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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기누설

황제를 부르는 호칭

작성자오비최이락|작성시간18.04.05|조회수619 목록 댓글 0

왜 '황제'를 알현할 때 '폐하(陛下)'라 불렀지???

역사책이나 시대극을 보다보면 '폐하(陛下)'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는데요. 어느 때는 폐하, 어느 때는 전하, 또 어느 때는 각하라고 부르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과연 '폐하'라는 말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불렀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주역에 따라 건물을 부르는 명칭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동양에서는 격에 따라 건물의 명칭을 달리 불렀는데요. 이에 대한 예를 우리는 아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경복궁에 있는 근정전(勤政殿)이라든가, 종로의 보신각(普信閣)이라든가 하는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옛날에는 건물을 지을 때부터 용도와 사용자의 권위에 따라 격을 매겨, 가장 높은 순서대로, '전당합각(展堂閤閣) 제헌루정(齊軒樓亭)' 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殿)은 건물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건물로서, 왕과 왕비 혹은 왕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건물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근정전, 사정전, 강령전, 교태전 등이 여기에 속하죠. 당(堂)은 전보다 격이 한 단계 낮은 건물로, 자선당, 함안당과 같이 공적인 활동보다는 사적인 활동공간을 지칭합니다.그리고 합(闔)과 각(閣)은 전(殿)이나 당(堂)의 부속건물을 지칭했다고 합니다.

제(齋)와 헌(軒)은 주로 왕족이나 궁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적인 공간을 지칭했는데, 제(齋)는 숙식 등의 일상적 주거용, 헌(軒)은 대청마루가 발달되어 있는 집을 말합니다. 루(樓)는 바닥이 지면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공간에 지어진 집을 말하는데 이층공간이나 다락을 의미하며, 정(亭)은 휴식이나 연희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작은 집을 일컫는 말로 건물의 가장 아래 단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옛날 왕정시대에는 왕을 알현할 때 '전하(殿下)'라 불렀는데, 이는 왕이 기거하는 최고 격의 건물명이 전(殿)이었던 지라, '궁궐 안에 사는 왕'을 의미하는 높임말로써 '전하(殿下)'라 칭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벼슬 품계에 따라 '당상(堂上)', '당하(堂下)'라 불렀죠. '합하(闔下)'는 왕세손이나 대원군을 높여 부르던 칭호였습니다. 여기까지는 극존칭의 대상이 주로 사용하던 공간의 격을 따와서 명칭을 만들었던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현재 대통령에게 붙이는 경칭으로 '각하(閣下)'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아마도 왕정시대와 민주사회를 구분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봅니다.

그럼 '폐하(陛下)'는 무엇일까요?
'폐하(陛下)'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고대 중국의 최초 통일 국가였던 진(秦)나라 때 였습니다. 전국시대의 6국을 정복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진(秦)왕 영정(嬴政)은 중국의 전설적 제왕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두 글자를 따와 스스로를 황제(皇帝)라 칭합니다. 여기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황제라는 의미로 '진시황(秦始皇)'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통일 전의, 그러니까 춘추전국시대의 중국은 주(周)나라 때 정립된 봉건제에 의해 여러 제후국들이 군웅할거(群雄割據)할 당시였고, 각 제후국들의 군주들은 '전하(殿下)라는 경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천하를 통일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 군주를 '전하(殿下)'라 부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궁리 끝에 '폐하(陛下)'라는 경칭을 생각해낸 것이죠.

재미있는 것은 기존의 건물의 격을 딴 명칭이 아닌 다른 의미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폐하(陛下)'라는 단어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섬돌 아래'라는 뜻으로, 좀 더 정확하게는 '궁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전(大殿)으로 오르는 층계 아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는 '전하(殿下)' 처럼 군주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신하가 층계 아래에 서서 "제가 여기에 있으니 제 말씀을 들어주시옵소서."라며 자신을 상대적으로 낮추어 보이는 태도를 상징하는 명칭인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상용되다 보니 아예 황제를 지칭하는 존칭으로 명사화되어 버린 것이죠.

'폐하(陛下)'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황제와 태황제(황제의 아버지나 선대 황제), 태후(황제의 어머니나 선대의 황후)에게만 쓰였다고 합니다. 황후나 태황태후(황제의 할머니)에게는 '전하(殿下)'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황제나 태황태후는 황제보다 윗사람이기 때문에(태후는 다릅니다) '폐하'라 부르지 않고, '황상(皇上)' 혹은 '성상(聖上)'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울러, 진시황 이전의 군주들은 스스로를 가리킬 때 '과인(寡人)'이라 칭했고, 진시황 이후부터는 '짐(朕)'이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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