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위의 문장은 어떠한가요?
위인들이 남긴 많은 명언들이 있지만 위의 명언은 많은 이들에게 사람을 받는 울림이 큰 명언인 것 같습니다. 이 명언을 남긴 사람은 괴테. 그의 풀 네임을 다 쓸 것도 없이 '괴테'란 이름만 있어도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쓴 그(him)를 지칭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지요.
많은 분들이 이 문장과 연결지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남겼더군요. 우리 나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의 사회 및 경제발달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이 가야할 삶의 방향보다는 경제적 안정, 사회적 위치, 명예 등에 그 초점을 맞추어서 남들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하여 왔기에, 그에 대한 부메랑으로 사회전반이나 각 개인의 삶에 허무감과 좌절감이 깊이 자리잡아 있기에 이 명언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와 같은 '셀프찾기'는 물론 '자신의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지만 실제 그 고민에서 해답을 찾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방향이 어느 쪽인지 정확히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어떻게 해야 실제적으로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하며, 나름 이에 대해 확신을 하여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가 부족할 수도 있고 때론 상황이나 환경이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지 못하도록 강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좀더 근본적인 이유로서 자신과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회피하려는 측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내가 어때서? 내 삶이 어때서?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문제야!'란 말을 자주하는 사람들의 심리 속엔, 자기를 들여다 본다는 것에 대한 고통, 자신의 부족함 및 잘못된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또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불안감과 두려움이 큰 이유는 결국 자신을 변화시킬 내적 힘이 없다는 것, 쓰러지기만 하고 일으켜 세울 힘이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방향이다'에 마주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처절한 상황 속에 내몰릴 때야 비로소 이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내몰림 당함으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상자에 스스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하는 자들도 있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 '자신을 내려놓음'을 자신의 삶의 터닝 포인트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내려놓음이란 낮아짐을 의미하며 이 때에 비로소 알아차림이 가능한 것으로 이를 다른 말로 '자신을 주인공으로하는 깨달음'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리상담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알아차림(awareness)'입니다. 알아차린 자만이 수용이 가능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율성을 가지는 자가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욕구 5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즐겁게 충족할 수 있으며, 에릭 에릭슨이 말한 인간심리발달 8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자아통합 대 절망'에서 자신의 삶을 자아통합의 삶으로 대미를 장식할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클 것입니다.
수학에서는 시작점에서 방향이 결정되고 간 거리가 나오면 위치가 나옵니다. 그런데 애초에 방향이 잘못 정해지고 간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위치는 훨씬 더 마이너스 값이 될 것입니다. 만약 방향이 정반대방향이고 멀리 가 버렸다면 되돌아와야 할 거리는 그 만큼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세계에서의 방향과 거리는 수학과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 방향으로 멀리 갔다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는 것, 어느 방향이 좀 더 맞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다른 말로 '통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방향과 거리가 얼마나 어긋났든지 간에 그것들을 통찰하게 되면 통합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통합 역시 수학과 다릅니다. 수학에서 두 개의 방향과 크기를 합치면 그 가운데 새로운 방향과 거리가 생깁니다. 그 방향 역시 어쩌면 자신이 가야할 방향과는 다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영역에서 통합이란 잘못되었던 방향과 크기에서의 깨달음, 새롭게 가야할 것에 대한 깨달음이 합쳐지면 더욱 더 가야할 길에 대한 확신과 함께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겪었던 것이 그저 무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새로운 방향과 삶에 대한 밑거름이자 자양분이 될 수 있기에 지금까지의 삶을 헛 산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현재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간에 통찰과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현재까지의 삶도 의미있는 삶이 되겠지만 통찰과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은 자아통합이 아닌 '절망의 단계'에 이르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인생은 방향이다'을 통찰하는 첫 단계는 자신의 살아왔던 삶을 직면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직면이란 마주 바라봄을 의미합니다. 이와 반대말은 '회피' 또는 '외면'이 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회피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본다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입니다. 두려움을 이기려면 바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회복하겠다는 용기, 더 나은 나를 찾겠다는 용기.
여기까지 글을 보면 '인생은 방향이다'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려면 마치 구도자의 '고행' 혹은 산속 어딘가에서 도를 닦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 어느 분이 그런 과정에서 득도하듯이 한 말이 '상처에서도 향기가 난다'란 말을 하더군요. 심오하고 깊은 말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이 직면하고 알아차리는 방식은 면벽수행하듯이 또는 난해한 글을 깨우치는 식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겐 우리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첫 출발점에 있거나 떠난 지 얼마 안된 상태에 있기에 '인생은 방향이다'는 보다 중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인생은 방향이다'를 깨닫게 하는데 먼저 엉뚱한 곳으로 가라고 할 필요도 없으며 그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고행의 길을 따르도록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생은 방향이다'를 알게 하며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도록 할까요?
이에 대해 심리학을 베이스로 해서 진지하게 나눠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