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쓰는 수험생활 총평
- 나는 왜 장수생이 되었을까?
이 질문 자체가 부끄러운 질문이다. 다른 합격수기는 6개월 1년만에 합격하는데 이런 질문을 대답해야 한다니. 그럼에도 스스로 생각해보면 수험기간을 줄일 수 있는 선택지는 있었다. 필자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장수생이 되었다. 글 전반에서 이미 언급했으나 다시 모아서 적어본다.
1) 서브노트 중심의 공부. 서브노트 중심인 것도 모자라 그 서브노트를 직접 만들었다. 이 짓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수험기간을 줄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남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서브노트를 전부 만들긴 했지만 남들에겐 이 방법을 추천하지 않는다. 우선 이 정도 퀄리티의 서브노트를 만드는게 보통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서브노트를 만들 수 있더라도 그를 위한 노력과 시간 투자가 상상 이상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서브노트를 만들면 매년 내용의 추가, 수정, 삭제도 본인이 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공부법은 스스로 선택한 방법이고 일단 서브노트를 완성한 이후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만약 2012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는 서브노트 위주의 공부법을 선택할 것이다. 이 방식은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공부법이었고 그 당시 알고 있는 공부방법은 필기와 노트정리뿐이었기 때문이다.
2) 사회에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 사회공부가 아니라 사회 강사 선택을 위해 너무 많은 강의를 들었고 그로 인한 손해가 막심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 때 어느정도 실망을 했더라도 아무 강사나 선택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3) 처음 1년을 너무 무의미하게 보냈다. 필자는 스스로 공무원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기보다는 아는 사람의 권유(특히 부모님)로 공시에 뛰어든 타입의 인간이다. 그래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고 어느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어느 수준까지 성적을 올려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엇다. 그래서 결국 학원이 시킨 대로 했다. 이 부분이 제일 후회된다. 학원과 강사, 강의는 조연 역할을 해야 했는데 필자의 공시 인생에서 주연 역할을 맡았었다. 그래서 1년을 날렸다.
4) 객관적으로 공부시간이 불규칙했다. 사실은 8시간이 목표라도 실제로는 8시간을 못 넘긴 적이 많았다. 공부시간이 매우 들쑥날쑥해서 어쩔 때는 11~12시간을 찍기도 했다. 아마 평균을 내면 8시간 이하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스스로 휴일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꾸준히 한 것이지, 만약 휴일까지 있었다면 수험기간이 더 길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수험기간은 길어지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글은 이러한 경험을 반성하며 쓴 나름의 해결책이다.
- 오랜 시간을 버티게 한 원동력
그런데도 5년을 꾸역꾸역 버텨서 결국 합격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5년을 버틸 수 있었나?’라는 질문은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글쎄다. 딱 이거라고 말하긴 힘들다. 필자라고 슬럼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때마다 ‘하던 대로 하라’는 플래너 앞의 한 마디를 보면서 “이러고 있어봤자 뭐하냐 공부나 하자”고 생각했고, 책상 옆에 창문에 붙은 성적표를 보면서 “이런 비극은 더 이상 일어나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말을 드리고 싶다. 합격수기에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라느니 합격을 하면 하고 싶은 것을 떠올렸다느니 하는 말이 적혀 있는데 필자는 그런 생각으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최종합격을 하고 임용원서까지 낸 지금도 공무원 임용 후의 자신이 지금보다 극적으로 행복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2003년 대학 입학 후 게임에 빠져 대학 생활을 완전히 날려먹고 게임 라이프 중간에 얻은 원고작성 아르바이트는 마감기간을 맞추기 위한 밤샘과의 사투였다. 군대 입대 3일 전까지 원고 마감을 뛰면서 밤을 샜다. 군대에 들어가서는 행정병이었는데 소규모 부대였기 때문에 인원은 적고 할 일은 많았다. 또 야근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지만 2년 중 절반 남짓은 야근을 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국회 아무개 의원 밑에서 인턴 업무를 했다. 정책 보좌도 아니고 IT 업무 보조였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이 (전임자가) 반쯤 만들어둔 홈페이지를 완성시키라는 거였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독학과 야근이 또다시 이어졌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엑셀 하나를 붙잡고 5일간 집에 가지 못한 적이 있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이제 야근을 하면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
