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울가(歌) 공연을 본 감동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 있다.---------------김형준
연주에 대한 감상
실내악단 “이병욱과 어울림” 이 창단 30주년을 맞이하여 2016. 11. 20 (일) 오후 5시, 극장 용(국립중앙박물관 내)에서 ‘어울가(歌)’란 제목으로 기념공연을 가졌다.
서원대 음악교육과 교수로서 정년을 맞이하는 기념비적 공연인 동시에 한국음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서막이기도 하다. ‘어울사랑’ 회원들을 위시하여 다방면의 청중들로 객석을 가득 채웠으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이영하 사회로 진행된 첫 무대는 이병욱 작곡 오페라 “초희” 서곡이었다. 솔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연주(지휘: 홍윤식)한 이 곡은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특히 서두 부분 바이올린 파트의 현란한 아르페지오 부분은 신선한 충격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두번째 무대는 오페라 “초희” 아리아 “소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흐르네, 오라 죽음이여” 란 곡으로 소프라노 김정연이 열창하였는데, 남편을 그리는 여인의 애절한 노래이며, 그리그 ‘페르긴트’의 ‘솔베이지 노래’를 연상케 하였다.
세번째 가야금 협주곡 “청천금”은 이병욱 작곡, 이은기 연주, 솔필하모니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진행되었는데 11년전 성남아트홀 개관기념으로 작곡된 것으로 특히 카덴짜를 통해 연주자의 높은 기량이 마음껏 발휘되었다.
네번째 이병욱 작곡, “해금, 기타, 장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우리가락 환상곡”은 기타에 이병욱, 해금 신현석, 장구 황경애가 연주하였는데 우리나라 다양한 민요를 주제로 작곡한 것으로 기타의 트레몰로 연주는 한껏 돋보였으며 특히 장구의 멋진 가락은 더욱 신명나게 만들어 주었다.
다섯째, 이병욱교수의 제자 한수진, 정영범이 정동희 작곡 “연어”를 비파 듀엣으로 축하 연주하였는데 안도현의 시 “연어”를 노래로 표현한 것으로 비파 고유의 현란한 곡의 흐름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여섯번째 곡은 이병욱 작곡 ‘어울림을 위한 1990’ 이었다. 연주자 개개인의 역량이 돋보이도록 작곡한 것으로 각 연주자들의 수준 높은 기량이 과시되어 큰 박수를 받았다.
일곱번째, ‘깨어진 토성’이란 제목의 곡이 연주되었는데, 도올 선생께서 쌍계사 깨어진 토성을 바라보며 쓰신 시를 노래로 표현한 것으로 이병욱과 어울림이 연주하고 이병욱이 노래를 불렀으며 다양한 리듬과 선율로 구성되어 진한 감동을 주었다.
이어 연주된 곡은 ‘땅속에서 뜨는 별’로서 임병걸 작시, 이병욱 작곡으로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ICKC)회원들과 함께 방문한 독일 레딩겐하임 연주홀(딘스라켄)에서 초연되었다. 아리랑파크 조성기념 및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노고를 기리는 기념비적 곡으로 땅속 깊이 흐린 불빛에 의존하여 목숨을 담보로 광물을 캐던 모습이 오버랩되어 “땅 속에서 별이 뜬다” 라는 의미를 새삼 일깨우게 되었다.
아홉번째 연주된 “달항아리의 노래’ 역시 임병걸 작시, 이병욱 작곡이다. 일본에 끌려간 도공들의 애끓는 사연을 담은 곡으로, 문화유산 국민신탁이 ‘사은의 날’을 기념하여 초청, 덕수궁 중명전에서 초연되었으며, 2015년 밀라노 엑스포에서 초청 연주되었다. 오정해가 노래를 불렀는데, 무대를 압도하는 높은 기량은 관중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 그의 명성이 여전함을 보여 주었다.
끝으로 연주된 ‘신풀이’는 이병욱 작곡으로 이병욱과 어울림, 솔필하모닉오케스트라, 허성은 드럼주자가 협연하였으며, 어울림의 대표곡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청중과 호흡을 같이하고 개별 연주자의 역량이 돋보이며 드럼의 현란한 연주는 압권이었다.
