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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원 지폐의 비밀

작성자오비|작성시간20.04.08|조회수836 목록 댓글 0

신사임당이 오만원권에 그려진 이유가 뭘까요???

외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널따란 땅 위에 멀찍멀찍 떨어진 관광지를 한참씩 옮겨 다닐 때마다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미국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미국 화폐에 관한 것이었죠. 미국에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람이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인데, 사람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고 항상 접할 수 있는 1달러와 5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들어가 있다고요.

지난 4월에는 미국 지폐 인물이 바뀔 예정이라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미국 20달러 지폐 인물에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20달러 지폐의 인물로, 현재 들어가 있는 앤드루 잭슨 대신 흑인 여성 인권운동가인 해리엇 터브먼의 사진을 넣는다는 내용입니다. 그 외 10달러 등의 뒷면도 여러 여성 인물들의 사진으로 교체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여성 인물이 지폐에 들어가 있죠. 우리나라에서 5만 원권을 처음 도입한 때는 2009년인데,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사임당이 5만 원권 지폐 인물이라는 데는 논란이 많습니다.

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로 내세워짐으로써 가부장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주장부터 ‘5만’ 원권에 들어갈 만큼의 업적이 있지는 않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논의들이 있습니다. 그럼 우선 5만 원권을 한번 자세히 살펴볼까요?

5만 원권 앞면에서는 가장 먼저 사임당의 초상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된 표준 영정을 바탕으로 새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 옆으로는 포도 그림과 가지 그림이 있습니다.

원래의 포도 그림은 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색깔을 입었네요.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포도 그림 아래 바탕으로 희미하게 들어간 그림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된 초충도 수병(수 병풍) 8폭 중 일곱 번째 폭인 「가지와 벌」입니다. 정옥자 교수는 『사임당전』에서 사임당의 초충도 그림은 대개가 수를 놓기 위한 본을 먼저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안의 초보 단계는 남의 그림이나 수본을 그대로 본떠서 하는 것이고 다음 단계가 다른 사람이나 화보에서 베껴서 도안화하는 것이라면 세 번째 단계는 수를 놓고자 하는 사물을 직접 사생하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로 사생하는 경우 상당한 그림 실력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임당은 바로 이 사생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녀가 수놓는 대상으로 삼은 꽃과 풀과 곤충, 벌레와 동물들은 오죽헌 앞뜰과 뒤뜰, 울타리 옆에서 어려서부터 함게 자라고 살아온 익숙한 생물들이었다. 그녀의 초충도는 기본적으로 수를 놓기 위한 사생의 산물이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사임당의 자수 작품은 이 초충도 수병 외에는 딱히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생활용품에 쓰였기에 보존이 힘들었겠지요.

더욱이 사임당은 과거 급제를 못하고 생활력도 없던 남편 이원수 대신 살림을 꾸려 나가는 처지였습니다.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아 살림에 보탰던 것이지요. 다른 집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남편 이원수가 과거 급제는 못했어도 양반 출신이고 자신도……양반가여서 상업에 종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리하여 양반집 부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느질과 자수였을 것이다. 더구나 처녀 시절부터 사임당은 빼어난 침선 솜씨와 자수 솜씨를 자랑하던 터였다.

그렇다고 하여 드러내 놓고 바느질품을 팔 수는 없었을 것이고 아마도 알음알음으로 주변의 수요에 응했으리라 본다.

한편 5만 원권 뒷면에는 조선 중기 선조 때 화가인 설곡 어몽룡의 「월매도」와 탄은 이정의 「풍죽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어몽룡은 묵매(墨梅), 이정은 묵죽(墨竹)으로 이름나 동시대 묵포도로 유명했던 영곡 황집중과 함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이들의 작품이 실린 것일까요?

일단은 5천 원권 뒷면에 이미 사임당의 작품이 들어가 버린 것이 큰 이유로 보입니다. 5천 원권 앞면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과 함께 오죽헌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사임당의 초충도가 실렸습니다.

오죽헌․시립박물관에 소장된 「수박과 여치」와 「맨드라미와 개구리」가 나란히 놓여 있지요.

또 다른 이유로는 조선 회화사에서 사임당의 위상을 보여 주고자 한 의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임당의 일곱 폭짜리 고매첩(매화 화첩)에 실린 매화 그림과 사임당의 큰딸인 매창의 매화 그림, 어몽룡의 매화 그림을 보면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대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탄은 이정의 「풍죽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정은 세종대왕의 현손으로 왕실 종친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 의해 팔이 거의 절단되는 고통을 겪은 후 더욱 신묘해진 솜씨로 대나무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해 ‘흉중성죽(胸中成竹, 가슴속에 대나무를 이루다)’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고 합니다.

이정의 묵죽에 영향을 준 사임당의 대나무 그림으로는 「화초어죽도」가 있는데, 개인 소장으로 알려진 이 도판을 구하지 못해 아쉽게도 『사임당전』에는 싣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삭제된 원고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풍죽도」는 탄은 묵죽의 백미로 꼽힌다. 줄기는 강한 바람에 맞서 바람 방향으로 뻗고 바람에 쏠린 상단의 대나무 줄기와 댓잎이 활처럼 팽팽하니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강한 시련에도 꺾이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잘 표현하고 있다.

화면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과 은은한 여운이 조화와 대비를 이루고 있는 수작이다. 탄은의 묵죽 가운데 최상의 작품이고 탄은이야말로 역대 최고의 묵죽화가이니 역대 최고의 묵죽 명품으로 평가된다.

사임당의 묵죽은 비교적 가느다란 두 그루 대나무를 각각 농묵과 담묵으로 묘사하였다. 담묵으로 그린 대나무는 농묵으로 그린 대나무의 그림자 같은 역할을 한다. 댓잎은 네 개가 한 조를 이루는데 그 가운데 아주 작은 것도 있어서 도식적인 느낌이 없이 자연스럽다.

가느다란 대나무의 몸집이라든가 작은 잎들이 섞여 그려진 사실성으로 볼 때 아마도 강릉 친정집 뒤뜰의 오죽을 사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대나무 마디는 갈고리 형태가 아니고 거의 직선적으로 끝이 약간 올라가도록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사임당의 묵죽이 탄은의 「풍죽도」에 보이는 농묵과 담묵의 대조 기법을 선도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작은 지폐 한 장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길 수 있고 상징성이 크기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5만 원권의 주인공인 사임당은 그 삶보다는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현모양처, 편히 친정살이 하며 여유롭게 그림을 그린 양반가 여인 등의 단편적인 이미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이미 5만 원권에 담겨 있는 이 이야기들조차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요. 곧 사임당을 내세운 드라마도 방영된다고 하는데, 이 기회에 인간 사임당을 바로 보고 새로운 눈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과연 화폐의 액면가가 화폐 인물의 가치를 보여 주는 것일까요? 진정 사임당은 5만 원권 지폐의 인물로 걸맞지 않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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