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추석이면 언제나 찾아왔던 액션영웅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감소하기는 했지만, 예전만 해도 추석이나 설날 등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만 되면 성룡 영화를 하나씩은 개봉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었다. TV에서도 최소한 성룡이 출연을 한 영화 한 편씩은 꼭 틀어줬다. 사실 지금도 케이블에선 성룡이 출연을 한 영화를 심심찮게 틀어준다.
1980년대 방영판에서는 주로 배한성이 성룡을 더빙했는데 《유성검의 대결》(왕우 주연에 성룡 악역. 재미있게도 더빙이 배한성-양지운 컴비였다)이나 《권정》, 《소권괴초》, 《사제출마》 같은 방영판에서 연기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중반부턴 장세준이 주로 연기하면서,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나 《미라클》, 《용적심》, 《쾌찬차》, 《용형호제》 같은 영화에서 연기했다. 장세준이 1997년 8월 불의의 여객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후에는 홍시호 (SBS, MBC), 김일(KBS)을 주축으로 가끔씩은 권혁수 (MBC), 윤복성(SBS), 이재용(KBS), 박지훈(MBC) 등 여러 성우가 번갈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취권》은 거의 필수요소 수준으로 꼭 집어넣었다.
무명이었던 젊은 시절,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홍콩 합작의 영화를 여러편 찍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에도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많은 고생을 했고, 덕분에 한국어가 꽤나 유창해서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이는 진짜 한국인으로 오해할 정도. 홍콩 구룡반도의 '스타의 거리'에 있는 그의 동판을 보면, 핸드 프린팅과 함께 본인이 직접 쓴 4개국어로 사인이 적혀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어.
MBC의 《영원한 따거 성룡》이란 프로에서 그의 여러 가지 면모를 보여줬다. 한국은 불국사나 창덕궁 등에서 로케 촬영을 하게 되면서 지내게 되었고, 이 당시 한국 음식과 문화를 익혔다고 한다. 방송 중 식사로 육개장을 먹는데, 정말 빨리 먹는다. 먹고 나선 휴지로 자리를 깨끗이 닦는다…! 이 장면 후에 고아원 어린이들과 축구를 하고 짜장면을 먹는데, 김치를 달라고 귀여운 투정도 부린다. (근데 자기가 좋아하는 배추김치가 아니라 생소한 열무김치가 나오자 잠깐 시무룩해 하지만 성무룩, 싫은 내색 없이 맛있게 먹는다.)
자신이 한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할 적에 하루 종일 쫄쫄 굶은 날이 있었는데, 이날 밤에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가 길가에 걸터 앉아 소리죽여 훌쩍거리고 있던 와중 어떤 한국인 부부가 자신에게 육개장 한 그릇을 사주었고 그 때의 감동과 고마움을 잊지 못 한다고. 당시는 한국어가 많이 서툴 때라 그저 고마움의 표시만 했다고 하는데 그게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고 아직까지도 고마워하고 있다고 한다.
부작용으로 그 육개장의 맛을 잊지 못해 아직도 한국에 올 때면 꼭 육개장을 먹고 간다고 한다. 한국 예능에서 A(음식이름)vs육개장을 고르는 게임을 할 때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항상 육개장을 고를정도.
당시에 한국 여성과 사귀며 약 8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에 인기배우였던 정윤희와 열애설이 나기도 했지만 이것은 사실무근으로 판명. 후에 폐간된 영화 잡지 《로드쇼》와의 인터뷰에서는 그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했었지만, 여성쪽 집안의 반대로 결국 헤어졌다고. 그리고 1984년에 대스타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몰래 그녀를 다시 만났다고 했다. 이미 그녀는 유부녀가 되었지만, 서로 오래전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무릎팍도사》에서도 그 여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만약 그 시절에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계속 연락을 취했을 것이고 아마 결혼했을 거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어도 이 장거리 연애 덕분에 능숙해졌다고 하는데, 당시 장발단속에 걸렸다가 한국어가 능숙해 도리어 한국인이 중국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냐며 경찰서로 끌려간 적도 있었다고. 과거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할 정도의 시절을 겪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근검소박한 생활 태도를 보여줬다. 또한 이 방송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콜렉션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취권은 코믹한 무술을 만들려던 성룡이 술에 취한 채로 펼치는 권법을 만들면 어떨까 궁리하면서 동작을 하나하나 만들다가 탄생한 무술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중국의 지당권 계열 무술 중에 이미 취팔선권이 존재한다. 시조가 바로 수호전의 노지심. 거기에 다른 유파로는 이태백류가 있다는 말까지 있는데…이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인 듯. 물론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접한 취권의 동작과는 사뭇 다르다. 취팔선에서 '술'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독자적으로 개량한 것으로 보는 게 맞을 듯.
