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23
ㅡ 분단된 한반도, 국토를 보존한 일본ㅡ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다. 전 국토를 보존하였다. 냉택없이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한반도만 분단되고 말았다.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던 독일이 패전 후 미. 소에 의해 분단 되었는데 말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요즈음 일본과 경제왜란을 치루면서 지난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가장 화가 치밀게 만드는 부분이다.
결과론적으로 봐도 한반도의 분단에 일본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눈꼽만큼도 없다. 이번 경제왜란 사태도 일본의 이러한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역사에 반성이 없는 것에 기인한다.
일제는 미국과 태평양전쟁 중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를 한 후에 패배를 직감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3년이나 더 질질 끈다.
만약 일본이 독일보다 조금만 더 빨리 항복했더라면 독일전선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 있던 소련이 한반도에 눈 돌릴 겨를이 없었기에 우리나라는 분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왜 질질 끌어 갔을까?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대패 후 패배를 절감하고 비공식적으로는 연합군 측에 여러 협상을 제안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이 내건 강화 조건이란, 소위 "국체호지(国体護持)"라 하여 천황제의 존속 외에도, 연합국 군대의 일본 본토 진입 비허용, 일본군의 무장 해제 및 전쟁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일본 국내법에 따라 자신들의 손으로 스스로 할 것, 만주 사변 이전에 획득한 한반도와 대만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할 것 등 지극히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것들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추구했던 미국과 연합국 측이 받아 들이기에 불가능한 조건을 일본은 걸었다.
일본도 미국과 연합군 측이 위와 같은 조건을 받아 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의 속 마음은 위와 같은 항복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비록 중국 본토와 동남아, 태평양의 점령지는 포기하더라도, 만주와 한반도, 대만만큼은 어떻게든 내주지 않기 위한 술수였다.
특히 일본이 마지막까지도 절대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바로 한반도였다.
한반도와 대만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 이전에 일본 나름대로는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획득한 영토이므로 그 이후에 무력 침략으로 점령한 중국, 만주, 동남아 지역 등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논리였다. 일본 지도부는 어떻게든 그동안 자신들이 어렵사리 획득한 식민지를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것이 일본의 항복이 늦어진 가장 큰 이유였다.
독일이 항복하고 소련의 참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1945년 5월 말에야 일본 참모 본부 일각에서는 "소련의 참전을 막으려면 과감하게 청일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 만주와 한반도, 사할린까지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나왔다. 하지만 일본 군부에 의해 묵살되었다.
심지어 일본 지도부는 패망이 코앞으로 다가온 7월 14일에도 스위스를 통한 교섭에서 여전히 한반도와 대만은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7월 18일에 외무성에서 제출한 "대소 교섭안"에서는 대만은 빠졌지만 한반도에 대한 영유권 요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한반도가 정말 위험했던 것은 당시 미국입장이 변화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은 일본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양 생각하는 소위 "국체 문제", 즉 천황제의 존속은 미국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은 천황제 폐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의 의사를 존중할 것임을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밝혔다.
진짜 첨예한 문제는 한반도를 비롯한 일본 식민지에 대한 처리였다. 이것은 미국이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독일, 이탈리아 등 다른 침략국에 대해서도 그동안 침략 전쟁으로 획득한 모든 해외 영토를 포기하도록 했는데, 일본만 예외로 둘 수는 없으며 그럴 이유도 없었다. 또한 카이로 회담에서 이미 "일본 제국의 해체"와 한반도의 독립을 인정한 바 있었다.
그런데 5월 28일 트루먼과 회담한 미국 후버 前 대통령은 일본과의 조기 종전을 주장하면서 일본 정부를 해체시키지 말 것과 한반도와 대만을 일본의 영토로 인정할 것을 건의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일본이 내건 강화 조건을 그대로 받아 들이자는 얘기였다.
