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유익) 경제특강

작성자NangSan|작성시간26.04.02|조회수820 목록 댓글 0



한주식 회장님 의 경제특강

(지산그룹 창업자, 경주출신)
한주식(韓周植, Han JuSik)
프로필
출생1947.02.20. 
경상북도 경주
지산그룹(회장)
한경국립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수상 : 2025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
2022년 국무총리 표창
경력 : 지산그룹 창립, 회장

최근 모교장학금 전달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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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자료는 SNS X (옛트위트) 등 에 올려주신 글 중에서  좋은글을 모아서 정리한것입니다. 
경제관련 은 현재페이지에, 정치. 행정 제안 비평 / 수필. 교훈등 글은 아래 표지로 연결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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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519 경제편 분량초과로 분리

  경제편 26 0402~
0517 까지 모 음




정치논리 아닌 경제논리로 반도체 AI 산업 발전!



AI 시대의 진짜 병목은 반도체가 아니라 전기다


데이터센터를 준비하는 지산 입장에서 본 새로운 미래

요즘 인공지능 이야기가 넘쳐난다.
누구는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해질 것이라 말하고, 누구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말한다.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은 더 과감하게 말한다. 머지않아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설 것이고, 로봇이 생산과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맡게 되며,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이 전부 그대로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미래 예측은 늘 과장이 섞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공지능 시대가 올수록 세상의 중심 인프라는 달라진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핵심이 도로, 항만, 철도, 공장이었다면 앞으로의 핵심은 데이터센터, 전력망, 변압기, 냉각 설비, 그리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다.

나는 지금 데이터센터 사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이 변화를 매우 현실적으로 보고 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전기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반도체가 있어도 데이터센터가 없으면 계산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모아도 냉각이 안 되면 서버는 멈춘다. 결국 AI 시대의 승부는 소프트웨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땅, 전기, 물, 냉각, 송전, 변전, 보안, 운영 능력을 가진 쪽이 미래의 핵심 인프라를 쥐게 된다.

지금 사람들은 엔비디아 칩을 이야기한다. 물론 중요하다. GPU는 AI 시대의 엔진이다. 하지만 엔진만 있다고 자동차가 달리는 것은 아니다. 연료가 있어야 하고, 도로가 있어야 하며, 정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AI에서 그 연료가 전기이고, 그 도로가 데이터센터이며, 그 정비 시스템이 냉각과 전력 인프라다.


특히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겉으로 보면 창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산업이다. 고압 전기를 안정적으로 받아야 하고, 변압과 배전 시스템이 정교해야 하며, 24시간 365일 서버를 식혀야 한다. 전력 장애가 나면 곧바로 서비스 장애로 이어지고, 냉각이 무너지면 수천억 원 규모의 장비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데이터센터는 부동산이면서도 전력 산업이고, 제조업이면서도 디지털 산업이며, 국가 안보와도 연결되는 전략 인프라다.


앞으로 AI가 더 보편화되면 데이터 사용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기업은 자체 AI를 돌리려 할 것이고, 병원은 의료 데이터를 분석할 것이며, 금융사는 실시간 리스크 계산을 할 것이다. 제조업은 공장 자동화를 위해 AI 서버를 필요로 하고, 자율주행, 로봇, 스마트시티, 국방, 교육, 콘텐츠 산업까지 모두 데이터센터 위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다.
좋은 부지를 확보하기 어렵고, 충분한 전기를 끌어오기 어렵고, 주민 수용성을 얻기 어렵고, 냉각수와 환경 규제를 동시에 맞추기도 어렵다. 과거에는 데이터센터를 IT 기업의 시설 정도로 봤지만, 이제는 국가와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기반 시설로 봐야 한다.

특히 한국은 이 문제를 더 진지하게 봐야 한다.
우리는 반도체 강국이고, 통신망도 우수하며, 디지털 서비스 수준도 높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대규모 전력 확보, 지역 분산형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와 원전, 송전망 확충, 냉각 기술, 보안 인프라가 함께 가야 한다. 수도권에만 몰리는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전력 여유가 있고, 부지가 있으며, 지역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곳으로 데이터센터 입지를 분산해야 한다.

데이터센터는 지역에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단순히 건물 하나 짓는 사업이 아니다. 전력 공사, 통신망, 냉각 설비, 보안, 유지보수, 장비 운영, 인력 교육, 주변 산업 유치까지 이어진다. 지방 도시에 양질의 디지털 인프라가 들어오면 기업 유치의 조건도 달라진다. 과거 산업단지가 공장을 불러왔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센터가 AI 기업과 디지털 기업을 불러올 수 있다.

다만 데이터센터 사업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전력 확보가 핵심이고, 인허가가 어렵고, 초기 투자비가 크다. 단순히 “AI가 뜨니 데이터센터를 짓자”는 식으로 접근하면 위험하다. 어느 지역에 얼마만큼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냉각 방식은 무엇이 적절한지, 고객은 누구인지, 클라우드 사업자와의 관계는 어떻게 만들 것인지, 보안과 운영 능력은 어떻게 갖출 것인지까지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기회를 본다.
AI 시대가 오면 모두가 데이터를 쓰게 된다. 데이터를 쓰려면 연산이 필요하고, 연산을 하려면 서버가 필요하며, 서버를 돌리려면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결국 데이터센터는 미래 산업의 발전소와 같다. 과거의 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했다면, 앞으로의 데이터센터는 지능을 생산한다.

일론 머스크가 말한 미래가 전부 맞을 필요는 없다.
AI가 언제 인간을 넘어설지, 로봇이 언제 모든 일을 대신할지, 의료와 노동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논쟁의 영역이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AI가 커질수록 전기와 데이터센터 수요는 커진다는 점이다. 이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그래서 나는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투자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
이것은 미래 산업의 기반을 짓는 일이다. AI, 로봇, 자율주행, 바이오, 금융, 국방, 교육, 콘텐츠 산업이 모두 올라설 디지털 토지를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는 AI 서비스를 만들고, 누군가는 반도체를 만들고, 누군가는 로봇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기반은 결국 데이터센터다.

앞으로의 경쟁력은 질문 하나로 정리된다.
“누가 더 안정적으로, 더 싸게, 더 깨끗하게, 더 많은 전력을 데이터센터에 공급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가진 기업과 지역이 AI 시대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 답을 준비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미래의 건물이 아니라 미래의 엔진이다. AI 시대를 말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AI가 실제로 돌아갈 수 있는 땅과 전기와 냉각 인프라를 준비해야 한다.

미래는 예언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인프라를 준비한 사람에게 먼저 온다.



신은 큰 건물에 오는가, 작은 마음에 오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0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지어지고 있다.
가우디가 설계한 이 성당은 예술 작품으로는 위대하다. 인류 건축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고, 그 아름다움은 충분히 찬양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 번쯤은 물어봐야 한다.

신은 과연 그렇게 큰 건물을 원하실까?
하늘을 찌르는 탑, 수많은 인파, 거대한 예식, 엄청난 돈과 시간을 바친 건물에만 신이 임하실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골 동네 언덕 위에 작은 예배당이 하나 있다고 하자.
돈 많은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고, 권력이 세운 것도 아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기 형편껏 조금씩 보태고, 누군가는 벽돌을 나르고, 누군가는 밥을 짓고, 누군가는 마당을 쓸어 지은 작은 집이다.

그곳에서 몇 사람이 조용히 모여 예배드리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서로의 삶을 위로한다면, 신이 있다면 오히려 그런 곳에 더 가까이 계시지 않겠는가.

큰 성당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위대한 예술도 필요하고, 인류가 남긴 아름다운 문화유산도 소중하다.
하지만 신앙의 본질이 건물의 크기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거대한 종교 건축물이 세워지는 동안, 그 돈으로 굶는 사람을 먹이고,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한 이들의 집을 고쳐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신은 높은 탑을 더 기뻐하실까, 아니면 낮은 곳의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손길을 더 기뻐하실까?

만약 어떤 신이 가난한 사람의 눈물보다 거대한 건물의 높이를 더 귀하게 본다면, 그런 신은 인간에게 필요한 신이 아닐 것이다.
참된 신이라면 웅장한 대리석보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화려한 제단보다 외로운 사람 곁에 앉아주는 마음을 더 귀하게 보실 것이다.

한국의 시골 교회나 작은 예배당은 화려하지 않다.
세계적인 관광지도 아니고, 수십만 명이 몰려드는 장소도 아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소박함이 있다.
남에게 과시하지 않고, 자기 형편에 맞게 짓고, 남은 힘으로 이웃을 돕는 마음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소박함이 귀하다고 본다.

신이 있다면, 신은 큰 건물에 갇혀 계시지 않을 것이다.
신은 높은 탑 꼭대기보다 낮은 사람들의 삶 속에 계실 것이다.
거대한 성당의 천장보다, 가난한 이의 어깨를 감싸는 손길 위에 계실 것이다.

예술로서의 성당은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으로서의 성당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신을 모신다는 것은 큰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
작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다.

신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늘 높은 탑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땅 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신은 큰 건물보다 작은 마음에 먼저 오신다.
화려한 성전보다 따뜻한 이웃 사랑에 먼저 오신다.
그리고 정말 신이 있다면,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보다 가장 낮은 곳에서 흘리는 눈물을 먼저 보실 것이다.


쉬운 말은 사람을 움직이고, 깊은 생각은 미래를 연다

우리 주변에는 많이 배우고, 지식도 많고, 글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도 알고, 고전도 알고, 한자와 고사성어도 능숙하게 쓴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으면 분명 배울 점이 있다. 그러나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그 글이 읽는 사람의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글은 내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과 글은 상대에게 닿아야 한다. 상대가 알아듣고, 기억하고, 자기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지식도 읽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힘을 잃는다.

우리 사회에는 똑똑한 말이 너무 많다. 어려운 표현, 복잡한 논리, 남이 모르는 인용과 지식으로 가득한 말이 많다. 그런 말은 순간적으로는 대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는 멀게 느껴진다. 글은 높이 쌓는 탑이 아니라,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다리여야 한다.

좋은 글은 어려운 글이 아니다. 쉬운 글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좋은 글은 읽는 사람이 써먹을 수 있는 글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에 적용할 수 있고, 일하는 사람은 일에 적용할 수 있고, 젊은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남에게 설명해줄 수 있고, 생활 속에서 응용할 수 있는 말이 진짜 살아 있는 말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잘 이야기한다. 역사, 전례, 이론, 실패 사례를 잘 안다. 이것은 분명 큰 장점이다. 과거를 모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러나 과거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칫 부정적이 되기 쉽다. “그건 어렵다”, “전에도 안 됐다”, “전례가 없다”는 말이 많아진다.

반대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힘이 있다. 아직 오지 않은 기회를 보고, 앞으로 필요한 것을 생각한다. 지금은 부족해 보여도 5년 뒤, 10년 뒤의 수요를 본다. 모든 발전은 그런 미래 감각에서 시작된다.

물론 미래만 보고 달리는 것도 위험하다. 과거의 지혜와 현실의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큰일을 이루는 사람은 과거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를 참고해 미래를 여는 사람이다. 과거는 거울이고, 미래는 길이다. 거울만 보고 운전할 수는 없지만, 거울 없이 운전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말과 사업의 원칙은 서로 다르다.

사람에게 말하고 글을 쓸 때는 쉽게 해야 한다.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야 한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내는 사람이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업과 개발은 반대다. 사업은 남들이 다 아는 것을 따라 해서는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 남들이 보는 것만 보고, 남들이 하는 것만 하면 결국 경쟁 속에 묻힌다. 사업은 남들이 아직 못 본 것을 보는 데서 시작된다.

남들이 그냥 땅으로 볼 때, 누군가는 전기와 도로와 물류와 산업 수요를 봐야 한다. 남들이 현재 가격만 볼 때, 누군가는 미래의 쓰임을 봐야 한다. 남들이 어렵다고 피하는 인허가, 민원, 전력, 폐수, 기반시설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바로 그런 곳에 기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글은 남이 알아듣게 낮춰야 하고,
사업은 남이 못 보는 곳까지 깊게 들어가야 한다.

말은 쉽게 해야 사람이 모인다.
생각은 깊어야 미래가 열린다.

자기 지식을 과시하는 글보다, 남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이 더 귀하다. 과거를 설명하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미래를 여는 통찰은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도 이제는 똑똑해 보이는 말보다, 사람을 움직이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말이 더 많아져야 한다.

쉬운 말은 사람을 움직이고, 깊은 생각은 미래를 연다.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수직 계열화가 만든 개발의 힘

내가 해온 개발을 설명하려면 수직 계열화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수직 계열화란 사업에 필요한 과정을 따로따로 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핵심 단계들을 한 흐름 안에 묶어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개발은 여러 손을 거친다.
누군가는 땅을 사고, 누군가는 인허가를 맡고, 누군가는 설계를 하고, 누군가는 시공을 하고, 누군가는 조경을 하고, 누군가는 운영을 한다. 단계마다 사람이 바뀌고, 회사가 바뀌고,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길어진다.
원가가 올라간다.
책임이 나뉜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남의 탓을 한다.
처음 기획했던 의도와 최종 결과물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는 그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개발은 땅을 사는 순간부터 이미 건축과 운영까지 생각한다.
땅을 볼 때 단순히 가격만 보지 않는다.
이 땅이 어떤 허가를 받을 수 있는지, 어떤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지, 주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경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운영할 때 불편은 없는지까지 함께 본다.

그래서 수직 계열화가 필요했다.

땅을 찾는 눈,
허가를 푸는 경험,
설계를 조정하는 판단,
시공을 직접 관리하는 능력,
조경을 키우는 시간,
운영까지 보는 기준.

이 모든 것이 따로 놀면 개발은 흔들린다.
하지만 한 줄로 연결되면 개발은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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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계열화는 원가를 낮춘다

수직 계열화의 첫 번째 장점은 원가다.

