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단검(dagger)’이론
지난 한 달이 폭풍같이 지나갔습니다. 4월 말 큰 처남이 돌아가신 뒤 5월 15일을 전후해서 뉴욕에 사는 처남 부부와 LA에 사는 처제 가족들이 와서 6월 1일 돌아갔습니다. 처남은 자기가 태어난 집을 찾아 부산으로 갔지요. 부산도 많이 변했지요. 태백산맥 밑자락에 막혀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도시라 발전이 어려웠지만 터널 뚫고 다리 놓는데 세계 최고라는 한국의 공학기술 덕분에 이제는 사방 팔달 하는 도시로 면모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옛 관청들이 있던 대신동 일대와 내가 살던 초량 등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는 옛 자취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몇 년 전 집사람과 함께 다녀왔는데 처가댁이 있던 대신동 일대의 집들은 그대로 있더군요. 보수천은 마치 대학로같이 복개되어 도로가 넓혀졌구요. 처남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옛집을 보자면서 부산에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집사람이 다니던 초등(국민)학교에서 역순으로 골목을 돌고 돌아 겨우 옛 보금자리 두 곳을 찾았습니다. 미제 통조림을 팔던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을 거쳐 찾아낸 한 집은 지난 75년 이상이 지났는데 주변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더군요. 이제는 폐허가 되어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으로 집 주변은 ‘접근금지’ 푯말과 줄이 처져 있었습니다. 왜 이 집만 남았을까? ‘옛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가 나직히 읊조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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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진짜 ‘단검’인가?
제이비어 브런슨(Xavier T. Brunson) 주한 미군사령관은 한국이 중국을 겨누고 있는 ‘단검’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2일 육군 전쟁대 팟캐스트에 출연해 말했다는데, podcast는 u-tube 같은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의 발언은 그 뒤 간헐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전쟁성’/‘전쟁부’는 국방부의 옛 이름이죠. 호전성을 낮추고 방위적 성격을 내세우기 위해 2차 대전 이후 등장한 용어입니다. 일제시대 일본 육군성은 영어로 War Department로 불렀습니다. 트럼프는 이제 미국은 방어에만 몰두하는 호구가 아니라 필요하면 공격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는 용맹/과단성을 내세워 옛 용어를 다시 불러낸 듯합니다.
브런슨의 발언을 읽어보면 몇 가지가 눈에 띕니다. 그는 ‘단검’/‘비수’라는 용어의 역사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ROTC 출신이라는데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브런슨 대장이 정확히 지적한 대로 이 말은 독일 통일(1871)의 영웅인 참모총장 몰트케(Helmoth von Moltke)의 추천으로 1885년 일본 육군참모대학에서 강의한 메켈(Jacob Meckel, 당시 소령, 소장까지 진급)이 언급한 것으로 이후 일본의 대외 안보관에서 불변적 요소가 됩니다. 1945년 전까지 그의 흉상이 참모대학 교문 앞에 있었다고 할 정도로 그의 강의는 통찰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불전쟁 후 일본은 육군은 독일을, 해군은 영국을 모델로 삼아 군사력 증강에 몰두하던 시기였지요. Meckel은 일본 육군의 아버지라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카츠라 타로 등과 교분이 깊어 일본의 군사전략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일본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열도라 방어가 어렵습니다. 해군력을 건설/강화하여 본토를 지켜야 하지만 일본에 적대적인 세력이 한반도를 점령하면 한반도는 ‘일본 열도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dagger pointing at the heart of the Japanese archipelago)’와 같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이 말에 수긍이 갑니다. 일본에 적대적인 세력이라면 구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특히 러시아를 말하겠지요. 러시아가 남하한다면 홋카이도와 한반도일 텐데 한반도는 바로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지요.
