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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거닐며

너무 많이 남는 장사(예수찬미 시리즈의 최 용덕 간사님의 글입니다)

작성자jireh|작성시간10.01.16|조회수325 목록 댓글 1

이미 여러 번 나눈 말씀이지만,
저를 두고 성가 <작곡가>라고 하면 저는 항상 민망히 여깁니다.
무슨 무슨 가(家)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그 일이 직업인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둘 중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저는 음악을 한 번도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고,
특히 작곡에 대해서는 아무런 음악적 기초이론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자랑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 “어떻게 곡을 쓸 수 있느냐?” 하고 물으면 아무 말을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늘 곡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마음먹는다고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잘 아는 한 성가 작곡가는, 곡의 기승전결이 어떻느니, 화성(和聲)의 진행은 어떻느니,
음악(리듬) 스타일의 종류는 어떻느니 하며,
그 뼈대를 미리 정해놓고 그 흐름에 따라 곡을 쓴다고 하던데,
저는 그런 것을 할 줄 모릅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직도, 발라드 음악이 어떤 건지, R&B가 어떤 건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음악적 전문지식이 없어도 작곡을 잘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의도적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작곡을 해야겠다고 해서
곡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어찌 노래를 만들지 못하기야 하겠습니까만,
이상하게 성가는 그렇게 되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오늘은 곡을 하나 써야지” 하고 곡을 써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쓴 곡은 일단 제 스스로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특히 다른 이들도 부르지 않습니다.
이러니, 도대체 성가를 작사 작곡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10년 동안 한 곡을 썼는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누가 저더러 <작곡가>라고 하면, 민망합니다.

이런 제가 <작곡가>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은,
좀 널리 알려진 몇 곡의 노래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래들의 대부분은, 제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초기 때(대학생 때),
특히 기타(guitar)를 막 배워서 코드라고는 서너 개 정도밖에 짚을 줄 모를 때,
거의 하늘로부터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 것을 받아 적은 곡들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라는 곡도 대학 3학년 때의 곡이고,
<일어나 걸어라> <가서 제자 삼으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곡이
다 그 때 받아 적은 곡들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장 애창하고 좋아하는 복음성가로
10여년 넘게 1위 자리를 차지한 바 있었던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이란 곡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음악전문가들이 고개를 내젓는 곡입니다.
음악 이론으로 따지면, 완전히 <꽝>인 곡인 것입니다.
이 곡을 처음 음반에 취입한 음악사역자 최미님께서도
음반 기획사로부터 이 곡을 처음 소개받았을 때
“아니, 곡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 끝날 만한 하면 이어지고
끝날 만하면 이어지고... 너무 지루하다”며 취입을 거절하셨습니다. ㅎㅎㅎㅎ
한 전문작곡가는 “이렇게 긴 곡을 단 세 개의 기타코드로 작곡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요 배짱이다”라고 했는데,
사실은 제가 그 때는 기타코드를 세 개밖에 모를 때입니다. ㅎㅎㅎ
이런 제가 쓴 곡들이 오랜 세월동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가장 애창하는 성가들 가운데 포함된 것은,
그야말로 아주 특별한 하늘의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이런 곡을 누군가 음반으로 취입하겠다고 하면
그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이 한결같습니다.)
누구라도 연락이 오면 “아이구, 꼭 이걸 부르셔야겠습니까?
정히 원하신다면 아, 얼마든지 그렇게 하시라”고 했고,
“이런 건 안 물어봐도 됩니다. 다른 분들께도 그렇게 전하세요” 했습니다.

하긴 그 때(1980년-1990년대 초)만 하여도 기독교계 음악 관련 분야에선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을 때이기도 합니다.
악보 출판 분야도 마찬가지여서, 어디에 새 곡이 있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냥 악보화하여 책으로 내던 때입니다.

