을 알겠다. 1959.11.14. 이 분화구가 분출을 일으켜 36일 동안 마그마가 흘러 나와 분화구를 용암 호수로 만들었단다. 그 용암 호수가 그대로 굳어졌기에 지금 보는 것처럼 분화구 바닥은 평평해진 것이다. 그런데 저 건너편 분화구 가장자리는 열려 있는 것이 이 분화구를 가득 채운 용암은 저 열려진 곳으로 나가 저 아래 대지를 붉게 태우며 흘렀으리라. 그리고 저렇게 분화구를 채운 용암 호수가 식고 굳어지는 데는 36년이 걸렸단다. 안내판은 당시 마그마가 분출하자 사람들은 이 장관을 구경하려고 이곳으로 자동차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왔다고 하며, 당시의 사진도 보여준다.
화산이 분출하는데 피신하기는커녕 이를 보러 왔다? 점성이 약한 현무암질 마그마가 분출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성이 약한 마그마의 분출은 강한 폭발을 일으키지 않고 마그마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하여 이곳 분화구를 용암 호수로 채우는 것이고, 그렇기에 사람들도 화산 폭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보러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무암질 마그마가 이보다 더 큰 대규모 분출을 일으켜 화산을 만들 때에도 현무암질 마그마는 점성이 많지 않으니 부드럽게 흘러내려 방패 모양의 순상(盾狀) 화산이 되는 것이다. 한라산이 방패 모양인 것이 이 때문이다.
반면 점성이 많은 유문암질 마그마의 경우에는 폭발력이 크고 용암이 흘러내려도 점성 때문에 종 모양의 종상(鐘狀) 화산을 만든다. 제주도의 산방산이나 울릉도의 성인봉이 바로 종상화산이다. 그런데 한라산도 밋밋한 방패 모양 같지만 자세히 보면 꼭대기 백록담 있는 곳은 마치 여자의 부드러운 유방 위에 젖꼭지가 달린 것처럼 툭 튀어나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라산이 만들어질 때 처음에는 현무암질 마그마 분출로 지금과 같은 방패 모양의 한라산을 만들고, 세월이 지나 한라산이 다시 분출을 할 때에는 유문암질 마그마를 분출하여 잘 흘러내리지 않고 꼭대기에 젖꼭지를 만든 것이다.
킬라우에아 이키 분화구를 자세히 보니 용암 호수 가운데를 가로질러 길게 자국이 나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생긴 자국이다. 지금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저 용암호수를 탐방할 수 있단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이 그리로 내려가 걷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저곳으로 내려가면 아까 수증기를 쐰 틈처럼 용암호수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나 수증기를 느낄 수 있는 틈도 있다고 한다. 우리야 저기 내려갈 시간은 없으니 이렇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조지는 또 다른 곳으로 차를 돌린다. 차에서 내리니 이곳도 용암이 분출하였던 곳인 듯한데, 조지는 1969년경에 이곳에서도 용암 분출이 있었단다. 용암 대지에는 여기 저기 용암이 식으면서 만든 작품들이 널려있다. 조지는 조지답게 두 군데 작품을 잘 보란다. 하나는 가운데가 쭉 째지고 안으로 붉은 속살이 보이고, 또 하나는 기둥처럼 서 있다. 흐흐. 조지가 뭘 말하려는지 알겠구나. 하나는 여자 거시기, 또 하나는 남자 거시기를 닮았구나. 조지는 남자 거시기는 단순히 용암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고, 용암이 저 자리에 서 있던 나무를 태우면서 자신도 식어 저렇게 거시기처럼 선 것이란다.
우리는 흩어져서 이 용암대지 위를 걸어본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용암대지 옆으로는 숲이 그대로 있다. 분출이 있기 전 이곳도 저 숲과 같은 일원이었으리라. 그러나 분출이 일어나면서 이곳의 숲을 태웠고, 저 주위의 숲은 다행히 그때의 화마를 면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 황량한 용암밭 여기저기에도 날아온 식물의 씨앗이 싹을 발아시켜 키를 키우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이곳도 또한 숲으로 변하리라. 단 그 사이에 이곳에 또 다른 분출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조지는 차를 타고 크레이터 로드(crator road)를 따라 언덕을 내려가다가 중간에 차를 세운다. 언덕 위를 바라보니 1969년 분출한 용암이 저 언덕을 타고 흘러내려온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겠다. 용암이 흐른 곳 옆에는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저 나무들은 옆에서 자기 동료들이 용암에 휩쓸려 비명을 지르며 죽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았어야 했겠구나. 그런데 용암의 흐름이 어떤 곳은 색깔이 검고 거칠게 굳어 있고(파호에호에 용암), 어떤 곳은 그보다 밝으면서도 표면이 부드럽게 굳어 있다(아아 용암). 이는 용암의 성질 때문이라는데, 처음에 용암은 아아 형태로 흘러나와 흐르다가 굳는다. 그런데 아아가 굳지 않고 계속하여 흐르면서 열과 가스를 잃고 굳으면 파호에호에가 된다는 것이다.