한편, 신인 시절에 최무룡과 한국-홍콩 합작영화에서 대결을 펼친 적이 있는데, 훗날 《신화》에서 최민수와 대결, 보기 드물게 부자 2세대와 맞겨뤄본 사나이가 되었다. 그 밖에도 한국에서 촬영하거나 한국-홍콩 합작영화에서 여럿 나왔는데, 이 시절 악당 1, 2, 3으로 나오던 배우 가운데 조춘도 나와서 성룡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다.
한국에 오래 체류했었고 한국 여성과 국제연애까지 했던 덕분에 한국말과 한국노래를 꽤 할 줄 알았다.
1989년, 영화 《미라클》 홍보를 하러 한국에 왔는데, 당시 한국민속촌을 한복을 입고 다니다가 때마침 수학여행 온 일본 여학생들과 만나서 여학생들이 성룡의 사인을 받느라 난리법석이 일어난 적도 있다. 이 당시에 KBS2 방송에 나와 유쾌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내가 한국말 많이 잊어서 많이는 못해요." 라고 웃으며 인터뷰를 했었다. 사실 과거 일본에서도 성룡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유투브에도 성룡의 일본방송 출연 영상이 많이 남아있다. 한국보다 더 한국을 대표하는 연예인이 욘사마라면, 홍콩영화의 상징은 성룡이라고 봐도 큰 이견은 없을 정도.
2009년에 자신이 소유한 전 재산에 대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이때 기자가 "아들이 있으면서 왜 물려주지 않고 기부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자, "내 자식에게 능력이 있다면 내가 물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벌 것이고, 내 자식에게 능력이 없다면 물려줘봤자 탕진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또한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김장훈에게 직접 한국어로 편지를 보내(쓴 사람이 유승준…) 그의 기부활동을 응원하고, 자신도 4,0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4,000만 달러란 금액도 금액이지만, 애초에 김장훈은 타인에게 돈을 받아 기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 실제로 제의를 했더라도 김장훈 측에서 안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비공식으로 종종 내한하여 고아원에 기부를 하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군입대를 피해 해외도피한 스티브 유의 중국 활동을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2010년에 개봉한 《대병소장》(大兵小將: Little Big Soldier)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그다지 이슈가 안됐지만, 스티브 유의 군입대 기피를 지적하는 이들 중에서 이런 부분을 들어 성룡까지 까는 이도 일부 있었다.
2011년 《런닝맨》에서 영상을 통해서 출연한 적이 있었다.(홍콩 특집) 미션 지령자로서 출연하여 유재석을 메뚜기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3월 2일 녹화본에서는 슈퍼주니어 시원과 함께 실제로 출연했다. 그리고 해당 화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귀요미스러움과 입담, 예능감으로 말도 통하지 않는 멤버들과 잘어울리며 웃음을 선사했다. 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이 딸리는지 후반부엔 달리지 못하고 걸어다니기도 했다.
