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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8.23|조회수184 목록 댓글 0

ㅡ 성종 이혈李娎

성종成宗! 이 묘호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다.
뭔가를 이루어야 받는 칭호다.어느 왕조이던 성종이라는 묘호는 큰 의미가 있다.

성종이란 새 왕조 건국 초의 불안을 잠재우고 정치적, 제도적으로 통치의 안정을 찾고, 새왕조를 튼튼한 반석에 올려 놓은 왕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성종의 최대 업적을 하나만 들라면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경국대전>의 완성이다.
세조 때부터 형전과 호전 정비를 시작으로 사회 전반의 법을 두루 다룬 종합적인 법전으로, 백성들의 삶을 다방면으로 규정하고 이를 지키도록 장려했다.

즉 즉흥적으로, 맘내키는 대로 국사를 처리한 것이 아니라 법에 기반을 둔 국가가 자리잡게 된 것이니 나라 다운 나라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물이 흘러가듯이 나라를 정비한 것이다.법法자를 잘 보라. 물 수水에 갈 거去 자가 합친 것으로 법이란 물이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행해져야 되는 것이다.

법가法家인 한비자가 한 말이다.
''법이란 먼저 관부에서 공포하여, 지키면 상을 받고 명령을 어기면 처벌받아 상과 벌이 분명하게 시행된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마음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규정 위에 법이 있고 법 위에 헌법이 있다.
헌법이 저 경국대전처럼 최고의 법이지만 모 나라에선 그 위에 또 하나의 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국민정서법'이란다.법보다는 국민의 정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인데 그러면 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그 보다 더 높은 법이 생겨났다고 하는 데 그것은 '떼법'이란다. '떼를 쓰면 다 된다'는 것이니 그런 나라에서 법을 잘 지키자고 하는 것은 나무에서 생선을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법이란 지키라고 만든 것이다.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라는 양반도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면 독배를 들었다고 하는 데, 법이란 모름지기 우리가 지킬 때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태조께서 조선이라는 토지를 확보하셨고..
태종께서 그 땅의 잡초를 뽑고 자갈을 골라 땅을 일구고 세종께서 조선이라는 멋진 집을 완성했다면 성종이 경국대전으로 조선이라는 집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가전제품도 사용설명서가 있는데 하물며 국가에 사용설명서가 없다면 말이 되는가?
경국대전은 '국가사용설명서'이다.

참고로 묘호가 같은 고려 성종을 살펴보았다.
고려 6대 왕 성종은 태조 왕건의 손자로 선대왕 경종이 자신의 어린 아들 대신 조카 '치'를 후계자로 선택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성종대에는 고려 초기의 왕위를 둘러싼 분쟁이 진정되면서 국가체제를 정비할 수 있었다.

고려 성종은 불교국가였던 고려에 유학적 정치 원리를 도입하여 의례와 법규를 제정했고 중앙 정치조직 역시 고려의 실정에 걸맞게 정비했다.
또한 지방의 행정조직과 향리조직에 대한 대대적 개편이 이루어지게 했다. 국자감을 설치했고 과거 급제자의 수가 급증한 것도 성종 때의 일이었다.

한 일들이 서로 비슷하지 않는가?
세조께서 폐지하신 경연제도를 부활시켰고 왕의 자문기관인 홍문관을 만들었다. 지방자치 의회와 같은 유향소를 부활시켜 수령들을 보좌하고 감시하게 했다.백성들을 계도하는데 중요한 음악을 위해서 악전인 <악학궤범>이라는 음악백과사전을 만들었다.

공자님은 인격을 닦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인간 완성의 최고의 방법이 예술이라고 말씀하셨다.시를 통해 감흥을 얻어 이를 예절로 다듬고, 음악을 통해 조화를 얻음으로써 인간이 완성된다고 했으니 어찌 음악을 발전시키고 장려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을 시작으로 편년체 역사서인 동국통감 등 학술서도 많이 발행했고 경국대전을 보완하기 위해 대전속록도 편찬하여 법치국가의 면모를 갖추기도 했다.

성종은 공부도 좋아하는 공부벌레였다.
그리고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다. 경연제도를 부활하여 재임기간 25년에 무려 9229회나 참석했으니 얼마나 빡신 일정을 소화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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