남에게 맡기면 단계마다 마진이 붙는다.
중간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비용이 된다.
설계 변경, 인허가 지연, 시공 착오, 하도급 조정이 모두 돈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직접 흐름을 잡으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땅을 싸게 사서 건축 가능한 부지로 만들면, 이미 토지 원가에서 큰 경쟁력이 생긴다. 여기에 설계와 시공까지 직접 이해하고 있으면 쓸데없는 지하 공사를 줄이고, 지상 주차와 조경을 살리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남들은 평당 300만 원짜리 지하를 만들 때, 나는 평당 100만 원 이하로 확보한 땅을 활용해 지상에서 해결한다.
남들은 뒤늦게 비싼 땅을 사서 시작할 때, 나는 미리 준비한 땅으로 바로 사업을 시작한다.

이런 판단은 한 단계만 보는 사람은 하기 어렵다.
땅만 보는 사람은 건축비를 모른다.
건축만 보는 사람은 토지 원가를 모른다.
운영만 보는 사람은 허가의 어려움을 모른다.

그러나 전체를 한 흐름으로 보면 답이 달라진다.
이것이 수직 계열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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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계열화는 시간을 줄인다

개발에서 가장 큰 이익은 시간의 이익이다.

일반 기업은 사업을 결정한 뒤 땅을 찾고, 허가를 받고, 설계를 하고, 시공을 준비한다. 그러면 3년, 길게는 5년이 걸린다. 그 사이 시장은 바뀌고, 금리는 바뀌고, 경쟁자는 늘어난다.

하지만 수직 계열화된 개발은 다르다.

땅을 미리 확보하고,
허가를 미리 준비하고,
설계를 미리 구상하고,
시공 방식까지 미리 생각한다.

그러면 시장에서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움직일 수 있다.
남들이 준비하는 동안 나는 착공할 수 있다.
남들이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이 시간 차이가 이익이다.
단순히 땅값이 오른 것이 아니라, 준비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데이터센터 같은 사업은 특히 그렇다.
지금 시작해야 가치가 있는 사업을 5년 뒤에 시작하면 이미 늦을 수 있다.
전력, 부지, 인허가, 도로, 용도 조건을 미리 갖춘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다.

수직 계열화는 이 준비 시간을 줄인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익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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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계열화는 품질을 높인다

수직 계열화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방식이 아니다.
품질을 높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남에게 팔기 위한 건물은 준공 순간만 보기 쉽다.
하지만 내가 기획하고, 내가 짓고, 내가 운영할 건물은 5년 뒤, 10년 뒤를 본다.

그래서 지하를 꼭 파야 하는지 다시 생각한다.
주차 동선이 편한지 본다.
나무를 큰 것으로 사다 심을지, 작은 나무를 키울지 판단한다.
건물과 마당과 조경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아질 수 있는지 본다.

넓은 공간도 이런 방식에서 나온다.
큰 나무를 급하게 심어 보여주기식 조경을 한 것이 아니라, 작은 나무를 심고 키워 자연스럽고 수려한 공간을 만든다. 처음부터 내가 쓸 공간, 내가 관리할 공간, 시간이 지나 더 좋아질 공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품질은 도급 구조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도급은 공사를 끝내는 것이 목표가 되기 쉽다.
하지만 수직 계열화는 공간을 완성하고 키우는 것이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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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계열화는 미수금과 공백을 줄인다

건설업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이 끊기는 공백이고, 다른 하나는 미수금이다.

남의 공사를 하는 건설업자는 일이 없으면 쉬어야 한다.
일을 따려고 저가 수주를 하기도 한다.
공사를 해놓고도 돈을 제때 못 받으면 미수금이 생긴다.
발주처와 수급자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 위험이다.

하지만 내가 하는 방식은 남의 일을 기다리는 구조가 아니다.
내가 땅을 준비하고, 내가 허가를 받고, 내가 설계하고, 내가 시공하고, 내가 운영한다.
그러면 다음 일이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준비된 땅으로 넘어간다.
공백이 줄어든다.
조직과 장비가 놀지 않는다.
미수금 위험도 줄어든다.

이것은 단순한 효율이 아니다.
사업의 안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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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계열화 기업은 ‘전체를 보는 기업’이다

수직 계열화의 본질은 모든 것을 무조건 직접 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은 전체를 보는 힘이다.

어떤 것은 직접 하고, 어떤 것은 외부 전문가와 협업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판단은 내가 해야 한다.
땅과 허가와 설계와 시공과 운영이 따로 놀면 안 된다.

땅을 볼 때 건축을 생각하고,
건축을 할 때 운영을 생각하고,
운영을 생각할 때 조경과 주차와 동선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수직 계열화된 사고다.

단계별로 끊어진 기업은 부분 최적화를 한다.
하지만 수직 계열화 기업은 전체 최적화를 한다.

땅값만 싸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건축비만 낮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조경만 화려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허가만 받았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전체가 맞아야 한다.
그 전체를 맞추는 것이 수직 계열화다.


전기는 강하다, 그러나 돈은 길목에서 벌린다


지난 10년, 20년을 돌아보면 한 가지 생각이 더 분명해진다. 전기의 중요성은 줄어든 적이 없고, 앞으로도 줄어들 수 없다. 공장도 전기로 돌고, 반도체도 전기로 만들고, 데이터센터도 전기로 움직이고, 이제 AI도 결국 전기를 먹고 산다. 세상이 디지털로 갈수록 전기는 더 많이 필요해진다.

나는 오래전부터 전기를 중요하게 봤다. 그러나 한 번도 한국전력 주식을 산 적은 없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전기가 중요하다면서 왜 전기의 본체인 한전을 사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가 중요하다는 것과 한전이 투자수익을 크게 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기반이다. 전기를 공급하고, 송전망을 유지하고, 산업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 통제를 받는다. 전기요금은 선거 때마다 정치의 대상이 되고, 원가와 투자 논리보다 민심과 표 계산에 흔들린다. 철도, 도로, 택시요금처럼 국가 통제를 받는 산업은 국민 생활과 국가 발전에는 꼭 필요하지만, 투자자가 큰 이익을 얻는 구조와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전기의 본체보다 전기가 필요한 길목을 봤다. 변전소 옆 땅, 앞으로 전기를 많이 쓸 산업, 전력 공급이 가능한 부지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에는 농업이나 기계 산업이 중심처럼 보였지만, 길게 보면 기계보다 전기가 더 크게 뻗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니 자동차도 전기차가 되고, 공장도 자동화되고, 물류도 로봇화되고, 데이터센터와 AI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산업을 볼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유명한가”가 아니다. 앞으로 어떤 산업이 커지고, 그 산업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를 봐야 한다. 코카콜라가 잘 팔린다고 해서 반드시 코카콜라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주변에서 기회를 찾는 사람이 더 큰 이익을 볼 수도 있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전기가 중요하다고 무조건 한전 주식을 사는 것이 답은 아니다. 전기를 활용해 기술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고, 세계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이 부가가치를 가져간다. 또 전기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땅과 인프라가 새로운 가치를 가진다.

요즘 반도체와 AI가 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전기가 있다. 반도체 공장도 전기 없이는 멈추고, AI 데이터센터도 전기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은 단순히 기술만의 경쟁이 아니라 전력 확보의 경쟁이다. 전기가 들어오는 땅, 변전소와 가까운 부지, 대규모 수전이 가능한 지역은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자산이 된다.

나는 이것을 주식 강의처럼 떠들고 싶지는 않다. 주식은 조용히 사고팔면 되는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의 길목을 보는 눈이다. 언론과 강연에서는 지식을 많이 말하지만, 실제로 부동산이나 산업의 방향을 먼저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식은 남이 만든 길을 설명하지만, 통찰은 아직 길이 되지 않은 곳에서 길이 날 자리를 보는 것이다.

전기는 국가가 통제하는 기반 산업이다. 그래서 한전 자체가 큰 투자수익을 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기 위에서 성장하는 기업과 부지와 산업은 다르다. 전기는 나라를 키우고, 전기의 길목은 기업과 개인에게 기회를 준다.

앞으로도 전기의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AI가 커질수록, 반도체가 발전할수록,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전력 수요는 더 커진다. 그리고 전력 수요가 커질수록 전기 들어오는 곳의 가치는 올라간다.

결국 내가 본 것은 주식 종목 하나가 아니라 산업의 흐름이었다.
전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돈은 전기 자체보다 전기가 필요한 길목에서 벌린다.



불경기 토지시장 대응 및 개발사업의 기회.


최근 경기 침체, 자금 경색, 투자심리 위축으로 농지와 임야의 매수세가 약화되고 있다. 경매시장에서도 유찰이 반복되면서 과거보다 낮은 가격에 토지를 취득할 수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투자자나 기존 지주에게 토지가격 하락은 손실이지만, 개발사업자에게 토지는 완성 상품을 만들기 위한 원가다. 따라서 토지가격 하락은 단순한 불경기 신호가 아니라, 사업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기회로 볼 수 있다.

특히 농지는 부재지주 규제와 실경작 요건 부담으로 단순 투자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임야 역시 경기 침체로 매수자가 감소하면서 가격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실제 개발 능력과 인허가 역량을 가진 사업자가 유리한 조건으로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

개발사업자는 토지를 자산 보유 목적이 아니라 사업 원재료 확보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낮은 가격에 토지를 확보하고, 건축허가·개발행위허가·농지전용·산지전용 등 필요한 인허가를 진행한 뒤, 임대 또는 분양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건축비와 금융비용은 상승했지만, 토지 매입가가 충분히 낮아지면 전체 사업비를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완성된 상품의 임대료가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면, 낮은 토지원가가 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시장을 단순히 불경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음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1. 토지는 보유자산이 아니라 개발 원가로 판단한다.


2. 유찰 토지와 급매 토지는 가격 조정 기회로 검토한다.


3. 농지와 임야는 규제 검토 후 개발 가능성이 있는 물건만 선별한다.


4. 매입 전 도로, 용도지역, 전용 가능성, 개발행위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5. 토지 매입 후 단순 보유가 아니라 인허가와 상품화까지 연결한다.


6. 임대수익이 가능한 구조인지 사전에 검토한다.


7. 불경기일수록 무리한 확장보다 원가 절감형 사업지를 우선 확보한다.



결론적으로, 불경기는 모든 사업자에게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험이지만, 자금력과 인허가 능력, 개발 경험을 가진 사업자에게는 낮은 원가로 사업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시기다.

따라서 당사는 현재 시장을 위축 국면으로만 보지 않고, 우량 토지를 저가에 확보하여 개발 원가를 낮추고, 향후 임대·분양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 구간으로 판단한다.
향후 농지, 임야, 경매 유찰 물건, 급매 토지를 중심으로 사업성을 검토하되, 인허가 가능성과 수익구조가 명확한 물건에 한하여 선별적으로 추진한다.



단지 내 보행공간의 친환경 자율설계 .


도시계획심의, 건축심의 등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법령상 반드시 요구되는 사항은 당연히 준수하여야 한다.
다만 법규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안전·방재·보행 기능에 실질적 지장이 없는 사항까지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물류단지, 데이터센터, 산업시설, 기숙사 단지 등은 일반 도심지와 달리 외부 보행자의 통행이 많지 않고, 내부 이동도 대부분 차량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단지의 일부 보행공간까지 일률적으로 석재, 보도블록, 콘크리트 포장으로 시공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공사비 낭비일 뿐 아니라 자연친화적 설계 방향에도 맞지 않는다.

법적으로 반드시 보도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구간, 장애인 이동 동선, 주출입구, 피난·대피 동선, 보행량이 많은 구간은 당연히 안전하고 평탄한 포장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보행량이 낮은 단지 내부의 보조 보행공간, 완충녹지 성격의 공간, 장래 이용 가능성만을 고려해 설치되는 보행 여유 공간 등에 대해서는 잔디형 친환경 포장, 잔디블록, 투수성 포장, 녹지형 보행공간 등을 자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방식은 기존 석재 포장 대비 공사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고, 빗물 침투, 열섬 완화, 미관 개선, 친환경 단지 이미지 확보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단순 잔디만 식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키가 낮은 꽃잔디, 지피식물, 계절별 초화류를 혼합 식재하면 단지 경관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봄에는 꽃잔디, 패랭이, 크리핑타임 계열을 적용하고, 여름에는 맥문동, 송엽국, 왜성 사초류 등을 활용하며, 가을에는 구절초, 억새류, 낮은 국화류 등을 일부 혼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단지 내부가 단순한 포장 공간이 아니라 계절별로 변화하는 친환경 경관 공간이 된다.

문제는 일부 심의 과정에서 법령에 없는 사항까지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민간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친환경적으로 개선하려는 방안을 오히려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공사비 증가, 자원 낭비, 자연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의는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라, 법령의 범위 안에서 더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개발 방향을 유도하는 절차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향후 단지 개발 시에는 다음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법정 보도와 필수 보행 동선은 안전 기준에 맞게 유지한다.

둘째, 보행량이 낮은 내부 보조 동선은 잔디형·투수형·녹지형 포장을 허용한다.

셋째, 심의위원회는 법령에 없는 과도한 포장 요구를 지양하고, 친환경 설계 대안을 적극 인정한다.

넷째, 잔디와 함께 계절별 꽃잔디·지피식물·저관리 초화류를 혼합하여 경관성과 친환경성을 높인다.

다섯째, 민간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환경성을 높이는 방안은 규제 대상이 아니라 권장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요약 하면, 법적으로 반드시 보도 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구간은 유지하되, 실제 보행량이 낮은 단지 내부 보행공간은 석재 포장 대신 잔디형 친환경 포장으로 전환하여 공사비를 절감하고, 자연친화적 단지 이미지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심의와 인허가 기준을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싼 땅, 싼 임대료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 부동산은 가격이 아니라 수익을 만드는 힘으로 봐야 한다

부동산을 볼 때 사람들은 먼저 가격을 본다.
“이 땅은 평당 100만 원이다.”
“저 땅은 평당 300만 원이다.”
그러면 대부분 100만 원짜리 땅이 싸고, 300만 원짜리 땅은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을 짓거나 상가를 지어 바로 수익을 내야 한다면, 단순한 땅값만 봐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땅이 앞으로 얼마의 임대료와 수익을 만들어내느냐이다.

예를 들어 A땅은 평당 100만 원이고, B땅은 평당 300만 원이라고 하자.
겉으로 보면 B땅이 평당 200만 원 비싸다.

그런데 B땅에 건물을 지으면 A땅보다 평당 월세를 5만 원 더 받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월 5만 원은 1년에 60만 원이다.
이를 연 6% 수익률로 계산하면 원금가치가 1,000만 원이다.

