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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과 명상

기공의 함의

작성자온쇳대|작성시간16.03.26|조회수31 목록 댓글 0

기공(氣功)의 함의(含意)

기공이란 단어는 고대로부터 있었는데 진나라 허손의 저작 [종교정명록] 의 ‘기공산미’ 1장에 기공을 논술하였으나 그 개념이 광범위하게 채택되지 않았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 이래로 무술계에서 기공이란 단어를 습득하여 사용하였으며 또 한편으로는 ‘내공’이라 불러왔으나 일반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기공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 1950년대에 유귀진 선생의 저술 [기공요법실천]이 세상에 공개되어 흘러나온 이후 기공이란 단어가 널리 알려지고 유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공이라 부르는가?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는 각양각색이며 오해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氣)라는 글자를 호흡의 기(공기)로 이해하고 기공을 호흡(呼吸) 운동으로 해석하여 영어로 번역할 때 Breathing Exercise(호흡훈련 혹은 호흡체조)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일면적인 타당성은 있으나 기공에 대한 단편적이고 편협한 이해이며, 기공이란 단어의 실질적 의미는 이것보다 더욱 광범위하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기(氣)는 하나의 철학적 관념이다. 고대인들은 기가 우주만물의 생생화화(生生化化 나고 또 나며 변화하고 또 변화하는)의 근본이라고 인식하였다.

황제내경의 소문(素門)편에서 ‘기시이생화 기산이무형(氣始而生化 氣散而無形)’이라 하여 생물의 탄생, 생장, 발육, 사망은 모두 기의 작용임을 말하였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장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생함은 기가 모임이요 모임은 생(生)이고 흩어짐은 죽음이다.” 고 하였다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이 분야에서 한발 나아간 장경엽은 “생화의 도는 기를 근본으로 한다.”고 지적하였다.

천지만물은 이것을 떠나지 못하며 사람의 생함은 모두 기(氣)에 의거한다. 이러한 철학사상이 의학에 도입되어 동양의학의 핵심이론인 ‘기화론(氣化論)’을 형성하게 되었다.

동양의학에서는 기를 일컫는 이름이 많다. 영양기는 양기(養氣)와 위기(衛氣), 원기(元氣)는 선천기(先天氣)와 후천기(後天氣), 경락기(經絡氣)는 장부기(腸部氣)와 진기(眞氣) 등으로 분류한다.

‘기공(氣功)’이란 단어에서 ‘기(氣)’ 자(字)는 주로 진기(眞氣)를 말한다. 황제내경의 영추편(靈樞篇)에 ‘진기자(眞氣者)는 천(天)과 곡(穀)의 기를 동시에 받아 몸에 충분히 하였다’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진기란 선천원기(先天元氣)와 수곡(水穀)의 정미(精微) 및 하늘의 기가 결합하여 산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기공에는 ‘혼원기(混元氣)’라는 개념도 관련되어 있다.

‘공(功)’ 자는 공능 혹은 공부를 말한다. 공부는 공저(功底. 연공자의 각종 소질), 공시(功時. 연공시간의 길고 짧음 및 연공의 연속성), 공력(功力. 연공으로 얻은 각종 공능, 능력과 소질의 종합)으로 분류되는데 이 세 가지 중 공시(功時)가 근본이다.

‘기(氣)’ ‘공(功)’ 두 글자에 담긴 깊은 뜻을 올바르게 알면 기공을 정확하게 인식함에 있어 많은 이로움이 있다. 그러나 기공이라는 한 단어에는 다만 ‘기’와 ‘공’이라는 두 글자의 결합을 넘어선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익지공을 수련한 제자라면 “전적으로 심의(心意)를 사용하여 공부하라”는 충고를 누차 들었을 것이다. 자주 들어 통속적으로까지 들리는 이 말은 도가, 유가, 불가, 의가, 무가 등 각 기공문파의 명언의 반열(班列)에 올라 있은 지 이미 오래 되었으며 기공의 관건은 ‘심의’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공의 모든 기초적인 이론들을 바탕으로 사람의 생명에 대한 정체성을 기공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뜻으로 규정해보면,

‘기공’은 고전적인 인체 생명관의 기초로서 내향적 의식을 사용하여 단련함으로써 자기의 정신과 육체의 공제능력을 증가시켜 사람에게 잠재된 공능을 강화하고 격발(激發)하여 심신이 고도로 조화된 상태에 도달하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정의(定意)할 수 있다.

익지공의 수련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바와 같이 우리가 모든 일(사업, 학업, 스포츠 등)을 함에 있어 정신이 육체를 다스리고 움직여 모든 일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연공과 학습과 사업은 동시에 진행되고 일치하며,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고대인들은 이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여 그들은 기공을 정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고 몸을 수련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여겼다.

몸을 수련함은 자본을 키움이고, 본(本. 본성)이 강해야만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득심응수(得心應手)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기공 혹은 기공현상은 결코 신비하지 않다.

예를 들면 경륜이 쌓인 피아니스트의 두 손은 장기간의 단련으로 날씨가 춥더라도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다만 두 손을 조용히 몇 분 동안 놓아두면 곧 온화해져 자연스럽게 음악을 연주할 준비가 된다.

이는 연공의 효과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으며, 정신이 육체를 공제(控制 제어)하는 능력의 표현으로 일종의 기공현상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굳이 구별을 하자면 기공은 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것이며 자각하지 않음으로써 효과의 차이와 강약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기공이 그렇게 신비하지 않음을 반증해준다.

우리가 기공에 대하여 세련된 인식을 소유한 자로서 일상생활의 시시각각 모든 일에서 이 점을 주의하여 이것(심의)을 떠나지 않으면 연공은 당신과 항상 동반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평범한 곳에서 위대함을 찾을 수 있는 이치이며 기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http://band.us/@8875
열린기사랑센터
중화양생익지공
www.koreagig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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