눈을 반대로 돌리니 바다가 보이고 여기서 흘러내려간 용암이 바다까지 흘러간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런데 조지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니 도로의 일부분이 보인다. 그렇다. 예전에는 저 밑이 도로였다. 용암이 도로도 덮고 흘러 내려가는데, 일부분의 도로가 저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도로는 그 이후 새로 만든 도로이다.
해안으로 내려와 전진하니 도로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다. 이 도로는 관광객들의 공원 탐방을 위해 만든 도로라 이곳까지만 도로를 낸 것이다. 차에서 내려 다시 언덕을 올려다보니 아까보다 더 넓은 언덕이 조망되는 것이 당시 용암이 저 언덕을 넘어올 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을 하게 된다. 해안으로 접근해본다. 해안은 절벽으로 되어 있다. 바다까지 전진한 용암은 바닷물을 만나면서 거대한 수증기의 구름을 만들면서 여기서 급격히 식어 바위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왜 모든 부분이 절벽으로 되어 있는 것일까?
용암이 바다를 만나 굳어지면서 바다로 새로운 용암 대지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용암 대지는 겉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불안정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용암대지의 일부분이 붕괴되면서 이렇게 절벽이 된 것이다. 한쪽을 보니 절벽 앞으로 아치가 형성된 곳도 있다. 붕괴되면서 저런 아치를 만든 것일 텐데, 계속되는 바닷물의 습격 속에서 저 아치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절벽으로 접근하는데 어느 부분에서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신호가 있다. 이 부분부터는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3년 4월에 갑자기 절벽이 붕괴되면서 한 사람이 죽고 12명이 다쳤다고 하고, 그 후에도 1996년 12월에도 갑자기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올라가면서 할레마우마우 분화구에 다시 들러서 불꽃 구경을 하기 위해서 여기서 저녁을 먹는 것이다.
조지는 다시 오던 길을 돌아 올라가는데, 분화구에 들르기 전에 나후쿠 용암동굴(Thurston Lava Tube)에 들른다. 숲을 잠시 내려가니 동굴 입구가 나온다. 조심조심 동굴로 들어간다. 아주 오래전 이 동굴이 만들어질 때 이 동굴로 용암이 흘렀을 것이다. 처음 용암은 하늘을 보면서 흘렀겠지. 그러다가 양 옆의 접촉 부위부터 식고, 하늘을 마주 보는 부분도 식으면서 용암은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가 안으로만 흐르는 것이지. 그리고 용암의 흐름이 멈춘 후 흐르던 용암이 내려가고 나면 이런 동굴이 태어나는 것이고... 그러나 이런 용암 동굴은 제주도에서도 많이 보는 것이라, 아까 크레이터 로드를 내려가면서 느꼈던 경이로움보다는 느낌은 덜하구나.
나후쿠 동굴을 나오니 조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할레마우마우 분화구로 접근하는데 해가 마우나 로아 화산 뒤로 넘어가면서 마우나 로아의 윤곽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마우나 로아는 어디가 정상이라는 것이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경사가 무척 완만하다. 이건 방패(순상) 화산 중에서도 아주 밋밋한 방패구나. 그만큼 용암의 점성이 아주 묽었다는 것이겠다.
다시 아까의 전망대에 섰다. 과연 아까 분화구를 밝게 비추던 빛이 엷어지니까 분화구 가운데에서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의 밑 부분은 붉게 물들어 있다. 지금 저 붉게 보이는 밑으로 122m를 내려가면 마그마가 흐르고 있단 말이지? 그리고 그곳에 펠레 여신이 궁전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고... 눈을 위로 드니 하늘에는 보름달이 떴다. 해가 내려가니 기온도 갑자기 내려간다. 우리는 잠바를 꺼내 입고 계속하여 붉은 기운이 올라오고 있는 분화구를 쳐다본다. 저 분화구 입구까지 가서 안을 직접 들여다보면 어떤 모습일까? 미친 척하고 분화구로 달려가고 싶은 이 마음.
시간이 되었는지 조지가 이제 떠나자고 한다. 조지는 내가 산을 많이 다니고 히말라야에도 갔다 왔다고 하니까, 자기가 산악 가이드도 하고 있다면서 다음에는 빅아일랜드의 화산을 탐방하러 한 번 오란다. 그래? 그럼 그때는 오늘보다도 더 살아있는 빅아일랜드를 볼 수 있을까? 이제 이곳을 떠나면 언제 또 저런 살아있는 화산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아쉽구나. 펠레 여신이여! 이제 당신의 품을 떠나렵니다. 언제 당신은 또 궁전에서 일어나 격정전인 불을 토해낼 것입니까? 다시 9:30 비행기를 타고 빅아일랜드의 공중으로 떠오르며 나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펠레 여신에게 안녕의 인사를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