즉, 월세를 평당 5만 원 더 받을 수 있는 땅은 수익가치로 보면 평당 1,000만 원의 차이를 만든다.
그런데 실제 땅값 차이는 200만 원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땅이 더 싼가?

겉으로는 100만 원짜리 땅이 싸 보인다.
하지만 수익으로 보면 300만 원짜리 땅이 훨씬 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00만 원짜리 땅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월세를 못 받는 자리라면 좋은 투자가 아니다. 반대로 300만 원짜리 땅이라도 월세를 충분히 더 받을 수 있다면 그 땅은 비싼 땅이 아니라 싼 땅이다.

장사도 마찬가지다.

강남 대치동 같은 곳은 가게세가 비싸다.
그런데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도 매출을 올리고, 폐업도 상대적으로 적다.
반대로 지방의 한적한 곳은 임대료가 싸도 손님이 적고, 돈을 못 벌고, 폐업률이 높을 수 있다.

임대료만 보면 지방이 싸다.
하지만 장사는 임대료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기료, 관리비, 인건비, 자재비, 시설비는 어디를 가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교통이 좋고 생활 여건이 좋은 곳은 인력 구하기도 쉽고, 물류도 편하고, 손님 접근성도 좋다.

그러면 임대료를 3배, 4배 더 주더라도 좋은 자리에서 장사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비싼 임대료가 문제가 아니라, 그 임대료를 감당하고도 남는 매출을 만드는지가 문제다.

건축도 똑같다.

싼 땅에 집을 짓든, 비싼 땅에 집을 짓든 건축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철근값, 콘크리트값, 인건비, 설계비, 감리비, 금융비는 지역이 다르다고 절반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평당 건축비가 1,000만 원 들어간다면, 100만 원짜리 땅에도 1,000만 원이 들어가고, 300만 원짜리 땅에도 1,000만 원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같은 건축비를 들일 거라면 어느 땅이 그 건축비를 더 잘 살려주는가?

싼 땅에 비싼 건물을 올렸는데 임대료가 낮다면, 그 건물은 수익을 내기 어렵다.
반대로 조금 더 비싼 땅이라도 임대료를 더 받을 수 있다면, 그 땅은 건축비를 살려준다.

물론 당장 건축하지 않고 10년 뒤를 보고 사두는 땅이라면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농지, 원예용 토지, 장기 개발 가능성을 보는 땅은 지금의 임대수익보다 미래의 용도 변화와 입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집을 짓거나 상가를 지을 땅이라면 기준은 분명하다.

싼 땅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고, 비싼 땅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익에 비해 싸냐, 비싸냐이다.

땅값이 비싸다고 겁낼 일이 아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도 더 큰 임대수익을 만든다면 그 땅은 알짜 땅이다.
반대로 땅값이 아무리 싸도 건축비를 회수하지 못한다면 그 땅은 싼 것이 아니라 위험한 땅이다.

부동산 투자의 기준은 단순하다.

싸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익보다 싸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땅은 값이 낮은 땅이 아니다.
좋은 땅은 건축비를 회수하게 해주는 땅이고, 임대료를 더 만들어주는 땅이고, 장사가 살아나는 땅이다.






흔한 4층 건물을 피해야 하는 이유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몇 층을 지을 것인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에 없는 건물을 지을 것인가, 주변에 널린 건물을 지을 것인가이다.

도시계획지역 밖이나 일정한 용도지역에서는 건축물 높이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4층 규모의 건물이 많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지방이나 외곽 개발지에 가보면 비슷비슷한 4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4층 건물은 너무 흔하다.
희소성이 없다.
건물의 개성이 약하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특별한 매력이 없다.

더구나 4층 건물은 애매하다. 엘리베이터를 넣자니 비용 부담이 있고, 안 넣자니 이용자가 불편하다. 1층은 좋지만 3층, 4층으로 갈수록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고층 건물처럼 전망이나 상징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4층 건물은 비용은 들어가는데, 특별한 경쟁력은 약한 구조가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4층 건물을 피해야 한다고 본다.

지을 거라면 아예 낮게 가야 한다.
단층이나 2층처럼 낮고 넓게 가서 접근성과 편의성을 살려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아예 높게 가야 한다.
고층으로 가서 엘리베이터 효율, 상징성, 공간 활용성,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어중간한 3층, 4층, 5층은 주변에 흔한 4층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하다.
그런 건물은 시장에서 눈에 띄기 어렵다.

사업에서 무서운 것은 못 짓는 것이 아니다.
남들과 똑같이 짓는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지으면 임대료도 비슷하고, 가치도 비슷하고, 경쟁도 비슷해진다. 그러면 결국 가격 경쟁으로 간다. 건물을 지어놓고도 특별히 선택받을 이유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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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이 오히려 귀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건물을 높게 지어야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땅을 싸게 넓게 확보한 경우에는 오히려 단층 건물이 더 강할 수 있다.

단층은 접근성이 좋다.
주차장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물류 흐름이 편하다.
장비 이동이 쉽다.
사용자 동선이 단순하다.
엘리베이터가 필요 없다.
관리비도 줄어든다.

특히 창고, 공장, 전시장, 대형 판매시설, 데이터센터 일부 지원시설, 물류시설 같은 경우에는 층수가 높은 것보다 수평 동선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발자는 땅이 아깝다고 4층을 올리려고 한다. 그 결과 비슷비슷한 4층 건물이 많아진다. 반대로 넓은 부지에 잘 설계된 단층 건물은 오히려 귀해진다.

넓은 마당, 편한 주차, 좋은 조경, 쉬운 진입 동선을 가진 단층 건물은 사용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건물은 낮지만 품격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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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지을 거면 확실히 높게 지어야 한다

반대로 고층으로 갈 수 있다면 확실히 고층으로 가야 한다.

고층 건물은 엘리베이터의 효율이 살아난다.
층수가 충분해야 엘리베이터 설치비와 관리비가 의미를 가진다.
전망, 상징성, 집적도, 임대 구성에서도 장점이 생긴다.

하지만 고층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용도지역, 높이 제한, 기반시설, 도로, 주차, 소방, 교통, 경관, 환경 조건이 맞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구단위계획이 필요하고, 특별한 용도 변경이나 도시계획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시간도 걸리고, 허가도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성공하면 희소성이 생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4층 건물은 흔하다.
어렵게 풀어낸 고층 건물은 귀하다.

사업에서 귀한 것은 쉽게 허가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못 하는 것을 해냈을 때 가치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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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제곱미터 부지의 함정

부지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애매하면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3만 제곱미터 규모의 땅이 있다고 하자. 건폐율 40%를 적용하면 바닥면적은 약 1만2천 제곱미터다. 1만2천 제곱미터짜리 창고나 건물은 시장에 꽤 있다. 아주 작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크지도 않다.

이런 규모는 애매하다.
남들과 차별화되기 어렵다.
큰 기업이 찾는 대규모 부지로는 부족할 수 있고, 작은 업체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3만 제곱미터보다 더 큰 단위가 필요하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려면 부지가 충분히 커야 한다. 그래야 지구단위계획을 하든, 복합 개발을 하든, 대형 물류·산업·데이터센터·지원시설을 구성하든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온다.

큰 땅은 단순히 면적이 큰 것이 아니다.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다.
배치의 자유가 생기고, 도로를 넣을 수 있고, 조경을 넣을 수 있고, 주차와 동선을 분리할 수 있고, 여러 동의 건물을 단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

작은 땅은 건물을 땅에 맞춰야 한다.
큰 땅은 사업을 설계할 수 있다.

이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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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핵심은 ‘희소성’이다

나는 건물을 지을 때 항상 희소성을 본다.

주변에 4층 건물이 많으면 4층을 피한다.
다들 중간 높이로 갈 때 나는 단층이나 고층을 본다.
다들 비슷한 창고를 지을 때 나는 더 큰 단위, 더 넓은 부지, 더 편한 동선, 더 좋은 조경을 본다.

건물은 지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택받아야 한다.
사용자가 와서 “여기는 다르다”고 느껴야 한다.

그 차이는 겉모양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층수, 부지 규모, 진입 동선, 주차 방식, 조경, 엘리베이터 효율, 건축 기간, 유지관리비, 향후 확장성까지 모두 합쳐져서 나온다.

남들이 다 하는 4층 건물은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은 경쟁이 심한 길이다.
허가가 쉽고, 설계가 쉽고,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단층이나 고층은 더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
단층은 넓은 땅을 싸게 확보해야 가능하고, 고층은 도시계획과 용도지역을 풀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경쟁자가 적고, 경쟁자가 적기 때문에 가치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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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4층 건물을 피하는 이유

내가 4층 건물을 피하는 이유는 단순히 층수가 싫어서가 아니다.

4층은 흔하기 때문이다.
애매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효율이 약하기 때문이다.
주변 건물과 차별화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용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땅이 넓고 싸다면 단층이나 2층으로 가서 지상 공간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낫다.
반대로 용도와 허가를 풀 수 있다면 확실히 높게 지어 상징성과 효율을 만드는 것이 낫다.

중간은 편해 보이지만, 사업에서는 중간이 가장 위험할 때가 있다.
남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개발은 평균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차이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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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토지개발과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짓느냐”가 아니다.
어떤 조건의 땅에 어떤 건물을 지어야 가장 경쟁력이 생기느냐다.

비싼 땅, 좁은 땅에서는 지하를 파고 높이 올리는 방식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싸고 넓게 확보한 땅에서는 단층이나 저층으로 넓게 쓰는 것이 더 좋은 답일 수 있다.
또 특별한 용도와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높게 갈 수 있다면, 확실히 고층으로 가는 것이 희소성을 만든다.

결국 피해야 할 것은 4층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다.
남들이 다 하는 애매한 건물이다.

나는 건물을 지을 때 남들이 쉽게 짓는 건물을 피한다.
흔한 건물을 지으면 흔한 가치밖에 나오지 않는다.
희소한 건물을 지어야 희소한 가치가 생긴다.

그래서 내 개발 원칙은 분명하다.

넓은 땅이면 낮고 크게 간다.
풀 수 있는 땅이면 높고 특별하게 간다.
그러나 남들이 다 짓는 흔한 4층 건물은 피한다.

이것이 토지기획형 개발에서 건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연구한 사람의 세월을 가볍게 말하지 마라

공부를 할수록 말은 조심스러워진다.
연구를 오래 할수록 세상일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술 하나를 만들고, 기업 하나를 세우고, 산업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이 들어간다.

누군가는 50년 동안 연구하고, 밤잠을 줄이고, 주말을 반납하고, 실패를 견디며 기술을 개발한다. 그렇게 기업을 만들고, 사람을 고용하고, 산업을 키운다. 그 과정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는 난제와 고통과 책임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깊이 들여다보지도 않고 몇 마디 말로 그 세월을 평가한다.
다섯 번 생각한 사람이 50년 연구한 사람의 인생을 우습게 말한다.
현장을 모르는 사람이 기업의 흠만 찾고, 권력자의 시선에 맞춰 비판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인가.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연구하고 투자하고 위험을 감수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사회는 먼저 주의 깊게 보고, 공을 인정하고, 박수를 쳐줘야 한다. 비판이 필요하다면 하되, 그 비판은 공부한 뒤에 해야 한다. 한마디 말로 한 사람의 평생과 기업의 역사를 가볍게 흔들어서는 안 된다.

사회 발전은 권력자의 즉흥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밤새 연구한 사람, 현장을 지킨 사람, 실패를 감수한 사람, 주말을 반납한 사람들의 땀에서 나온다.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사회와 기업을 말할 때는 그 점을 알아야 한다.

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연구자의 사기를 꺾고, 기업가의 명예를 흔들고, 현장의 노력을 웃음거리로 만든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밤새워 연구한 사람의 공이, 편히 자고 일어난 사람의 몇 마디 말보다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업도 비판받을 수 있다.
연구자도, 경영자도, 산업도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비판에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
공부 없는 비판, 현장을 모르는 비판, 권력에 기대는 비판은 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다.

정치인은 말을 아껴야 한다.
기업을 말할 때는 그 기업이 걸어온 시간과 기술의 무게를 생각해야 한다.
연구자를 말할 때는 그 사람이 바친 세월을 생각해야 한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현장을 알고, 깊이 생각하고,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라를 움직이는 힘은 말 잘하는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진짜 힘은 연구실과 공장과 현장에서 나온다.
밤잠을 줄이고, 실패를 견디고, 기술을 쌓아온 사람들이 나라를 앞으로 밀고 간다.

그들의 세월을 가볍게 말하지 마라.
그들의 노력을 권력자의 한마디로 재단하지 마라.
비판하려면 먼저 공부하고, 평가하려면 먼저 존중하라.

사회가 진정 발전하려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권력이 아니라 연구와 현장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
그것이 기업을 살리고, 기술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후배와 후세에게 남기는 말

좋은 기업인은 자기만 잘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오랜 세월 기업을 해오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람은 능력만으로 큰사람이 되지 않는다.
돈만 많이 번다고 존경받는 것도 아니다.
진짜 큰사람은 자기가 가진 힘을 어디에 쓰는지 아는 사람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익만 좇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기업이 오래가려면 사람을 키우고, 사회를 살피고, 나라가 어려울 때 자기 몫을 해야 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성공하려고만 하지 말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
출세하려고만 하지 말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돈을 벌려고만 하지 말고, 돈을 어디에 쓸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라.

좋은 교육은 지식만 넣는 것이 아니다.
좋은 교육은 사람의 자세를 만드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약자를 배려하고, 공적인 일에 용기 있게 나서고,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그런 사람이 진짜 인재라고 생각한다.

기업인은 사회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도로가 있었기에 물건을 나를 수 있었고, 전기가 있었기에 공장을 돌릴 수 있었고, 직원들이 있었기에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
나라가 안정되어 있었기에 사업도 가능했다.
그러니 기업인이 번 돈은 온전히 자기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사회의 도움, 직원의 땀, 국가의 기반, 수많은 사람의 협력이 들어 있다.

그래서 기업인은 기부를 해야 한다.
기부는 남는 돈을 던지는 일이 아니다.
기부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일이다.
그리고 후세가 더 나은 길을 걷도록 길을 닦아주는 일이다.

