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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식

궁궐에서 궁과 궐의 차이

작성자오비이락|작성시간17.10.19|조회수386 목록 댓글 0

우리가 흔히 섞어서 쓰는 '궁(宮)' 과 '궁궐(宮闕)' 은 그 규모나 용도가 엄연히 구별된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과 같은 곳은 궁궐에 속하며 이들을 5대궁이라고 한다.
그러나 안동별궁, 창의궁, 어의궁, 용흥궁, 선희궁 등은 '궁'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궁궐'은 아니다. 왕이 보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잠저(潛邸)이거나 또는 왕족들이 살던 집이다.

궁과 궁궐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궁' 은 사람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주거(住居)를 담당하는 곳이고, '궐' 은 임금이나 신하들이 사무를 보고 일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곳이다.

그래서 '궁궐' 하면 '궁' 과 '궐'이 합쳐져 일상적인 생활도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도 볼 수 있게 복합적으로 구성된 곳을 말한다.

궁궐에는 또 잠자고 생활을 하는 주거 공간과 업무를 처리하고 신하들을 접견하는 사무 공간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왕은 낮에는 '궐' 쪽에서 정사를 보고 밤에는 주무시는 '궁' 쪽으로 옮겨 간다.
왕비가 계신 침전이 있는 곳이든 사랑하는 후궁이나 궁녀의 숙소가 있는 곳이든 모두 궁쪽에 모여 있기 때문에 그속으로 간다.
궁궐 내이지만 왕도 출퇴근을 하는 것이다.

'궁' 쪽에는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건물을 배치한다. 여섯 개의 각각 독립된 궁이 모여 하나의 궁을 이룬다. 임금이 주무시는 곳을 침전이라고 하며 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데, 이곳을 정궁(正宮)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남쪽을 향해 건축된다.

정궁에서 북쪽이 되는 뒤쪽으로 중궁전(中宮殿)이 위치한다. 중궁전은 곤전(坤殿)이라고도 하는데 왕비가 생활하는 곳이다. 왕비를 중전이라고 부르는기도 하는데 그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정궁의 동쪽으로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이있고(세자를 동궁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궁의 서쪽으로 왕대비가 사는 자궁(慈宮)이 있다.

또 중궁전 북쪽으로 좌우 두 곳에 처소가 마련되는데 하나는 세자빈궁이다. 이렇게 여섯 개의 궁이 배치되는 것을 이컬어 '육궁(六宮)의 포치(布置) 제도' 라 한다.

임금이 백성을 다스리고 정사를 보는 '궐' 쪽에도 건물을 배치하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요즘 TV연속극에 자주나오는, 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하고 국정을 논의하는 곳이 편전(便殿)이다.
편전 주변으로 정사에 필요한 여러 건물들이 들어선다.

또 궁중에서 사용되는 자재와 물품 들을 공급하고 보관하는 건물과 환관, 궁녀들이 거처하는 집들이 들어서고 각 전각 주위로 별도의 담장과 대문이 겹겹이 둘러처져 궁궐 안이 하나의 마을처럼 형성된다.

이와 같이 '궐' 기능과 '궁 기능을 종합적으로 갖춘 곳이 '궁궐' 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궁' 이라고 부르는 집은 궁궐과는 여러면에서 다르다.

'궁'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건물은 용도에 따라 그 사용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
왕이 즉위하기 전에 살던집을 잠저(潛邸)라 하기도 하고 본궁(本宮)이라 하기도 한다.
대궐에서 살던 왕자나 공주가 결혼하게 되면 궁 밖으로 나와 살림을 차려야 하는데 이들이 살던 집도 궁이라고 하였다.

궁에는 또 별궁이 있는데, 임금이나 왕비, 왕대비, 왕자 등 왕족이 병을 고치기 위해(일명 피병)잠시 사가(私家)에 나가 있을 때 거처하는 곳을 별궁이라고 하였다. 또 고종이나 순종이 가례를 치르기 위해 사용하였던 건물도 별궁이라고 하였다.

또한 궁궐 밖에서 생활하다가 왕이 되어 대궐로 들어간 임금이 살던 집을 모두 궁으로 높여 불렀다. 태조, 정종, 태종은 다 성장하여 조선왕조를 창건한 후 왕이 되었으므로 궁궐 밖에서 결혼도 하고 살림을 차려 생활하였다.

세종도 궁궐 밖에서 생활하던 중 태종의 장남이자 세자이던 양녕대군이 폐세자 되는 바람에 궁궐로 들어가 왕이 되었으므로 세종대왕 생가터가 지금도 통인동에 남아 있다.

세조 또한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중도에 대궐로 들어가 궁궐 밖에 잠저가 있었다. 왕손이 끊어져 왕가에 양자로 들어간 조선 후기의 철종, 고종 등 상당히 많은 왕들이 궁궐 밖에서 살다가 중도에 왕이 되었다.

이들이 왕이 되기전에 살던 집들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후손들의 관리 잘못과 국가의 정책 부재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이 한 곳도 없다.

인조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종로구 사직동의 어의궁, 서부 방화방에 있던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가 살던 용돈궁,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살던 중부 수진방의 수진궁, 광해군이 임금되기 전에 살던 이현궁, 영조의 잠저였던 창의궁, 세종이 부왕 태종을 위해 이궁으로 건축한 연희궁, 태조때 소공주댁이라 하였고 선조 26년부터 명나라 사신들이 머물던 남별궁 등 왕족들이 살던 수없이 많던 궁들이 다 없어졌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도주하면서 불태워 버렸고, 6.25사변 때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고, 5.16후 경제개발을 위해 헐어낸 그 자리에는 빌딩들이 들어섰다. 전통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도시계획 입안자들에 의해 우리 고유 문화들이 시멘트 구조물로 변해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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