1990년대 초중반이 되면서 기독교계 음악관련 분야에서도
본격적으로 <저작권>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선진화의 본거지인 서울을 중심으로 이 부분이 강화되었습니다.
지방에 있던 저여서 그 정보를 피부로 느끼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성가악보 <찬미예수 시리즈>를 만드는 당사자로서 저도
저작권이라는 그 엄연한 실정법을 전격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편집자였고, 그 법을 시행해야 하는 곳은 출판사 쪽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소위 성가 작곡가(?)라는 입장에서 저작권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 때는 제가 받아 적었던 곡 가운데 몇 곡이
속된 표현으로 “떴을 때”입니다.
<낮엔 해처럼...> <일어나 걸어라> <나의 힘이 되신...> <가서 제자...>
이런 곡들에 대한 음반 취입 요청이 그야말로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이미 “최용덕이 곡은 승인받지 않고도 누구나 쓸 수 있다”라는 소문이
나 있던 상황이었지만, 저작권 관련 법규가 저작권자의 승인을 가시적인
서류상으로 남기도록 되어 있었기에 저에게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도 제가 여전히 “누구든지 마음대로 써라”는 원칙을 고수하였던 까닭은,
우선은,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자>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 내가 받아 적은 곡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누군가 내가 받아 적은 노래의 악보를 책에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감격하였던 그 첫 마음을 죽는 날까지 잊지 말자고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이미 저작권의 개념을 이해하였고,
내가 그 저작권법의 테두리 안에서 배려를 받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저 받은 것이니, 누구라도 거저 가져다 쓰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 노래들을 만드는 데
특별히 수고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떤 강력한 감동에 사로잡혀서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멜로디를 허겁지겁 받아 적었던 것뿐입니다.
(지금도 불려지는 제 노래들은 100%, 가사와 멜로디를 다 완성하는 데에
5-20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 걸어라>라는 곡은
그야말로 1절부터 3절까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받아 적기 바빴습니다.)
그러니 그런 노래들을 무슨 <사용료>를 받고 쓰게 한다는 것이
제 양심에 걸림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저는 이 노래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쓰지 않았고,
단순히 주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서 그분 앞에서 내 심정과 간구의 내용을
오선지에 옮겼을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건 저의 <작품>이 아니라, 그저 주님 앞에 드려진 저의 <고백>일 뿐인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저와 다르겠지만(같을 필요도 전혀 없지만),
저는 저를 통해 주어지는 노래들은, 그것이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혹은 오선지에 악보로 그려져서 다른 이들과 나누어지는 순간,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마치 내 활 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말입니다.
그 화살을 누가 주워서 또 다른 화살로 쓰든, 아니면 불쏘시개로 쓰든,
아니면 깎아서 이쑤시개로 쓰든, 그걸 팔아서 이윤을 남기든,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만의 하나라도 누가 제가 쓴 곡을 가지고 수억을 벌었어도(그런 일은 없지만)
저는 진실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네 번째 이유는, 저의 신분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교 건축과 3학년 때, 하늘로부터 소명을 받았고, 진로를 전격 수정하였습니다.
그 부르심에 따라 저는 저의 남은 삶을 그리스도와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하였고,
당연히 저에게 주어진 모든 재능 또한 주님과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면서 곧바로 기독교문화선교 전임사역자로 헌신을 하였고,
그 이후로 제 스스로를 <사역자(使役者)>라고 스스로의 신분을 규정하였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사역자(使役者)란, 주인으로부터 불러내져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일꾼,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자는, 당연히 예수님의 일꾼입니다.
예수님의 일꾼은, 당연히 주인이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고,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자들입니다.)

제가 주 예수님을 제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 이후,
언제나 예수님께로부터 강력하게 자극을 받은 삶의 태도는,
그분의 제자인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2장에서 서술한 그분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 5-8, 표준새번역본>


7절의 <자기를 비워서>라는 구절을, 현대인의성경 번역자들은
<자기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으시고>라고 옮겼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를 관통하여볼 때,
<권리>와 관련한 주 예수님의 가르침은 명백해 보입니다.
다른 이의 권리에 대해선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존중하고 보장을 하되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는, 당신이 걸어가신 길을 따르라>
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주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님은 당신이 마땅히 이런 이런 특권을 지니고 계시고,
또 누릴 자격이 있으시지만, 그것을 요구하거나 주장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스스로 그 특권을 내려놓으셨습니다>
라고 서술하였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님을 그렇게 이해했다는 증거는 그의 서신서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서신서 13권 가운데 도처에서
여러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오는 표현이
“내게 이런 이런 권리가 없(겠)습니까? 나는 마땅히 그 권리를 누릴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권리를 내가 나서서 요구하거나
오히려 그런 권리를 사용하지 않겠습니다”입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9장 3-18절입니다.

    우리에게 ...할 권리가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할 권리가 없습니까?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할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쓰지 않았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7-9절,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는,
    여러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서, 무절제한 생활을 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은 일이 없고,
    도리어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서,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
입니다.


