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 특허(1874.11.24)
미국 일리노이 주 디칼브 카운티의 농부 조지프 글리든은 1873년 어느날 장터에서 신기한 물건을 발견했다. 자그만 철침이 박힌 나무막대였다. 힌트를 얻은 글리든은 나무막대 대신 철사를 사용해 가시를 달았다. 두 겹으로 꼰 철사줄 사이에 뾰족한 쇳조각을 꼬아 붙인 가시철사, 오늘날 철조망의 원조 발명품이었다. '더 위너(The Winner)'라 이름붙인 이 가시철사로 글리든은 이듬해인 1874년 11월 24일 특허를 따냈다.
사실 글리든 이전에 철조망 관련 발명품은 여럿 있었다. 1860년 프랑스의 그라생-발르당이 최초로 창살 철사로 특허를 얻은 이래 글리든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와 미국에서 6개의 철조망 특허가 나왔다. 하지만 글리든의 철조망이 단순하면서 제작도 쉽고 비용도 저렴해 대량생산의 길을 열게 했다. 철조망은 빠르게 나무 울타리를 대체했다. 울타리를 넘고, 부수던 가축들이 가시 철조망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텍사스에서는 전통적인 방목업자들이 '철조망 절단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1890년에 이르러 서부 대평원은 거의 철조망으로 구획지어졌다. 철조망의 등장으로 미국 서부 개척은 더욱 앞당겨졌으나 카우보이 시대는 저물게 됐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 처음 사용된 이래 철조망은 군사용으로 바뀌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참호를 겹겹이 둘러싸며 기병의 돌격을 저지해 위력을 떨쳤다. 철조망 방어를 분쇄하기 위해 개발된 무기가 탱크였다. 이후 수용소와 감옥, 군사지역엔 어김없이 철조망이 쳐졌다. 철조망 발명으로 글리든은 미국 최고 갑부 자리에 올랐지만 오늘날 철조망은 경계와 대립의 상징물이 되었다. 보호구역에 갇힌 미국 원주민들은 철조망을 '악마의 끈'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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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철조망 아이디어로 갑부? 알고보면 황금알 특허
출입 금지의 상징인 가시철조망. 어딘가의 담을 넘고 싶을 때나 관심을 갖는 이 상품이 실은 황금알을 낳은 아이디어다.
가시철조망은 1874년 미 서부에 처음 선보였다. 일명 ‘악마의 끈’. 발명자는 교사 출신의 60세 농부 조지프 글리든이다.
그가 만든 철조망의 구조는 간단했다. 두 가닥 철사 사이에 날카로운 철사 조각을 끼워 넣은 것이다. 특허를 취득한 그의 생산 기계는 실용적이고 값싼 가시 철사를 대량 생산했다. 이 사실은 역사 속의 특이한 사건과 인물을 소개하는 에 나온다.
“글리든의 철조망을 반긴 사람들은 목장주. 광대한 목장에 나무 울타리를 두르거나 인건비가 비싼 카우보이를 쓰지 않아도 소를 기를 수 있었다.
서부로 쏟아진 철조망은 분쟁을 일으켰다. 소 떼를 이끌고 이리저리 다니며 뜯기는 전통적인 방목업자와 자기 소유지에 철조망을 치는 농장주 사이의 충돌은 대형 목장주의 승리로 끝났다. 목축업의 규모가 급격히 커진 것도 이 무렵이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로열티 덕분에 1906년 10월 9일 사망할 때 글리든은 미국 최고 갑부 가운데 하나였다. 철조망은 미국에도 돈을 안겼다.
참호전이 지루하게 이어진 1차 대전에서 가장 많이 쓰인 미국제 전쟁 물자가 철조망이었다. 병사들이 ‘악마의 끈’으로 불렀다는 철조망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세계에서 철조망의 밀도가 제일 촘촘한 곳이 한반도다.”
수 십년 전 가정집 담벼락에도 둘러쳐져 있던 가시철조망이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 그러나 적어도 통일을 원하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별명 그대로 ‘악마의 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