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총(조총)을 쏘려면!
점화접시(火皿)에 일단 선약(線藥; 곱게 간 점화용 흑색화약)을
담아야 합니다. 용두에 매달린 불심지(火繩)가 그곳에 닿아
1차 점화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화약접시에 점화된 불길은 화문(火門; 총신내부 약실과 연결된 구멍)을 타고
약실로 들어가 마침내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실탄(鉛子; 납탄환)이 발사됩니다.
* 화약접시의 불만 반짝 붙었을 뿐, 약실 화약이 터지지 않을 경우
"피식" 하고 싱겁게 끝나고 말기 때문에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용두의 심지불이 '뱀꼬리'로 끝났다는 비유입니다.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있습니다.
"A flash in the pan" 이란 글귀가 그것인데, 직역하면
"접시에서만 반짝하는 불" 로 '용두사미'와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화승총 사격과정에서 '점화용 화약'을 따로 보관하는 용기(用器)
그것이 곧 귀약통(龜藥桶)입니다. 그러나 귀약통의 화약은 점화용도만 그치지 않고
죽관통(竹管桶; 1회발사용 화약을 담은 카트리지) 화약을 다 소비했을 경우,
약실장전용 신약(身藥)으로도 썼기 때문에 귀약통에는 언제나
넉넉한 분량의 흑색화약을 담아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귀약통 뚜껑은
보통 "1회 발사분 약실화약" 용량에 맞는 크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수는 이것저것 신경 쓸 것 없이 뚜껑에 담은 화약만 약실에 털어넣으면,
적정 폭발압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기모양이 하필이면 '거북이'인지
그 이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로부터 한자권(韓字圈) 동양 3국은 거북을
'10장생' 영물(靈物) 가운데 하나로 꼽아 상서러운 동물로 여겨
민간에 매우 친숙한 캐릭터였습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중국은
모두가 '귀약통' 화약주머니를 만들어 썼습니다.
사람을 죽이려고 쏘는 총기의 화약통을
장수(長壽)의 상징인 거북이를 모델로 했다니...
나름대로 지독한 파라독스(paradox)입니다. ^^
귀약통 제작 재료는
흑색화약이 자그만 불꽃(스파크)에도 폭발하므로
일단 쇠붙이 종류로는 귀약통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귀약통은 매우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흔한 소재로는 나무(木)이며, 예쁘게 조각한 작품도 많아
그 자체를 전통 민예품 취급해도 하나 손색없을 정도입니다.
버들고리 귀약통도 발견됐으며 가죽도 쓰였고,
한지(韓紙)을 겹겹이 눌러만든 귀약통도 있다고 합니다.
■ 조선의 다양한 귀약통
▲ 진주박물관 소장 귀약통. 거북머리(뚜껑)가 마치 용두(龍頭)처럼 생겼다.
용맹함을 드러내려는 작의(作意)가 엿보인다.
▲ 귀약통 등과 양쪽에 박힌 놋쇠고리는 조총사수 앞 가슴의 끈에 연결해 걸 수 있게 한다.
▲ 놋쇠고리에 끈을 연결한 모습. 그러나 이 귀약통은 자수공예 소품으로 활용됐고 '매듭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실제 조총병사의 사용방법과는 다르다.
▲ 귀약통을 소품으로 사용한 또 다른 매듭공예 작품.
▲ 뚜껑을 뺀 귀약통의 모습. 거북등짝과 옆모습의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이쁘다.
▲ 다양한 모양새의 조선 귀약통 들. 사진 왼쪽 하단의 작은 화약통과 그 옆의 마름쇠(표창)가 이색적이다.
▲ 모양은 거북이가 아니지만, 이름은 '귀약통'이다. 뚜껑은 '1회분 화약분량'을 재는
도량형(度量衡; 저울) 역할을 한다. 하나가득 담으면 정확한 분량이다.
이 뚜껑을 분실하지 않게 줄로 묶거나 통과 함께 움직이게 만들어놓은 것도 있다.
▲ 귀약통에 화약을 담을 땐 이처럼 등짝부분을 열게 해놓은 것들이 많다.
▲ 귀엽고 소박한, 그러나 전체 디자인이 매우 정갈한 귀약통.
▲ 원형 화약통에다 뚜껑분실을 막기위해 끈으로
연결해놓은 귀약통. 장식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귀약통의 전형적인 모습.
▲ 놋쇠로 만들어 졌음직한 희귀한 귀약통. 흑색화약 용기는 보통
비철(非鐵)재료로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마찰로 인해 발생
할지도 모를 스파크 때문이었다. 놋쇠는 그런 점에서 철제
보다는 안전한 재료인지 모른다.
▲ 조총사격수가 실제 휴대했던 방식 그대로의 끈이 묶어져 있는 귀약통.
▲ 방수(防水)를 위해 겉부분에 옻칠을 해놓은 듯한 귀약통의 모습.
▲ 가죽으로 꿰매어 만든 귀약통.
▲ 버들고리 귀약통. 버들고리는 가는(細) 버느나무 가지를 엮어서 만든다.
뚜껑은 대나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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