그는 빌레몬에게 편지하면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아주 담대하게 그대에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사이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간청을 하려고 합니다.
    나 바울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요,
    이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로 또한 갇힌 몸입니다.
    내가 갇혀 있는 동안에 얻은 아들 오네시모를 두고,
    그대에게 간청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 8-14)


저는 마땅히 행사하고 요구해야 될 권리조차 내려놓겠다는 바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픈 마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사역자, 종>에 대한 깊은 공부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사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태도 가운데
그런 정신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종은,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나 다른 이들이
나를 배려해주고 일의 대가를 지급해 주고 은총을 베풀면 감사히 그것을 받지만,
자신이 먼저 나서서 “나에게 이런 저런 것을 보상해 주시오,
이런 권리를 보장해 주시오, 내 임금을 이 정도는 주시오” 하고 나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종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제 마음에 안 드는(?) 삶의 방식을 고수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그런 자세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주의 사역자로 사는 한은(내가 그리스도인인 한은),
내가 받을 보수나 배려에 대해 결코 먼저 요구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소리를 잃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음악선교단(찬미) 사역을 5년 동안 하면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먼저 우리가 받을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초청을 하려면 사례는 얼마나 하면 되느냐, 말을 해달라고 해도,
“그냥 형편껏 하시면 됩니다, 어려우시면 안 해도 됩니다” 하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가는 경비(자동차 연료비, 고속도로비, 식사비)는 10만원인데
3만원, 5만원 받고도 기꺼이 그 먼 길을 달려갔습니다.
대학 4년을 마친 전임사역자들 다섯 여섯이 하루 종일 수고하여
받은 사례가 5만원, 10만원이어도,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원망이나 불평을
하면 안 된다고, 그것조차도 감사해야 한다고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분은 주님이심을 잊지 말자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찬미선교단 스텝들은 그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한 사람들이 한 달에 사례를 10만원 받아가면서도 감사하였습니다.

먼저 내가 어떤 권리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 것 중에는,
저를 통해 만들어진 노래도 포함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작사 작곡한 모든 노래에 대해 저작권을 내가 나서서
행사하려 들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누구나 자기의 의사에 따라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소위 저작권료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서울 쪽에서는 곡 한 곡당 얼마라는 기준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저작권료가 오고가는 상황이지만,
그 문화에서 저는 예외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기어이 곡 사용료(?)를 보내오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것을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곡 사용료가 아니라, 사역 후원금으로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상업적인 성격의 음반기획사들의 경우는, 미리 저작권료를 예산에 잡고
그것을 지출하기 때문에, 그 또한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몇 명이나 제가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음반에 취입하였는지
모릅니다. 연락 없이 개인적으로 음반에 넣은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게 중에는 가톨릭 신자들도 많습니다.
(제가 만든 노래가 가톨릭교회에서도 많이 불린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한국복음성가협회 임원진 중의 일부가
청주에서 모임이 있었다며, 멀지 않은 거리에 최용덕간사가 있다고
연락도 없이 무작정 어부동으로 쳐들어오셨습니다.
그 중 어느 분이 그러셨습니다.
“최간사님이 마음껏 곡을 쓸 수 있게 해주셔서
저도 이번에 간사님 곡을 허락 받지 않고 음반에 넣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사역자들께 저의 배려가 작음 도움이라도 되었다니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일일이 손으로 다 그려서 펴내는 <찬미예수> 시리즈 성가악보집의 경우도,
그것이 수익을 전제로 하는 장사치의 물건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찬미예수> 성가집의 초기 가격은, 1,000원, 1,500원이었습니다.
복사비보다 쌌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많이 샀습니다. ㅎㅎㅎ
<찬미예수> 시리즈 성가집 가운데 가장 많이 보급된 것이
<찬미예수 1000> <찬미예수 1500>일 텐데,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아마도 통틀어 백 만 부 이상 보급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기에 이 악보집을 만들어 보급하였던 출판기획사는
정작 수입이 별로 없었고, 항상 경영난에 시달렸습니다.
값이 너무나(터무니없이) 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엔 다른 출판사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너무 싸게 책을 보급하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 책자들을 다 죽인다는 것입니다.
우리(편집자인 저, 출판기획자)는, 최소한의 마진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성가악보집을 나눔으로써 주님을 마음껏 찬양케 하는 것으로
봉사를 한다는 단순한 생각만 하였지
그것이 기독교계 음악 출판계를 곤경에 빠트릴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출판사들의 항의와 더불어 이제 본격적으로
저작권법이 강력하게 시행됨에 따라 저작권료 지급 때문에라도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찬미예수>는 값이 무척 쌉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출판사 쪽의 경영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 바는 없지만,
<찬미예수>를 펴내는 출판사는 저의 똥고집 때문에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오래전 언젠가 한국 기독교계 음악 사역자들만의 수련회에
제가 강사로 초빙되어 가게 되었을 때,
그 자리에서 <사역자, 종>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어떻게 하면 사례를 많이 받을 수 있는지
사역자들끼리 서로 정보를 주고 받던 시기이고,
집회 요청이 오면 당당하게 최소 얼마를 요구하라,
그 요구가 안 들어지면 가지 마라... 같은 가르침이 횡행하던 때였으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나름의 합리화된 이유가 다 있었고,
그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저의 강의는 어떤 이들에게는 몹시 언짢은 내용이 되었고,
어떤 이들에게는 긍정적인 면에서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어느 분이 저에게 찾아와 그 사실을 전해 주셨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분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반드시 내가 옳다는 법도 없고, 또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사역자>에 대한 나름의 이 정신을
제가 아는 많은 젊은 후배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독려하여 왔고,
감사하게도 그들 또한 그런 마음과 태도로 지금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하긴, 예전에 제가 혈기왕성할 때는, 제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부흥회를 계획하고
부흥강사 목사님을 초빙하려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몇 백만원을 요구하기에 기겁을 하고
또 다른 목사님을 초빙하였는데, 집회 후 150만원을 넣어서 드렸더니
“내가 이 수준밖에 안 되느냐?”며 봉투를 집어던진 목사님을 보고서 충격을 받아,
자기 본 교회에서 충분한 사례를 이미 받으면서도
몇 백만원씩 돈 받고 부흥회 다니시는 목사님들은 전부 삯꾼 목회자들이라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떠들어대던 적이 있었습니다. ㅎㅎㅎ
하긴, 봉투 집어던지신 그 목사님은 좀 심하셨습니다.
그 시골교회에 노인들이 대부분인 20여 명 규모 교회이고,
한달에 헌금이 30만원 겨우 나올 때인데, 150만원이 적다니... 에이....)

