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임병걸 칼럼위원] 여름은 더운 계절입니다. 겨울이 추운 계절이듯이 여름이 더운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듯이 해마다 겪는 더위가 왜 좀처럼 면역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하도 더워 어쩔 줄을 모르는 수행승이 중국 선종의 큰 선지식 동산스님께 물었습니다. " 어떻게 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 동산선사는 대답했습니다. " 추울 땐 추위가 되고 더울 땐 더위가 되거라!" 알 듯 모를 듯한 그야말로 선문답이지요?
올해도 누가 여름 아니랄까봐 무덥고 숨 막히는 나날이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울 때 더위가 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으로 바다로 하다못해 에어컨이 펑펑 나오는 쇼핑센터로라도 달려가야 합니다.
이 더위에 신물이 나고 온 몸의 기운이 쭉 빠지던 사람들은 홍천 서석의 물 맑고 소나무 푸른 곳 마리소리골로 하나 둘 모여들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박물관에서 석관식 전임강사의 사물놀이체험, 나종영원장의 힐링을만나다 선무도, 야외어울마당에서 펼쳐지는 안병관선생님의 생태공예체험, 본채 앞에는 음반전시판매와 부르베리식초 시음, 서석건강원협찬의 영지와 대린 건강음료시음 등 감자, 옥수수, 다양한 토속먹거리 장터가 정겹고 풍요롭게 펼쳐져 그야말로 아름다운 자연과 소리와 사람과의 어울림의 분위기를 한층 돋구는 잔치마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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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를 여는 무대, 광개토 |
다섯 시부터는 국악방송을 비롯 강원민방GTV, KBS춘천총국, MBC 등 4개방송사의 녹화취재와 함께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 칭송받는 김종엽 명인의 구수한 진행으로 본공연이 시작된 마리소리 잔치가 이번에 새로 건립된 솔숲 야외무대!!! 객석은 서울에서 부산에서충청에서 호남에서, 전국 각지에서 최악의 교통난을 뚫고 달려오신 분들로 일찌감치 인산인해로 꽉 찼습니다.
강원도와 관계기관, 서석면장과 주민들의 헌신적인 협조와 서원대 서석중학교 최상훈 선생님 주도하에 학생들의 자원봉사 한층 푸르러진 소나무와 전나무, 콸콸 쏟아지는 마리골 계곡의 맑고 기운 찬 물소리, 우렁찬 매미소리가 하객들을 맞았습니다. 이글대던 태양이 구름에 가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숲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거둬가는 시간 이윽고 소리 축제의 막은 올랐습니다.
신명나는 길놀이 농악이 한바탕 축제의 길을 터주더니, 임솔내 시인께서는 자작시 '소리꽃'으로 축문을 낭송해주셨고, 그동안 어울림 무대에서 이병욱 선생님과 호흡을 맞춰 오신 정상급 음악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멋진 노래와 연주로 마리소리골을 달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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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를 즐기는 관객들 |
마리골의 시원한 바람과 물소리가 겨우 진정시켜놓은 더위가 다시 살아난 것일까요? 그러나 멋지게 꾸며진 야외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런 맹목의 폭염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열기는 열기였으나 호흡과 살갗을 고통으로 몰고 가는 저주의 열기가 아니라, 더위에 지치고 생활에 지친 우리 마음, 영혼을 말끔하게 정화시켜주는 후련한 열기였습니다. 시원한 열기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고된 산행으로 땀범벅이 된 육신과 욱신거리는 다리를 온천에 담갔을 때 온 몸에 전해오는 시원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병욱과 어울림, 스트라드 현악 4중주단, 바이날로그, 재비, 주세페와 김구미 듀엣, 피아니스트 백순재, 강진모, 임휘영 임수영 성악가..... 초저녁부터 밤 깊은 11시까지 마리골을 뒤덮은 소리와 소리, 환희의 함성, 신명의 춤판이 2013년 여름을 말끔히 몰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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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의 주인공 이병욱 교수 |
우리들의 신명에 시샘이 났던 하늘이 잠깐 비를 뿌리는 듯 했지만, 이내 물로는 끌 수 없는 열기를 감지하고는 슬그머니 물러나고 어느새 까만 하늘에는 노란 달이 떠올라 우리들의 축제에 함께 했습니다.
함께 진행됐던 이무성 화백님의 시화전은 축제의 운치를 더했습니다. 여덟 번이나 인쇄소와 기념비 제작소를 드나드시면서 이 멋진 시화 플래카드와 기념비를 완성해주신 선생님의 노고에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 밖에는.....
홍천 서석면의 주민들과 서원대 학생들의 자원봉사, 그리고 강강수월래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이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축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비가 퍼붓다가 폭염이 퍼붓는 악조건 속에서 변변한 예산도 없이 소박하면서도 야무지고, 멋진 야외무대를 만들어주신 고경일 선생님의 노고 또한 고개가 숙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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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바이날로그 |
덕분에 박물관 안에 있는 실내무대와는 차원이 다른 장쾌한 연주가 가능했고, 연주자들과 관객의 열정적인 마주침과 어울림이 가능했습니다.
축제의 절정에서 참석자들은 손에 손 잡고 한 덩어리가 되어 노래하고 춤췄습니다. 동산선사가 말한 '더울 때는 더위가 되라!'는 말씀이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노래와 춤의 열기로 여름의 열기를 통쾌하게 날려버린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마리골은 세계 민속음악이 울려 퍼질 국제적인 축제의 장으로 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우리의 이런 역량과 참여의 열기라면 거뜬히 해 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음악에 대해, 그리고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에 대해 무심하고 무지하기 그지없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지원 속에서도 이런 멋진 축제를 만들어내신 이병욱 선생님과 황경애 사모님께 감사와 축하를 드리면서, 그 열정에 값하는 지원을 못해드린데 대해 죄송한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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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재비 |
두 분 선생님과 이문원 관장님,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박의근 회장님, 이밖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모든 후원자 여러분과 멀리까지 오셔서 변변한 출연료도 없이 기꺼이 무대에 서주신 모든 예술인 여러분~ 모두가 축제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이번 축제를 계기로 세운 우리들의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처럼 마리골이 우리나라를 넘어 지구촌의 소리의 터전, 음악의 터전이 되는 날까지 모두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2013년 8월17일, 우리는 분명 가장 뜨거운 여름을 가장 시원하게 보냈습니다. 아니 가장 시원한 마리골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밤을 보냈습니다.
- 어울사랑 운영위원장 임병걸 謹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