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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가짜뉴스와 신탁통치

작성자추월|작성시간23.09.02|조회수17 목록 댓글 0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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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건국절 논란 6 ㅡ
(가짜뉴스와 신탁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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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윤석열 정권 외교가 걱정이 듭니다. 우리나라는 지형 상 어쩔 수 없이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 있어 강대국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윤정권은 지나치게 내놓고 미, 일 중심 외교로 가고 있습니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과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로 국내에서는 친일파로 욕 먹고 있지만, 이런 윤대통령 정책을 가장 반기고 환호하는 나라는 일본 보다 미국입니다.

미국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친일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미국도 일본과 같이 식민지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제국주의 시대였고 강대국들은 모두 식민지를 두고 지배했습니다. 미국은 자국 땅이 넓어 다른 열강들 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미국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1905년 일본과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데 제일 먼저 승인한 나라였습니다. 그런 미국이 친일파를 단죄하는 자기 얼굴에 침 뱉는 짓은 안 하겠지요. 그래서 미국은 해방 후 조선에 진주하여 아무 거리낌없이 친일파 경찰들을 다시 채용하여 치안을 맡깁니다. 이때부터 우리 역사는 왜곡되고 또 다시 친일파 세상이 됩니다.

바로 건국절 논란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아주 길어지니 다음에 자세히 하겠습니다.

어쨌든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 생각과 선택은 국가 미래와 국민 안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정말 말 한마디에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국가운명이 걸린 문제에서는 언론도 마찬가지 입니다.

해방직후 가짜뉴스 하나 때문에 우리 역사 큰 획을 바꿔버린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가짜뉴스는 진실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배워 왔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 에 관한 가짜뉴스입니다.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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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가짜뉴스와 신탁통치ㅡ

우리나라가 해방 된 후 남쪽은 미국에 의해 군정이 실시되었다. 북쪽은 소련이 진주해 있을 때였다.

세계 2차대전이라는 전쟁을 일으켜 패배한 일본은 놔두고 괜히 우리나라만 분단되어 버렸다.

일본과 같이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분단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분단되지 않았다.

왜 일본대신 한반도가 분단 되었을까?

그랬던 이유 또 길어지니 다음 편에 기술하고 오늘 주제로 들어 가 보자.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있는 사실은 아래와 같다.

<'모스크바 3상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 3개국 외상이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분야 의제를 다룬 회의이다.
이 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조선이 아직 스스로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안 된다고 보고 5년간 신탁통치를 결의했다. 이에 조선민중은 결사적으로 반탁운동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 사주를 받고 나중에 찬탁으로 돌아 섰다. 그래서 해방정국은 좌우익이 찬탁 반탁으로 나누어져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좌익 쪽이 찬탁을 했기에 찬탁 한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로 몰았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지금까지도 찬탁은 빨갱이라는 논리가 통용되고 있다.>

나도 학창시절 위와 같이 배웠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알고 있었다. 윗 글을 읽는 대부분 사람들도 아직까지도 위 내용처럼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당시 상황으로서는 찬탁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이라면 나 또한 반탁 선봉장이 되었을 것이다.

해방된 땅에 외세가 또 우리를 통치한다는데 누가 찬성(찬탁)하겠는가? 그래서 ‘신탁통치’란 말을 처음 들으면 누구나 반대(반탁)하게 된다.

반탁보다 더 나아가 애국지사 김구선생은 좌파 인사나 찬탁론자들은 테러를 통해서라도 제거하려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해방 후 많은 백색테러가 김구 지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말들도 나돌았다. 밝혀진 것은 없다.

38선 이남의 여운형, 김규식, 김원봉 그리고 송진우 등은 찬탁, 이승만, 김성수 등은 반탁 대열에 섰다. 반탁에 앞장 섰던 김구는 ‘송진우 암살 사건’ 이후 미군정을 반대하진 않는다며 한 발 물러섰다.

송진우는 우익인사였지민 모스크바3상회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무조건 적인 반탁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송진우는 그렇게 주장하는 연설을 하고나서 이틀만에 집에서 총에 맞아 암살 당하고 만다. 송진우 암살을 시작으로 신탁통치 정국은 좌우익의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으로 번진다.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중립적 인사들이 나서(김규식, 여윤형 등 아래 사진 참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좌우익 화해를 도모하기도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만다.

