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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예술 & 취미

동서양 건축물 비교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20.08.18|조회수1,066 목록 댓글 0

왜 서양 건축은 솟아오르고,
동양 건축은 확장했는가

왜 서양 교회 건축은 주로 돌을 사용했고 동양은 나무를 사용했을까?
왜 서양에서는 높이 솟아오르는 형상을 강조하여 도달 가능한 한계점까지 석재를 쌓아 올렸으며, 동양은 횡으로 확장하는 형상을 강조하고 주위의 건축물이 대전을 돋보이게 했을까? 왜 서양 건축물의 내부 공간은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반면, 동양의 궁전은 그 내부가 단순한 육면체로 되어 있을까?
왜 서양에서는 건물의 외부 공간이 발달하지 않았는가? 반면 왜 동양의 건축은 자금성에서 보듯이 광대한 영역을 갖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동서양 건축의 기나긴 역사와 그 내력을 깊숙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은 석재와 목재라는 재료의 차이에서도 비롯되는 것이지만, 공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 종교와 사상및 그 표현의 차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금성 태화전(大和殿)의 전체 건축물은 정원 형식에 따라 횡으로 전개되어 있으며 대전(大殿)의 높이도 30여 미터에 불과하다. 장중함과 엄숙함 속에 평화로움, 고요함 등이 함축되어 있는데 천자의 존엄과 인자함, 후덕함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쾰른대성당 탑루 윗부분은 하늘을 찌를 듯 드높이 솟아오른 첨형 지붕으로, 쿠프 왕의 피라미드(146미터)가 4000년 동안 보유했던 세계 최고(最高) 건축물의 기록을 깨뜨렸다. 파리 노트르담성당과 비교할 때 쾰른대성당의 표정은 보다 날카롭고 수척하여, 기독교가 선양하는 탈속의 정신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서아시아인의 궁륭(漆) 발견, 석재 건축의
신기원 열어

서양은 중요한 건축물의 재료로 '돌'을 선택했다. 돌이라는 물건은 넓은 면에 내리누르는 힘이 골고루 가해질 때 거의 무한대로 견딜 수 있다. 하지만 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가해지는 힘에는 버티지 못한다. 돌은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돌의 약점을 탁월하게 보완한 건축 공법이 바로 아케이드다. 절묘한 수학적 계산으로 돌을 둥글게 쌓아 올리면서도 힘을 골고루 받게 만들었다. 이런 방법을 최초로 발견한 이는 서아시아인들이었다. 서양 중세에 오면 첨두 아치(pointed arch)와 리브 볼트 (ribbed vault), 높은 벽을 지탱해주는 성당 외벽에 날개처럼 생긴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es) 등으로 석재 쌓는 공법은 점점 발전해 건축물의 본체를 부단히 위로 들어 올려왔다. 큰 힘을 견디지 못하는 목재의 한계 때문에 동양의 건축물은 서양과 달리 체형이 그리 풍부하지 않다. 또한 내부 공간 역시 변화가 적어 대전 내부는 텅 빈 단순 육면체 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거기에 최대한 미적 처리를 가하여 변화의 운치를 나타내고자 했다.

동양 건축 지붕의 비첨과 붓글씨의 파책

당신은 건축과 서예의 미학적 관련성에 대해 알고 있는가? 오늘날 동양 건축이 그 전형적인 미학을 완성한 시점은 대략 한나라 때다.
이 시기 예서(隸書)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는데, 가로획의 중요성이 명확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둔황(敦煌)에서 출토된 한나라 죽간의 글씨를 보면 가로획은 수직선의 두 배 혹은 세 배에 이른다. 반면 세로획을 그을 때는 붓의 필봉이 대나무의 결, 즉 섬유질의 방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어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나라 죽간 예서의 세로획은 일부러 구불구불한 지렁이처럼 써서 죽간에 수직으로 있는 섬유질이 망가지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붓과 죽간의 재료적 상호작용이 한나라 예서 미학의 독특한 풍격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건축학자들은 요곡, 즉 움푹하고 굴곡진 지붕의 면(面)을 비첨이라고 한다. 지붕의 끝부분을 길게 늘어뜨린 후 다시 위로치솟게 한 모습이 마치 새가 비상할 때 날개를 펴는 것과 같다. 수평에서 솟아오른 비첨은 서예의 가로획과 함께 동시대에 완성된 시대적인 미학의 특징이다. 한나라 목조 구조물인 비첨의 건축은 동아시아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일본, 베트남, 태국의 건축물 모두 서로 그 정도는 다르지만 처마가 위로 치켜 올라가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선을 따라 걷는 것이 동양 건축을 느끼는 방법

