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용어와 기호에서 나누어야 할 수학이야기
20110915 왕규식
모든 공부는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만들고 닦는 일이다. 수학도 자연과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에 길을 내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오로지 사람들의 지혜와 의지로 만들어 낸 학문이다. 한 사람의 천재 수학자가 ‘갑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고, 신의 언어를 엿보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경험과 진화가 밑바탕이 되고, 다른 이들의 슬기에 기대어 발전했다. 인류의 집단지성이 함께했다. 수학의 어떤 내용을 수학자, 과학자가 발견하고 제안했다하더라도 다른 이들의 치밀하고 냉정한 검증 과정을 거쳐 보편적으로 쓰기에 이른다. 작은 오류나 논리의 모순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모두가 인정하는 무결점의 결정체다. 따라서 수학의 내용이 제시하는 길은 인류가 모두 인정하고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이기에 새로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튼튼한 버팀목이자 가장 강력한 해결의 도구가 되었다.
시인이 남다른 감수성과 예민함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며 빛나는 시를 쓰듯 수학자도 깊은 사색과 논리로 수학이라는 시를 빚어낸다. 시인은 말과 글로 세상을 노래한다면 수학자는 용어와 기호로 자신의 뜻을 표현한다. 용어와 기호에는 인류의 지성이 들어 있다. 인류의 지성을 모으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수학의 언어는 하나의 단일 언어로 발전했다. 인종과 나라가 달라도 수학의 기호는 같다. 수학이 가장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로 집성된 수학 용어와 기호를 제대로 아는 것은 수학의 출발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수학용어와 기호는 어렵다. ‘전문용어’와 ‘수입용어’들로 가득차서 생활 언어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수학을 삶으로 만나기가 어렵다. 개념을 빚고 생각을 확장시켜주어야 할 수학용어가 어려워서 오히려 수학 내용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수학의 용어와 기호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 할 수 있어야 한다. 말과 글을 제대로 알아야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수학 용어와 기호에 대해 살펴보자.
1. 수입용어, 전문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자.
수학의 언어는 단위를 포함한 기호이다. 기호를 풀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 용어이다. 기호는 수학을 표현하며 용어는 수학 내용을 간명하게 정의한다. 수학 기호는 세계인 모두가 통일하여 쓰고 있고, 용어는 저마다의 언어로 번역하여 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어렵다. 한자말, 일본말, 서양말 투성이어서 어렵고, 시대에 알맞지 않아서 어렵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수학이 산다. 쉬운 우리 말과 글로 바꾸고, 현실의 삶이 녹아 있어야 한다. 우리 말과 글 교육에 관심 있는 이들이 앞장서야 할 일이다. 전국초등국어교사모임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게 제격이지 싶다.
수입용어, 전문용어의 대표적인 것은 한자말이다. 한자말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한 말들이다. 그 말들을 쉬운 우리말로 바꾸지 않고 쓰다 보니 어렵다. 예로 분수에 관한 용어를 살펴보자. 초등학교 때 쓰는 분수 용어는 분모, 분자, 진분수, 가분수, 대분수, 기약분수 따위가 있다. 분모는 나누는 수, 분자는 나눠지는 수로 표현하면 뜻이 분명하다. 분자, 분모는 생활에서 흔히 쓰는 용어이므로 크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진분수, 가분수, 대분수이다. 이 개념은 분모를 전체, 분자를 부분으로 여긴다. 따라서 진분수(眞分數)는 전체보다 작거나 같은 부분을 표현한 분수이기에 ‘진짜분수’라는 뜻이다. 1/4, 2/4, 3/4, 4/4 같은 분수이다. 가분수(假分數)는 분자가 더 큰 상태이다. 다시 말해 ‘부분이 전체보다 큰 상태’ 이다. 이런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가짜분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진짜분수, 가짜분수라고 하는 것이 더 생활용어에 가깝고 뜻도 확실해진다. 그보다 더 어려운 말은 대분수(帶分數)이다. 이 대분수의 ‘대(帶)’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다. 한자사전에 찾아보면 그 뜻은 ‘㉠띠 ㉡뱀 ㉢근처 ㉣지구 표면을 구분(區分)한 이름 ㉤띠를 두르다 ㉥장식하다(裝飾--) ㉦꾸미다 ㉧두르다 ㉨차다 ㉩데리고 있다 ㉪데리고 다니다 ㉫붙어 다니다’이다. 이 가운데 대분수에서는 ‘데리고 다니다, 데리고 있다’의 뜻으로 쓴다. 가분수의 분자를 분모로 나눌 때 몫과 나머지가 나타나는데 몫을 따로 쓰고, 이 몫이 나머지 분수를 데리고 다닌다는 뜻이다. 몫+나머지/분모의 형식이다. 그렇다면 가분수를 대분수로 바꾸어 쓰는 것이니 ‘몫분수’라 하면 그 뜻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대분수의 대(帶)와 같은 한자말을 누가 쉽게 알 수 있겠는가! 북한에서는 데리고 다닌다는 뜻을 강조하여 대분수를 ‘데림분수’라 한다. 북한에서 쓰는 말이 좀 더 분명하고 생활에 바탕을 둔 경우가 많다. 영어로는 ‘mixed fraction’으로 표현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혼합분수쯤 되는데, 몫과 나머지를 한꺼번에 쓰는 분수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기약분수(旣約分數)에서 ‘기(旣)’는 ‘이미, 벌써’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미 약분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이상 약분할 수 없는 분수’라고 용어를 정의한다. 이 기약이라는 말이 어렵다. 북한에서는 ‘다 약분한 분수’라 부른다.