나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마라.
약자를 깔보지 마라.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잘난 체하지 마라.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이 말들은 학교 교훈으로만 남을 말이 아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원칙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유혹이 많다.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고, 권력에 기대면 빠르게 갈 수 있을 것 같고, 약한 사람을 눌러야 이익이 남을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얻은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짜 기업인은 거래처를 속이지 않는다.
직원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지역사회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 비굴하지 않고, 약자 앞에서 거만하지 않다.

돈을 벌 때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돈을 쓸 때는 더 큰 품격이 있어야 한다.

후세에게 남겨야 할 것은 재산만이 아니다.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내가 가진 것을 누구를 위해 썼는가.”
“내가 떠난 뒤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후배 기업인들이 자기 회사만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지역의 아이들을 키우고, 어려운 학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기술을 배우는 청년을 도와주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히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건물 하나를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람 하나를 바르게 키우는 일은 더 크다.
사람이 자라면 가정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고, 나라가 바뀐다.

기부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다.
기부는 미래에 대한 투자다.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는 일이고, 후세에게 희망을 남기는 일이다.

나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공부만 잘하려고 하지 마라.
남을 이기려고만 하지 마라.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능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그때 비로소 그 지식은 가치가 있다.

강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나 약자를 괴롭히는 강함이 아니라, 약자를 지켜주는 강함이어야 한다.
성공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나 자기만 빛나는 성공이 아니라, 주변을 함께 밝히는 성공이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뒤로 숨지 말고 앞으로 나서라.
공동체가 힘들 때 계산만 하지 말고 손을 내밀어라.
그것이 진짜 지도자의 모습이고, 진짜 기업인의 모습이다.

기업인은 단순히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다.
기업인은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을 남기고, 지역을 살리고, 다음 세대가 딛고 올라설 발판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업인은 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번 돈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고 있는가.
내가 만든 회사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내 이름이 후세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후배들이여, 크게 벌어라.
그러나 더 크게 베풀어라.
높이 올라가라.
그러나 낮은 곳을 잊지 마라.
강한 사람이 되어라.
그러나 약한 사람 곁에 서라.

자신만을 위한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회를 위한 성공, 나라를 위한 성공, 후세를 위한 성공만이 오래 남는다.

나는 후세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

약자를 위해 살아라.
시민을 위해 일하라.
나라가 필요로 할 때 앞에 서라.

그리고 기업인이라면 한 가지를 더 기억하라.

돈은 벌 때보다 쓸 때 그 사람의 크기를 드러낸다.


진짜 일꾼은 겸손하다

집 한 채를 짓는 데도 수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먼저 땅을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땅을 잘못 사면 사업은 시작부터 막힌다.
그다음에는 측량하고, 설계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가 나면 시공할 사람이 필요하고, 자재를 살 사람이 필요하고,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건물이 다 지어지면 준공검사를 받아야 하고, 마지막에는 팔아야 한다.
팔지 못하면 아무리 잘 지은 집도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집 하나가 완성되는 과정에는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땅을 산 사람도 중요하고, 설계한 사람도 중요하고, 허가를 받은 사람도 중요하고, 시공한 사람도 중요하고, 자재를 댄 사람도 중요하고, 파는 사람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역할 하나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없었으면 이 집은 못 지었다.”
“내가 제일 중요한 일을 했다.”
“이 사업은 내가 다 한 것이다.”

이런 말이 많아지면 건물 하나에도 주인이 열 명, 공신이 스무 명이 된다.
모두가 자기 공만 내세우면 협업은 깨지고, 공은 다툼이 된다.

반대로 진짜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다르게 말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해서 된 일입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맡은 몫을 했을 뿐입니다.”
“대가를 받고 일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런 사람이 덜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결과를 보면 대개는 반대다.
자기 공을 크게 떠드는 사람보다, 조용히 맡은 일을 해낸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한 경우가 많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중요성을 크게 말한다.
자기 자리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일의 전체를 안다.
하나의 결과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과 시간과 책임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을 안다.

그래서 진짜 일꾼은 겸손하다.
겸손해서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전체를 알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다.

세상일도 그렇다.
회사도, 건설도, 정치도,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자신이 일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내가 했다.”
“내가 만들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말 일을 많이 한 사람은 굳이 크게 떠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안다.
현장이 알고, 함께 일한 사람들이 알고, 결과가 안다.
말이 아니라 남겨진 일이 증명한다.

진짜 일꾼은 자기가 앞에 서려고만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앞에 서고, 물러날 때 물러나고, 자기 몫을 책임진다.
자기 이름을 크게 새기는 것보다 일이 제대로 완성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살면서 가져야 할 태도도 이와 같다.

많이 했다고 자랑하지 말자.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 말자.
내 공을 남보다 크게 보이게 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맡은 바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함께 일한 사람을 인정하고, 결과 앞에서 겸손할 줄 아는 것이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성과는 혼자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공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여러 사람의 수고가 있다.

그러니 진짜 일꾼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고, 공은 함께 나누고, 말은 낮추고, 결과로 보여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짜 일꾼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오래 남는다.


기회인가, 함정인가 — 주식시장 과열을 국가가 부추겨서는 안 된다

주가가 오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기업이 돈을 벌고, 산업이 성장하고, 투자자가 그 성과를 나누는 것은 자본시장의 본래 기능이다. 그동안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배당 확대, 주주환원 강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의 분위기는 정상적인 자본시장 활성화를 넘어선다. 국가가 앞장서서 주가지수 목표를 말하고, 주가 상승을 정치적 성과처럼 포장하고, 국민의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는 것을 마치 애국적 흐름처럼 만드는 것은 위험하다.

최근 한국 증시는 AI와 반도체 랠리 속에서 급등했다. 외신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 수요를 타고 한국 증시 상승을 주도하고 있으며, 두 회사가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고 평가한다. 특히 로이터 Breakingviews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 집중도가 높아졌고, 개인 투자자와 레버리지 상품 자금까지 몰리면서 변동성 위험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산업이 잘되는 것은 좋다. 반도체가 잘되고, 배터리·전력·데이터센터·AI 산업이 따라붙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기회다. 그러나 산업이 잘되는 것과 주가를 계속 부추기는 것은 다르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고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고 수출을 늘리는 것이 본질이지, 주가 숫자만 올리는 것이 본질은 아니다.

주식시장이 너무 뜨거워지면 돈의 흐름이 왜곡된다. 은행 예금, 공장 투자, 설비 투자, 창업, 연구개발, 지역 개발로 가야 할 돈이 단기간 수익을 노리는 증시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국민이 주식판만 바라보게 되면 누가 현장에서 일하고, 누가 기술을 배우고, 누가 공장을 돌리고,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말 그대로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문제가 생긴다.

특히 청년층에게 더 위험하다. 청년들이 공부와 기술 축적, 직업 훈련, 창업 준비보다 주식 호가창에 매달리게 되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흔들린다. 자산형성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노동과 실력보다 단기 매매를 우선하게 만들면 안 된다. 주식으로 돈 번 사람이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는 것도 문제다. 고금리는 원래 자금 비용을 높이고, 무리한 투자와 부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정책과 분위기가 주식시장 상승만 강조하면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주식에 들어가려 한다. 로이터는 한국 증시 랠리 속에서 신용거래 잔고와 레버리지 ETF 자금 유입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 단순한 투자 열기가 아니라 위험의 축적이다.

더 큰 문제는 시장 집중이다. 지금의 상승은 전 산업이 골고루 좋아져서 생긴 상승이라기보다 AI 반도체 중심의 초집중 랠리 성격이 강하다. 골드만삭스도 한국 증시의 강한 실적 전망 배경으로 AI 컴퓨팅 수요와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지목했다. 반도체가 잘되는 것은 축복이지만, 국가 경제 전체가 몇 개 종목의 주가에 심리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위험하다.

정치는 여기서 한발 물러서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은 주가지수 목표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투자하고 고용하고 기술을 쌓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자본시장을 정상화하되, 주가 상승을 국정 성과의 간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코스피 5,000을 목표로 했다면 그 정도에서 “시장의 정상화”를 말하면 된다. 그 이후까지 더 오르라고 분위기를 띄우고, 그것을 정치 잘한 증거처럼 포장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을 벗어난다.

국가는 돈이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게 해야 한다. 반도체도 중요하고, 배터리도 중요하고, 전력망도 중요하고, 데이터센터도 중요하다. 동시에 농업, 제조업, 중소기업, 지방 산업, 청년 일자리, 교육, 주거도 중요하다. 주식시장만 뜨겁고 현장은 차갑다면 그것은 건강한 성장이라고 할 수 없다.

주가는 기업의 결과이지, 국가의 목적이 아니다.
기업이 잘되면 주가는 따라오면 된다.
그러나 주가를 먼저 띄우고 그 뒤에 실물경제가 따라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지금의 AI 산업은 분명 기회다. 하지만 모든 기회는 과열되면 함정이 된다. 반도체와 AI가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인 것은 맞지만, 그 미래를 주식시장 흥분으로 소비해버리면 안 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을 주식판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돈과 사람이 산업 현장으로, 기술로, 생산으로, 지역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다.

주식시장이 오르는 나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나라다.
주가지수가 높은 나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의 뿌리가 튼튼한 나라다.
국가는 주가를 올리는 데 안달할 것이 아니라, 주식 열풍 뒤에 가려진 사회 균형을 먼저 봐야 한다.

주식은 필요하다. 그러나 주식이 나라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잘되면 주가는 오르면 된다.
하지만 국가가 주가를 정치의 성적표로 삼는 순간, 기회는 함정이 된다.


악수하고, 사과하고, 사랑하며 살겠다

정치를 가까이에서 보면서 사람의 그릇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선거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상대 후보와 악수조차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 상대와 손을 잡는 것조차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묻게 된다.
정치가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인가.

정치는 적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정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일이다.
내가 이겼다고 해서 상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당선됐다고 해서 반대편 시민의 목소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 생각이 70% 옳다고 해도 상대의 30%가 맞을 수 있다.
내가 선거에서 60%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나를 지지하지 않은 40%의 시민이 있다. 그렇다면 당선된 사람은 60%만의 대표가 아니라 100% 시민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은 이기면 모든 권한을 독점하려 한다. 상대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고, 반대편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상대와 악수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상대의 실수만 기다리며 정치한다.

그것은 큰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화합의 정치가 아니라 분열의 정치다.

민주주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악수하는 제도가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나를 비판한 사람, 선거에서 나와 경쟁한 사람과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시도 살고, 시민도 편안해진다.

선거는 싸울 수 있다.
정책은 다를 수 있다.
비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함께 일해야 한다. 좋은 공약은 상대 후보의 것이어도 받아들여야 하고, 시민에게 필요한 정책이라면 누가 제안했는지를 따지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긴 사람이 더 넓게 품어야 한다.

요즘 정치를 보면 국민이 반드시 어느 한쪽을 완전히 믿어서 표를 주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더 실수하고, 더 불안해 보이니까 어쩔 수 없이 덜 나쁜 쪽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더 겸손해야 한다. “내가 옳아서 이겼다”고 착각하지 말고, “국민이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상대와 악수하지 못하는 정치인을 믿기 어렵다.
악수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화도 못 한다.
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과도 못 한다.
사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민을 사랑할 수도 없다.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했을 때 사과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생각을 들을 줄 아는 사람, 경쟁자와도 악수할 줄 아는 사람, 시민 전체를 품을 줄 아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긴 뒤에 더 많은 사람을 화합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악수하고,
사과하고,
사랑하며 살겠다.

그리고 그런 정치를 보고 싶다.
상대를 적으로만 보는 정치가 아니라, 상대와도 손잡고 시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
자기편만 챙기는 정치가 아니라, 반대편의 좋은 말도 받아들이는 정치.
이긴 사람이 더 겸손하고, 힘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정치.

악수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큰일을 맡기 어렵다.
악수할 줄 아는 사람이 시민도 품을 수 있다.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행정도 바로잡을 수 있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도시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용인 반도체, “I can”이 아니라
“We can”이어야 한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I can”이 아니라 **“Yes, We Can”**이었다. 지도자는 혼자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실제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이다.

용인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용인 반도체는 시장 한 사람이 “내가 했다”,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 중앙정부의 국가전략, 경기도의 협력, 국회의 지원, 한전과 에너지 관계기관의 역할, 주민 협의와 기반시설 구축이 함께 맞물려야 가능한 국가 프로젝트다.

특히 삼성전자 국가산단은 이름 그대로 국가산업단지다. 수도권에서 대규모 국가산단이 추진되는 것은 반도체가 단순한 지역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이기 때문이다. 도로, 전력, 용수, 인허가, 환경 협의, 토지 보상, 교통망 어느 하나도 용인시 혼자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용인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독주가 아니라 협력이다. 중앙정부와 손잡고, 경기도와 협의하고, 국회와 소통하고, 한전과 전력 문제를 풀고, 기업과 주민을 연결해야 한다. 시장의 역할은 모든 공을 혼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힘을 용인으로 모아내는 것이다.

현근택 후보가 중앙정부, 경기도, 국회, 관계 부처와 함께 가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도체 국가산단의 성격상 협력형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큰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힘을 모아야 한다.

반대로 누가 되었든 “내가 다 했다”, “나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위험하다. 시장 개인의 이름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용인의 미래를 키우는 것이 먼저다. 선거에서는 경쟁하더라도, 용인을 위해서는 적과도 악수하고 다른 정당과도 협력해야 한다.

용인시민이 선택해야 할 기준도 여기에 있다.

I can이라고 말하는 지도자인가.
We can이라고 말하는 지도자인가.

용인 반도체의 성공은 한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모두의 협력 위에서 가능하다. 이제 용인에는 혼자 앞서는 시장보다, 정부·경기도·국회·기업·시민을 하나로 묶는 시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We can”의 리더십을 선택하고 싶다.


44번 버스와 침묵하는 용인.


25년 전쯤 상영된 단편영화 **〈버스 44〉**가 있다. 2001년 데이얀 엉 감독이 만든 11분짜리 단편영화로, 산길을 달리던 버스가 강도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 등에서도 주목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충격적이다.