동양 건축의 출발점은 선이며 그 완성은 펼쳐져 면을 이루는 군집이다. 회화 작품과 비교해보면, 군집 안의 회랑, 벽, 전당, 대(臺), 정자, 누각, 연못가, 곡선형 난간, 작은 하천, 도로 등은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굵기와 농담(濃淡), 길이가 서로 다른 '선'을 이룬다. 그것은 한폭의 그림'이다.
그 주위의 벽은 액자에 해당하며 거기에는 어떠한 표현력도 없다. 이처럼 커다란 화폭은 사람들이 그 안에 머물러야만 비로소 그 면모를 알아볼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이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건축은 그 감상 방식도 정태적인 '바라봄'이 아니라 동태적인 '유희'다. 사람들은 걸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새로운 정서를 품는다. 또한 각종 선의 엉성함과 조밀함, 짙음과 옅음, 끊어짐과 이어짐의 교차를 느끼고, 선과 선 이외의 공백(정원)이 이루는 허와실의 만남을 체득함으로써 '그림' 전체를 음미하기 마련이다.

동양의 그림에서 어떤 하나의 선이 전체 그림에서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처럼, 건축에서도 단일 건물이 무리에서 벗어나면 그 존재는 근거를 상실한다. 동양 건축의 공간미는 주로 실외 공간의 변화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단일 건축물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 공간이지만, 외벽으로 가로막힌 전체 건축군의 입장에서 보면 내부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하늘을 향해 뚫려 있다.
또한 이 공간이 수평적이라 하더라도 공랑(空), 첨랑(충感), 정자(亭子), 문창 등을 통해 수시로 다른 내·외부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며, 그 공간의 크기와 형상은 '회화' 적이어서 절대적으로 명확한 체형과 체적을 가지지 않는다. “필묵이 닿지 않아도 영기(靈氣)가 허공을 거닐며” 고포(高廟), 논화가(論畫家), “허와 실이 상생하니, 그림이 없어도 묘경(妙境)이 되는”달중광(重光), 화전(畫李)경지라 할 수 있다.

내부 공간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서양 건축의
성취

이처럼 동양의 건축이 펼쳐놓는 외부 공간의 미적 풍경과는 달리 서양 교회 건축의 성취는 내부 공간의 창조에 있었다. 서양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중요한 건축 작품은 로마의 성베드로대성당 (1506~1626)이다. 성베드로대성당 내부 공간은 매우 복잡다변하
여 석재 결구 건축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의 거대 돔 아래에는 전후좌우 네 개의 작은 공간으로 통행할 수 있는 반원형 아치문이 있으며, 아치문 사이에는 사변형의 펜덴티브 호면(孤面)이 있다. 그 호면에는 얕고 둥근 벽감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하나의 완정한 낮은 드럼이 벽감을 단단히 붙잡아준다. 성베드로성당의 내부 공간은 전체적으로 고상함, 건강함, 환락 등의 기조를 지닌다. 이는 고딕 성당이 보여주는 냉정하고, 변화무쌍하며 망아(忘我)적이고 신비로운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인간의 세속적 요구를 체현했지만, 후자는 기독교 신학의 관념을 체현했다.

