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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좌파

작성자오비이락|작성시간18.08.10|조회수11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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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길 가보기, 그람시와 알튀세르의 이론을 통한 한국 좌파를 생각해 보다.

한국의 좌파가 가진 내면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람시와 알튀세르의 이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이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통일을 주장했으며 상부구조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시민사회에서 사회혁명이 일어나는 조건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성의 논리와 그 실천적 기구에 대해 이론을 전개 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토리노대학 재학하던 중에 이탈리아사회당에 입당하였다. 1921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하여 코민테른을 지도하게 된다. 1926년에 파시스트 당국에 체포되어 죽기 직전까지 감옥생활을 계속 하였다. 마르크스주의의 결정론적 해석과 B.크로체의 관념철학에 반대하여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통일을 주장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약점이었던 상부구조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시민사회에서 사회혁명이 일어나는 조건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성(헤게모니)의 논리와 그 실천적 기구(당)에 대해서 진지론을 전개하였다.

태생적 불행과 고난의 대명사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의 창출에 있어서 ‘의식(意識)’의 역할을 주장한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람시는 서유럽의 자본주의가 매우 견고하다고 인식했는데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각종 여론기관을 통하여 지배층(부르주아)들의 힘과 동의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유지되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부르주아가 이 같은 문화적인 ‘헤게모니(hegemony)’와 연대(連帶)를 유지하는 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그람시는 봤다.

마르크스나 레닌도 마찬가지지만, 그람시를 포함한 좌파 이론의 가장 큰 관심은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통한 공산주의로의 이행에 주된 논리와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이른바 혁명의 성공 후에 대한 대안이 없거나 미흡하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이 공산화 또는 사회주의화가 된 후, 남북 좌파의 사회주의적 정의 실현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대한민국의 보다 발달된 자본주의적 프레임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간다고 이상적인 생각을 해보자.

지금도 이른바 좌파 일부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기도 하는데, 경제발전단계와 국제적 상호주의 관계속에서 순수 이상의 사회주의 혁명의 성립이 가능할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본다. 무엇보다 먼저 현대의 국제관계로부터 유리된 사회주의가 성립하려고 하면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서로 협조해 일종의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 경제는 경제적 잉여(economic surplus)에 의한 구상무역제(求償貿易制)를 바탕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주변 사회주의 국가의 상부상조가 없으면 경제체제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북한이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1993년~2000년)에 이내 ‘고난의 행군’의 늪에 빠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한국에 사회주의 혁명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 경제는 얼마 가지 않아서 ‘바나나 공화국=남미 좌파 정권같은 국가를 통칭하는 말’이 될 수 도 있지 않을 까 생각이 된다. 또 사회주의 혁명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자본이 광범위하게 이탈하고 많은 주요 인적 자원 또한 해외로 빠져 나가기 때문에 경제가 붕괴 상황까지 가게 될수도 있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가 제대로 성립하려면 노동의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있는 것이다.

세계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대립은 자본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측면이 있다. 어느 국가든지 해외직접투자 (FDI)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는데 그것은 자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의 이익을 위한 것이도 하다. 국제관계나 국내관계는 이런 유기체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에 그람시는 마르크스 레닌이즘의 맹목적인 추종보다는 보다 현실에 맞는 전략과 이론의 개발이 필요하고 여러 가지의 다양한 변혁의 시도들도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경제를 포함하면서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 이데올로기 등을 연결 짓는 ‘관계의 앙상블 (ensemble)’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는 정부를 전복시키기에는 레닌주의적 혁명 전위대보다는 일상적 사회현실과 연결된 ‘대중정당’이 더 적합하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1980년대 이후 각종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진보 또는 좌파 진지들이 구축되었지만 민노총, 민변, 참여연대 등이 전체 사회운동을 주도할 때까지는 세력이 미약했다. 2000년 들어서 PD 중심의 민노당이 창당되자, 급진 주사파(이하 NL)는 군자산(충북 괴산)에 모여 ‘정치판에 뛰어들 것’을 결의(2001) 했다.

이 때의 문건이 “군자산의 약속(맹약)”인데, 대중 정당을 통해 정권을 잡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후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룬다는 계획이 정리되어 있다. NL은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을 지지했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통일의 대사변기(6·15 남북정상회담)를 맞았다”하여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은 하나의 사건 혹은 일련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해가는 하나의 유기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사람들의 의식개혁은 사회의 구조개혁과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람시는 물리적 혁명만큼이나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중시해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점은 알튀세르의 견해와 용어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베트남 공산당은 정치전으로 몰아서 군사전의 약세를 역전시켰다. 이것은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성공적으로 장악한 사례다.

현재 한국 우파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지속적으로 상실해 가고 있다. 이에 대한 세련된 대응 논리도 미미하거나 부재한 상황이다. 그 동안 보수 정부나 우파가 주장하는 논리나 정책은 오히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종북프레임이나 안보프레임으로 헤게모니 전략을 짜도 그리고 실제적으로 심각한 위기 상황인데도 국민들은 쉽게 반응도 하지 않는다. 2012년이후 우파는 지속적으로 헤게모니 논리에서 밀렸고 그람시가 이야기하는 헤게모니 전략도 부재한 상황이다.

그람시는 교육, 언론, 법, 대중문화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 국가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뤄진다고 봤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탈취해 와야 하고 이를 위해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진지(陣地)를 구축하여 대항 이데올로기를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유명한 ‘진지론(war of position) 이다.