44번 버스가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강도 두 명이 버스에 올라탄다. 그들은 승객들의 금품을 빼앗고, 버스 안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그때 한 젊은 승객이 나서서 그들을 말리려 한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결국 그 젊은이는 강도들에게 얻어맞고 칼에 찔린다.

강도들은 여성 버스기사를 끌고 나가 폭행한다. 그 순간에도 버스 안의 승객들은 침묵한다. 창밖을 바라보며 방관할 뿐이다. 누구도 함께 나서지 않는다. 누구도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잠시 뒤 버스기사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을 도우려 했던 젊은이만 버스에서 내리게 한다. 젊은이는 억울해한다. “나는 당신을 도우려 한 유일한 사람인데 왜 나를 내리게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버스기사는 끝내 그를 태우지 않는다. 다른 승객들은 오히려 그 젊은이를 억지로 끌어내린다.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얼마 뒤 젊은이는 길을 따라가다가 사고 현장을 보게 된다. 자신이 타고 있던 44번 버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해 있었고, 운전기사와 승객 전원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강도 때문이 아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승객들의 침묵이다.

강도는 둘뿐이었다. 버스 안에는 여러 명의 승객이 있었다. 모두가 함께 나섰다면 막을 수도 있었다.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더 용기를 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했다. 나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불의를 보고도 몸을 숨겼다.

결국 그 침묵은 모두를 절벽으로 데려갔다.

오늘의 사회와 정치도 이 장면에서 자유롭지 않다. 권력이 부당하게 작동하거나, 누군가 억울한 처지에 놓였다고 느껴질 때,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눈치를 본다. 기업이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압박을 받거나, 특정 인물이 여론의 공격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기보다 “괜히 나섰다가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과 관련된 논란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정치권이나 정부 분위기 속에서 과도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 판단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한 가지다.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사회가 너무 쉽게 침묵한다면, 그 침묵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기업인은 마음에 들 때만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기업은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를 하고, 지역경제를 움직인다. 그런데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기업인을 적으로 만들고, 여론이 불리하다고 해서 아무도 변론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좋은 기업과 좋은 인재는 그런 도시와 나라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용인시의 현실도 이와 닮은 부분이 있다.

선거 때가 되면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누가 마치 자신이 반도체 도시를 만든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기업이 투자했고, 어떤 정책이 작동했고, 어떤 행정이 기여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도 현직 시장의 말이라고 해서, 권력이 있다고 해서, 다음 선거가 두렵다고 해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44번 버스 안의 승객들과 다를 바 없다.

도시 발전은 한 사람의 공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투자, 중앙정부 정책, 민간의 기술력, 토지와 인프라, 지역사회의 협력,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노력이 함께 모여 만들어진 결과다. 그런데 그것을 특정 정치인이 자기 업적으로만 포장하고, 주변 사람들은 알면서도 침묵한다면 그 도시는 진실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침묵이 반복되면 도시의 방향이 틀어진다는 것이다.

시장이 잘못된 말을 해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기업을 밀어내는 행정을 해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좋은 투자 기회가 사라져도 모두가 눈치를 본다. 지역의 미래보다 권력자의 심기를 먼저 살핀다. 그러면 도시는 발전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개발이 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병든다.

44번 버스의 승객들은 강도보다 먼저 자기 양심을 버렸다. 그리고 결국 그 버스는 절벽으로 떨어졌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시민과 리더들이 잘못된 방향을 보고도 침묵하면, 그 도시는 어느 순간 절벽을 향해 달리게 된다.

용인이 진정한 반도체 도시, 품격 있는 도시가 되려면 침묵하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기업을 받아들이고, 좋은 인재를 존중하고, 행정은 열려 있어야 한다. 시장 혼자 도시를 이끌 수 없다. 권력자 한 사람의 말이 진실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누군가 틀린 말을 하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공을 가로채면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업이 부당하게 밀려나면 그것은 도시의 손해라고 말해야 한다.
행정이 편협해지면 더 넓게 보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이미 44번 버스 안에 올라탄 것이다.

버스 44가 남긴 교훈은 간단하다.
불의는 몇 사람이 저지르지만, 파국은 침묵하는 다수가 완성한다.

용인이 절벽으로 가는 버스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다. 용기 있는 말, 열린 행정, 기업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진실을 바로 세우는 시민의식이다. 좋은 도시란 도로와 건물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용인시장은 44번 버스를 멈춰야한다.

도시의 품격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
(용인이 화성에서 배워야할)


남부컨트리클럽의 회원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남부CC는 18홀 골프장이고,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것도 아니며, 시설이 유별나게 화려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회원권 가치가 높은 이유는 단순히 골프장을 이용하는 권리 때문만은 아니다.

핵심은 회원의 품격과 희소성에 있다.

남부CC는 돈만 있다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기존 회원들이 “함께 어울리고 싶은 사람”,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사람”,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때 입회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한 재력보다 인품, 평판, 사회적 기여, 교양,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결국 남부CC 회원권의 가치는 골프장 그 자체의 가격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가치다. 좋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서로 배우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망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 말하자면 남부CC는 골프 치는 공간이 아니라, 품격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된 것이다.

도시도 이와 같다.

좋은 도시는 단순히 도로가 넓고, 아파트가 많고, 건물이 높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통체계나 기반시설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도시의 품격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도시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사느냐이다.

시민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지도자들이 시민에게 신뢰를 받고, 행정이 공정하고 품격 있게 운영되는 도시에는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 교양 있는 중산층, 실력 있는 기업인,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 문화를 만들 줄 아는 시민들이 모인다.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학교가 생기고, 좋은 상권이 형성되고, 좋은 문화가 만들어지며, 결국 도시 전체의 가치가 올라간다.

특히 용인이 더 발전하려면 시장과 지역 리더들이 좋은 문화와 좋은 기업을 받아들이는 열린 행정을 해야 한다. 도시의 리더가 편협한 시각에 갇혀 있거나, 시장 혼자 모든 방향을 정하려 한다면 도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도시 발전은 한 사람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시민, 전문가와 행정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좋은 기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인재가 모이고, 교육과 상권과 문화가 함께 성장한다. 기업은 단순히 공장이나 사무실 하나를 짓는 존재가 아니다. 도시의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만들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주며, 도시 브랜드를 높이는 핵심 동력이다.

그런데 시가 기업을 유치하기보다 밀어내고, 좋은 투자와 산업을 계속 반대 방향으로 몰아간다면 도시는 발전할 수 없다. 기업을 적으로 보고 행정을 규제와 통제로만 운영하면, 결국 좋은 기업은 다른 도시로 떠난다. 좋은 기업이 떠난 도시에는 좋은 일자리도 줄고, 좋은 인재도 머물지 않으며, 도시의 성장 동력도 약해진다.

반대로 열린 행정을 하는 도시는 다르다. 좋은 기업을 존중하고,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행정을 하고, 시민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조정할 줄 아는 도시는 계속 성장한다.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조율하고 더 나은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이 리더십이고, 그것이 도시 경영이다.

반대로 도시가 아무리 개발되고 커져도, 갈등이 잦고 행정의 신뢰가 낮고 시민의 자부심이 약하면 좋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투자는 들어올 수 있어도 품격은 생기지 않는다. 건물은 세울 수 있어도 도시의 브랜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용인과 화성 같은 도시는 이제 규모 경쟁을 넘어 품격 경쟁으로 가야 한다. 단순히 인구를 늘리고 개발사업을 많이 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좋은 학교, 좋은 문화, 좋은 행정, 좋은 기업, 좋은 시민의식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들어오고, 중산층도 정착하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 도시가 된다.

남부CC가 비싼 이유는 잔디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진짜 가치는 건물과 도로가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과 관계의 품격에서 나온다.

좋은 사람이 모이고, 좋은 기업이 들어오고, 좋은 문화가 자라나는 도시. 그런 도시가 결국 가장 강한 도시가 된다. 용인이 가야 할 길도 바로 그 방향이어야 한다.


한국전력공사 정책 제안서
( 경기도, 특히 용인시장 후보는 참고하세요)

태양광 확대·전기난방 증가 시대에 맞춘 중기 전기요금 체계 개편 제안

수신: 한국전력공사
제안명: 계절별 전기요금제를 전력수급 위험등급제로 보완하는 방안
제안자: 지산그룹 회장 한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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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안 취지

현재 중기 전기요금은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차등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계절 구분은 과거 태양광 발전 비중이 낮고 전력수요 구조가 단순하던 시기의 기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전력수급 구조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봄과 초여름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많아 낮 시간 전력이 남는 경우가 발생하고, 여름 8월에는 고온뿐 아니라 고습으로 인한 냉방·제습 전력수요가 집중됩니다. 겨울철인 12월·1월·2월에는 해가 짧고 태양광 발전량이 줄어드는 반면, 전기난방 수요가 증가합니다.

따라서 전기요금은 단순히 여름·겨울·봄가을이라는 계절 구분만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 전력수급 위험이 높은 월과 시간대를 기준으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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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행 계절요금제의 한계

현행 방식은 같은 여름철 안에서도 7월과 8월을 비슷하게 보고, 겨울철도 12월·1월·2월을 하나로 묶어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력수요는 월별로 다릅니다.

특히 8월은 단순히 기온이 높은 달이 아니라 습도가 높아 제습 부하가 크게 발생하는 달입니다. 에어컨은 온도를 낮추는 기능뿐 아니라 습도를 제거하는 기능도 하기 때문에, 습도가 높은 8월에는 냉방 전력수요가 크게 늘어납니다.

겨울철의 경우 12월·1월·2월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 1월은 해가 짧고 태양광 발전량이 적으며 난방 수요가 큰 시기입니다. 최근에는 히트펌프, 전기온풍기, 전기보일러, 전기패널 등 전기난방 사용이 늘고 있어 겨울철 전력피크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력수급 위험은 계절 전체가 아니라 특정 월과 특정 시간대에 집중됩니다. 따라서 현행 계절요금제는 보다 세밀한 위험등급제로 보완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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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력수급 위험등급제 도입 제안

한국전력공사는 기존의 단순 계절 구분을 보완하여 월별 전력수급 위험등급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구분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1등급 최고위험 월: 8월, 1월
2등급 고위험 월: 7월, 12월, 2월
3등급 주의 월: 9월, 11월
4등급 보통 월: 3월, 6월, 10월
5등급 저위험 월: 4월, 5월

8월은 고온·고습으로 인한 냉방·제습 부하가 집중되는 시기입니다. 1월은 전기난방 수요가 크고 태양광 발전량이 줄어드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 두 달은 별도의 최고위험 월로 관리해야 합니다.

반대로 4월·5월·6월 낮 시간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많아 전력수급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 시간대에는 전기를 무조건 아끼게 할 것이 아니라, 산업체가 생산·충전·저장·냉열 확보 등 필요한 전력사용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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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간대별 요금도 함께 조정해야 함

태양광 보급이 늘어난 이후 전력수급의 핵심은 낮 시간이 아니라 저녁 시간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태양광 발전이 많아 전력이 남을 수 있지만, 해가 지는 저녁 시간에는 태양광 공급이 줄고 냉방·난방 수요는 남아 있어 계통 부담이 커집니다.

따라서 월별 위험등급과 시간대별 요금을 결합해야 합니다. 특히 8월과 겨울철 12월·1월·2월의 저녁 시간대는 전력수급상 가장 중요한 시간대입니다.

제안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8월과 1월의 저녁 피크 시간대 요금을 가장 높게 설정합니다.
둘째, 4월·5월·6월의 낮 시간 요금은 낮추어 태양광 전력을 적극 활용하도록 합니다.
셋째, 9월 늦더위와 겨울 한파처럼 기상 상황에 따라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경우에는 탄력요금을 적용합니다.
넷째, 피크 시간대 전력 절감에 참여하는 산업체에는 수요반응 보상을 확대합니다.

이렇게 해야 전기요금이 단순한 부과 기준이 아니라 실제 전력수급을 조정하는 정책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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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데이터센터 전력은 피크유발 전력과 구분 필요

최근 데이터센터는 전력 다소비 시설로 분류되어 규제 논의가 많습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는 일반 냉방·난방 전력과 성격이 다릅니다.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금융, 통신, 보안, 제조업 디지털화의 기반시설입니다. 또한 1년 내내 비교적 일정하게 전력을 사용하는 특성이 있어, 8월·1월에 갑자기 폭증하는 피크유발 전력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8월에는 데이터센터도 냉각 전력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무조건 규제하기보다, 6월·7월의 풍부한 태양광 전력을 ESS, 축냉, 재생에너지 전력계약, 전력 크레딧 등으로 확보하고 8월 피크 시간대 계통 전력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겨울철 12월·1월·2월에는 외기 온도가 낮아 데이터센터의 냉각부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전력수급 위험은 데이터센터보다 비효율 전기난방 부하에서 더 크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데이터센터는 일괄 규제 대상이 아니라, 계통친화 조건을 갖춘 경우 안정적으로 전력공급을 보장하는 별도 관리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6. 구체적 제안

한국전력공사에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첫째, 현행 계절별 중기 전기요금 체계를 월별 전력수급 위험등급제로 보완해 주십시오.

둘째, 8월과 1월을 최고위험 월로 지정하고, 7월·12월·2월은 고위험 월로 별도 관리해 주십시오.

셋째, 4월·5월·6월 낮 시간에는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점을 반영하여 전기 사용을 억제하기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요금체계를 검토해 주십시오.

넷째, 8월 고온·고습에 따른 냉방·제습 부하와 겨울철 12월·1월·2월 전기난방 부하를 핵심 관리 대상으로 삼아 주십시오.

