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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오컬트문화

총림과 선지식

작성자오비이락|작성시간18.08.22|조회수57 목록 댓글 1

총림(叢林)은 종합수행도량이다. 조계종 총림법은 “총림이란 선원, 승가대학(승가대학원), 율원, 염불원을 갖추고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8대 총림이 있다. 진제 종정예하가 방장을 겸하고 있는 팔공총림 동화사를 제외한 7개 총림 방장 스님들의 이력과 가르침을 살펴봤다.

선원, 승가대학, 율원
염불원을 갖추고 대중 지도

■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
1945년 송광사 구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50년 해인사에서 상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종 전계대화상을 역임했으며,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걸쳐 송광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다. 구산스님의 뒤를 이어 1997년 조계총림 제5대 방장을 맡고 있는 보성스님은 ‘하심(下心)을 수행의 첫 번째 덕목으로 강조한다. 하심이 기도와 수행의 시작이라는 스님은 또한 율사로도 이름이 높다.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며 승가를 지도하고 있는 스님은 달라이라마, 틱낫한, 대만 성운대사 등 세계적 고승과 오랫동안 깊은 교분을 쌓아왔다.

■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스님
<지리산 무쇠소>라는 회고록의 제목처럼 평생을 엄격하면서 원칙을 강조하며 살아온 스님이다.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스님은 193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로 범어사에 입산해 1948년 동산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1956년 비구계를 받았다. 경율론 삼장에 출중해 고봉스님에게 강맥을, 석암스님에게 율맥을 전승받았으며, 일생동안 후학양성과 수행, 포교의 길을 걸었다. 종단이 혼란에 빠졌던 1998년 총무원장으로 활동하며 종단을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다수의 경전번역서, 수필 및 시집, 전통문화에 대한 해설서를 편찬하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조예가 깊다.

■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지유스님
1949년 해인사에서 수선안거 이래 67안거를 성만하며 평생을 수행에 매진한 선지식이다. 원효암에 주석한 이후 눕지 않고 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 일화와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하기 위해 의사가 마취제를 놓으려 하자 거절한 채 그대로 수술을 진행했다는 일화는 수행자로서 면모를 엿보게 한다. 은사 동산스님의 뜻을 따라 평생동안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은 지유스님은 늘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을 강조한다. 2013년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으로 추대된 이후 범어사를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간화선 수행 중심도량으로 이끌며 수좌 스님과 불자들의 지도에 전념하고 있다.

■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스님
1952년 통도사에서 경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한 원명스님은 1969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경봉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30여 년 간 곁을 지키며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정진했다.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외운들, 한 경계를 얻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스님은 출재가를 떠나 자성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늘 강조하며 사부대중에게 가르침을 전했다. 통도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한 뒤 2007년 통토사 3대 방장으로 취임했다. 현재 비로암에서 머물면서 통도사 대중의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풍을 진작시킨 경허ㆍ만공스님의 선맥을 계승한 혜암ㆍ벽초ㆍ원담스님에 이어 제4대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으로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제11대 중앙종회 의장에서 물러난 뒤 문경 봉암사와 수덕사 정혜선원 등지에서 한철도 빠짐없이 방부를 들여 정진하며 운수납자의 지남이 되고 있다. 원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55년 혜원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1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서울대 원예학과를 졸업한 수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은 수덕사 주지와 중앙종회 의장,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 8월 덕숭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스님
1961년 석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선스님은 ‘수행과 사회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실천한 선지식이다. 지선스님은 1980년대 고통 받는 민중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불교 운동에 뛰어들었다. 특히 6월 항쟁이 절정에 달했던 1987년 6월10일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 무효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불교계는 물론 시민사회,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앞장서 활동을 했다. 6월 항쟁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참선 정진을 멈추지 않았던 스님이다. 산중 선방으로 돌아간 스님은 이후 백양사 유나 소임을 맡았으며 2013년 고불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 해인총림 해인사 방장 원각스님
경남 하동 출생으로, 1962년 해인사 산내 암자 약수암에서 전 종정 혜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7년 해인사에서 구족계를 수계했다. 경봉, 서암, 월산스님 등 회상에서 공부하며 해인사, 통도사 극락암, 송광사, 상원사, 범어사, 불국사, 상무주암, 강진 백련사 등 제방선원에서 47년여 간 수행으로 일관했다. 용성-인곡-혜암스님의 선맥을 이은 스님은 지난 3월 해인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밥 많이 먹지 마라’ ‘공부하다 죽으라’ ‘안으로 공부하고 남을 도와라’ ‘주지 등 소임을 맡지 마라’ ‘일의일발로 청빈하게 살라’는 다섯가지 가르침을 실천하며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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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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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월아 | 작성시간 18.08.22 한국불교에 이렇게 대단한 스님들이 많은데 왜 큰 발전이 없는 것일까요?
    뿌리가 깊은 나무는 태풍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푸르름을 과시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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