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집착 사이? 인상파 미술의 두 거장 반 고흐와 고갱
인상주의 미술은 초기 비평가들의 혹독한 악평을 받았으나 차츰 프랑스 미술의 주류로 자리잡게 됩니다. 인상주의가 프랑스 미술계에서 주요 미술사조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인상파 화가들이 서로를 존경하고 친하게 지내며 교우관계를 맺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 고흐와 고갱, 클로드 모네와 드가 그리고 피사로와 바지유 등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도 교류를 통해 예술적 지평을 넓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반 고흐와 고갱의 일화는 매우 유명한데요. 오늘은 인상파의 두 거장으로 꼽히는 반 고흐와 고갱의 교우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예술가 공동체를 운영하고 싶어한 반 고흐는 평소 존경하던 화가인 고갱을 설득해1888년부터 프랑스 아를의 작업실 ‘노란 집’에서 고갱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성격부터 미술에 대한 견해까지 너무도 달랐기에 같이 생활한 지 얼마 안 되어 잦은 다툼을 하게 되고 결국 고갱은 반 고흐의 곁을 영영 떠나버리고 맙니다.
사실 두 사람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라 상대방의 작품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동료였습니다. 고갱은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주선으로 반 고흐를 처음 만난 후 교류하게 됩니다. 반 고흐는 오래 전부터 자신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 살고 싶어했는데 그 중 고갱을 가장 존경했고 또 잘 맞는 동료라고 생각했습니다.
반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 벽을 노랗게 칠한 ‘노란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고 고갱을 초대합니다. 무려 5개월 동안 고갱에게 편지를 썼고, 반 고흐의 동생인 테오도 그와 함께 고갱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결국 고갱은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반 고흐는 고갱과 함께 지낼 노란 집을 정성스레 꾸밉니다. 해바라기 꽃을 좋아했던 그는 고갱과 함께 그림을 그릴 작업실을 해바라기로 가득 장식하고 싶어했습니다. 반 고흐는 여러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는데, 고갱이 쓸 방에도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두었습니다. 불에 타는 듯한 강렬한 해바라기 12송이를 묘사한 명작 <해바라기>가 바로 반 고흐가 고갱을 위해 준비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반 고흐가 바란 것과는 달리 두 사람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가난한 네덜란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반 고흐는 굉장히 내성적이면서도 격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로는 자화상을 즐겨 그렸고 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묘사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반면 고갱은 선원을 꿈꿨던 사람으로 낯설고 뜨거운 열대의 땅과 문화를 동경했고 반 고흐보다는 냉소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출신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은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묶여있던 셈입니다.
두 사람의 마찰은 그림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반 고흐와 고갱이 한 여인의 초상화를 다르게 그린 일화가 유명한데요. 그 여인은 바로 반 고흐가 처음 아를에 왔을 때 묵었던 ‘카페 드 라가르Café de la Gare)’의 주인인 조셉 지누의 아내입니다. 반 고흐는 아를에 묵는 동안 많은 도움을 준 지누 부인에게 전통복장을 입히고 책을 소품으로 제공해 평소 자신이 감사히 여기던 지누 부인에게 경의를 담은 초상화를 그려냈습니다.
Night Café at Arles, 1888, 폴 고갱
반면 고갱은 지누 부인을 다르게 담아냅니다. 그는 지누 부인 앞에 책이 아닌 싸구려 압생트 술병을 두고 한쪽으로 쏠려있는 눈동자와 술에 취해 책상에 기대고 있는 포즈로 그렸습니다. 반 고흐의 초상화와 비교했을 때 지누 부인을 경박하게 표현했죠. 지누 부인 뒤로 보이는 술꾼들은 반 고흐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이 반 고흐의 지인들을 조롱하는 고갱의 표현이 거침없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붉은 베레모를 쓴 폴 고갱, 반 고흐. 1888
자화상에서도 두 사람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그 시대 인상주의 화가들은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보내며 친분을 쌓아갔는데요, 반 고흐와 고갱은 노란 집에 함께 살기 전부터 존경의 표시로 서로 초상화를 그려 보내주곤 했습니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폴 고갱 1888
그런데 고갱이 노란 집에서 살던 시기에 그린 반 고흐의 초상화는 몹시 흥미롭습니다. 반 고흐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는 시든 듯 쳐져 있고 그림을 그리는 반 고흐의 표정도 어딘가 멍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반 고흐와 조금 다르지요.
자화상. 반 고흐. 1889
반 고흐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늘 두 눈이 빛나 날카로운 인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풍경화와 초상화를 비교해보면 두 사람의 미술적 견해와 시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반 고흐는 고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함께 몽펠리에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도 두 사람은 그림에 대한 견해 차이로 다투게 됩니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갱과 나는 들라크루아와 렘브란트 등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어.
논쟁이 너무나도 격렬해서 우리는 머리가 피곤해져
마치 전류가 다 빠져나간 전지 꼴이 되었어. 마법에 걸린 것 같았지.
프로망탕이 정확히 말했듯이, 렘브란트는 무엇보다 미술가이고,
들라크루아는 신앙인이야. 제기랄, 그것으로 사이 좋게 되길 바랐는데."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中
결국 고갱은 반 고흐의 곁을 떠나고 두 사람의 짧은 동거가 끝나게 됩니다. 이후 반 고흐는 정신병원과 집을 오가다가 1890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반면 고갱은 작품을 팔아 마련한 여비로 1891년, 남태평양 중부 타히티 섬으로 떠나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반 고흐의 자살에 대해 알게 된 고갱은 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에는 "고흐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예술가였고, 그의 그림 속에서 그의 눈과 마음을 볼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격도 화풍도 너무나 달랐지만 서로를 존경했던 반 고흐와 고갱. 두 사람이 아를의 노란 집에서 함께 지낸 시간은 단 60일에 불과했지만 이 기간 동안 무려 6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반 고흐. 1889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린 <귀가 잘린 자화상>은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그의 명작 중 하나입니다. 아직까지도 그가 왜 자신의 귀를 잘랐는지에 대한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데요.
후세 사람들은 반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로 그가 앓고 있던 정신병, 집착적인 예민한 성격과 함께 서로 다른 예술 견해를 가진 고갱과의 불화와 싸움으로 홧김에 귀를 자르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 출처 라뜰리에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