서양에도 결이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이론이 있습니다. 영국이 윈스턴 처칠의 조상인 존 처칠 이후, 즉 1714년 유트레흐트 조약 이후, 베네룩스 3국인 저지대 국가(Lower countries)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영국은 이 지역이 영국을 공격하기 위한 발판이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유럽 정책의 기본으로 강조한 겁니다. 1차대전도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자 독일에 선전포고하지요. 그러나 스스로 지킬 힘없이 중립을 선언한 저지대 국가들은 양차 세계대전에서 강대국들의 주요 공격 루트이자 일차적 전쟁 목표가 되면서 국토가 유린당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스위스같이 주변 강대국들의 1차 공격 루트에서 벗어나 있고 또 스스로 군사력을 갖춘 국가는 중립이 가능하지만, 저지대 국가나 폴란드, 한국과 같이 주변 강대국들 간의 전쟁에서 일차적 전장이 되는 국가에게는 중립이 허황한 구호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지대 국가들은 두 차례 참혹한 경험을 겪은 뒤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안보 딜렘마를 극복합니다.
이후 한반도의 ‘단검’이론은 ‘주권선’, ‘이익선’ 등 개념과 함께 한국 침탈과정에서 일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요 개념으로 자리 잡습니다. 한반도가 최소한 일본에 적대적인 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일본의 전략에서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지요. 일본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한국의 정권은 최소한 중립적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일본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한반도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한국이 그럴 힘이 없는데? 차선책이자 더 좋은 방책은 한국이 친일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즉 일본과 협력하는 것이지요. 이보다 더 좋은 최상의 방책은 일본이 한반도를 직접 지배하는 것입니다. 바로 한국 병탐의 논리이지요.
이 이론은 냉전 시대 포장만 바뀌면서 면면히 이어져 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방어에서 최전선이자 가장 중요한 보루가 됩니다. 그렇다면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한반도 남한지역(대한민국)이나마 미국에 적대적인 공산 세력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비수’이론의 변형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 말에 왜 발끈할까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은 순망치한(脣亡齒寒)입니다. 입술을 다치면 이가 시리다는 겁니다. 한반도가 적대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면 중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는 거지요. 대표적 사례가 중국의 6.25 전쟁 참전입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공산 중국을 건국한 지 반년이 지나지 않아 국내정세도 불안한 시점에서 모택동의 한반도가 적대적인 미국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참전을 결정한 것입니다.
‘단검’이론을 뒤집어 그 뒷면을 볼까요? 단검 이론은 한반도가 일본에 위협이 되니 어떻게 이에 대비해야 하느냐는 방어적 관점에서 한반도를 평가한 것입니다. 일본 (그리고 미국)이 공격적, 팽창적 전략을 택한다면 한반도는 단검이 아니라 대륙으로 통하는 관문(gateway to the continent)이 됩니다. 일본을 향한 단검이 이제 중국을 향한 단검이 된다는 말입니다. 중국은 미국이 왜 한반도를 중국을 찌르는 단검이라고 공공연히 떠벌리느냐고 분기탱천한 겁니다. 서울의 중국 대사관까지 나서 이 발언을 성토하고 있더군요.
전통적인 중국의 안보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심지(political center)인 수도(과거에는 왕실)의 방어입니다. 구체적으로 북경과 천진 그리고 여기로 들어오는 발해만입니다. 1840년 아편전쟁과 남경조약에서 중국은 영토를 양보하면서도 서양인들이 북경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 합니다. 5대 개항장이 모두 양자강 이남 지역으로 한정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서양인들이 북경에서 먼 양자강 남쪽에서 장사를 하라는 것이지요. 북경에 서양 열강이 공사관을 설치하려는 시도도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서양식으로 항구적 공관(permanent mission))을 상대방의 수도에 설치할 것이 아니라, 중국식으로 필요하면 북경을 방문하여 현안을 의논하면 될 게 아니냐는 겁니다. 중국적 비밀주의의 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한반도는 중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안내하는 길목/수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황해/서해와 접하고 있지요. 중국의 이같은 정신상태(mentality)는 21세기에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로 진입하면 신경질적이 반응을 보이는 데서 잘 나타납니다. 더 이상 올라오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실 발해만은 공해입니다. 중국의 내해가 아니라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해란 말입니다. 흑해나 요즘 문제가 되는 페르시아/아라비아만과 같이. 그런데도 중국은 자기들의 영해인 양 외국 선박들의 출입을 방해하지요.
