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 무대 윤복희와 루이 암스트롱】
한국 사회에서 "해방'이란 Japan standard에서 American standard로 기준이 바뀌었을 뿐,진정한 해방은 되지 못했다.
American standard의 위력은 대단했다.
미군 주둔과 더불어 밀어닥치기 시작한 미국의 대중문화는 여러 방면에서 한국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따라야 할 표준으로까지 여겨졌다.
미군 PX에서 비합법적으로 빼낸 물건들은 최고급으로 거래되었고,꿀꿀이죽이나 다름없었던 미국 음식 잔반탕인 '주대찌개'는 많은 사람들이 먹고 싶어하는 특식이었다. 한국의 악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미군 부대에서 공연 품팔이를 시작하면서,
미8군 무대는 이후 한국사회에 정착한 모든 서양식 대중음악의 발생지가 되었다.이 과정을 통해 한국인들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미국화되어갔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기준이 되어버린 미국 대중음악인의 공연을 본다는 것은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이고, 엄청난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미국의 대중음악 스타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1963년 4월 8일 한강변에 주한미군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위락시설을 갖춘 대규모 호텔인 워커힐호텔이 개관했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 초청공연으로 미국 재즈계의 대표 스타 루이 암스트롱의 내한공연이 개관일부터 2주 동안 펼쳐졌다. 2주일간 하루 2회씩 공연했고, 모두 3,863명이 관람했다.
이때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미8군 무대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가수 윤복희가 루이 암스트롱과 한 무대에서 공연한 것이었다. 윤복희는 루이 암스트롱 흉내로 미8군 오디션을 통과해 에이원쇼에 소속되었고, 미8군 무대에서 미군들의 환호를 받는인기가수였다.
그 소문은 한국에 오기 전에 벌써 루이 암스트롱의 귀에 들어왔다.그는 윤복희를 보자고 했고 그녀를 보자 자신의 노래를 따라해보라고 했다.
윤복희의 노래를 들은 루이 암스트롱은 윤복희의 재능에 감탄해서 같이 무대에 설 것을 제안했다.
소속 회사인 에이원쇼는 발칵 뒤집혔다.
세계적인 스타의 공연을 보기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쇼단의 최말단 가수가 같은 무대에 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쇼단장은 윤복희의 모든 스케쥴을 취소시키고 그녀를 루이 암스트롱 무대에 세웠다.
윤복희는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휘했고,이에 반한 루이 암스트롱은 윤복희를 어깨에 태우고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