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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예술 & 취미

남종화와 문인화

작성자오비이락|작성시간18.08.22|조회수256 목록 댓글 0

진경산수화와 남종화와의 관계

남종화(南宗畵)는 동양화의 양대 분파 가운데 북종화(北宗畵)에 대비되는 화파로, 한국에서는 남종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 문인화(文人畵)라는 말로 통용된다.

남종 선불교에서 주장하는 돈오(頓悟, 처음부터 바로 대승의 기고 묘한 교리를 듣고 단번에 깨닳음) 개념을 화가의 영감과 인간의 내적 진리의추구를 중요시하는 문인 사대부화(士大夫畵)의 이론과같은 맥락으로 파악하여, 사대부 또는 문인들의 그림을남종화로 구분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동기창의 남북종화 이론이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후 남종화(南宗畵)와 문인화(文人畵)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남종화풍의 특색은 천진하고 감흥을 존중하며 산모양,나무 그리는 법, 피마준(披麻皴, 베 섬유를 푼 것 같은 꺼칠꺼칠한 감촉을 가지며,산의 겉면을 표현하는데 적용) 등 부드러운 준법(皴法, 동양화에서 산악, 암석 따위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쓰는 기법)을 사용한 수묵 위주의 문인화적 화풍이다.

반면 북종화는 ‘진경산수화’라는 독창적 화풍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남종문인화가 꾸준히 확산되어 진경산수 자체 내에서도정선 이후 모든 화가들이 미법산수(米法山水, 선으로 윤곽을 그리지 않고 산의 모양이나 나무의 가지, 줄기를 먹을 번지게 하여 그 위에 다시 먹으로 쌀 알 모양의 점을찍어서 그리는 수묵화법)를 위시한 중국 남종화의 준법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18세기 산수화에서 중국의 여러 남종화가들이 양식을답습하였다면, 19세기는 그림들이 서예성을 강조한 소략한 스케치풍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다.

추사 이후 조선의 남종화는 더 이상의 발전을 못하고 조선시대 말기 화원들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양식으로 간주되어 남종화 본연의 취지나 정신에서 멀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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