다섯째, 데이터센터는 전력 다소비 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일괄 규제하지 말고, 피크 회피 능력, 재생에너지 활용, ESS·축냉 설비, 고효율 냉각, 비수도권 입지 등을 갖춘 경우 전략산업 전력으로 별도 관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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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결론

전기요금 체계는 과거의 계절 구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태양광 발전 확대, 전기난방 증가, 고습 여름, 겨울철 일조 부족, 저녁 피크라는 새로운 전력수급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이제 전기요금은 단순히 여름·겨울·봄가을로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전력이 부족한 월과 시간대에 절전을 유도하고, 전력이 남는 시간에는 효율적 사용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8월은 고온·고습에 따른 냉방·제습 부하가 크고, 1월은 전기난방 수요와 태양광 발전 감소가 겹치는 최고위험 시기입니다. 반면 4월·5월·6월 낮 시간에는 태양광 전력을 적극 활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전력공사는 중기 전기요금 체계를 계절요금제에서 전력수급 위험등급제로 보완하고, 8월과 1월을 최고위험 월로 별도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데이터센터는 국가 디지털경제의 기반시설이므로, 피크유발 전력과 구분하여 계통친화형 조건을 갖춘 경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약]

> 중기 전기요금은 달력상의 계절이 아니라 실제 전력수급 위험을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8월과 1월은 최고위험 월로, 7월·12월·2월은 고위험 월로 구분하고, 4월·5월·6월 낮 시간의 태양광 전력은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데이터센터는 피크유발 전력과 구분하여 계통친화형 전략산업 전력으로 별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불합리한 주차장.


공영주차장이나 회사 주차장을 이용하다 보면 한 가지 불편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일반 주차구역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워 차들이 줄을 서고, 이중주차나 대기 차량까지 생기는데,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은 여러 면이 비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장애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이동이 불편한 사람이 건물 출입구 가까운 곳에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회가 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그러나 배려도 현실과 균형을 잃으면 오히려 반감을 낳을 수 있다.

장애인 주차구역의 목적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전체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실제 이용률과 관계없이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확보해 두면 일반 이용자들은 큰 불편을 느끼게 된다. 이 불편이 쌓이면 장애인을 보호하자는 제도 자체에 대한 불만으로 번질 수 있다. 결국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약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지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비슷한 문제가 법정 주차대수에서도 나타난다. 데이터센터, 변전소, 물류 보조시설, 기숙사와 같은 건축물은 실제 이용 형태상 많은 주차장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상주 인원이 적거나 차량 이용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에서 정한 주차대수가 있다면 사업자는 당연히 이를 지켜야 한다. 문제는 법정 기준을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부 허가권자가 “혹시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법정 주차대수의 두 배, 세 배까지 확보하라고 사실상 요구하는 경우다. 법에 명확히 정해진 기준이 있는데도 허가권자의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상을 요구하면, 이는 누구를 위한 행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건축주나 사업자는 허가를 받아야 하니 쉽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건축사 역시 관청을 계속 상대해야 하므로 허가권자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법에는 없는 과도한 주차장을 마지못해 만들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주차장은 시간이 지나면 본래 목적대로 쓰이지 않는다. 빈 주차장은 야적장이 되거나 임시 창고가 되고, 관리되지 않는 공간으로 방치되기도 한다. 이는 토지 이용의 낭비이고, 건축비 상승이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비효율이다.

법은 필요한 범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더구나 법에 정해진 기준이 있다면 행정은 그 기준 안에서 책임 있게 판단해야 한다. 법에도 없는 것을 허가권자의 우월적 지위로 사실상 강제한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행정 편의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까 미리 더 확보하라”는 식의 행정은 책임 있는 행정이 아니다. 법의 칼자루를 쥐었다고 해서 법보다 앞서가서는 안 된다.

장애인 주차장 문제도, 법정 주차대수 문제도 핵심은 같다. 필요한 보호와 필요한 기준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실제 수요와 효용을 무시한 채 과도하게 확보하는 것은 배려도 아니고 행정도 아니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혹시 부족할 수 있다는 명분만으로 전체 이용자의 불편과 사회적 비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좋은 제도는 많이 확보하는 제도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작동하는 제도다. 법은 효용의 범위 안에서 지켜져야 하고, 행정은 법에 정한 기준을 넘어 임의로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약자 보호도 오래 지속될 수 있고, 행정에 대한 신뢰도 지켜질 수 있다

전기는 용이다

전기는 참 묘한 물건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데 세상을 계속 바꾼다.

옛날에는 그냥 전기과, 기계과, 화공과라고 불렀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전기에서 갈라져 나온 이름들이 세상을 덮었다.

반도체, IT, 디지털, AI, 데이터센터, 로봇, 배터리, 클라우드.

이름은 다 달라졌지만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전기다.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반도체도 없고, 서버도 없고, AI도 없고, 데이터센터도 없다.
전기는 산업의 피이고, 전력망은 산업의 혈관이다.

지금 한국 주식시장을 봐도 그렇다.
삼성전자, 삼성전자우, SK하이닉스만 합쳐도 시가총액이 약 2,900조 원에 이르고, 국내 전체 증시의 40%를 넘게 차지한다. 여기에 전자·전기·IT·배터리·디지털 관련 기업까지 합치면 한국 산업의 절반 가까이가 전기의 변형 위에 올라서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결국 시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전기가 계속 다른 얼굴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잘나가던 학과와 직업이 있었다.
요업과, 잠사과 같은 학과도 한때는 분명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그때는 그 학과가 사라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누가 잠사를 미래 산업이라고 말하겠는가.
누가 요업을 청년들이 몰려갈 첨단 먹거리라고 하겠는가.

산업은 그렇게 바뀐다.
한때 중심이던 것이 변방으로 밀리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이던 것이 어느 날 중심이 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름에 속는다는 것이다.

“전기과는 옛날 학문 아니냐.”
“데이터센터는 그냥 건물 아니냐.”
“AI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보면 큰 그림을 놓친다.

데이터센터는 건물이 아니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데이터로 바꾸는 공장이다.
AI 시대의 반도체가 들어가서 열심히 돌아가는 발전소 같은 공장이다.

반도체가 칼이라면 데이터센터는 그 칼을 실제로 쓰는 전쟁터다.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엔진을 만든다면, 데이터센터는 그 엔진을 꽂아 돌리는 장소다.
그래서 앞으로 데이터센터는 단순 부동산이 아니라 전기, 토지, 통신, 냉각, 보안이 합쳐진 거대한 인프라 산업이 된다.

어제 우리 회사 직원이 이런 말을 했다.

“저도 데이터센터 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마침 회사에서 데이터 관련 직원을 모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그 직원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한국 20대 기업으로 가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데이터센터 쪽으로 오는 게 나을까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20대 기업도 좋다. 이름도 있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회사에 들어가면 그 회사의 부속품이 되기 쉽다.
반대로 지금 막 커지는 데이터센터 사업에 들어오면, 사업과 함께 네 몸값도 커질 수 있다.”

큰 회사에 가면 안정은 있다.
하지만 성장의 중심에 서기는 어렵다.

새로 뜨는 산업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불안하다.
길도 덜 닦였고, 체계도 덜 잡혔다.
하지만 바로 그때 들어간 사람이 나중에 중심 인물이 된다.

지금 데이터센터가 그렇다.

이미 다 지어지고, 다 운영되고, 다 정리된 뒤에 들어가면 늦다.
처음 전기를 확보하고, 땅을 만들고, 토목을 하고, 인허가를 받고, 운영사를 붙이고, 임차인을 찾는 이 시기에 들어가야 배운다.

그때 배운 사람은 나중에 귀한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앞으로 10년은 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전기는 더 많이 필요해진다.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
반도체도 전기를 먹고 만들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전기를 먹고 돈을 번다.
전기차, 배터리, 로봇, 스마트팩토리, 클라우드, 보안, 통신, 모든 것이 전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전기는 아무 데나 마음대로 끌어올 수 없다.
변전소가 있어야 하고, 송전망이 있어야 하고, 땅이 있어야 하고, 허가가 있어야 한다.
결국 미래 산업의 병목은 기술만이 아니다.
전기와 땅이다.

그래서 나는 데이터센터를 좋게 본다.
데이터센터 중에서도 특히 전력 승인 받은 부지를 좋게 본다.

그건 그냥 땅이 아니다.
미래 산업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다.
전기가 들어오고, 서버가 들어오고, AI가 들어오고, 돈이 들어오는 자리다.

옛날에는 논밭에서 쌀이 나왔다.
공장에서 물건이 나왔다.
이제는 데이터센터에서 데이터와 AI가 나온다.

시대마다 먹거리는 바뀐다.
잠사에서 섬유로, 섬유에서 중화학으로, 중화학에서 반도체로, 반도체에서 AI와 데이터센터로 넘어간다.

그 흐름을 못 보면 과거 직업에 묶인다.
그 흐름을 보면 새 길이 보인다.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큰 회사 이름만 보고 가지 마라.
앞으로 커질 산업을 봐라.
데이터센터는 아직 시작이다.
여기서 몸값을 키워라.
산업이 커질 때 같이 커지는 사람이 진짜 기회를 잡는다.”

전기는 용이다.
용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전기과에서 반도체로 변했고,
반도체에서 AI로 변했고,
AI는 다시 데이터센터로 몸을 바꾸고 있다.

그 변신을 따라가는 사람이 다음 세대의 주인이 된다.

앞으로의 먹거리는 이름이 어려운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전기가 많이 들어가고, 세상이 반드시 필요로 하고, 공급이 부족한 곳에 있다.

그중 하나가 데이터센터다.

전기 있는 땅.
전력 승인 받은 부지.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수 있는 터.

이것은 앞으로의 산업에서 그냥 부동산이 아니라,
새 시대의 광산이다.

예전에는 금광을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됐다.
산업화 시대에는 공장터를 가진 사람이 부자가 됐다.
AI 시대에는 전기 들어오는 데이터센터 부지를 가진 사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 길을 본다.

전기에서 시작한 산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더 크다.

전기는 반도체가 되었고,
반도체는 AI가 되었고,
AI는 데이터센터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데이터센터는 다시 전기를 부른다.

이 순환을 잡는 사람이 앞으로 10년의 기회를 잡는다.


은행돈 공짜 쓰는 즐거움

사업을 하다 보면 내 돈만 가지고는 안 된다.
좋은 땅이 나오고, 좋은 공장이 나오고, 좋은 기회가 오면 돈이 먼저 필요하다. 그때 쓰는 돈이 은행돈이다.

사람들은 빚을 싫어한다.
“무차입 경영이 좋은 회사다.”
“빚 없는 회사가 건전하다.”
“남의 돈 쓰면 위험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빚에도 종류가 있다.
망해서 빌리는 돈이 있고, 커지려고 빌리는 돈이 있다.
월급 줄 돈이 없어서 빌리는 돈은 위험한 빚이고, 공장 짓고 땅 사고 수출 늘리려고 빌리는 돈은 성장의 빚이다.

나는 이 차이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행돈의 재미는 단순하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빌려 사업을 한다.
그런데 이자는 비용으로 처리된다.
즉, 이자를 내면 그만큼 세금 계산에서 빠진다.
내 돈으로만 사업하면 이런 효과가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
10년 전 회사 구내식당 밥값이 5,000원이었는데 지금 7,000원이라면 밥값이 40% 오른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돈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진 것이다.

10년 전에 7,000원 가치의 돈을 빌렸는데, 10년 뒤 갚을 때는 화폐가치가 떨어진 돈으로 갚는다. 숫자는 같은 원금이지만 실제 부담은 줄어든다. 물가가 오르고 자산값이 오르는 세상에서는 오래 빌린 돈의 무게가 시간이 갈수록 가벼워진다.

그러니 좋은 사업자가 좋은 조건으로 빌린 돈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고마운 것이다.

은행은 돈을 빌려준다.
나는 그 돈으로 땅을 사고, 공장을 짓고, 물류창고를 만들고, 사업을 키운다.
이자는 비용으로 빠지고, 원금은 시간이 지나며 실질 부담이 줄어든다.
그 사이 자산은 오르고, 회사는 커지고, 매출은 늘어난다.

이 구조를 알면 무조건 빚 없는 회사가 좋은 회사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수익이 좋은 회사는 돈을 더 빌리려고 한다.
왜냐하면 벌 수 있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돈만 가지고 천천히 가는 것보다, 은행돈을 붙여 빨리 가는 것이 더 큰 수익을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수익이 없는 회사는 겁이 난다.
빌려도 벌 자신이 없으니 내 돈만 가지고 버티려고 한다.
겉으로 보면 빚이 없어 건전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성장할 힘이 없는 회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채무를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채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왜 빌렸느냐다.

월급 주려고 빌렸는가.
적자를 메우려고 빌렸는가.
기존 빚을 막으려고 또 빌렸는가.
이런 빚은 위험하다.

하지만 공장을 짓기 위해 빌렸는가.
수출 물량을 늘리기 위해 빌렸는가.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빌렸는가.
전력, 물류, 생산설비 같은 미래 수익 자산에 넣기 위해 빌렸는가.
이런 빚은 회사의 무기가 된다.

주식 투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빚 없는 회사를 좋아한다.
“부채비율 낮다.”
“현금 많다.”
“안전하다.”

맞다. 안전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안전하기만 한 회사는 성장도 느릴 수 있다.
현금을 쌓아두고도 투자하지 않는 회사는 돈을 일하게 하지 않는 회사다.

나는 오히려 적당한 빚이 있는 회사를 본다.
단, 그 빚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본다.

채무가 늘었는데 공장이 늘었다면 다르다.
채무가 늘었는데 매출이 늘고 있다면 다르다.
채무가 늘었는데 수출 계약이 붙고 있다면 다르다.
채무가 늘었는데 좋은 자산이 회사 안에 들어왔다면 다르다.

이건 망하는 빚이 아니라 커지는 빚이다.

사업은 자기 돈만으로 하는 사람이 있고, 남의 돈을 끌어와 크게 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돈만으로 하면 안전하지만 속도가 느리다.
은행돈을 잘 쓰면 위험도 있지만 속도가 붙는다.

진짜 사업가는 빚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만 나쁜 빚을 싫어할 뿐이다.

은행돈은 독이다.
잘못 쓰면 회사를 죽인다.
하지만 잘 쓰면 약이다.
좋은 자산에 넣고, 수익이 이자보다 높고, 시간이 내 편이면 은행돈은 공짜에 가까운 힘이 된다.

결국 답은 하나다.

빚 없는 회사가 무조건 좋은 회사가 아니다.
빚 있는 회사가 무조건 나쁜 회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빚이 죽는 돈인지, 사는 돈인지다.

월급 주려고 빌린 돈은 위험하다.
적자 막으려고 빌린 돈은 위험하다.
하지만 미래를 사려고 빌린 돈, 생산을 늘리려고 빌린 돈, 좋은 자산을 잡으려고 빌린 돈은 회사의 성장 엔진이다.

