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중전파설(多重伝播説)
- '뎃포'는 동시다발적으로 일본에 유입됐다?
화승총연구가 다즈키카즈노리(荒木和憲)는
"일본에 화승총이 전래된 ‘첫번째 파급’(第一波)은 1542년 또는 1543년 타네가시마에 전래된
말라카(Malacca)화승총으로 유럽초기형 아케부스(Arquebus)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후에
'두 번째 파급'(第二波), 세 번째 파급이 큐슈지역 등에 밀려들었으며, 말라카 화승총을
일본국산으로 정착시켜 생산되는 와중에도 다양한 수입 화승총들이 함께 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다즈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라이첸 선(Laichen Sun)이 있다.
라이첸은 동아시아의 '화약무기시대'(火器の時代) 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1390년경부터 1683년까지 동아시아는 화약무기가 국력을 결정했던
'화약무기시대' 였다고 한다. 라이첸은 “1390년경 중국의 화약무기기술은 이미 조선이나 동남아시아
북부지역에 이전됐고, 특히 명(明)나라 '정화(鄭和; 1371-1433)의 원정'(1405년부터 1433년까지 남해원정함대를
이끌고 7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30여개국을 탐사 원정했다)을 기해 동남아시아 해안지역까지
중국식 화약무기가 확산됐다”고 주장한다.
라이첸은 또
"당시 아시아의 세력판도는 중국에서 전래된 화약무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중국과 조선,
동남아시아 북부지역 등 '대륙아시아권'이 일본과 대만, 참파(Champa; 베트남남쪽의 왕국으로 2세기말에
건국돼 17세기중엽에 멸망), 동남아시아 해안지역 등 소위 '해양아시아권'을 억누르는 형세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두 번째의 아시아 화약무기시대는 16세기 유럽에서 개량된 화약무기 기술이 아시아지역에
전파돼 16세기 초까지 계속됐다" 며 포르투갈, 네델란드, 스페인 사람들이 바닷길을 통해
'해양아시아권' 지역에 도래하여 진보된 화약무기기술을 보급했다고 설명한다.
이때 미얀마, 아유타야(태국남부), 남베트남, 대만, 일본 등 해양아시아권 국가들은
아샘(인도북동부), 동남아시아 북부, 명(明), 청(淸), 조선 등의 '대륙아시아권'에 도전하여
이전의 억압구조를 역전시켰다" 고 설명한다.
■ 타네가시마(種子島) 뎃포 전래설
일본의 뎃포전래에 관한 유일한 고서인
'뎃포기'(鉄炮記)에 따르면, 뎃포가 타네가시마에 전래된 것은 텐몬12년(天文12年) 음력 8월25일,
즉 서기 1543년 9월23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오스미쿠니’(大隅国; 현재 鹿児島県)의 타네가시마(種子島)니시노우라(西之浦) 해변에
풍랑을 피해 정박한 중국선박(明国船)이 한 척 있었다.
▲ 일본 타네가시마 섬(붉은선 원내). 면적 444.99km2로
우리나라 강화도에 비하면 1.5배에 약간 못미친다.
현재인구는 약 3만3천명, 우리의 나로도처럼 이곳에
'일본우주센터' 발사기지가 있다.
선원가운데 오봉(五峰)이란 중국 명나라 유학자(儒生)가
니시노무라 촌장(西ノ村の地頭)이던 니시무라오리베(西村織部)와 필담으로 통역을 했다고 전한다.
그 선박에는 포르투갈인 프란시스코(牟良叔舎, フランシスコ)와 크리스터 다모트(喜利志多 佗孟太, キリシタダモッタ) 등
2명이 뎃포를 소지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인은 타네가시마 도주(島主)인 타네가시마 시게도키(種子島恵時)와
그의 아들 도키타카(時尭)를 참관시킨 가운데 총기발사 시범을 보였는데, 그 위력에
감탄한 나머지 화승총 2정을 구입하게 됐다.
* 당시의 선박표류 상황에 대해서는 포르투갈인 안토니오 가르반(António Galvão, ?-1557)이
1563년에 저술한 지리탐험서 ‘Tratado dos descobrimentos’(일본어로는 ‘諸国新旧発見記’)에도
등장한다. 그에 따르면 "1542년 안토니오 다 도트, 프란시스코 제이모트, 안토니오 베이숏 등
3명이 태국을 거쳐 중국 닝보(寧波; 浙江省의 副省級市) 또는 랸보(双嶼; 浙江省 닝보의 어촌항구)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게 돼 타네가시마로 표류, 기항했다고 전한다.
타네가시마 섬의 제13대 당주(當主; 우두머리) 시게도키가
화승총에 집착한 이유는 그 자신이 전국시대의 무장출신으로 서양화약무기 성능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 아버지 시게도키의 뒤를 이어 제14대 타네가시마 당주가 된
토키타가는 당시 호기심 왕성한 15세 소년으로, 벌써부터 무장의 기질을 널리 떨치던 터였다.