현재 한국의 넓은 의미의 진보, 그리고 그안의 좌파 진지들은 수백 개 이상으로 매우 견고하게 구축되어 왔다. 현상만으로 볼 때 2017년 시점에서 우파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우위에 있는 국면이다. 2,000년이후 수많은 좌파 진지들이 구축되어왔고 이는 진보적 정권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색깔의 사회주의 운동을 위한 토대구축의 성공이기도 하다.

그람시는 전략론으로 ‘기동전(機動戰, war of movement)’과 ‘진지전’ 개념을 사용했다. ‘기동전’이란 1917년 러시아와 같이 피아(彼我)로 구분하는 두 개의 세력이 정면 대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좌파는 ‘기동전’은 적합하지 않고 이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 ‘기동전’은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봤다. 그람시는 진지전이야말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유일한 교전 방식이며 기동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에 한해서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동전’의 성공 여부에 관해, 그람시는 ‘유기적 위기(organic crisis)’ 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유기적 위기’란 기존의 지배계급이 장기간 치유가 어려운 구조적 모순에 직면해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때는 기동전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 유기적 위기의 대표적인 경우가 광우병 사태, 한미 FTA 반대, 효순·미선 사건, 세월호 사건, 박근혜-최순실 사건 등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다소 ‘경제결정론’적 시각으로 국가는 자본에 의해 종속되어 자본가 계급이 만들어 낸 제도적 지배기구라고 봤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폭력혁명을 통해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자본주의 국가나 정치가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에 주목했다.

알튀세(Althusser, Louis, 1918년 ~ 1990년)는 현대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며 프랑스 공산당원이다. 그는 구조주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도입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리고 구조주의 사상의 여러 개념을 이용하여 마르크스주의를 단순한 이데올로기에서 참된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의 이러한 주장을 둘러싸고 특히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휴머니즘, 이론과 실천 및 철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며 논란이 중심에 섰으며 그의 좌파구조주의 철학은 종속론, 세계체제론, 신제국주의론, 수정사관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분석을 심화시켜 60년대 후반 ‘이데올로기적 억압기구로서의 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즉 국가를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구분하고 이 가운데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계급투쟁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억압적 국가기구’는 지배 질서에 저항하는 세력이나 사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정부, 군대, 경찰, 법원, 감옥 등이 여기에 해당하고 이것들은 물리력 즉, 폭력을 통해 기능한다. 다음으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민들의 사고 방식이나 신념, 가치관, 더 나아가서 감성의 차원까지도 지배함으로써 지배적 사회 관계를 유지해 가는 기제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보다 효과적인 재생산 기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부분은 그람시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의 세련된 프랑스 버전처럼 들리기도 한다. 알튀세르는 국가는 반드시 자본주의적인 생산수단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요소가 있고, 자본주의적인 국가가 유지되는 방식에 있어서 ‘자본’이 아닌 상부구조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이론화 한 것이다. 즉 상부구조가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자동적으로 전환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알튀세르는 ‘호명(呼名)이론’을 제시했다. 호명이론은 ‘객체의 주체화 이론’으로 자본에 대한 국가연구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호명이론을 쉽게 이해해 보자. 가령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자동차 TV 광고에 나와서 눈웃음을 치며 “이 차는 바로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속삭인다면 피지배계층은 이 사회의 주체도 아니고 별로 중요한 존재도 아니지만 그 ‘당신’이라는 말로 인해 “내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일까?”하는 식으로 가치를 스스로 주체적으로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객체에 불과한 존재가 마치 주체처럼 인식하면서 이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문화 이데올로기’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피지배계층이 스스로 자신을 사회의 ‘주체’라 인식함으로써 지배-피지배 계층은 유지되며 국가는 계속 자본주의 상태로 존속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비자본계급으로 자본주의사회의 객체나 대상에 불과한 피지배계급들이 스스로 주체라고 믿는 것은 이 같은 ‘이데올로기의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명이론은 ‘문화 이데올로기론’의 시발점이 된다. 알튀세르의 이론들과 객체의 주체화로의 왜곡이 자본주의의 본질 중의 하나라는 주장이 유럽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주게 되며 1980년대 이후 한국 진보운동 또는 좌파 사회주의 운동의 사회구성체 논쟁과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사회구성체란 쉽게 말하면 사회구조(social structure)이지만 구조주의 좌파의 영향을 받은 정치경제학자들은 사회구성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1980년대 운동권도 그랬다. 1980년대 ‘사사방’이란 것에서 출발되었던 이론이며 알튀세르 구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사사방’은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생이었던 이진경 씨가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말한다. 여기서 국독자론, 식반론, 신식국독자론 등의 한국 사회구조를 해석하는 논리가 다양하게 파생되어 나간다. ‘국독자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식반론’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신식국독자론’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약자다. 1985년 ‘창작과 비평’에 박현채 교수가 ‘국독자론’을 발표하고 ‘식반론’자들이 반박했다. 여기에 이 씨가 신식국독자론을 펼치며 두 이론의 빈약함을 비판했고 이후 변형된 국독자론, 변형된 식반론, 변형된 신식국독자론 등이 파생돼 나오고 여기서 한국사회운동 논리가 갈라지고 다른 정파로서 발전해 간다.

본 포스팅은 먼저 인식론차원에서 생각해보고 다음으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만약 누군가가 이 포스팅에 반론이 있다면 주관적 이념편향으로 화답되는 것은 반기지 않으며 먼저 사실관계에 중점을 두고 화답이 되었으면 하는 전제를 먼저 단다. 가치론은 각자의 몫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좌파의 주된 운동논리의 토대였던 그람시의 ‘진지론’과 헤게모니 투쟁, 그리고 알튀세르의 구조주의 이론으로 한국좌파를 생각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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