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소리가 울리네
- 악기 박물관 개관 5주년에 부쳐 -
임병걸
저기 투명의 유리관 뚫고
소리가 나오네
저기 침묵의 성소(聖所)에
몰아(沒我)의 장인들 어른거리네
피리와 대금
가야금과 거문고
목숨을 녹여넣었던 명인들
넋이 살아 혼불이 살아
어둠에서도 빛을 뿜어내네
얼마나 많은 가슴
저 악기들 떨림에 함께 떨렸던가
얼마나 많은 눈시울
저 악기들 통곡에 함께 젖었던가
얼마나 많은 어깨
저 악기들 신명에 함께 들썩였던가
이름도 형체도 없이
환희의 불쏘시개 될 뻔했던 저 보석들
무관심의 얼음장에 파묻힐 뻔한
장인들 뜨거운 숨결
홍천의 푸른 물
소나무 전나무 숲에 안겨
영원히 기억되네 영원히 부활하네
사람의 숲을 넘어
나무와 풀, 짐승과 새들
모두 귀기울이는 삼라(森羅)의 숲 마리골에서
영원히 노래하네 영원히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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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기박물관 5주년 기념공연에서 낭송한 축시입니다.
지난 토요일 마리소리골은 온통 축제의 도가니였습니다.
붉게 제 몸을 사르던 단풍은 모두 뿌리로 돌아갔지만 전나무 소나무의 향기는 여전히 푸르고,
한여름의 기세는 아니어도 마릿골의 계곡물은 우렁차게 흘러갔습니다.
이날은 수려한 마릿골 계곡에 악기박물관이 자리잡은지 5주년이 되는 날,
홍천 군민 여러분들과 서울과 안동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신 어울사랑 가족 여러분이
한데 모여 이병욱과 어울림의 멋진 연주, 그리고 악기박물관 수강생 여러분들이 한 해 동안 갈고 닦은
춤과 노래, 연주 솜씨를 감상했습니다.
흔히 박물관을 '과거와 대화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릿골의 악기 박물관은 악기와 대화하는 곳이고 노래와 대화하는 곳입니다.
악기는 단순히 나무로 만들어진 무생물이 아닙니다.
대금과 해금 가야금과 거문고 피리와 생황..... 이런 악기에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굳세고 싱싱하게
자란 나무의 역사가 담겨 있고, 자칫 한줌 흙으로 스러질 뻔한 나무를 정성껏 갈고 다듬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만든 장인의 땀과 눈물 그리고 보람이 녹아 있습니다.
또 이 악기를 목숨보다 소중히 보듬어가며 때로는 벗으로, 때로는 애인으로, 때로는 자식으로 여기며
감동의 연주를 해 나간 장인들의 뜨거운 숨결과 넋이 담겨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 악기에서 나오는 때로는 청아하고, 때로는 가슴을 뒤흔들고 , 때로는 눈물을 왈칵
솟게 하고, 때로는 신명에 온 몸을 떨게 하는 소리에 환호했던 수많은 관객들의 발걸음과 박수소리가 묻어 있습니다.
이런 악기가 그냥 불쏘시개가 되거나 땅 속에 한 줌 흙으로 묻힌다면 그것은 단순히 악기 하나의 멸실이
아니라, 악기에 담겨 있는 이 모든 역사의 멸실이고 망각인 것이지요.
박물관이 한 나라의 문화의 척도인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리소리골 악기 박물관은 참으로 소중한 공간이고, 우리 음악과 문화의 향기가 퍼져나오는
보배로운 공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곳을 다녀간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 악기들이 소리없이 연주를 해 주었고, 또 이 악기를 다뤘던 장인들의 열정과
예술혼이 전달되었을지요?
이날 공연은 그런 점에서 참석했던 모든 분들에게도 기쁨과 감동을 주었지만 말없이 진열장에 앉아있는
악기들과, 그 악기들과 함께 서려 있는 장인들에 바치는 감사와 존경의 연주이기도 했습니다.
두시간에 걸친 신명의 공연이 끝난 뒤 우리들은 지난 8월15일 준공한 본체 옆의 야외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들면서 공연의 흥분과 여운을 이어갔습니다.
식당은 어울사랑 가족이시면서 이병욱 교수님의 오랜 벗이기도 한 김응산 사장님께서 뜨거운 한 여름의 태양과
싸워가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지어주셨습니다.
이 튼튼하고 아름다운 식당은 홍천의 매서운 겨울 바람도 거뜬히 막아주었고, 여기에 아름다운 그림과 시로 장식을 해 주신
이무성 화백님의 향기가 더해져 세상 가장 맛있고! 멋있는! 식당이 되었습니다.
마리소리골의 악기 박물관에 더 많은 악기들이 둥지를 틀고, 또 더 많은 관람객들이 오셔서
아름다운 소리 귀에 넣어 가시고, 아름다운 이야기 품에 넣어 가시고,
아름다운 풍광 눈에 넣어가시길 기원합니다.
이번에도 김종규 국민문화유신신탁 이사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공연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고
언제나 그렇지만 황경애 사모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두루두루 감사드리며, 악기 박물관 6주년에는 더욱 많은 어울사랑 가족분들과 마리골에서 뵙기
기대하겠습니다.
이날 마리골의 밤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이 쏟아졌는지요?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고, 음악이 있는 것에 감사했고, 제 머리 위로 별이 있는 것에 감사했고
마리골이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 서울 여의도에서 어울사랑 가족 임병걸 사룀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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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황경애 작성시간 12.11.26 이제 마릿골에 어울사랑은 뗄레야 뗄수없는 분들이십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나가길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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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복음 작성시간 12.12.01 박물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늘 그곳에서 연주하고 가까이 하지만, 이 글을 읽고나니 더욱 사명감이 듭니다.
박물관이 늘 살아숨쉴수 있게 많은 관심을 갖아주시고 성원해주시는 어울사랑회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이 벌써 12월의 첫날이네요~ 뜻깊은 마무리가 되는 2012 12월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유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