그 밖에도 많은 예가 있다. 비(比)를 두 수의 ‘견주기, 비교하기’로 비율(比率)을 ‘견준 값, 비교한 값’으로 쓰면 좋겠다. 공약수(公約數), 공배수(公倍數)는 ‘공통약수, 공통배수(북한에서 쓰는 용어)’로 쓸 수 있다. 공(公)은 ‘관계맺다’를 뜻하지만 공배수, 공약수에서는 공(共), 공통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수선(垂線)이라는 말도 어렵다. 수(垂)가 ‘드리우다, 아래로 늘이다’는 뜻이다. 수선은 한 점에서 다른 한 직선에서 직각으로 내리는 선이다. ‘한 직선이 다른 한 직선에 수직일 때, 한 직선이 다른 한 직선에 수선이다’고 한다. ‘직각으로 내린 직선’이라고 풀어쓰면 좋겠다. 중학교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소수(素數)도 한자말로 된 대표적인 용어다. (소수에 대한이야기는 지난 원고에 썼다.)
한자말을 수학용어로 쓴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그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쓸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더욱이 수학용어는 외워야 할 단어처럼 여겨서 그 뜻을 새겨보지도 않는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시대에 알맞지 않은 용어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용어가 마름모이다. 마름모의 뜻은 ‘네 변의 길이가 같은 사각형’이라는 것은 모두가 외워서 알고 있다. 그런데 ‘마름’이 연못에서 자라는 풀이름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마름을 한자로 능(菱)이라 한다. 능에는 ‘모나다’는 뜻도 있다. 마름이 60~70년대까지는 흔한 풀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정말 보기가 어렵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식물 마름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시대에 알맞지 않은 이런 용어는 고쳐야 한다. 북한에서는 ‘등변사각형’이라 한다. ‘등사변형(等四邊形)’ 정도가 좋지 싶다.
수학이 자연과 인간 생활에 바탕을 두고 있고, 수학교육이 삶을 가꾸는 교육이려면 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용어부터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쉽고 분명하며 삶에 뿌리를 둔 용어들로 써야 한다. 관행으로 써 왔다고 해서 미뤄둘 일이 아니다. 뜻을 제대로 새기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는 게 수학이다.
7차 교육과정부터 쉬운 우리말을 쓰고 뜻에 알맞은 용어를 끌어들이려 한 노력이 보인다. ‘돌리기, 뒤집기, 옮기기’라든지, ‘쌓기 나무’, ‘가로셈’ 들이 그런 예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어 외우듯 써왔던 수학 용어들을 다시 철저하게 점검하는 일은 수학을 삶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다.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그래야 수학이 산다. 이야기도 그곳에서 시작된다.
2. 기호를 제대로 알고 쓰자.
수학 기호도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 까닭은 기호가 수입품이라는 데 있다. 수학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와 기호의 대부분은 영어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언어와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거의 없다. 예를 들면 집합에서 원소의 기호는 ∈인데 element의 e의 변형으로 생각하면 쉽게 연결되는데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
기호가 우리 문화와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만큼 수학 기호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부터 수학교육이 출발해야 한다. 더구나 중학교 이상의 수학교육은 기호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수학의 정리들을 공부하기에 기호와 용어 해설은 아주 중요하다.
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호는 수많은 과학자, 수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이다. 그들의 철학도 기호 속에 담겨 있다. 기호가 어떤 이유에서 생겨났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안다면 수학자, 과학자가 발견한 합법칙성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 자체로 수학 내용의 절반은 아는 셈이다. 또 수학자들이 세상을 보았던 관점을 알 수 있다. 기호를 사용한 수학내용의 전개와 규칙에 관한 정리, 공식은 그 다음이다.