의외로 유창한 한국어 발음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어려보인다는 말에 자신이 40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멤버들이 항의하자 "그럼 41?" 하는 모습이 압권. 결국 45살로 합의를 봤다. 거기다 하하의 폰번호 요청에 "넌 여자 아님!! 여자만 됨!"이라고 하며 송지효를 보다가 월요남친의 견제에 한판 붙자며 결투자세를 취하는 등 출중한 예능감을 뽐내셨다. 은근히 욱하는 기질도 있어, 유재석이 실수를 하자 괴성을 지르며 퍽하고 한대 치다가 다음턴에서 본인이 실수를 하자
"어 미안^^"이라고 사과를 하며, 유재석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동네 친한 옆집 형님 같은 따거…
알람토크 때에는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불리한 질문을 하며 상대팀들을 탈락시키는 등 종횡무진 활약. 막판에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말에 사랑해요!!!~♥ 쪽쪽쪽쪽쪽!! 하며 키스를 날리는 모습이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귀요미하다.
한때 한국에선 대박 배우였고, 1979년에 개봉한 《취권》만 해도 무려 서울관객 89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대박을 거둬들이면서 흥행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 그렇게 90년대 후반까지도 기본은 하던 흥행세를 이어 나아갔으나, 2000년대 와선 한국에서도 한풀 흥행이 꺾이면서 《신해혁명》처럼 개봉도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2013년엔 권상우랑 합작으로 나와 화제가 된 《차이니스 조디악》 개봉 전에, 한국 방문 및 한국 공중파 방송에 나와 열심히 얼굴을 드러냈지만, 전국관객 27만에 그치는 기대 이하 흥행을 기록했다.
이병헌의 결혼식에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는데, 그때도 유창한 한국어를 선보였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해피투게더》에 성룡은 나르샤, 최시원과 같이 출연하여 야간매점 메뉴 등극 까지 성공했다. (다음 영화에 초청하겠다고 해서 출연진들을 포섭했으나, 사실은 그냥 구경 오게 해주겠다는 페이크였다)
성룡의 친한파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로, 홍콩에 가면 할리우드처럼 명예의 거리가 있는데, 거기에 있는 성룡의 핸드프린팅과 사인에는 한글로 '성룡'이라고 함께 적어 놓고 있다. 그리고 2014년 1월에는 《폴리스 스토리 2014》의 내한 레드카펫 행사에서 스스로를 半한국인으로 말하기도.
2천년대 중국에서 우리도 헐리웃과 한류를 넘어서자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가 한류 폄하 발언을 했다고 기사 가 난 적이 있는데, 한밤의 tv연예에서 성룡 자택으로 직접 취재를 하러가자 그들을 맞이하면서 철저한 오보이자 오해라고 반박한 적이 있다. 이때 재미있었던 점은 MC였던 서경석이 성룡팬인지 대놓고 취재화면 내내 성룡 쉴드를 쳤다는 것. 그 정도로 그 나이대의 한국 남성들에겐 주윤발과 함께 어린 시절의 우상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통영시 명예시민 겸 홍보대사다. 해저터널이나 미륵산 케이블 카에 성룡이 직접 쓰레기를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14~15년에 성룡 영화들이 국내에서 우르르 재개봉이 이뤄졌다. 그런데 70년대 영화 <소권괴초>나 <비도권운산>을 비롯하여 <프로젝트 A>, <쾌찬차>, <폴리스 스토리>, <대복성> 등이 재개봉하는 건 좋은데 전국에서 1~2개 정도 상영관에서 1, 2번 정도 대충 상영한 것이 전부였다. 홍보도 거의 없었고 포스터도 정말로 대충 만들었다. 사실상 꼼수 개봉으로 대충 상영한 거다. 덕분에 관객이 무려 1~10명 수준이었다.
그나마 <비도권운산>이 전국 342명을 모았고 <미라클>이 전국 5천명을 기록했다. 그런데 굳이 위안(?)을 삼자면 성룡 영화 뿐만 아니라 오래된 재개봉 영화들이 대부분 이런 취급을 받는게 현실이다. 물론 재개봉하여 되려 첫 개봉보다 대박을 거둔 (50만에 가까운 전설인) <이터널 선샤인>이라든지 전국 30만 관객을 넘긴 <타이타닉>이나 <올드 보이>같은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