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啐啄同機(줄탁동기) ]]
(안과 밖에서 동시에 알껍질을 쪼다)
이 말은, 중국 宋(송)나라 때
편찬된 책으로,
'臨濟宗(임제종)'의 公案集(공안집)이자
禪宗(선종)의 대표적인 佛書(불서)인
'碧巖錄(벽암록)'에서 유래합니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으면,
알 속에서 다 자란 병아리는
부리로 알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합니다.
여기서 啐(줄)은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기 위하여
쪼는 것을 말합니다.
어미닭은, 품고 있던 알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알을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줍니다.
여기서 啄(탁)은 새끼를 도와주기 위해
어미닭이 밖에서 알을 쪼는 행위를 말합니다.
佛敎(불교)에서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전진하는 修行者(수행자)를 말합니다.
어미닭은 修行者(수행자)에게
깨우침의 方法(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啐啄同時(줄탁동시)의 眼目(안목)을 갖추고
啐啄同機(줄탁동기)의 作用(작용)이 있어야
비로소 승려라 일컬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어미닭이 병아리를 직접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미닭은 단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도록
그저 작은 도움을 준 것 뿐입니다.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입니다.
즉, 제자는 안에서 修養(수양)을 하고,
스승은 제자를 잘 보살피고 觀察(관찰)하고 있다가 時機(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깨달음으로 引導(인도)하는
過程(과정)을 說明(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律法書(율법서) '탈무드'에
이러한 格言(격언)이 있습니다.
"물고기를 주기 보다는, 잡는 법을 알려줘라"
유대인 敎育哲學(교육철학)은 知識(지식)이 아니고, 智慧(지혜)를 바탕으로 해서
절저히 그 智慧(지혜)를 배우도록 합니다.
대한민국은 부모들의 자식사랑이
道(도)를 넘고 있습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 줘야 직성이 풀립니다.
마마보이를 養成(양성)하고 있습니다.
비바람을 맞고 자란 꽃나무가,
生命力(생명력) 또한 강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溫室(온실)속의 花草(화초)처럼
나약하게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반면에 유대인 부모는 아이가 혼자 걸을 수 있게 되면 비록 험한 산일지라도
아이의 혼자 힘으로 오르내리도록 합니다.
부모는 단지 곁에서 아이가 위험해지지 않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학교에서도, 교사와 학생 사이 보다는
學生(학생)들끼리 질문을 주고 받게 함으로써,
어떠한 問題(문제)를 스스로 解決(해결)하게 만듭니다.
이런 過程(과정)에서 創意力(창의력)과, 分析力(분석력), 문제 解決力(해결력)을 向上(향상) 시킵니다.
우리도 注入式(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여기서 말한 啐啄同機(줄탁동기)의
意味(의미) 처럼 아이가 스스로 깨우쳐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敎育(교육) 方式(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루속히 敎育方式(교육방식)을 革新(혁신)하여 4차 産業革命(산업혁명) 시대를
先導(선도)해 나갈 人材(인재)를 기르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정답을 외우는 注入式(주입식) 敎育(교육)을 탈피하여 尖端技術(첨단기술)은 물론이고,
創造的(창조적)인 經濟(경제)를 創出(창출)하고
能動的(능동적)으로 協業(협업)할 수 있도록
그에 알맞는 敎育方式(교육방식)으로
시급히 바꾸어 나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