긴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나를 위해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공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15년 서울시 9급 필기시험은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풀기는 쉽게 풀었는데 영어가 50점이 나와 어머니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동안은 술을 끊겠다 다짐하고 5년간 먹은 술이 7잔(7병이 아니다)인데 그 중의 한 잔이 이날 밤에 마신 맥주다. 그날 스스로 더 이상은 무슨 슬픈 일이 일어나도 합격하기 전까진 울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 이유도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남이 시켜서 시작했지만) 내가 좀 더 편한 직장을 얻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그 날 이후로는 ‘부모님을 위해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내가 듣는 강사의 강의를 이만큼이나 들었는데 이 사람에게 미안해서라도 빨리 붙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합격 소식을 올렸을 때 ‘감사하다’는 댓글을 많이 받았다. 저 사람도 붙었으니 나도 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 공시생활 막판엔 ‘내 인스타그램을 보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신을 위한 동기는 (지금 와서 생각하면) 2년 정도가 한계치였던 것 아니었을까? 인턴 기간 벌고 저축한 돈도 2년 정도를 지나면서 전부 써버린 것 같다(이후 돈은 부모님께서 지원해 주셨다). 그 이상의 수험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남을 위해서’ 공부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 배운 것은 언젠간 써먹게 된다
그래도 괴로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성인이 되고 배운 것들을 공무원시험을 하면서 많이 활용했다.
군대 때 배운 워드프로세서 실력은 수험생활 중 모든 자료를 전산화하며 서브노트를 직접 만들고 기타 다른 양식을 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트위터를 하면서 쌓아온 번개모임 경험은 면접에서 쫄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기반이 되었다. 출판사에서 원고작성을 했던 경험을 쌓으면서 책 자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이런 책 자체에 대한 안목은 교재 선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괴롭다고 느꼈던 국회 인턴기간도 지금은 호봉으로 인정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 짧지 않은 공시 기간동안 얻은 교훈은 ‘배운 건 언젠가 써먹는다’다. 만약 영어를 조금이라도 열심히 했다면 이 기간에 더 잘 써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부분은 좀 아쉽다.
- 마지막으로: 세 마디의 좌우명
공부방 벽에 붙여둔 것
최합 후 서울 원룸 비우기 하루 전 촬영
위 사진의 왼쪽 쪽지
이사를 2번 가는 동안 계속 붙여 두었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플래너 앞에 붙어 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컴퓨터 위에도 붙어 있는 세 마디를 적고 끝낼까 한다. 공무원시험 준비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모아 요약을 하면 마지막에는 이 세 문장만 남을 거라 생각한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현실을 직시하라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현재 위치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포함된다. 내가 현재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점수까지 올라야 합격할 수 있는지? 나는 공시판에서 탈출하기 위해 현재 어느 정도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이런 질문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한다.
하던 대로 하라
슬럼프라는 것이 찾아올 때, 막연한 불안감이 찾아올 때, 괜히 고민을 하게 될 때 가장 좋은 답은 ‘하던 대로 하라’는 것이다. 하던 대로 꾸준히 공부하고, 약간 성적이 떨어져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공부하고, 고민할 시간에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공부하고, 필기시험이 떨어져도 실망하지 않고 하던 대로 공부를 계속 했다. 이것이 모든 상황에서의 정답은 아니자만 대부분은 그랬다.
자만하지 말라
세상은 넓고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산더미처럼 많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노력에 대해, 자신이 거둔 성적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된다. 나는 그래도 베이스가 있는데 좀 더 빨리 붙지 않을까? 성적이 여기까지 올라가면 이제 좀 여유있게 공부해도 되지 않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자만은 안일함을 부르고 안일해지면 공부에 소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