포르투갈 화승총이 굉음과 함께 연기와 불을 뿜고 실탄이 발사됐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던 석등(石灯籠) 과녁이 한 순간에 부서지고말자 소년 시도게키는 아연실색했다.
그 위력에 놀란 한편 호기심과 강한 소유욕이 발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화승총 2정의 구입대금은 당시 일본 돈으로 이천냥(二千両)이었다고 전하는데,
당시 금액을 현재의 일본엔화 가치로 환산한 액수는 전문가마다 차이가 난다,
1억엔(약 14.5억원) 쯤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 10억엔(145억원)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또 "당시 일본 돈이 포르투갈인 들에게는 교환가치가 없었으므로,
이천냥에 해당하는 은(銀)으로 환산해 2천관(銀二千貫, 7,500kg)을 지불했다"는 주장도 있다.
은 2천관은 우리나라의 현재시가(2011.10.16일 서울지역기준 시세 3.75g당 5,528원)로
환산하면 무려 1,106억원에 달하는 거금이 된다.
그런가하면, 일부 기록에는 "금(金) 백냥(百両, 3,75kg)을 주었다"는 주장도 나타난다.
금 백냥의 요즘시세는 우리 돈으로 약 2억2,500만원이다.
포르투갈인이 타네가시마 '섬사람'들에게
화승총을 바가지 씌운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뒤따른다.
당시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발달된 원양항해술을 이용, 일찌감치 말라카 해협 인근
해상교통 요충지를 점령하고 식민지화 하는 등 동양권 무역거래를 독점하려고 혈안이었다.
유럽제국이 국가차원에서 지원하는 대규모 무역거래도 있었지만,
한탕위주의 일확천금을 노렸던 '날나리 상인' 거간꾼도 많았던 시절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의 해변지역 등을 찾아가 서양의 앞선 기술로 만들어진
상품들을 비싼 값에 팔았고 때로는 무역사기극을 벌이곤 물건 값을 떼먹고 도주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타네가시마 섬에 표류했던 포르투갈인들은 자국선박이 아닌 명(明)나라 선박을 얻어 타고
화승총(그것도 포르투갈제가 아닌, 말라카제 화승총)을 소지한 채 중국의 한 항구로 향한 점으로 미루어,
화승총의 위력을 중국 현지관리들에게 시범사격해 보인 뒤 비싼 값에 팔려는 의도가 다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풍랑으로 인해 원래 목적지와는 다른 일본 타네가시마 섬에 도착,
결국 일본인에게 엄청난 금액을 배팅하는데 성공한 셈이라는 것이다.
▲ '타네가시마 총'으로 보존되고있는 뎃포. 포르투갈인에게 거금을 주고 구입했지만,
포르투갈에서는 16세기초 잠깐 생산됐을 뿐 동남아시아 말라카지역에서 만든
화승총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쨌건 - 이때부터 일본의 '뎃포'모방생산이 시작됐다.
비싼 값을 치르고 화승총 두 자루를 구입한 타네가시마 도주 시게도키는
일본도(日本刀) 제작 장인(鍛冶)집단인 야이타킨베(八板金兵衛)의 두령 키요사다(清定; 1502-1570.10.7)와
그의 심복 사사가와고지로(篠川小四郎)에게 총기모방 복제와 화약제조법을 습득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총기를 모방 제작하면서 겉모습을 비슷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총신이 화약폭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번번이 터져 실패하고 말았다.
문제는 당시 일본기술로는 화승총의 총신 뒷부분에 장착된 나사식잠금장치(銃床ネジ)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인 키요사다는 섬에 머물고 있던 포르투갈인에게 제작기술을
가르쳐달라고 애원했으나 거절 당했고 “당신 딸을 나에게 주면 가르쳐 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딸 와카사(若狭)를 시집보내고(정식혼인이라기보다 애첩으로 보낸 셈),
딸을 통해 잠금나사의 제작기법 비밀을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1년여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1544년
드디어 '일본국산 1호' 화승총 수 십자루가 만들어졌다.
일본 국산화승총이 탄생하게 된 수훈갑은
타네가시마 13대 도주(島主)였던 시게도키(恵時)와
그의 아들 14대 도주 도키타카(時尭)였다.
특히 도키타카는 소년시절부터 무장(武將)기질이 넘쳤던 인물로
섬주민들로부터 "장군깜" 이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타네가시마 뎃포는 결국 도키타카의 남다른 애정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타네가시마에 세워진
도키타카(時尭)의 청동 전신상.
도주 시게도키를 절대 신임하고 복제제작 파트를 담당했던 장인(鍛冶) 키요사다(清定)와
화약개발에 나선 사사가와고지로(篠川小四郎)도 빼놓을 수 없는 공로자다.
또 다른 제작루트
1543년 9월에 타네가시마에 포르투갈 화승총이 입수한 이후
가장 먼저 섬을 찾아와 화승총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둘 있었다.
첫 번째는 키슈군(紀州那賀郡; 현재의 福岡県 北九州市) 오구라소(小倉荘) 영주이자
무장(武將) 출신의 승려 츠다켄모츠 가즈나가(津田監物算長; 1499-1568)였다.
