祈雨祭는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하늘에 비는 제사.
기우제의 반대는 기청제(祈晴祭)고 한다.
이쪽은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제사.
기우제보다 빈도는 낮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몇 번 등장한다.
기우제의 역사는 문명의 여명기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가 안오는 날이면 하늘이나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 형태이다.
비가 안내리면 마땅히 대체할 농업용수 공급원이 없던 예전엔,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고 농사가 안되면 식량 자급자족이 힘들어지며
이는 곧 나라의 사회와 경제, 문화 등의 붕괴와 직결되기 때문. 역사적으로 봐도 폭정이나
극심한 차별대우를 견디던 민중들조차 먹을 것이 부족하면 참지 않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대부분의 경우 축생을 제물로 바친다.
좀 심하면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하고
부여에서 날씨가 안 좋을 경우 제정일치의 군장이었던 왕이 그 책임을 지고 하야하거나
산제물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구절상으로 전해 내려오는
기우제는 재물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 다음,
끝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땅먼지가 나도록 뛰놀거나, 강강술래를 하거나 등의 행위도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먼지가 나도록 맞는 것은 것도 아니고...
아니면 짚으로 만든 용을 만들어서 끌고 다니며,
이를 본 용이 화가 내서 비를 내리게 하기도 했다.
어그로? 라오스의 기우제가 특이한데 분방파이라고 해서 하늘에 수제 폭죽을 쏘아올리는 축제를 연다고.
태국에선 원래 동물을 제물로 바쳤는데 동물학대 문제로 요즘은 인형을 쓴다고 한다.
이렇듯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비는 것이 기우제의 주된 골자이므로 가뭄이 닥치면
이는 지도자의 무능함에 대한 신 내지 정령의 징벌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도자들은 어떤 수를 써서든
기우제를 충실히 준비해야 했다.
한번 하고 안되면 그냥 끝인 경우도 있지만
올 때까지 무한정 지내는 기우제도 많다.
한국의 기우제가 대표적.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성공률 100%,
즉 가장 확실히 비를 부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내면 되니까.
기우제도 근성이다?
자기계발서 등을 통해서 이것이 '인디언 기우제'라고 하여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하던 방법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어떤 제사든 임금이 직접 지내는 제사가 가장 정성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기우제도 임금이 직접 지냄이 가장 정성스러운 뜻을 나타내지만, 만약 임금이 기우제를 친히 지냈는데도 비가 안 온다면? 그러면 인간이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가뭄이 극심해도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우제를 지낸 뒤 비가 내리면 신령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다시 제사를 올렸다.
꼭 기우제가 아니더라도 뭔가 신령에게 빈 뒤
이루어지면 감사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보사(報祀)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