나는 은행돈을 이렇게 본다.

은행돈은 남의 돈이지만,
잘 쓰는 사람에게는 내 회사가 커지는 지렛대다.

이자는 비용으로 빠지고,
원금은 시간이 지나며 가벼워지고,
그 돈으로 산 자산은 커진다.

이 맛을 아는 사람은 무조건 무차입만 외치지 않는다.
빚을 두려워하기보다 빚의 성격을 본다.
그리고 좋은 빚이라면 과감하게 쓴다.

사업은 돈을 쌓아두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돈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내 돈만 가지고 천천히 가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은행돈을 잘 써서 더 큰 판을 여는 것도 사업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빚은 죄가 아니다.
나쁜 빚이 죄다.
좋은 빚은 성장의 연료다.

은행돈을 겁내는 사람은 기회를 작게 본다.
은행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은 망한다.
하지만 은행돈을 알고 쓰는 사람은 남보다 빨리 큰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은행돈 공짜 쓰는 즐거움이다.


지산그룹의 원칙:
주주 몫은 전액 재투자한다

회사는 혼자 굴러가지 않는다.
은행의 돈, 직원의 노동, 협력업체의 공급, 국가의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주주의 위험 부담이 함께 모여 회사를 움직인다.

그래서 회사가 이익을 내면 먼저 지켜야 할 순서가 있다.

돈을 빌렸으면 이자를 내야 한다.
사람을 썼으면 급여를 줘야 한다.
사회와 국가의 기반 위에서 사업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협력업체가 함께했다면 대금을 정확히 치러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다.
신용을 지키고, 사람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이 회사의 첫 번째 의무다.

그 모든 것을 다하고 마지막에 남는 돈이 있다.
그것이 주주의 몫이다.

그러나 지산그룹은 이 주주의 몫을 단순히 나눠 갖는 돈으로 보지 않는다.
지산그룹에게 주주의 몫은 소비할 돈이 아니라 다음 사업을 여는 씨앗이다.

그래서 지산그룹의 원칙은 분명하다.

이자 내고, 급여 주고, 세금 내고, 남은 주주 몫은 전액 재투자한다.

주주는 마지막에 남는 것을 가져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업이 잘못되면 가장 먼저 손실을 떠안는 사람도 주주다.
채권자는 약정 이자를 받고, 직원은 임금을 받고, 국가는 세금을 받지만, 주주는 남으면 가져가고 없으면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주의 몫은 가볍게 써서는 안 된다.
그 돈은 회장 개인의 편안함을 위한 돈이 아니라, 회사의 다음 10년을 만드는 돈이어야 한다.

지산그룹은 남들이 보지 않는 땅을 본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땅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오늘의 용도보다 내일의 쓰임을 보고, 현재의 가격보다 미래의 가치를 본다.

그런 기회를 잡으려면 자기자본이 있어야 한다.
좋은 땅이 나왔을 때 바로 계약할 수 있는 힘, 남들이 망설일 때 먼저 움직일 수 있는 힘, 그 힘은 결국 회사 안에 쌓인 재투자 자금에서 나온다.

이익을 빼서 쓰면 그 돈은 거기서 끝난다.
하지만 이익을 다시 투자하면 그 돈은 땅이 되고, 자산이 되고, 담보가 되고, 다시 새로운 사업이 된다.
이 순환이 쌓이면 회사는 단단해지고 커진다.

배당은 열매를 따먹는 일이다.
재투자는 나무를 더 심는 일이다.
지산그룹은 아직 더 심어야 할 나무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만족보다 내일의 확장을 택한다.
오늘 나눠 가질 돈보다 내일 더 큰 회사를 만드는 길을 택한다.
남들이 돈을 빼낼 때 우리는 다시 땅을 사고, 남들이 안전한 길만 볼 때 우리는 다음 판을 준비한다.

지산그룹의 주주 몫은 배당금이 아니라 씨앗이다.
그 씨앗을 먹어버리면 내년의 수확은 없다.
그 씨앗을 다시 심어야 더 큰 숲이 된다.

회사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어디에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산그룹은 번 돈을 미래에 쓴다.
다음 땅에 쓰고, 다음 사업에 쓰고, 다음 세대에 쓴다.

이것이 지산그룹의 자본관이다.

이자는 정확히 낸다.
급여는 제대로 준다.
세금은 당당히 낸다.
그리고 남은 주주 몫은 전액 재투자한다.

그것이 지산그룹이 커지는 방식이고,
지산그룹이 끝까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삼삼삼(3.3.3) 덮치기

나는 세상을 볼 때 가끔 숫자로 본다.
복잡한 이론보다 숫자 세 개가 더 빨리 이해될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만든 말이 있다.

삼삼삼 덮치기.

중국은 3개에 1천 원.
한국은 3개에 3천 원.
일본은 1개에 3천 원.

옥수수 하나만 봐도 나라의 성격이 보인다.

중국에 가서 옥수수를 사려고 하면 싸다.
싸긴 싼데, 파는 사람이 손님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사라, 사라, 싸다, 맛있다.”

따라다니면서 판다.
손님이 살 마음이 없어도 살 때까지 밀어붙인다.
값은 싸고, 속도는 빠르고, 기세는 세다.

한국은 조금 다르다.

옥수수 세 개에 삼천 원.
중국보다 비싸지만 그래도 살 만하다.
파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 눈을 본다.

“저 사람이 살까?”
“한 번 말 걸어볼까?”
“안 사면 말고.”

눈치도 보고, 말도 걸고, 적당히 흥정도 한다.
밀어붙이긴 하지만 중국처럼 끝까지 쫓아오지는 않는다.
한국은 빠르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사람 눈치를 본다.

일본은 또 다르다.

옥수수 하나에 삼천 원.
비싸다.
그런데 파는 방식은 참 정중하다.

물건을 예쁘게 놓고,
손님이 다가오면 허리를 숙이고,
봉투에 담아주고,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다.

비싼데 품격은 있다.
느린데 질서는 있다.
손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게 옥수수 장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가 움직이는 방식도 비슷하다.

중국은 싸고 빠르다.
한국은 적당히 비싸고 적당히 빠르다.
일본은 비싸고 느리다.

그래서 나는 이걸 삼삼삼 덮치기라고 부른다.

숫자는 장난 같지만, 안에 들어 있는 뜻은 크다.

---

일본에 가서 강가를 걸어본 적이 있다.
길이 참 좋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정리도 잘 되어 있다.
걷다 보면 “역시 일본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참 걷다 보면 갑자기 길이 끊긴다.

멀쩡하게 잘 이어지던 길이 어느 지점에서 뚝 끊어진다.
처음에는 공사 중인가 싶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길이 20년, 30년째 그대로다.

왜 못 뚫느냐.
그 중간에 사유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함부로 못 한다.
지자체가 마음대로 못 한다.
사유재산권이 강하니 길 하나 내는 데도 세월이 간다.

공항도 그렇다.
철도도 그렇다.
전기도 그렇다.
버스도 그렇다.
지하철도 그렇다.

각자 자기 구역이 있고,
각자 자기 권리가 있고,
각자 자기 시스템이 있다.

그래서 정교하지만 느리다.
예의는 있지만 결단이 약하다.
품격은 있지만 추진력이 막힐 때가 있다.

일본은 30년이 걸린다.

---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일단 말이 많다.
민원도 많고, 반대도 많고, 시끄럽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밀고 간다.

도로를 낸다.
산업단지를 만든다.
택지를 개발한다.
수용도 한다.
보상도 한다.
욕도 먹고, 소송도 하고, 주민설명회도 하고, 밤새 싸우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한다.

한국은 시끄럽지만 움직인다.
반대가 있어도 멈추지는 않는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시작한다.
시작하고 고치고, 욕먹고 수정하고, 또 밀고 간다.

그래서 한국은 3년이 걸린다.

일본처럼 30년 동안 길이 끊긴 채 놔두지는 않는다.
중국처럼 한 달 만에 밀어버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결국 길을 낸다.

한국의 힘은 여기에 있다.

완벽해서 빠른 게 아니다.
싸우면서도 앞으로 가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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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또 완전히 다르다.

중국은 땅이 국가 소유라는 구조가 강하다.
필요하면 통보하고, 정리하고, 밀고 간다.

“여기 공장 지어야 한다.”
“여기 도로 내야 한다.”
“여기 신도시 해야 한다.”

결정되면 속도가 무섭다.

한 달이면 철거 준비가 끝나고,
석 달이면 공장 터가 잡히고,
반년이면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좋게 말하면 추진력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람 사정을 덜 본다.

개인에게는 억울한 일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속도가 난다.
공장도 빨리 짓고, 도로도 빨리 내고, 도시도 빨리 바뀐다.

중국은 3개월이 걸린다.

---

그러면 어느 나라 방식이 제일 좋은가.

일본처럼 너무 느리면 답답하다.
중국처럼 너무 빠르면 사람이 다칠 수 있다.
한국처럼 중간에 있으면 시끄럽고 피곤하다.

그런데 발전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과 결단의 싸움이다.

길 하나 내는 데 30년이 걸리면,
그 길을 통해 생길 공장도 30년 늦어진다.

공장 터 하나 만드는 데 30년이 걸리면,
그 공장에서 일할 사람의 일자리도 30년 늦어진다.

전력망 하나 까는 데 30년이 걸리면,
데이터센터도, 반도체도, 배터리도, AI 산업도 다 늦어진다.

나라가 너무 조심만 하면 기회가 지나간다.
권리만 있고 결단이 없으면 도시는 늙는다.
절차만 있고 속도가 없으면 산업은 다른 나라로 간다.

물론 사람의 재산권은 중요하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
국가가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언젠가는 부작용이 온다.

하지만 반대로,
몇 사람의 반대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국가 인프라가 멈추는 것도 문제다.

진짜 현대화된 국가는 둘 중 하나를 버리는 나라가 아니다.

권리는 보상하고, 결정은 빠르게 하는 나라.
민원은 듣되, 국가 전체의 길은 막히지 않게 하는 나라.
개인은 존중하되, 미래 산업은 제때 움직이게 하는 나라.

그게 필요하다.

---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일본은 너무 예의 바르게 멈춰 있고,
중국은 너무 거칠게 달려가고,
한국은 욕먹으면서 뛰어간다.

그런데 앞으로의 시대는 더 빠르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망, 공항, 항만, 철도, 산업단지.
이런 것들은 타이밍을 놓치면 끝이다.

땅은 있는데 전기가 없으면 못 한다.
전기는 있는데 도로가 없으면 못 한다.
도로는 있는데 인허가가 10년 걸리면 못 한다.
민원 하나에 20년 막히면 기업은 기다리지 않는다.

기업은 다른 나라로 간다.
투자는 다른 지역으로 간다.
일자리는 다른 도시로 간다.

그래서 정부도 이제는 삼삼삼 덮치기를 알아야 한다.

일본처럼 30년 걸리면 안 된다.
한국처럼 3년은 걸리더라도 더 줄여야 한다.
중국처럼 3개월의 속도를 배우되, 사람을 짓밟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답은 이것이다.

중국의 속도, 한국의 유연함, 일본의 질서.

이 세 가지를 합쳐야 한다.

중국처럼 결정은 빠르게.
한국처럼 현장에서 조정하며.
일본처럼 품질과 질서는 지키면서.

그렇게 가야 나라가 산다.

---

삼삼삼 덮치기는 결국 옥수수 이야기가 아니다.

옥수수 세 개에 천 원,
옥수수 세 개에 삼천 원,
옥수수 한 개에 삼천 원.

이 차이는 물가 차이만이 아니다.
국가가 움직이는 방식의 차이다.

어떤 나라는 싸고 빠르지만 거칠다.
어떤 나라는 적당히 빠르지만 시끄럽다.
어떤 나라는 정중하지만 너무 느리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느림이 가장 큰 비용이 된다.

땅값보다 무서운 것이 시간값이다.
공사비보다 무서운 것이 지연비다.
보상비보다 무서운 것이 기회를 놓치는 비용이다.

길을 30년 동안 못 내면,
그 길은 길이 아니라 국가 발전을 막는 벽이 된다.

공장 터를 10년 동안 못 만들면,
그 땅은 땅이 아니라 미래 산업의 무덤이 된다.

전력망을 제때 못 깔면,
그 나라는 AI 시대에 전기를 들고도 어둠 속에 있는 나라가 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이제는 국가도 장사처럼 생각해야 한다.

살 사람 있을 때 팔아야 하고,
지을 사람 있을 때 터를 만들어야 하고,
투자할 사람 있을 때 인허가를 내줘야 한다.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삼삼삼 덮치기.

중국은 3개월.
한국은 3년.
일본은 30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일본처럼 멈춰서면 안 되고,
중국처럼 사람을 무시해도 안 된다.
한국은 이제 더 똑똑하게 빨라져야 한다.

보상은 공정하게.
절차는 투명하게.
결정은 과감하게.
집행은 빠르게.

그게 진짜 현대화다.

국가 발전은 책상 위 보고서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길이 뚫리고, 전기가 들어오고, 공장 터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일할 자리가 생길 때 나온다.

말만 많은 나라는 늙고,
결정만 센 나라는 거칠어지고,
결정도 못 하고 실행도 못 하는 나라는 뒤처진다.

이제는 실행하는 나라가 이긴다.

그리고 실행하는 나라가 되려면,
삼삼삼 덮치기의 교훈을 알아야 한다.

싸게 보는 눈, 빠르게 움직이는 손, 그리고 크게 밀고 가는 국가의 결단.

그 세 가지가 모이면
길이 생기고,
공장이 생기고,
도시가 생기고,
나라가 앞으로 간다.


멍청한 사람이 땅 사는 법

도시계획 하는 사람들, 건축 하는 사람들, 공무원들이 우리 회사를 처음 보면 대개 이런 표정을 짓는다.

“저 사람들… 땅을 좀 이상하게 사네?”

남들은 집을 지으려면 계획관리지역을 산다.
공장을 지으려면 공업지역을 찾고,
물류창고를 지으려면 도로 좋고 용도 맞는 땅을 찾는다.
주택을 지으려면 당연히 주거지역을 산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좀 달랐다.