순망치한 보여주는 더 뚜렷한 관계는 한반도와 만주입니다. 우리는 잊고 있지만 만주는 2차 대전 이후 중국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입니다. 일본이 개발한 만주국의 본거지이지요. 소련이 2차 대전 종전 직전에 진주하여 6.25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점령하면서 일본이 건설한 공장들을 철거하여 소련으로 가져갔습니다. 지금은 선천이나 상해 등 연안 지역이 발전하면서 만주는 개발이 뒤진 내륙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만주는 북과 동쪽은 러시아, 서쪽으로는 몽골, 그리고 남으로는 한반도와 붙어있습니다. 또 산해관을 넘어 육로로 북경과 중국 본토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안보 전략상 중요한 지역이란 말입니다. 6.25 전쟁 중 미군과 한국군이 북진하면서 만주가 위협받는 상황에 부닥쳤던 겁니다. 만주가 이미 북과 동에서 강대국 러시아가 둘러싸고 있는데, 남에서는 미국의 세력권에 들어간 한국에 포위된다면 중국의 관점에서는 만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찔했을 겁니다.
브런슨 사령관의 ‘단검’ 발언을 우리는 그냥 지켜봅시다. 지정학적/전략적인 관점에 따라 즉 방어적냐, 공격적이냐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지만 모두가 객관적 사실이니까요. 청와대가 브런슨 사령관 발언에 유감을 표현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우리가 이런저런 말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요?
이보다 우려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서두르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입니다. 당연히 독립국으로 우리의 군대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우리가 가져야 하지요.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군이 작전 지휘권을 가질 있는 필수 조건이 무엇이며 우리가 이를 갖추었느냐는 전문적인 측면은 일단 별개의 문제로 남겨둡시다. 중요한 것은 한 강대국이 외국에 주둔할 경우 자국 군대의 지휘권을 타국에 맞기고 자국군 지휘관이 부사령관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겁니다.
특히 미국이 이를 양보한 경우는 (과문하지만) 알지 못합니다. 유럽에 군대를 파견한 1, 2차 대전의 경우도 미국이 최고 지휘관이거나, 다른 국가들과 작전을 조율하면서 독자적인 지휘권을 행사했습니다. 결코 부지휘관의 위치에서 지휘권을 양보하지는 않았습니다. 영국도 2차 대전 중 몽고메리 원수가 아이젠하워 장군 아래 연합군 부사령관직을 수락했지만, 작전에서는 미국과 조율하면서 독자성을 유지했습니다. 현재 독일군은 나토체제에서 미국의 지휘를 받습니다. 독일군의 전통적인 참모부는 해체되었구요. 프랑스는 이를 거부하여 독자적인 지휘권을 유지하면서 나토와 협력하고 있지요. 미국은 한국군 작전지휘권에 대한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작권이 서둘러 한국군에 이양될 경우, 현재와 같은 ‘연합군사령부’ 구조하에서 한국군 연합사령관의 지휘를 받기 어렵다는 취지의 우려를 한국 측에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건의 충족’이란 핑계일 겁니다. 본질은 미군을 한국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 두는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전작권이 한국에 이양되면 한미연합사는 해체될 겁니다. 미군이 한국 영토에 주둔하면서 한국과 협조한다는 명분은 유지하겠지만, 동맹이 규정하는 북한에 대항하여 한국을 방어한다는 공동목표와 구체적인 작전계획은 약해지지 않을까요? 미국은 한국의 방위에 필수적인 북한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할까요? 한국이 미국의 든든한 지원 없이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방위전략을 자신감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에서 미군이 왜 주둔하느냐는 질문에 제기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도 이걸 알고 있겠지요? 대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02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