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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철학

소요유(逍遙遊)

작성자오비이락|작성시간20.01.15|조회수1,235 목록 댓글 0

장자철학, 소요유의 의미

소요유에서 소(逍, 거닐 소)는 ‘이리저리 거닌다’는 뜻이고, 요(遙, 멀 요)는 ‘멀다, 아득하다’는 뜻 외에 ‘거닐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遊, 놀 유)는 ‘논다 즉 즐겁게 지냄, 일 없이 세월을 보냄’의 뜻과 더불어 ‘자적(自適)하다’라는 뜻입니다.

소요유는 이리저리 멀리 다니면서 ‘논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소요유에서 유(遊) 즉 ‘논다’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지만 소요(逍遙) 즉 ‘이리저리 걷는다.’라는 말을 소홀히 해서 안 될 것입니다. ‘논다’라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리저리 걷는다’는 것은 방법인 것입니다. 놀며 즐기는 방법이 바로 이리저리 걷는 것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서양에 소요학파(逍遙學派, the Peripatetic school)라고 있습니다. 소요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학원의 산책길을 걸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걸을 때 두되의 기능이 크게 향상된다고 합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거나 뭔가 창의적이 사고를 필요로 할 때 걸으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고 의자에 앉아 생각할 때 못했던 독창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천재들 가운데 걷기를 즐겨했던 사람이 많았던 것은 우연이 아닌가 봅니다.

그러나 장자는 단순히 두뇌 기능의 활성화를 위해 무엇인가 문제를 해결하고 독창적인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 걷기를 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합니다. 생각을 끊어 삶의 문제를 단절하고 천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에 맡기고자 한 행위가 걷기 즉 소요가 아닌가 합니다.

유(遊) 즉 놀고 즐기려면 우선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야 가능하지 않습니까? 현실적 삶의 욕망이 삶의 고민과 문제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욕구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생각이라는 굴레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생각을 끊는 방법이 바로 걷기가 아닌가 합니다. 천천히 걷고,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 생각은 저 멀리 달아나고 자연(自然) 즉 ‘스스로 그러함’과 함께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그러함과 함께 하게 되면 욕구 욕망에서 벗어나게 되고 생각이 자유롭게 되어 두뇌의 기능이 최적화되어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져 삶의 문제나 상황을 새롭게 보게 되어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장자의 걷기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 저리 걷는 소요는 방황(彷徨)의 다른 이름입니다. 방황한다는 것은 목적 없이 걷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삶의 목적과 목표를 이것이라고 정해놓고 사람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합니다.
나 스스로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아닌 세상이 정해 놓은 목표를 추구하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 삶의 고민과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소요 즉 방황한다는 것은 세상의 삶의 규범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유로운 삶은 세상적 가치 규범에서 벗어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장자(莊子)가 말하는 무위(無爲)라 할 것입니다. 노자의 무위는 목적지를 향한 걷기, 즉 목적지 까지 온전히 걷는 방법으로서의 무위라면 장자의 그것은 목적지가 아예 없는 말 그대로 그냥 걷기, 방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소요유는 “사물의 얽매인 현실을 초월하여 대자연의 무궁한 품속에서 자유로이 노님을 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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