수학 기호의 이러한 점을 분명히 알고 기호를 통해 어떻게 수학과 세상을 읽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 세 가지 점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수학이 생활에서 발전된 것임을 기호로 알 수 있다. 수학도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 표현인 기호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 둘째, 세상에 대한 철학이 기호 속에 있다. 셋째, 기호와 용어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관점을 세울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로 이야기한 기호를 알면 생활에서 발전된 수학 내용을 알 수 있다고 한 좋은 예가 절댓값이다. 절댓값이란 ‘0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의 값’이다. 거리를 잴 수 있는 간격을 표시하는 막대 두 개가 절댓값의 기호 ‘| |’가 되었다. 그 막대기 둘 중 하나는 거리의 시작점인 0에다 세우고 나머지 하나는 재고 싶은 곳에 세우는 뜻이다. 그래서 절댓값의 기준은 0이고, 절댓값 중에서 가장 작은 것도 0이다. ‘
둘째, 기호 속에 들어 있는 세상을 보는 눈, 삶의 철학이 어떤 것이 있는가는 함수기호로 보자. 함수의 기호는
셋째, 기호와 용어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새롭게 해석하여 세상을 보는 방법도 있다. 연산의 3대 법칙은 교환법칙, 결합법칙, 분배법칙이다. 교환법칙(
결합법칙 {
괄호를 예로 들면, 괄호는 ( ), { }, [ ] 있다. 괄호의 일반적인 의미는 계산 순서를 결정하거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또 빈칸이나 미지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숫자나 연산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뜻 중에서 괄호의 가장 큰 역할은 묶음이다. 묶음은 수학에서 집합이 되고 생활에서는 범위나 범주를 결정한다. 그래서 집합기호는 { }이다. 집합이 기준이 분명한 ‘모임’을 뜻하는 것이니 당연히 그 기호는 괄호이다.
또
수학 기호를 본래의 뜻에 맞게 해석하고, 기호가 사회현상이나 자연현상을 함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해 보고, 그에 맞게 새롭게(독창적으로) 새겨보는 것이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은 대부분 중등수학에서 쓰는 기호이다. 초등수학은 중등수학에 견주어 쓰는 기호가 적다보니 크게 해석할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흔히 쓰는 기호도 놓치지 않고 해석하다보면 수학의 근본을 알 수 있고 수학적 사고력이 높아진다. 그 해석을 통해 자신만의 줏대와 잣대가 길러져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게 된다.
지난 상반기에 초등국어교사모임에서 진행한 월례강좌에서 ÷ 기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강의에 참석했던 3학년 선생님이 나누기 기호(÷)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뜻이 있는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었고 그 내용을 소개해주었다. “네 편 내 편 가르듯이 점 사이를 선으로 가른 것”이라는 해석과 “나누기는 빼기(-)와 관련이 깊어서 빼기 표시에 점 두 개를 찍었다.”는 두 가지의 해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렇듯 나눗셈 기호 하나에도 얼마든지 아이들의 해석과 이야기가 들어 있다.
또, 점 두 개로 이루어진 기호를 찾아보면 나눗셈 기호 ÷, 백분율 기호 %, 비의 기호 : , 근삿값 기호 ≑ 가 있다. 이 기호들 중 비(:) 는 비의 값으로 표현할 때 분수의 값이 되므로 나누기(÷) 기호와 본질이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는 분모가 100개인 분수로서 ÷의 부분집합이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근삿값 기호는 같다(=)라고 할 수도 없고, 같지 않다(≠)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등호에 점 두 개를 찍은 기호(≑)로 재해석할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나누기(÷)는 빼기(-)라고 할 수도 없고, 빼기가 아니다
아이들과 기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저마다의 생각이 빛난다. 자신의 기준으로 기호를 바라보며 기호가 갖는 본래의 뜻을 찾아간다. 이런 이야기가 수학을 삶으로 끌어 들인다.
수학용어와 기호가 수입품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오랫동안 관성으로 쓰던 것이어서 아이들에게는 낯설 때가 많다. 이 점을 고치지 않고는 수학의 본질에 한 걸음도 다가가기 힘들다. 수학 교육이 이론 수학자를 기르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이론 수학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수학 교육은 수학 속에 녹아 있는 인류의 문화와 지성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인류의 지성을 따라 배우며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게 교육이며 그것이 교사의 책임이다. 그 시작은 용어와 기호를 제대로 해석하는데 있다. 수학이 곧 철학이자 삶인 까닭은 바로 이런 재해석에 달려 있다.
거창하고 높은 차원의 명제와 정리들만 자연의 합법칙성과 섭리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초등학생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수학 내용과 법칙들이 세상을 보는데 어떤 관점을 갖게 하는지 늘 재해석 하고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이야기 수학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