마침내 반탁운동 결과로 남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 이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면서 신탁통치 안은 실시되지도 못하면서 한반도에 엄청난 상처만 남기고 마무리 되었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부터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와 신탁통치 안에 대한 진실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현재 알고있는 사실과는 정반대이다.

먼저 소련이 신탁통치를 강력히 주장했다는 것부터 사실이 아니다.

소련은 신탁통치에 별 관심도 없었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소련은 신탁통치를 안 해도 한반도를 자기들 영향력 아래 있게끔 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또 그대로 놔두어도 한반도가 공산화 되리라 보았다.

오히려 미국이 신탁통치를 강력히 주장한다.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는 해방직전 카이로에서도 조선의 신탁통치를 주장했다. 해방 후에도 미국은 조선을 수 십년간 신탁통치를 하려고 했다.

모스크비 3상회담에서도 미국은 ‘군정 신탁통치 10년’을 제안했다. 그러나 소련 반대로 거부되고 “한반도를 조속히 독립시키기 위해 임시 민주정부를 구성하고 이를 지원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두고, 5년 내에 한반도를 자주 독립국가로 만들기 위해 4개국 승인을 거쳐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트루먼 미 대통령은 자신 안을 관철하지 못한 번스 미 국무장관을 징계하고, 미국이 냈던 10년 군정 신탁통치 안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3상회의를 파탄 낼 방안까지 강구한다. 미 군정이 반탁운동을 용인하며 놔두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이 모두 찬탁으로 나섰으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따랐을 것이다. 이미 국제회에서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의 안을 자세히 보면(아래 사진 참조) 신탁통치 보다는 '통일된 민주임시정부 수립'이 먼저이다. 그리고 신탁통치도 수립된 민주임시정부와 상의하여 실시한다고 했다.

이 정도면 우리민족 입장에서는 신탁통치 안을 받아 들일만 했다.

만약 당시 우리 지도층이 좀 더 현명하게 모스크바 3상회의 안을 제대로 살펴보고 그대로 받아 들였다면 분단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았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강력한 반탁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까?

바로 오늘 주제 가짜뉴스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동아일보가 일면 톱으로 가짜뉴스를 내 보냈다.

'미국은 즉각 독립 주장, 소련은 신탁통치 강력 주장' 이라는 제목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미소가 주장한 거와는 정반대 가짜뉴스였다. 그것도 모스크바 3상회의 안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하루 전에 동아일보는 보도를 했다.

조선민중은 동아일보 보도를 철저히 믿고 소련을 증오하며 강력한 반탁으로 갔다.

나중에 좌익이 찬탁으로 돌아 서는데 소련 사주를 받고 그랬다는 것도 가짜뉴스이다. 앞서 나온 내용대로 소련은 신탁통치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당시 좌익은 동아일보 기사가 가짜뉴스라는 것을 소련을 통해 알게 되었고, 신탁통치가 우리민족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곧 바로 찬탁으로 돌아 섰다고 주장한다. 소련 사주때문에 찬탁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지금 개인적 생각은 당시 상황에서는 찬탁이 맞다. 자존심은 조금 상하는 일이지만 우리에게 느닷없는 해방에 대한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그랬다면 최소한 6.25는 없었을 것이고 잘하면 분단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 내 생각은 지금 앞 뒤를 다 살펴보고 하는 것이다.

아마 내 성질 상으로 당시였다면 강력한 반탁론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왜 모스크바 3상회의 안이 공식발표 하기 하루 전에 가짜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을까?

아직도 그 정확한 답을 못 찾고 있는 해방 후 최대 미스터리라고 한다.

추측건데 조선 공산화를 막기위한 미국의 이중전략이 아니였을까하는 설이 있다.

[3상회의 결정 사항의 공식 발표는 12월 28일이었으나, 미국은 25일 AP 통신에 워싱턴발 가짜 정보를 흘렸다. 26일 동아일보는 이 속보를 대서특필했다. 미국이 흘린 가짜 정보는 “소련이 신탁통치 주장, 소련의 구실은 38선 분할점령,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었다.]

가장 가능성있는 주장이지만 정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유야 어쨌든 가짜뉴스!

이렇게 무섭다.

그것도 공인받고 있는 거대 언론들에 의한 가짜뉴스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자신을 상상해 보시라!

80년 전 가짜뉴스를 지금까지 믿고 있지 않은 가?

아마 그 가짜뉴스에 푹 빠져 고정관념화 되어 버리신 분들은 이 글도 빨갱이 글로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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