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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좋은 생각

[스크랩] 오래 살아서 무엇하리

작성자대성-한석곤|작성시간13.12.27|조회수99 목록 댓글 0

 

 

 

오래 살아서 무엇하리
(김동길)

 

 

 


이런 시조 한 수가 떠오릅니다.


 

이보오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소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서럽거늘 짐을 조차 지실까


 

나는 눈에 총기가 다 사라진 어쩔 수 없는 노인은 아닙니다. 힘에 겨운 무거운 짐을 욕심 때문에 잔뜩 지고 가는 그런 노인도 아닙니다. 그래도 내 주제를 알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비교적 ‘현명’한 노인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뒤에 오는 후배들에게 90을 바라보는 노인의 삶이 어떻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습니다. 신장은 이미 3~4cm가 줄어서, 젊어서 입던 바지는 가랑이가 너무 길다고 느껴집니다.

 

눈도 귀도 옛날 같지 않습니다. 팔과 다리에는 힘이 많이 빠져서 이제는 등산도 못 가고 수영도 못합니다. 오래 서서 강연이나 강의나 설교를 할 수가 없어서 최근에는 앉아서 합니다.


 

아직도 기억력은 여전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이 ‘특기’가 언제까지 제구실을 할지 그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나를 향해 “백세는 사세요”라고 축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답답합니다. “앞으로 120세는 살 수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야속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영국 시인 테니슨(Alfred Tennyson)의 마지막 노래를 읊조립니다.


 

해는 지고 저녁 별 반짝이는데
날 부르는 맑은 음성 들려오누나
나 바다 향해 머나먼 길 떠날 적에는
속세의 신음소리 없기 바라네


 

움직여도 잠자는 듯 고요한 바다
소리 거품 일기에는 너무 그득해
끝없는 깊음에서 솟아난 물결
다시금 본향 찾아 돌아갈 적에


 

황혼에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밀려오는 어두움이여
떠나가는 내 배의 닻을 올릴 때
이별의 슬픔일랑 없기 바라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파도는 나를 멀리 싣고 갈지나
나 주님 뵈오리 직접 뵈오리
하늘나라 그 항구에 다다랐을 때


 

김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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