우리는 값싸고, 크고, 남들이 안 사는 땅을 봤다.
농림지역, 보전관리지역, 자연녹지, 산지, 잡종지, 농지 섞인 땅.
도시계획 하는 사람들이 보면 고개를 갸웃하는 땅이었다.

“집 짓는다면서 왜 저런 땅을 사지?”
“공장 한다면서 왜 용도지역도 안 맞는 땅을 사지?”
“농사 지으려고 사는 건가?”
“아니면 땅을 잘 모르는 건가?”

그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조금 멍청해 보였을 것이다.

계획관리지역은 비싸다.
주거지역은 더 비싸다.
도로 붙고 용도 맞고 허가 쉬운 땅은 이미 가격에 모든 기대가 다 들어가 있다.

남들이 다 아는 땅은 싸게 살 수가 없다.
누가 봐도 집 지을 수 있는 땅은 이미 집값을 받고 판다.
누가 봐도 공장 지을 수 있는 땅은 이미 공장 땅 가격으로 판다.
누가 봐도 물류창고 할 수 있는 땅은 이미 물류창고 가격이다.

우리는 그게 싫었다.

비싼 땅 사서 남들처럼 4층짜리 건물 짓고, 계산기 두드려서 조금 남기는 장사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안 보는 땅을 봤다.

“저 땅은 안 돼.”
“저건 농림지역이야.”
“저건 집 못 지어.”
“저건 허가 안 나.”
“저건 누가 사겠어?”

바로 그런 땅.

남들이 안 된다고 해서 싸고,
남들이 못 본다고 해서 덩치가 크고,
남들이 겁내서 팔리지 않는 땅.

우리는 그런 땅을 보면 오히려 눈이 갔다.

물론 처음에는 욕도 많이 먹었다.

“저 회사는 땅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모르겠다.”
“집 짓는다면서 농림지역을 사고 있네.”
“공장 한다면서 보전관리지역을 잡네.”
“아마 나중에 크게 물릴 거야.”

그런데 우리는 속으로 웃었다.

우리가 몰라서 사는 게 아니었다.
남들이 보는 방식과 다르게 보는 것뿐이었다.

남들은 현재 용도만 봤다.
우리는 바뀔 가능성을 봤다.

남들은 오늘 허가 나는 땅만 봤다.
우리는 내일 허가 날 수 있는 땅을 봤다.

남들은 도시계획표를 보고 끝냈다.
우리는 도시가 어디로 뻗을지, 도로가 어디로 날지, 전기가 어디로 들어올지, 사람이 어디로 몰릴지를 봤다.

땅은 오늘의 지목보다 내일의 쓰임이 중요하다.

더 재미있는 건 이런 경우다.

계획관리지역에 집을 지으면 제한이 많다.
층수 제한, 건폐율, 용적률, 여러 가지 규제가 따라붙는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막상 지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작다.

그런데 남들이 “집 못 짓는다”고 버린 땅은 처음부터 규제의 기준이 다르다.
원래 집을 못 짓는다고 생각하니까, 막상 도시계획이 바뀌고 용도가 풀리는 순간 전혀 다른 가능성이 생긴다.

남들은 말한다.

“거기는 안 돼.”

나는 생각한다.

“그래, 지금은 안 되지. 그래서 싸지.”

남들은 말한다.

“집 못 지어.”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 사는 거지. 집 지을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비싸서 못 사.”

남들은 말한다.

“그 땅은 쓸모없어.”

나는 생각한다.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아직 쓸모를 못 찾은 땅이지.”

사업은 가끔 이렇게 엉터리처럼 보여야 돈이 된다.

너무 반듯한 사업은 남들도 다 한다.
너무 쉬운 땅은 남들도 다 산다.
너무 깨끗한 조건은 이미 가격이 비싸다.

진짜 기회는 대개 못생긴 얼굴로 온다.

진입로가 애매하고,
농지가 조금 섞여 있고,
용도지역이 안 맞고,
도시계획 하는 사람이 고개를 젓고,
공무원이 “왜 이런 땅을 사세요?” 하고 묻는 그런 땅.

그런 땅을 놓고 우리는 현장에서 본다.

도로는 뚫릴 수 있는가.
물은 잡을 수 있는가.
전기는 들어올 수 있는가.
민원은 피할 수 있는가.
덩치는 충분한가.
가격은 말이 되는가.
나중에 용도가 바뀔 명분은 있는가.

이게 보이면 산다.

남들이 보기에는 엉터리다.
그런데 사업은 원래 조금 엉터리 같은 데서 시작된다.

정답지만 들고 다니는 사람은 시험은 잘 본다.
하지만 땅 장사는 정답지에 없는 답을 찾아야 한다.

계획관리지역 300만 원짜리 땅을 사서 제한 안에서 조금 짓는 사람도 똑똑하다.
그런데 30만 원짜리 남들이 버린 땅을 사서, 시간이 지나고 판이 바뀌었을 때 열 배, 스무 배 가치를 만드는 사람은 다른 장사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멍청해 보인다.
나중에는 이상하게 운이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더 지나면 사람들이 묻는다.

“저 사람은 그때 어떻게 알고 샀을까?”

사실 특별한 비밀은 없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왜 안 되는지 끝까지 들여다봤을 뿐이다.
그리고 정말 안 되는 땅과, 지금만 안 되는 땅을 구분했을 뿐이다.

우리는 농사 지으려고 농지를 산 게 아니다.
그 땅의 내일을 산 것이다.

우리는 산만 보려고 산지를 산 게 아니다.
그 산 아래로 도로가 나고, 전기가 들어오고, 도시가 밀려오는 그림을 산 것이다.

우리는 집 못 짓는 땅을 산 게 아니다.
언젠가 집 지을 수밖에 없는 위치를 산 것이다.

그래서 누가 우리를 보고 멍청하다고 하면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남들이 똑똑하다고 칭찬하는 땅은 이미 비싸다.
남들이 멍청하다고 비웃는 땅에 가끔 진짜 돈이 숨어 있다.

사업은 남의 박수 속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사업은 남의 비웃음 속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저 사람 뭘 몰라서 저런 땅을 사나?”

그 말이 들리면 나는 한 번 더 땅을 본다.
정말 몰라서 사는 건지,
남들이 모르는 걸 내가 보고 있는 건지.

그리고 내 눈에 길이 보이고, 물이 보이고, 전기가 보이고, 사람이 모일 그림이 보이면 계약한다.

나중에 결과가 나오면 사람들은 말을 바꾼다.

“저 사람 멍청한 줄 알았더니 멀쩡한 사람이었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진짜 사업을 하네.”
“그때 그 땅을 왜 샀는지 이제 알겠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제 알았어? 나는 그때 이미 봤는데.”

땅은 현재를 사는 게 아니다.
땅은 미래를 사는 것이다.

현재만 보는 사람에게는 농림지역이고,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도시의 다음 자리다.

현재만 보는 사람에게는 보전관리지역이고,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개발의 씨앗이다.

현재만 보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땅이고,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금덩어리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조금 엉터리처럼 땅을 본다.
남들이 고개를 저으면 한 번 더 본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하면 왜 안 되는지 묻는다.
그리고 안 되는 이유보다 되는 이유가 더 크게 보이면 움직인다.

멍청해서가 아니다.

남들과 같은 눈으로 보면 남들과 같은 값에 사고,
남들과 같은 값에 사면 남들과 같은 이익밖에 못 남긴다.

크게 벌려면 가끔은 멍청해 보여야 한다.
남들이 못 보는 땅을 사고,
남들이 못 기다리는 시간을 기다리고,
남들이 못 만드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우리 식 땅 장사다.

조금 엉터리 같지만,
결국은 그 엉터리 속에서 길이 나고,
건물이 올라가고,
도시가 생기고,
돈이 된다.

그러니 누가 또 묻거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왜 집 지을 수 있는 땅을 안 사고, 집 못 짓는 땅을 사느냐고요?”

대답은 간단하다.

“집 지을 수 있는 땅은 이미 남의 돈이고,
집 못 짓는 땅을 집 지을 수 있게 만드는 게 내 돈입니다.”



AI도 사람도, 긍정적으로 물어야 길을 찾는다
( 되게하는 프레임)


직원과 내가 같은 문제를 AI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직원이 물으니 AI가 말했다.

“어렵습니다.”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내가 물으니 AI가 말했다.

“가능합니다.”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구조화하면 됩니다.”
“승산이 있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회장님, AI가 거짓말하는 것 아닙니까?
저한테는 안 된다고 했는데, 회장님께는 된다고 하잖습니까?”

나는 웃었다.

“AI가 거짓말한 게 아니다.
네가 AI에게 문을 잠가놓고 물었고,
나는 문을 열어놓고 물은 것이다.”

직원은 이렇게 물었다.

“이거 안 되는 거죠?”
“문제 생기겠죠?”
“상대가 반대하면 끝이죠?”
“법적으로 막히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AI도 예의상 답한다.

“예, 안 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리스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이 이미 반쯤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이렇게 물었다.

“이걸 되게 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
“가능한 논리는 무엇이지?”
“상대가 반대하면 우리는 어떤 근거로 돌파하지?”
“법적으로 가능한 구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면 AI는 길을 찾기 시작한다.

같은 산을 보고도
한 사람은 말한다.

“저 산은 너무 높아서 못 넘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묻는다.

“어디로 올라가면 넘을 수 있습니까?”

산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질문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이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려운 이유를 찾는다.

“이거 되게 하려면 뭐가 필요합니까?”라고 묻는 사람은
되는 길을 찾는다.

나는 직원들에게 가끔 말한다.

“안 되는 이유는 누구나 찾는다.
되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월급값을 한다.”

세상에 쉬운 일만 있으면
회사에 직원이 왜 필요하겠는가.

쉬운 일은 컴퓨터가 하고,
반복되는 일은 기계가 하고,
정해진 일은 매뉴얼이 한다.

사람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다.

막힌 길 앞에서
새 길을 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안 됩니다.”
“힘듭니다.”
“무리입니다.”
“위험합니다.”
“해본 적 없습니다.”

이 말들은 사실처럼 들리지만,
대부분은 생각하기 싫을 때 나오는 말이다.

진짜 일하는 사람은 다르게 묻는다.

“되게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합니까?”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그 장애물을 없애려면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법적으로 가능한 길은 몇 가지입니까?”
“비용을 낮추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상대가 거절하면 다음 카드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순간,
일은 문제에서 전략으로 바뀐다.

AI도 똑같다.

AI에게
“이거 안 되지?”
하고 물으면 AI는 안 되는 이유를 정리해준다.

AI에게
“이거 되게 하려면?”
하고 물으면 AI는 되는 길을 정리해준다.

AI는 마술사가 아니다.
질문을 넣으면 답을 꺼내는 도구다.

그러니 질문이 어두우면 답도 어두워진다.
질문이 좁으면 답도 좁아진다.
질문이 겁먹으면 답도 겁먹는다.

나는 회사에서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문제를 가져오되,
문제만 가져오지 않는 사람.

“회장님, 어렵습니다”가 아니라
“회장님, 어렵지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안 됩니다”가 아니라
“그냥 하면 안 되지만, 이렇게 바꾸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상대가 반대합니다”가 아니라
“상대가 반대할 경우,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조직을 움직인다.

긍정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조건 “됩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 아니다.

눈 감고 낙관하는 것도 아니다.
위험을 모른 척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긍정은 이거다.

위험을 보되,
위험 앞에서 멈추지 않는 것.

문제를 보되,
문제 뒤에 있는 길을 찾는 것.

반대를 듣되,
반대 속에서 협상 포인트를 찾는 것.

실패 가능성을 알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만드는 것.

그러니 직원들에게 말하고 싶다.

AI에게 묻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의 방향을 점검하라.

내가 지금 답을 찾고 있는가,
핑계를 찾고 있는가?

길을 묻고 있는가,
포기를 확인받고 있는가?

방법을 찾고 있는가,
불가능하다는 증명서를 받고 싶은가?

질문이 태도다.
태도가 결과를 만든다.

부정적인 사람은 AI에게도 부정적으로 묻고,
부정적인 답을 받고,
그 답을 들고 와서 말한다.

“거봐요,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건 AI의 결론이 아니라
본인이 처음부터 넣은 결론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사람은 다르게 묻는다.

“이걸 가능하게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합니까?”
“가장 현실적인 실행 순서는 무엇입니까?”
“리스크를 줄이면서 추진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상대가 반대할 때 설득 논리는 무엇입니까?”
“안 되는 부분을 되는 구조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은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한다.

회사는 불가능을 보고 멈추는 곳이 아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AI에게도 긍정적으로 물어라.
일에게도 긍정적으로 물어라.
사람에게도 긍정적으로 물어라.
그리고 자기 인생에게도 긍정적으로 물어라.”

“나는 왜 안 될까?”라고 묻지 말고,
“내가 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라고 물어라.

“우리 회사가 왜 어렵지?”라고 묻지 말고,
“우리 회사가 이 판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선점해야 할까?”라고 물어라.

“상대가 왜 안 해주지?”라고 묻지 말고,
“상대가 하게 만들려면 어떤 이익을 보여줘야 할까?”라고 물어라.

질문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행동이 바뀌면 결과가 바뀐다.

AI 시대에는 답을 잘 외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 이긴다.

그리고 좋은 질문은 대부분 긍정에서 출발한다.

“왜 안 되지?”보다
“어떻게 되게 하지?”

“누가 막지?”보다
“누구를 설득해야 하지?”

“끝난 것 아닌가?”보다
“다음 수는 무엇인가?”

이 차이가 회사를 살리고,
사람을 키우고,
사업을 만든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이렇게 하자.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되는 조건을 세 가지 찾아라.

어렵다고 말하기 전에
어려움을 줄이는 방법을 두 가지 찾아라.

문제라고 말하기 전에
해결 순서를 하나라도 써라.

그리고 AI에게도 이렇게 물어라.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그 질문 하나가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세상은 부정적인 사람에게 변명거리를 주고,
긍정적인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AI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으로 물으면
안 되는 이유를 준다.

긍정적으로 물으면
되는 길을 함께 찾는다.

결국 일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긍정적으로 물어라.
그러면 AI도 길을 찾고,
사람도 길을 찾고,
회사도 길을 찾는다.


 

  경제편 26 0402~
0517 까지 모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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