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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공군 총사령관 팽덕희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5.02|조회수137 목록 댓글 0

<6.25 참전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최후>

6.25 전쟁의 전세를 일거에 바꾼 유엔군의 사령관은 맥아더, 중공군의 사령관은 펑더화이(팽덕회)였다.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단숨에 역전시킨 영웅이었다면, 펑더화이는 30만 중공군 참전으로 전세를 재역전시킨 북한의 구세주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끝은 좋지 않았다. 맥아더는 전쟁 중에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직위를 박탈 당한 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고, 펑더화이는 훗날 문화대혁명 광기의 제물이 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북한군이 위기에 처하자 마오쩌둥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는 사자성어를 들어 출병을 결정하고 펑더화이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1950년 10월에 북한에 파견했다.

중공군 총사령관을 맡아 한반도로 건너 온 펑더화이는 김일성과 충돌을 많이 빚었다. 그는 김일성을 애송이 취급했다. 1951년 5월 춘천 북배산 일대에서 미 제24사단, 미 제7사단, 한국군 제6사단에게 포위당한 중공군 제180사단 7000명이 패잔병 1000명만 남기고 풍비박산된 일이 있었다. 이때 중공군 제180사단의 측면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유사시 퇴로를 확보해야 할 북한군 제1군단은 중공군 측에 통보하지도 않고 퇴각해버렸고, 이 일로 병력을 어이없이 잃은 펑더화이가 크게 화냈다고 한다. 홍콩 명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 일로 펑더화이가 김일성의 뺨을 두 대 갈겼고 얼굴이 퉁퉁 부은 김일성은 일주일간 숟가락을 못 들었다고도 전한다.

펑더화이는 전선이 교착된 상태에 있던 1952년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조인식에 중국 대표 중 한 명으로서 참석하여 휴전협정서에 조인하고 전쟁을 끝낸다.

이후 펑더화이는 6.25 전쟁을 원점으로 돌린 공로로 국방부장 겸 부총리를 맡았다. 펑더화이는 자신이 국방부장 시절이던 1955년에 군에 계급제를 도입하였고 자신은 군 서열 2위에 중화인민공화국 원수 계급을 부여받았다. 이것은 병사 개개인의 당성을 강조하던 마오쩌둥의 노선과는 모순되는 것이었고 후에 숙청의 빌미가 된다.

마오쩌둥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대약진운동이 대실패로 끝났을 때 펑더화이가 1959년 7월에서 8월에 걸쳐 열린 루산 회의에서 한 발언은 펑더화이 자신을 비극처럼 비참한 운명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이 루산 회의를 앞두고 고향인 후난성의 농촌을 시찰한 펑더화이는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에 의한 경제 피폐를 목격하고 루산 회의 기간에 마오쩌둥에게 문제점을 전하면서 노선 전환을 건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마오쩌둥의 지도권을 존중하는 정중한 태도로 작성되었지만, 마오쩌둥 노선에 관한 비판이었으니 지도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마오쩌둥은 이 편지를 회의석상에서 공개하여 토론 의제로 채택하고 펑더화이가 당의 지도에 도전한다면서 비판하였다. 심지어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8월 백단대전에서 마오의 지시를 어기고 일본군을 상대로 허락없이 승리했던 옛날 일까지 끄집어내어 펑더화이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1965년, 베이징 부시장이자 명 시대의 전문가인 우한이 쓴 '해서파관'에서 해서가 펑더화이고 가정제가 마오쩌둥이라는 장칭(강청, 마오쩌둥의 후처)과 야오원위안의 억지주장으로 해서파관 사건이 일어났고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마오쩌둥에게 반기를 들었던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을 광신적으로 숭배하는 홍위병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1966년 12월 27일 장칭이 파견한 홍위병들이 쓰촨의 펑더화이의 자택으로 몰려들었다. 홍위병은 칠순에 가까운 늙은 펑더화이를 모질게 고문하였고, 그 결과 그는 늑골이 부러지고 얼굴이 완전히 짓이겨졌으며 폐가 못쓰게 될 지경이었다. 홍위병들은 만신창이가 된 펑더화이를 끌고 다니면서 조리돌림했고 펑더화이는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몸이 망가졌다.

베이징의 감옥에 끌려간 펑더화이는 "마지막으로 경례를 올립니다. 만수무강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마오쩌둥에게 최후의 편지를 썼고 병세가 악화되어 1973년 감옥 의무실로 이송되었다가 1974년 11월 29일 암으로 사망했다. 이때 그의 나이 7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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