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가문으로부터 잘못 와전된 용어들.
얼마전 뉴스가 기억나서 옮겨봅니다
이집트는 지역적으로 중동이 아닌 북아프리카에 위치하죠.
이집트에서는 고대로부터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참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에 충무공 시호를 받은 장군이 9분이나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이순신장군을 떠올리듯이 로마의 카이사르(시저)와 관계된 클레오파트라 7세가 대표성을 가지겠습니다
기원전 41년( 2055년전)에는 이집트왕국에서 벌어진 권력투쟁과 골육상쟁의 사건이 있었답니다.
왕권의 욕심으로 가득찬 클레오파트라 7세(우리가 알고있는 그녀)의 명령으로 여동생 아르시노2세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사형되어 묻혀던 그녀의 유골이 터키 에베소의 한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클레오파트라와 아르시노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이었습니다.
발견된 유골의 주인공 ,아르시노2세는 유럽 백인과 아프리카 흑인의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하고있습니다. 이로써 클레오파트라 또한 혼혈일 가능성이 높아진 셈입니다. 그간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백인"인지 또는 북부 "순수한 아프리카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어 왔었지요.
왜 유럽의 백인 피가 섞여 있을까요?
그건 이집트 마지막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 왕가를 출발시킨 그녀의 12대 조상부터가 그리스 백인출신이었기 때문이고 왕가를 보좌하는 핵심권력층들도 모두 그리스계 백인들이었기 때문이죠
클레오파트라 가문의 탄생!
알렉산더대왕이 사망하자 그의 부하장수들은 정복지를 나눠가졌습니다. 프톨레마이우스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는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스스로 파라오로 칭하고 그를 따르는 ‘그리스인’들을 잔뜩 데려가서 이집트의 지배계급을 형성하였으며 이집트의 기득권자들인 사제 계층과 손을 잡았지요.
주요 관직을 그리스인들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관공서의 공문에서는 그리스어를 써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리스어를 모르는 이집트 ‘서민’들은 출세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프톨레마이우스 왕가는 이민족이 건국한 3번째 왕조였으며 또한,이집트에서는 불행하게도 마지막 왕조가 됩니다.
와전된 명언들!
첫째 ,"학문에 왕도는 없다"
기하학은 이집트에서 생겼습니다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였기때문에 논밭의 면적을 새로 측량하고 경계를 정해줘야했습니다.
하지만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인물은
"알렉산더대왕"이나 "프톨레마이우스대왕"과 고향이 같은 마케도니아 출신의 "유클리드"였습니다.
프톨레마이우스 왕은 궁전으로 그를 초대하여 유크리드로부터 기하학을 배우게 되었는데 기하학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웠는지~
하루는 왕이 말하길
"좀더 알기 쉽게 배울 수는 없겠는가?"
유클리드가 대답했다
"전하!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변한 것입니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말!
의술의 시조로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이 있지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Art is long, life is short).'
사실은 여기서 Art는 예술이 아니라 의술입니다
'훌륭한 의사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의술을 연마하라'는 뜻이고요.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더니 짐작을 하겠지만
원래의 뜻이 변해서"의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가 변화 되었던 거지요
둘째,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과연 콧대가 높았는가?^^
사실~
클레오 파트라의 코 길이는 아무도 모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높았다는 이야기는 와전된 것입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의 저서에 최초로 나온 말인데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죠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삐둘어졌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것이다."
그 말이 와전되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것이다." 로 바뀐 것이에요
파스칼의 말은 클레오파트라 코가 삐뚤어져서 추녀였다면 케사르나 안토니우스 같은 로마의 거두들이 그녀에게 반할 일이 없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