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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참배

작성자이뭣고|작성시간17.06.21|조회수287 목록 댓글 0

참배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은?

배례[拜禮] 절하는 예(禮). 또는 절하여 예를 표함.
경배[敬拜] 존경하여 공손히 절함.
추모[追慕]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
추도[追悼]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함.
추념[追念] 죽은 사람을 생각함.
위령[慰靈]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함.

한글학회 회원이면서 한글운동가인 이봉원 선생(전 운영위원장, '대한민국임시정부 바로알기' 저자)은 '뫼절'이라는 말을 쓰십니다.

국립현충원 묘소에 가서 예를 올리는 것을 우리는 ‘참배’라고 한다. 설, 추석, 한식 때 집안의 조상 묘를 찾아가는 것은 성묘라고 하는데 왜 국립현충원이나 4·19, 5·18 묘소에 가는 것은 참배라 하는 것일까?

참배는 일본말 ‘삼빠이[参拝]’의 음역이다. 신사참배라는 말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넌더리를 낼 말인 삼빠이는 지금 버젓이 국립현충원 참배라는 말로 쓰이고 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표준국어사전>에도 참배는
1. 신이나 부처에게 절함
2. 영구(靈柩)나 무덤, 또는 죽은 사람을 기념하는 기념비 따위의 앞에서 추모의 뜻을 나타냄으로 풀이되어 있을 뿐 일본말이라거나 순화하라는 표시가 없다.
이 말은 <다이지센>에 나와 있는 풀이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さん ぱい【参拝】 社寺, 特に神社にお参りしておがむこと. 「伊勢神宮に~する」
삼빠이 : 신사나 절 등에 참배하는 것.
(이세신궁에 참배하다)

일본인들이 쓰는 삼빠이를 우리의 호국영령 무덤에 쓰고 있는 꼴이다.
이 같은 말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4월에 국립현충원에 들어서면 휘늘어져 만개한 ‘사쿠라’가 장관을 이루며 무덤 사이사이로는 ‘왜향’이라 불리는 일본 향나무가 줄지어 서서 ‘참배객’을 반긴다.

국립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친 국군은 물론이요.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군무원, 경찰관 등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몸 바친 호국 영령들이 잠든 곳이다. 특히 일제의 무자비한 조선 침탈에 항거하여 나라를 되찾으려다가 숨진 독립유공자와 애국지사가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참배라는 말은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물론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와 왜향도 무궁화나 소나무로 바꾸면 더욱 좋을 것이다.

여기서 참배에 대한 놀라운 기록을 소개한다. <조선왕조실록> 기사가 그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에는 ‘參拜(참배)’라는 말이 원문 기준으로 모두 스물한 건 나온다.
1449년 세종 31년의 첫 기사를 시작으로 1901년 고종 때까지 열두 건의 기사에서 보이는 參拜는 국립묘지 참배와 같은 뜻으로 쓰인 게 아니라 임금을 뵙는 ‘알현’ 뜻으로 쓰이고 있는 데 반해 일제강점기 때의 기록인 <순종실록>의 아홉 건 모두 ‘무덤 참배’로 쓰이고 있는 게 특이하다.

<순종실록부록> 3권 9월 16일에 이런 기록이 있다.
'五世子詣桃山御陵參拜, 以電報稟達' 왕세자가 도산어릉에 가서 참배했다고 전보로 알려오다.

왕세자가 도산어릉(桃山御陵)을 참배했다고 전보로 알려왔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왕세자는 순종의 뒤를 이을 황태자 이은(李垠, 영친왕)을 깎아내려서 부른 말이다.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난 이은은 순종과 이복형제 간으로 1907년 황태자에 책봉이 되었으나 1907년 12월에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서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 이어서 1910년 국권이 일제에 의해 강탈당하면서 융희황제(순종)가 이왕으로 폐위되자 그도 황태자에서 왕세제로 전락 하고 만다. 만 열 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의 차기 임금은 일제의 강압에 못이겨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도산어릉을 참배한다.

도산어릉이란 일본 교토에 있는 메이지왕의 무덤을 말하고 도산(桃山)은 모모야마시대, 곧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을 뜻하는 말로 메이지왕의 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쌓았던 후시미성 터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한반도와는 이래저래 악연이 깊은 장소다.

일본은 왜 조선의 어린 황태자를 일왕 무덤에 참배 시켰을까? 그리고 왜 이런 사실을 본국의 순종에게 전보로 알렸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순종실록부록>에 따르면 황태자 이은의 일본 왕실 무덤 참배 기사는 열다섯 살 때인 1912년 도산어릉을 시작으로 메이지왕의 부인인 쇼켄왕비의 무덤 등 1917년까지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온다. 이것은 단지 일왕 집안 무덤참배에 대한 기록일 뿐이며 기록되지 않은 일본 내의 신사참배 강요 등이 얼마나 숱하게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나라 황태자를 자기들의 왕릉에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참배시킨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비난 받을 일이다.

거듭 말하지만 참배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도 썼으나 왕을 뵙는 알현의 뜻으로 썼을 뿐 무덤이나 신사에 예를 갖추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제강점하에 놓인 순종 때부터 인질로 잡아간 황태자에게 일본 왕릉 순례를 시킨 것을 삼빠이(참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해방 후 국립묘지를 만들면서 그곳에 예를 갖추러 가는 것을 삼빠이의 음역인 참배로 따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니 만큼 이 말은 하루속히 거두어야 할 것이다.

치욕의 역사를 모르는 것도 치욕이지만 치욕이란 걸 알고도 여전히 그 말을 입에 담는것은 치욕보다 더한 치욕이다. 올해는 국치 105돌이 되는 해이다. 알맹이 없는 요란한 기념식만 치를 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의 생활에 깊이 파고든 일제의 잔재를 하나씩 뿌리 뽑는 일을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 이를 게을리 한다면 진정한 해방은 요원한 것이다.

국립묘지 ‘참배’라는 말은 치욕스런 일제의 잔영 사쿠라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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