자칫하면 이런 것으로 자기 의로움을 드러낼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더욱 몸과 마음을 낮추는 그리스도의 사람이길 소원합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내 마땅한 권리를 요구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나에 대한 보수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대신,
저는 저의 주인이신 하늘 아버지께 저의 일용할 양식과 입을 옷과
몸을 누일 거처를 부탁드렸고, 지금까지 저는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잘 살아왔으니,
저의 간구는 100% 다 응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당신의 천사들(사람 형상을 한 천사들)을 통해
저와 가족의 모든 필요를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천사들이 저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저희 아이들의 친부모인 것처럼 벌써 오랜 세월 동안
성탄절 때마다 아이들 선물을 꼬박 꼬박 마련해서 보내시는 분도 계시고,
항상 잊지 않고 매년마다 성탄 쿠키를 집으로 보내시는 분도 계시고,
저희 딸이 처음 아팠을 때는 천만원이 넘는 수술비를 부담하신 분도 계셨고,
재작년 딸이 천국 가기 전에 두 달 동안 투병할 때도
천만원이 넘는 병원비 치료비의 필요를 위해
차고 넘치도록 수많은 이들이 주머니를 털어 보내셨습니다.
최근에는 어린 아들 학교 간다고 장학금을 보내신 교수님 내외분도 계시고,
가족들 모두 옷 사 입으라고 돈을 보내신 분도 계십니다.
최근에는, 최간사 퇴직금도 없는데 돈 모아서 뭐라도 하나 만들어 주자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설치고 있어서 속병 생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써서는 안 되겠지만,
만약 저의 지나온 사역 여정을 통틀어서 결산 대조표를 작성했을 때,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대신에
하늘 아버지로부터 공급받은 재정적 은총과 복이 몇 배는 더 많은,
<수지 맞은> 장사를 한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저의 이 마음이 변질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의 보장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십니다.
제가 든 보험은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당신의 천사들을 동원하여 저를 돌보고 계심을 항상 느낍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걱정 없습니다.



**** 혹시라도 제가 이런 글을 나누는 것이 다른 이들로부터 어떤
또 다른 배려를 받고자 하는 불순한 동기에서라면... 위의 바울의 고백으로 대신하렵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쓰지 않았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이 말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아무도 나의 이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받을 삯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나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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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친밀한 | 작성시간 10.01.16 작은 예수, 작은 바울, 종의 삶을 사시는 간사님의 상급은 하늘아버지께서 풍성히 채우시고, 채우실 거 같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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