또한 후버는 스팀슨 전쟁 장관에게도 일본을 철저하게 패배시킬 경우 극동에서 소련을 견제할 세력이 없으므로 일본의 세력을 어느 정도 보존하여 극동의 새로운 동맹국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5년 카스라테프트 밀약으로 일본이 조선을 먹는 것을 묵인한 미국으로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주장이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사실 당시 상황은 트루먼 입장에서도 후버의 제안을 무조건 무시할 수만은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또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고수하여 전쟁을 질질 끌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여 끝내는 것이 자신들의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데도 더욱 유리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실제로 후버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시 후버의 주장이 현실이 되어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전략 정책단의 단장인 조지 링컨 준장은 이미 카이로 회담과 얄타 회담에서 미국이 일본 제국의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의 주장은 마셜 참모 총장의 지지를 받았고, 결국 트루먼과 스팀슨 전쟁 장관은 이들의 주장을 채택했다. 그리고 더 이상 여기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한반도에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당시 트루먼 행정부가 후버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도 일본 식민지 하에 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남지 않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 조지 링컨 준장은 38선을 그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내가 쓴 '한반도 운명의 1도' 에서 이 이야기는 자세히 나와 있다.
당시 미국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일본 제국의 해체이지,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를 빼앗아 자신들이 차지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얄타 회담에서 루즈벨트는 한반도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단지 연합국이 공동으로 신탁 통치를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키면 된다는 식의 막연한 구상만이 있었다.
트루먼 역시 마찬가지였다.
포츠담 회담에서도 일본과 한반도를 분리시키겠다고 결정했지만 그 다음의 계획은 없었다.
바로 이러한 한반도에 대한 무태책의 미국의 생각이 현재 뒤틀린 한반도의 운명이 되고 말았다.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한 뒤, 미국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관동군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한반도 북부까지 진입하자 트루먼 행정부는 부랴부랴 한반도에서도 세력권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8월 11일 밤 마셜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은 링컨 준장은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가 눈에 들어왔고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는 38선에 연필로 선을 주욱 그었다. 우리나라의 원통스러운 38선 분단은 이렇게 쉽게 결정되었다.
링컨 준장은 우리 입장에서는 병주고 약준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점은 소련이 독일이 패망한 직후에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안 했다는 점이다.
1945년 5월 7일 독일은 패망했다.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 한 것은 독일 패망 후 3달이 지난 8월8일 이었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히로시마에 한 차례 투하하고 난 직후였다.
소련은 미국이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숫가락만 얹은 꼴이었다.
그런데 소련이 더 웃긴 것은 일본에 선전포고 후 왜 일본으로 바로 진격을 하지 않고 한반도로 먼저 진격을 했을까 하는 문제이다.
아마 소련이 미국의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또 일본의 본토 진입에 따르는 피해상황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에 뜨거운 맛을 본 경험도 있어서 이다.
아쉬운 가정이지만 만약 소련이 독일 패망직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소련 군대를 일본 쪽으로 돌려 일본 본토에 진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미국으로서는 일본 본토 진입에 미군의 엄청난 인명 살상이 예상되어 원폭투하를 결정할 만큼 상황이었으니 소련의 일본 진주를 반겼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소련이 일본 전체를 삼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는 않고 일본 열도를 분단하는 정도에서 끝냈을 수도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미소의 냉전이 실제로 현실화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미소의 갈등과 모순이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경우 한반도 전체도 소련이 점령해 버릴 수도 있었을까?
여기까지는 나도 더 이상 상상하기 싫다. ㅎㅎ
나의 상상은 소련이 일본만 반쪽 점령하여 한반도 분단이 아닌 일본 열도가 분단 되었어야 그게 당시 역사적 정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이 항복을 질질 끌어서 우리나라는 분단되었고 일본 열도는 분단으로 부터 살아 남았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조금의 역사적 양심이 남아 있다면 우리나라에 정말 미안해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 일본은 가해자였음에도 마치 피해자처럼 행세하려 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수 백 만의 인명이 살상되고 여러 나라가 불행에 빠졌다는 것을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참으로 일본 아베정권의 역사적 몰염치에 분노가 치민다.
구한말 힘없어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해 가해자인 일본은 멀쩡하고 피해자였던 우리나라가 대신 분단이 되었으니 원통하고 서러울 뿐이다.
자주적으로 독립을 하기위해 준비해오다 일본의 항복 소식을 듣고 모든 것이 무산된 마음의 김구선생은 백범일기에 일본의 항복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소식'이라고 한탄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백범은 우리나라가 분단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상황을 미리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