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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예술 & 취미

조선시대의 모자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4.21|조회수912 목록 댓글 0

☆ 모자(帽子)

예의를 갖출 경우나 추위와 더위를 막기 위해 머리에 쓰는 물건

모자의 나라, 조선

신라에서는 유자례(遺子禮)라고 하는 관과 흑건을 썼다. 통일신라 시대는 남자는 복두와 소립(素笠)을, 여자는 관(冠)을 썼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조선은 ‘모자의 나라’로 불렸다. 계절·신분·성별 등에 따라 온갖 꼴의 모자를 갖춘 조선 특유의 ‘쓰개 문화’ 덕분이다.

100여 년 전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이렇게 전한다.
“단편적인 묘사만으로 조선 모자의 가치를 다 보여주기 어렵고 품위에도 맞지 않다.”

(남자 모자)

1) 흑립 (黑笠)

<양반들의 외출용 모자>

사대부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모자로 선비들한테는 필수품이였던 모자다.
조선 사대부들이 사람을 대할때는 무조건 썼던 모자

앉으면 몸 전체 덮을 정도로 커진 갓
…왕실서 ‘축소 정책’ 썼답니다 뒤로 갈수록 커지다 대원군 때 작게 변해....

갓의 본래 이름은 ‘흑립(黑笠·검은 갓)’이다. 옻칠을 했다는 뜻에서 ‘칠립(漆笠)’이라 부르기도 한다.

태종실록에는" 무릇 대소 관리가 朝會하러 여러 신하가 왕래하던 길에서 비나 눈이 오는 날이 아닌데 갓(笠)을 쓰는 것이 불편하니, 東西 文武관리는 雨ㆍ雪日이 아니면 항상 사모(紗帽)를 써서 조정의 의의를 엄숙하게 하라"

2. 백립(白笠)

국상중에는 백립(白笠)을 썼으며 일반인들은 삼년상을 치르고 담제를 치를 때까지 평량자 대신 쓰기도 하였다.

<국조오례의>에 의하면 국상이 났을 때
졸곡(卒哭)후에 백관(百官)이 착용하도록 하였다.
민간에서는 갓이나 패랭이에 백지나 흰 헝겁을 둘러 사용하였다.

흰색 갓. 조선 초기엔 평상시에도 쓰고 다녔지만 점차 국상(國喪) 때만 쓰게 됐다. 대나무로 엮은 갓에 흰색 천을 둘러 만든다. 국상 때면 모두 백립을 써야 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명성황후는 국상을 두 번 치렀는데, 황현이 쓴 『매천야록』을 보면 두 번의 국상으로 백립 가격이 폭등하자 백성들이
“왕비가 우리에게 무슨 은혜를 줬다고 백립을 쓰느냐”라며 갓에다 흰 종이를 붙이거나 그냥 검은 갓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3.갈모

비가 올때 갓 위에 덮어쓰는 기름종이나 대나무로 만드는 비막이용 모자


4. 망건(網巾)

상투를 쓸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두르는 망건

최고급 제품 재료는 인모(人毛),사람 머리카락.
머리가 길었던 조선 남자들의 경우 긴 머리를 단정히 한 뒤 갓을 써야 했다.

그물 모양과 닮았다는 뜻에서 망건이라 이름 붙였다. 보통 말총으로 만드는데 최고급 망건은 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다. 특히 경남 통영산을 좋게 쳤다고 한다. ‘곱소리’라 불리는 코끼리 꼬리털로 만들기도 했다.

중국에서 유래한 망건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몽고족의 풍습을 없애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나라 때부터 변발 풍습이 유행하면서 더 이상 망건을 만들지 않게 됐다. 망건 생산이 중단되자 조선 망건이 중국에 역수출되는 일이 생겨났다. 중국에 간 조선 사신의 망건이 도난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고 한다.


5. 탕건(宕巾)

벼슬아치들이 쓰는 갓 맵시 잡기용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을 '감투쓴다'하여 벼슬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기도 하는데, 여기서의 감투는 관직의 표상인 탕건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후기 이전에는 벼슬아치만 썼기 때문에 '감투쓴다'가 '벼슬에 오르다' 는 뜻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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