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게장을 밥도둑이라고들 합니다.
일단 먹기 시작하면 다른 반찬 없이 간장 게장만으로 밥을 뚝딱 해치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간장 게장의 역사도 오래 되었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서쪽 바다에서 풍성하게 잡혀 올라오던 것이 꽃게였고, 알이 가득 찬 싱싱한 꽃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한 비법으로 우리 조상들은간장 게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섬진강이나 금강 등의 강에서는 싱싱한 참게를 이용하여 간장 게장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이 창안해 낸 발효 음식인 간장 게장은 가을에 잡아들인 게를 겨울까지 먹을 수 있는 슬기로운 요리 비법이었지요.
참게는 가을에 잡아들이지만, 서해의 꽃게가 가장 맛있는 달은 5월입니다.
5월이 되면 꽃게에 살이 통통히 오르고 알이 꽉 차 있어 게장을 담그기에 알맞습니다.
간장 게장을 담그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민간에서는 육수를 만들 때 간장에 마늘, 양파, 생강을 넣고 끓이는데 더 맛이 나게 하기 위해 표고버섯, 멸치 육수, 정종 등을 넣기도 합니다.
간장 육수를 알맞게 달이면 잘 식혔다가 항아리 등에 손질한 꽃게를 넣고 꽃게가 육수에 완전히 잠기도록 넣어 줍니다.
하루 정도가 지나면 간장 육수만을 따라서 다시 펄펄 끓여 달인 후, 식은 간장 육수를 다시 부어 줍니다. 이렇게 세 번 정도 반복하다보면 게가 숙성되기 시작하고 사나흘 뒤부터 꺼내 먹으면 됩니다.
조선 시대에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 중 하나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 종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종가의 음식으로 간장 게장을 담가왔습니다.
특히 논산 파평 윤씨(坡平 尹氏) 종가에서 논산의 금강 줄기에 속하는 노성천에서 잡아들인 참게로 담근 노성 참게 간장 게장은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습니다.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니만큼 보통 민가의 간장 게장과는 차별화된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일반 사람들은 귀해서 쉽게 먹기 어려운 소고기를 잡식 어종인 게에게 먹여 간장 게장을 담갔을 때 육즙이 충분히 우러나오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고기를 다져서 먹인 참게를 손질해서 육수를 붓고 항아리에 하루 정도 재워둡니다. 마늘, 생강, 파 외에 밤과 참기름이 들어간 육수를 게의 입을 벌려 게딱지 안까지 골고루 들어가도록 넣어 줍니다.
게장은 주로 벼 베기가 한창인 가을에 담갔는데, 그 이유는 약 290여 년의 세월동안 파평 윤씨 댁에서 담가온 '교동전독간장'이 이때 가장 맛이 좋기 때문입니다.
'교동전독간장'에서 '교동(校東)'은 노성 파평 윤씨 종가가 노성 향교 동쪽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전독'이란 종가에서 전(傳)하는 항아리인 독에 담그는 간장이라는 뜻입니다.
간장 게장 만드는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 육수를 붓고 2~3일이 지난 후, 간장 육수만 민간에서 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따라내어 끓였다가 식힌 다음 다시 게에 부어주는 일을 두세 번 반복합니다.
또 소고기를 게에게 먹이는 것 외에도 색다르게 게장을 담갔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보면 게에게 닭의 생살을 2~3일 동안 넣어 주면 게가 닭즙을 먹어 유난히 장이 많고 그 맛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닭을 구하기 어려울 때는 두부를 넣어도 된다고도 나와 있습니다.
⚜ 숙종과 경종, 그리고 영조
그런데 이 맛있는 간장 게장과 관련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안타까운 이야기들도 전해옵니다.
나주의 유생 강철주의 처인 김씨가 죽은 남편을 따라 목숨을 끊기 위해 목을 매었으나 집안 사람들이 구출했고, 장사(葬事) 지내는 날에도 자결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대상(大祥) 날 결국 김씨는 게장과 꿀과 복어알을 함께 먹은 뒤 시어머니에게 간청하여 남편이 세상을 떠난 방으로 옮겨가 숨을 거둔 사례를 정조 10년 1786년 11월 11일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아 간장 게장은 맛이 매우 좋지만 상극이 되는 음식과 함께 먹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게장을 조선 시대에는 '해장(蟹醬)'이라고 했는데, 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 역시 이 해장을 먹은 후 복통과 설사가 심해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더욱이 그 게장을 바친 사람은 다름 아닌 왕위 계승자인 세제이자 경종의 배다른 동생인 연잉군(延礽君)이었습니다.
경종(景宗)이 간장 게장을 먹은 후 닷새 만에 숨을 거두자 연잉군은 조선 제 21대 임금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국왕의 자리에 있었던 영조(英祖)입니다.
하지만 보통 왕위 계승자는 왕의 자식이 되는 것이 마땅했던 때에 연잉군(延礽君)은 어떻게 경종이 왕위에 오른 지 1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세제(世弟)에 책봉될 수 있었을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인과 서인의 암투, 그리고 서인 간의 붕당(朋黨)으로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는 상황을 먼저 알아두어야 합니다.
경종과 연잉군의 아버지인 숙종(肅宗)은 재위기간 동안 세 차례나 급작스럽게 정국을 교체했는데, 이것을 '환국(換局)'이라고 합니다.
<출처 - 음식 속 조선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