그는 타네가시마 도주가 구입한 두 자루의 화승총가운데 한 정을 들고 본토로 달려가
당시 권력중심지 오사카의 실세 무장이던 아시카가쇼군(足利将軍) 가문에 헌상했다.
또 한 사람은 야마타사부로(橘屋又三郎)란 인물로
온슈사카이시(泉州堺; 현재의 南오사카. 전국시대의 富村으로 주민자치지역)출신이었다.
그는 오키나와(琉球)를 왕래하며 장사를 했는데 풍랑을 만나 카네가시마 섬에 들어와
1년간 키요사다로부터 뎃포 제작기술을 배웠다.
1544년 뎃포제작이 성공하자 야마타사부로는 뎃포를 들고 사카이시(堺)로 돌아가
그곳에 뎃포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뎃포마타'(鉄炮又)라 불린 거물급 뎃포상인이 됐다.
츠다켄모츠와 야마타사부로의 노력으로
초창기 뎃포제작 기술은 일본 본토의 키슈(紀州根来)지방과
센쇼사카이지켄(泉州堺; 현재의 오사카일대)에 가장 먼저 선보이게 됐다.
키슈의 츠다켄모츠는 화승총을 가지고 간 즉시 현지 닛뽄도 제작장인에게 복제를 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1545년 ‘키슈 제1호’ 뎃포가 탄생했다. 츠타겐모츠는 동생인
츠다겐묘상(津田明算)에게 명해 군사의 뎃포무장을 추진했다.
그것이 바로 뎃포 용병부대(鉄炮傭兵集団)인 네고로쇼(根来衆)였다. 이 용병부대는
네고로지(根来寺) 사찰을 중심으로 일대(현재의 岩出市)에 거주했던 승병(僧兵)집단이었다.
타네가시마 화승총을 통해 사카이시와 네고로가
16세기 중반 뎃포생산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는데,
당시 유명 뎃포생산지는 그 곳말고도 또 한군데가 더 있었다.
'오미노구니'(近江国; 현재의 滋賀県 일대)의
사카다군(坂田郡) 쿠니모토무라(国友村; 현재 滋賀県의 長浜市国友町일원)가
그곳으로, 당시 무로마치바쿠후(室町幕府) 12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요시하루(足利義晴; 재위 1521-1546)의
명령으로 1544년 2월 뎃포제작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작한 장인이 완성된 뎃포 2정을 쇼군에게
헌상했다고는 전하나 신빙성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네가시마에 포르투갈 화승총이 전해진지 불과 10여년 만에
일본에는 오사카 사카이시(堺), 쿠니토모무라(国友村), 키슈 네고로(紀州根来) 등
3대 뎃포생산 거점이 자리를 잡게됐다.
▲ 타네가시마 섬에서 일본 본토로 뎃포제조 기술이
전파된 경로. 츠타켄모츠(津田監物算長)와
야마타사부로(橘屋又三郎)가 초기전파의 주역이었다.
쿠니모토무라(国友村)는
후에 '뎃포전투의 전설'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쇼군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의 심복 무장들이 관리감독자로 임명되는 등
노부나가 정권하에서 뎃포의 대규모 생산지로 기능하게 됐다.
이런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술전파가 이뤄진 뎃포는 16세기 중반이후
일본 전국시대의 전투양상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활과 창을 대신하는 본격 ‘뎃포전투’ 시대를 맞은 것이다.
▲ '쿠니모토'(國友)란 글씨가 총신에 선명하게 음각된
전국시대의 뎃포유물. 國友글씨의 아래 석자는
이 뎃포를 만든 대장장이(匠人) 이름이다.
당시 전국시대 일본에서는
뎃포도 없이 칼이나 활을 들고 전쟁에 나서는 간 큰 병사를 '무데뽀'(無鐵砲)라 불렀고,
그 말이 한국에까지 전해져 지금도 우스갯소리 일상용어로 쓰이고 있다.
1543년 타네가시마에 전해진 포르투갈 화승총 두 자루는
이렇듯 일본 전역에 제작기술이 전파되고, 일본 국민들의 인식까지 바꾸는 계기가 됐다.
장인(匠人)을 우대하고, 기술을 아끼고 중시하는 풍토가
뎃포를 시작으로 더욱 확고히 다져졌기 때문이다.
▲ 400년 역사의 마루가메죠(丸亀城; 일본 香川県丸亀市)를 배경으로
전국시대 당시 뎃포사격 시범을 보이고있다.
* 사진출처 : http://pics.livedoor.com/u/hanihani_0o0/8182787
일본관점에서 기술한 '뎃포'의 역사(3) 끝.
<참고자료, 문헌>
- 塚本学, '鉄砲'(日本史大事典 4, 平凡社, 1993年)
- 保谷徹 , '鉄砲(小銃)' (歴史学事典 7, 弘文堂, 1999年) ISBN 4-335-21037-X)
- 'ポルトガル人の日本初来航と東アジア海域交易'(中島楽章)
- 일본판 위키백과(Wikipedia)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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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인회의 사전허가없는 전재나 복사를 엄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