앵콜로 연주된 진도아리랑은 모든 연주자가 총출동하였으며, 오정해의 노래가 무대를 한껏 이끌어 주었고 추가로 연주된 어울림 연주는 대미를 장식하는데 충분한 감동을 주었다.
어울림의 시대적 소명
‘어울가’라고 하면 다소 생소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으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시대의 화두’라 할 수 있다. 어울림은 화합(和合)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어 어울가는 타인과 어울리면서 신명나게 부르는 노래라 해석된다. 연주 무대에서의 도올 선생님의 말씀은 ‘이병욱과 어울림’의 출발 배경과 시대적 소명을 일깨워 주셨다. 국악과 기타의 만남, 동양음악과 서양음악의 만남,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간다는 화두를 이미 오래 전에 던져 주신 것이다. 이를 잊지 않고 지금까지 정진, 이번 무대까지 오게 되었으며 앞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켜나가리라 믿는다.
80년대 중반, 이미 세계 석학들이 앞으로 세계 중심은 한국이 될 것이라 설파하였다. 한국이 문화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어울림과 같은 활발한 문화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병욱교수님은 독일 유학 시절, 윤이상 선생께서 독일 학생들을 엄하게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고, 한국 전통음악의 위상이 높음을 새삼 깨닫고 “한국에 돌아 가면 반드시 국악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 하겠다” 고 다짐한 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매우 귀중한 일이었음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거듭남
서양음악 역시 부단한 혁신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전통음악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혁신을 시도해 오고 있다. 최근 한가지 예를 보면 연희단팔산대와 서울발레시어터가 2016. 11. 26, 27일 LG아트센터에서 ‘아리랑별곡’을 선보였으며, 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주년을 기념,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하는 공연이었다. 농악과 발레가 만나는 무대이다. 이러한 시도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매스콤의 기사를 보면 우리나라 국악의 현황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 대응책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6. 12. 1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작곡가, 지휘자, 관객이 빈약한 국악관현악’ 이란 제목 하에 따가운 비판 의견을 싣고 있다. “국악관현악이 서양관현악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모방하고, 문제점 수정 없이 양적 팽창을 추구하며, 마이크 등 장비로 음향밸런스에 맞추고 있어 음향감독이 음악을 만드는 형국이다” 라는 것이다. 객석이 텅 빈 상태에서 연주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관중석이 텅 빈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축구시합을 상상할 수 없듯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병욱과 어울림’의 연주회는 한국 전통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가(작곡가, 연주자)는 음악에 공감하고, 그 음악을 예찬하며, 이를 청중(관객)들에게 잘 전달해야 한다. 청중(관객)은 음악을 잘 이해하고 공감을 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표현해야 한다. 양자 모두 예술 경험 (작곡, 연주, 감상)을 통해 감동을 공유하며 이는 행복한 삶의 기본이 된다. 예술가와 청중은 수동적이 아니라 감동과 행복을 적극적으로 창출해 나가야 한다. 오히려 쟁취해 나간다는 표현이 더 와 닿을 수도 있다. 이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이를 위해 끊임없는 혁신과정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이병욱과 어울림’의 작곡, 연주 활동은 예술가의 본질에 충실히 입각하여 청중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어 오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발전 방향의 한 축을 매겨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맺는 말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ICKC) 박의근위원장님을 통해 홍천 마리솔 축제에 참석하면서 ‘이병욱과 어울림’을 알게 되었는데 이번 연주회를 계기로 진면목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이병욱교수님께서 걸어 오신 길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계승과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며 앞으로 크게 쓰임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새로운 장르의 개척은 선구자로서의 길을 걸어야 하므로 결코 쉽지 않다. 대학 시절 읽은 글 중에서 ‘승무’란 시로 유명한 지훈 조동탁 선생께서 쓰신 글 “ 이상주의를 실현코자 하는 선구자는 자칫 위선자란 지탄을 받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지탄을 받을까 두려워 이상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끝으로 서원대를 떠나면서 새로운 길을 또 열어가시는 이병욱 교수님께서 추구하시는 일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 드리며 짧은 소견의 글을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