'군(群)'은 동양 건축의 영혼 결국 동양과 서양 간 문화 관념의 차이가 건축 재료와 결구의 차이를 불러왔고, 건축의 형체와 내부 공간에 커다란 상이점을 결정했다. 바꾸어 말하면, 동양 건축의 나무 결구, 기둥 보 결구는 외부 형체의 다양성이나 내부 공간의 발달 등에 커다란 제한을 가져왔고, 이로써 전체적인 풍격이 부드럽고 따뜻한 경향을 띠었다.

반면 서양 건축은 벽돌이나 석재 결구를 위주로 하여 기둥 보 체계와는 거리가 멀었고, 아치나 궁륭 결구가 발전하여 형체나 공간의 창조적가능성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군(群體) 관념이 발달했다. 이러한 특징은 다양화된 각각의 요소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외부 공간의 과제를 발생시켰다. 단일한 사물들 사이의 강조와 대비, 정원의 흐름과 변화, 공간과 실체의 허실과 조응, 실내외 공간의 융화와 넘나듦 등은 총체적으로 양적 웅장함과 형체적 풍부함을 형성했고 강렬한 분위기를내뿜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말하자면 '군(群)'은 동양건축의 영혼이며, 그것의 통일감을 위해 부분적으로 단일 사물들의다양성을 희생시켰다.

따라서 동양의 건축물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특정 단일 건물의 조형, 즉 그것의 몸체, 표면, 선의 변화, 내부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와 장식의 운용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각각의 건물이 무리 속에서 갖는 역할, 각각 건물 간의 관계 등 건축군의 전체처리 방식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관계에 있다'는 말은 동양 건축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종묘의 지평선 스케일', 무(無)의 반복이
만들어낸 존재의 미학

경복궁 동쪽에 위치한 종묘는유네스코 (UNESCO) 세계 문화유산이다.
특히 정전(正殿)은 수평의 미학이 압도적으로 펼쳐진 동양 건축의 빼어난 수작이다. 일본의 건축가인 시라이 세이이치는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이라 했으며, 또 다른 이는 지평선의 스케일'이라고 했다. 목조 건축물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긴 101미터에 이르는 종묘 정전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평선이 떠오를 만하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수평의 전개는 장중하긴 해도 보는 이를 위축시키지는 않는다. 종묘 정전은 사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건축이다. 단청을 최소화했고, 장식적 요소는 거의 없이 동일한 패턴이 반복된다.

전통 공간으로서 종묘의 미의식을 연구한 김지은 국민대 교수는 “정전의 칸은 하나하나 세어보지 않고는 정확한 수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둥과 칸이 반복되는 무한의 모습으로 현전한다. 반복이 거듭될수록 존재(有)와 무(無)의 구별이 모호해지며, 그 반복의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또 종묘 정전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건 가로로 펼쳐진 선의 미학이 우리에게 익숙함을 주기 때문이다. 들판 저편의 아스라한 지평선은 농민이 허리 한번 펴고 땀을 훔칠 때 쳐다보던 일상의 풍경이기도 했다.

종묘도 정전을 비롯해 영녕전, 공신당, 재궁, 향대청 등 여러 건물들이 길과 어우러져 이루어진 군체(群體)다. 가장 바깥의 문인 외대문으로 들어서면 박석이 깔린 길이 세 가닥으로 나뉘는데 길은 갈라지고 꺾이면서 영혼들의 공간을 조금씩 세속의 눈길에 내어준다. 건물에 가려졌다가 드러나는 하늘은 화폭이 되어 지붕의 율동과 나무의 어우러짐을 담는다. 이윽고 정전으로 들어서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의 탁 트인 월대(月臺)가 펼쳐진다. 단을 높여 천상으로 이어지는 공간임을 암시한 이곳에 서면 신(神)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의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지고 정전 지붕의 수평선처럼 낮게 가라앉아 조용히 물결친다. 고요 속의 폭풍처럼 종묘에 와보면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네(華而不侈)라는 삼국사기의 말이 참 와닿는다

*본 기사는 중국의 건축사학자 샤오모가 동양과 서양의 건축의 차이와 문화의 의의를 다룬 책 『건축의 의경』(글항아리, 2019)을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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